I Am Just an Ordinary Office Worker RAW novel - Chapter (64)
평범한 회사원입니다-64화(64/180)
< 64화 >
“던전 문은 원래 닫히는 거 아니에요?”
“제가 라엘타닷컴에서 봤는데 던전은 문이라는 개념이 없대요. 들어간 후에 다른 파티도 들어갈 수 있다고 그랬어요.”
“입구가 닫혀버린 건 이레귤러 던전 뿐이라고 그랬는데.”
“원래 안 닫히는 문이 닫혔다는 건 저희 모두 죽게 될 거라는 뜻입니까?”
어수선하고 시끄럽다.
사람이 많다는 건 이런 건가.
아닌데, 지난번에 미국에서 이보다 배는 되는 인원들이 모여있었을 때도 질서정연하고 체계적으로 움직였다.
영웅 길드 플레이어들이 모여있을 때는 말할 필요도 없을 정도고.
어중이떠중이가 많다는 게 바로 이런 건가.
분위기가 음침한 건 흑마법사라는 편견 때문인가.
아니면 저 사람들이 곧 죽게 될 테니 죽기 전에 울분이나 토하자는 심정으로 대화 중이어서 분위기가 어두침침한 건가.
대화 내용은 평범한데 어떻게 저렇게 암울하게 말할 수 있는 거지?
보는 사람이 더 우울해져서 더는 못 봐주겠다.
“여러분. 이동합시다.”
“드디어 가는 건가요. 지옥으로.”
생각해 보면 이 사람들.
대부분 플레이어가 아닌 일반인의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구나.
평범하게 직장 다니거나 아르바이트를 하고.
길드에 들어갔어도 아주 작은 길드에 말단으로 들어가 던전 한번 제대로 구경도 못하고.
그랬다면 시간 내어 라 엘타 퀘스트를 깨러 가기도 어려웠을 거다.
한번 퀘스트에 들어가면 언제 돌아올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일을 포기하고 갈 수도 없으니까.
또, 굳이 플레이어로 활동할 게 아니면 라 엘타 퀘스트를 할 이유도 없다고 생각했을 거다.
여기 있는 대부분이 던전 자체를 처음 보는 사람들인 거 같은데…
총체적 난국이네!
갑자기 이 모든 것을 그만두고 싶어졌다.
일을 벌이다 보니까 재미있어서 나도 모르게 너무 적극적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해버리고 말았어.
그냥 다크 소로우들에게 흑마법에 관한 모든 것을 가르쳐놓으라고 하고.
전반적인 건 덩치에게 떠맡기고 나는 발을 빼야겠다.
덩치는 닫힌 입구 앞에 얌전히 서 있었다.
“거기서 뭐 합니까?”
“문 열어주길 기다리고 있는데요.”
“그 문을요? 제가요?”
“부숴서 열면 되는 거 아니에요? 열어주세요.”
열어도 될 거 같으면 진작 열었겠지.
“입구를 때리고 부숴도 소용없을 겁니다. 그냥 입구만 막힌 게 아니라 던전 내부가 통으로 다른 곳이 되어버렸어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요.”
“그 벽 잡아 뜯고 열어도 아무것도 안 나온다고요. 오히려 천장이 무너질 수도 있으니까 안 하는 걸 추천합니다.”
물론 덩치가 치고받아봤자 벽은 꿈적도 안 하겠지만.
벽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덩치를 끌고 길을 따라 이동했다.
그나마 다크 소로우들은 조용히 잘 따라오네.
“저는 일반 회사에 다녔죠. 플레이어가 일반인보다 일반 회사 들어가기 더 힘든 건 아시죠? 신분을 속일 수도 없고…”
“알죠, 저도 일반 회사 다녔는데. 괜히 상사들이 플레이어보다 자기 잘난 거 증명하겠다고 거드름 피우고. 남들 앞에서 망신주고… 꼭 성공해서 김 부장 앞에서 거만하게 웃어주고 싶었는데.”
“와, 일반 회사 취직시켜주기도 하는구나. 저는 플레이어라고 다 거절당했거든요. 그래서 알바만 주구장창 뛰었죠.”
“전 그나마 길드에 들어갔습니다.”
“와아, 어떻게요?”
“흑마법사여도 괜찮다는 소형 길드가 있었습니다.”
와. 초등학교 저학년 데리고 소풍 가는 기분이네.
죽네 사네 하면서 어떻게 저렇게 긴장감 없을 수 있지.
직접 겪어본 것과 아닌 것의 차이인가. 던전 공략을 글로만 배워서 심각함을 모르는 거 같다.
지금, 이 상황이 얼마나 심각하냐면!
물론 전혀 심각하지 않다.
긴장할 것도 없고. 노래를 부르면서 몹몰이를 해도 안전할걸?
아니, 오히려 그편이 빠른 공략에 도움이 되니까 부디 그렇게 해줬으면 좋겠다.
“갈림길이네.”
“갈림길이군요.”
쭉 길을 따라 걷는데 중간에 떡하니 등장한 갈림길.
양쪽 다 막다른 길 없이 쭉 이어지는 통로 같은데.
인원을 나눠야 하나?
“제가 왼쪽으로 갈 테니까 덩치 씨는 오른쪽 통로로 가세요.”
“왼쪽 길이 더 위험한 길입니까?”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
덩치가 오른쪽 통로 앞에서 기웃거릴 동안 나는 왼쪽을 살펴봤다.
딱히 다른 것도 느껴지지 않고 신경 쓰이는 것도 없고.
오히려 신경 쓰이는 건 뒤쪽의 움직임이다.
“뭡니까, 이건?”
뒤를 돌아보니 모든 플레이어와 흑마법사들이 내 뒤에 줄을 서 있었다.
덩치 뒤편은 썰렁한 바람만 불었다.
“이 사람들이? 저랑 가도 안전하다고요! 안전…”
말을 하던 덩치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내 뒤에 늘어진 줄 맨 끝에 가서 섰다.
저기요? 은근슬쩍 모른 척 끼어들어도 안 끼워줄건데요?
다시 덩치를 오른쪽 통로 앞으로 데려다 놓았다.
“그럼 공평하게 반으로 나눠서 가죠.”
덩치는 다른 사람들을 자기 쪽으로 데려갔다.
나를 제외한 모두를.
물론 사람들은 싫어했지만. 대놓고 싫다고 말할 수도 없고. 도살장에 끌려가는 것 같은 표정으로 덩치 뒤에 섰다.
제발 살려달라고 내 쪽을 향해 반짝반짝 눈을 빛내면서.
“반으로 나눠서 가자면서요.”
“양심 없게 지금 인원수대로 나누려고 하신 겁니까? 무력으로 따져서 이성한 님 혼자, 나머지 저희 모두. 반, 반! 사실 이렇게 나눠도 반이 안 되거든요. 팔 한쪽 떼어주실 거 아니면 이대로 헤어집시다.”
“그건 아무래도 좋은데, 오히려 짐만 되지 않겠어요? 데려가서 방패막이로 쓰시면 안 됩니다.”
플레이어들이 흠칫 몸을 떨었다.
제발 다시 왼쪽으로 데려가 달라는 간절한 눈빛 공격이 이어졌다. 효과는 전혀 없었지만.
솔직히 나한테도 짐이고 번거로운데 덩치가 데려가 준다면 땡큐지!
그렇게 불안해하는 흑마법사 무리와 헤어져 홀로 길을 걸어갔다.
한 삼십 분쯤 걸었을까.
“영 길을 모르겠네.”
갈림길도 너무 많고 미로처럼 꼬여있어.
어느 방향에서 온 건지도 모르겠고 나갈 수가 없겠는데?
분명 이 던전은 일반 던전이라고 들었는데.
내가 들어오면서 아예 싹 다른 던전으로 바뀌어버린 건가. 아니면 다른 장소로 이동해버린 걸까.
어느 쪽이든 확실한 건, 이 던전의 원래 모습은 이 꼴이 아니었을 거라는 것이다.
그냥 미로도 아니고 어마어마하게 많은 양의 함정이 있었다.
갑자기 쏟아져 내리는 화살 비. 바닥이 사라지며 창살 위로 떨어지게 만드는 장치. 오르막길에서 거침없이 나를 향해 굴러오는 거대한 쇠공.
진부하다면 진부하고 지루하기까지 한 뻔한 함정들뿐이었지만.
이 정도면 덩치 쪽은 이미 전멸이겠는데?
물론 나에게는 작은 생채기도 내지 못할 수준이었다.
아마 이 함정을 설치한 당사자가 다시 와보면 울며 땅을 치고 통곡을 할 거다.
내가 전부 산산조각을 내서 폐기물로 만들어놨거든.
이 정도 미로라면 돈도 상당히 들었을 텐데 꼴 좋다.
“또 갈림길이네.”
언제까지 이렇게 길을 헤매야 하는 거지?
처음에는 나들이 가는 기분으로 가볍게 돌아다녔는데 갈수록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사실 끝이란 게 없는 거 아니야?
좋아. 이럴 때 방법은 한가지지.
플레이어 자격증을 받은 기념으로 멋으로 차고 다니던 검을, 그대로 빼서 휘둘렀다.
“안녕, 나는 이 구역의…”
‘콰아아앙-!’
검이 휘둘린 곳을 따라 벽이 갈라지고 천장이 무너져 내렸다.
던전이 반으로 나뉘듯 쩌억 쪼개지기 시작했다.
근데 그거랑 별개로 방금 분홍색 털실 뭉치처럼 생긴 뭔가가 나타나지 않았나?
있었지만, 없습니다. 뭐 그런 건가?
벽이 무너지면서 잔해에 깔린 거 같은데…
뭐, 상관없겠지.
***
같은 시간, 덩치 일행은 평온하게 통로를 따라 걷고 있었다.
“표정이 밝아지셨습니다.”
“에이~ 설마.”
“정말입니다. 첫 만남 후로 이렇게 밝은 모습은 처음이십니다.”
아부라고 하는 건지, 다크 소로우 흑마법사 하나가 덩치 옆에 착 붙어서 말을 걸고 있었다.
확실히 덩치는 이성한과 멀어진 후부터 표정이 환해졌다.
아, 이 해방감!
얼마 만에 느껴보는 자유인가!
자신을 믿고 의지하며 따라오는 무리를 이끌며 느끼는 이 평온함!
긴장했던 것만큼 던전이 위험하지도 않아서 세상 평화로움을 느끼며 통로를 걷고 있었다.
계속해서 이 길이 이어졌으면! 쭉, 쭈욱!
하지만 그 어떤 것이든 끝이 있기 마련이었다.
“안녕. 나는 이 구역의 안내자당.”
이 길의 끝은 주황색 털실뭉치가 반기고 있었다.
“원래 던전에 안내자라는 게 있는 건가?”
“모르겠는데요. 있는 걸 보니 원래 있는 게 아닐까요?”
“라 엘타 시스템이 그렇게 게임 같다더니 던전까지 게임 같은 느낌일진 몰랐네요.”
흑마법사 플레이어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아니, 무슨 소리야.
이런 건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다고.
지구의 던전은 라 엘타에 있는 몬스터 소굴과 똑같이 생긴 거잖아.
안내자라는 게 뭔데?
설마 이것도 지구 던전 난이도가 업그레이드되면서 추가 된 건가?
게임 패치처럼?
여태까지는 튜토리얼이었고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
덩치는 긴장하며 언제라도 도망칠 준비를 했다.
“이쪽 길로 오다니 운이 좋넹. 다른 쪽 길은 온갖 함정들이 가득 찬 미로! 함정에 빠져 고통스럽게 죽게 되거나 제자리걸음을 걷다가 굶어 죽게 되겠징!”
털실뭉치는 신난다고 꺄르륵 웃어 재꼈다.
사실 덩치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이성한이란 인간을 만난 것만 빼고.
어쩌면 오늘은 더더욱 운이 좋은 날인지도 모른다.
함정 없는 길로 와서 운이 좋다는 게 아니라. 저 털실뭉치의 말대로 왼쪽 길로 간 이성한이 함정에 빠져 고통스럽게 죽게 된다면 정말 운이 좋다며 물개박수를 쳐 줄 것이다.
그럴 일은 없을 거 같지만, 젠장.
“그럼 지금부터 설명을 해 볼깡! 너희들은 지금부터 각 방에 들어가면서 끄아악!”
털실뭉치가 본론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갑자기 옆 벽이 폭발하듯 터지면서 그 파편에 맞아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천장도 와르르 무너지고 아주 그냥 개판이 되었다.
“으아악!”
다른 사람들도 돌 파편에 맞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하지만 덩치의 입장에서 갑자기 터진 벽보다. 떨어지는 돌 파편보다. 무너지는 던전보다 더 끔찍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그쪽에 사람 있었어요? 다쳤다면 미안.”
뻔뻔한 놈. 아, 아니 뻔뻔한 인간. 사람. 뻔뻔하신 분.
어차피 제 생각을 읽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몇 번이고 마음속의 외침을 수정하며 덩치는 반박했다.
“다친 수준이 아니라 맞으면 바로 골로 가는 수준이었다고요!”
“하지만 멀쩡하시네요.”
진짜로 너무 멀쩡해서 할 말이 없군.
이성한은 당당하게 이쪽으로 걸어오며 말했다.
“출구가 안 보이길래 그냥 이곳을 다 부숴버리기로 했습니다.”
“끄으윽… 누가 뭐를 부숴엉-?”
벽에 직통으로 맞아 날아가길래 분명 죽었을 줄 알았는데.
털실뭉치는 살아있었다. 아, 털이라서 안 죽는 건가?
털실뭉치는 화를 내며 이성한을 향해 날아갔다.
“날 놀라게 한 대가는 톡톡히 받아낼…!”
그리고 보았다.
그냥 가볍게 벽 하나 뚫은 게 아니라 아예 반으로 갈라진 수준의 던전 잔해와.
부쉈다고 해야 할까, 거의 쫙쫙 찢긴 함정들.
심지어 저어 멀리 보이는 익숙한 색의 털뭉치…
건물 잔해에 깔려 있어서 잘 안 보이지만 확실했다.
또 다른 안내자였다.
털실뭉치는 빠르게 놀이공원 아르바이트생 미소를 지으며 밝은 목소리로 이성한을 반겼다.
“출구는 이쪽입니당~”
< 64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