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Just an Ordinary Office Worker RAW novel - Chapter (67)
평범한 회사원입니다-67화(67/180)
< 67화 >
“내 말 잘 들을 거지?”
이무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착각이겠지. 대화도 안 통하는 몬스터가 무슨 고개를 끄덕여.
미국 연구원들은 자기 눈이 잘못된 거라고 믿기로 결심하고 모른 척 고개를 돌렸다.
“헉, 이… 이성한 플레이어님!”
이무기를 감싸고 있는 쇠사슬을 풀기 시작하자 브라이언은 기겁하며 말렸지만, 이무기는 얌전했다.
라마보다 말을 잘 들어서 빨리 끝났네.
미국 연구원들이 뒤에서 발을 동동 구르든 말든 나는 이무기의 머리를 한번 토닥여주고 연구원들에게 돌아왔다.
“힘 조절을 하면서 테이밍 했더니 운동이 됐네요.”
‘테이밍 이라니. 이 세상의 누구도 그걸 테이밍이라고 부르지 않아.’
팔을 붕붕 돌려가며 스트레칭을 하고 있으니 미국 연구원들은 사람을 괴물 보듯 하고 있었다.
시선이 닿으면 고개를 돌려버렸지만.
그나마 브라이언만이 시선을 돌리지 않고, 대신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내 쪽으로 다가왔다.
“이 이무기는 일 년 전에 생포한 대형 몬스터입니다. 그때는 크기가 많이 작은 편이었죠. 물론 지금의 사이즈에 비해 작다는 거고, 그때도 충분히 위협적인 크기였습니다.”
일 년 전까지는 새끼였던 걸까.
작았다고 해도 평범한 성인 남성의 두 배쯤 되는 크기였을 거다.
확실한 건 지금처럼 올려다보다 목 아플 정도의 크기는 아니었겠지.
“많은 플레이어의 희생으로 겨우 잡아 온 몬스터입니다. 라코프 안에 붙잡아두느라 쏟은 시간과 정성도 무시 못 할 정도죠.”
쏟아부은 돈도 무시 못 할 정도일 거 같은데?
“하지만 최근 들어서 이곳에서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크고 강력해지고 있었습니다. 두 달 내내 굶겨서 겨우 잡아두고 있었지만… 이 이상은 버티기 힘든 상황이었죠.”
먹이를 주면 힘을 얻어서 이곳을 박살 내고 도망칠 거 같고. 먹이를 주지 않으면 결국엔 죽게 됐을 거라는 말이군.
그래서 시간이 없다고 한 건가.
“몬스터가 죽으면 시체를 갖고 연구하는 게 더 수월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여러 희생을 통해 겨우 생포한 몬스터입니다. 그것도 대형을요! 그렇게 쉽게 포기할 수는 없죠.”
일반인인 연구원들은 물리적인 공격을 받지 않아도 심장마비로 사망할 정도의 위압감이다.
연구한다고 데려왔지만 가까이 다가갈 수도 없었겠지. 그렇다고 이제 와서 놓아줄 수도 없고.
남은 연구원들이나 이 근방의 다른 시민들 목숨을 담보로 욕심부리고 있는 거 같아 찜찜하지만.
그래도 대형 몬스터를 살리면서 동시에 통제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을 찾아 헤맸고.
떠올린 게 나였던 건가.
결과만 말하자면 매우 성공적이었다.
왠지 미국 연구원들이 나를 멀리하고 있지만.
“테이밍 감사합니다. 그러면 이제 펫 등록을…”
“잠깐만요.”
너무나도 뻔히 보이는 행동이네.
어디서 밑장빼기야.
왜 연구원들이 연구만 한다는 연구실에 플레이어가 있나 했더니.
처음에는 이무기가 도망칠 걸 대비해 무장 대기 중인 플레이어인 줄 알았는데. 이무기랑 영 상관없는 장소에서 어슬렁대고 있길래 뭔가 싶었다.
이무기가 성공적으로 테이밍되면 자기 쪽 플레이어에게 펫 등록하려고 한 거였구나.
진짜 염치없네.
“펫 등록은 나중에 저희 형 오라고 해서 등록하려고요.”
“예에? 그래도… 미국에서 잡은 몬스터인데…”
“그러면 그냥 두고 가죠. 안녕히 계세요.”
“아, 아니, 아니. 잠깐만.”
내가 등을 돌리자마자 이무기가 축 늘어져 있던 몸을 일으켰다.
그냥 내가 움직임을 보여서 놀라서 그런 거 같다만. 미국 연구원들 눈에는 이렇게 해석됐을 거다.
지금,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 저 인간이 떠나면 바로 공격하겠다!
내가 진짜 짐을 챙겨 들고 출구로 향하자 결국 브라이언은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몬스터의 소유권은 가져가셔도 좋습니다! 연구만 할 수 있게 해주세요.”
“굳이 그렇게 원하신다면야. 귀찮지만 어쩔 수 없이 저희 쪽에서 데려가야겠네요. 어휴, 쓸데없는 군식구가 늘겠네.”
내키지 않는다는 듯 한숨까지 섞인 말에 미국 연구원들은 목구멍까지 꽉꽉 막힌 기분이 들었다.
라코프와 약속한 것은 단 두 가지.
첫 번째. 이무기는 이성현의 펫으로 등록하되, 처음 이무기를 발견한 미국의 공도 인정해 연구할 기회를 준다. 연구가 끝나면 이무기는 우리와 함께 한국으로 돌아간다.
두 번째. 이무기와 관련된 모든 연구는 한국 연구소의 연구원들과 함께 진행하며 모든 결과와 과정을 상호 간에 투명하게 공개한다.
밑장빼기도 할 수 없게 그 짧은 사이에 계약서까지 사인했다.
형과도 빠르게 연락을 마쳤고,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일주일 후에 미국으로 출발하겠다고 답을 받았다.
“이제 호텔로 돌아가십니까?”
처음 만났을 때보다 20년은 더 늙어 보이는 브라이언이 물었다.
나도 바로 호텔로 돌아가서 밥도 먹고 구경하러 나가고 싶은데…
펫 등록이 안 된 상태에서 내가 눈앞에 안 보이면 이무기가 사람들을 공격할지도 모른단 말이지.
이러다가 라코프에 발이 묶여서 출장 내내 놀러 가지도 못하는 거 아냐?
설마 진짜 이렇게 내 휴식이 사라지는 건가?
진짜로?
아.
생각해보니까 영웅 길드에서 지원해준 라마가 있었다.
여기서 나를 제외하고 이무기를 간단하게 제압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
드디어 라마의 유용한 점을 깨닫고 라마에게 이무기 관리 담당이라는 임시 직책을 맡기기로 했다.
“드래곤과 이무기가 함께 놀만 한 공간이 있을까요?”
“뭐? 설마 그 드래곤이란 나를 말하는 건가? 나는 이무기랑 놀고 싶지 않다!”
“이무기를 풀어놓고 행동 패턴을 감시하려고 만든 큰 방이 있습니다. 그 방까지 이무기를 데리고 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여태 사용한 적은 없지만요.”
있구나, 잘 됐다!
“상당히 크게 만들어서 두 분… 두… 몬스터가… 몬스터께서 함께 들어가도 전혀 문제 되지 않을 것입니다.”
“설마 나를 저 이무기와 동급으로 보는 것인가. 만약 그런 거라면 정말로 용서하지 않을 거다, 인간!”
좋았어, 라마. 이 세상에 역시 쓸모없는 것은 없구나.
나는 내일부터 실컷 나가 놀 테니까 그동안 잘 부탁한다고!
같은 몬스터끼리 분명 통하는 게 있을 거라고 강력하게 주장하며 이무기와 라마를 방 안에 넣었다.
말만 방이고 라마가 드래곤의 모습으로 미친 듯이 날아다녀도 될만한 크기의 거대한 공간이었다.
역시 땅덩어리만 넘쳐 흐르게 남아도는 미국!
방은 매직미러로 만들어져 있어서 안에서는 밖을 볼 수 없지만, 밖에서는 안을 관찰할 수 있었다.
결국 이무기와 방 안에 단둘이 갇히게 된 라마가 씩씩대며 폴리모프를 해제하는 걸 방 밖에 서서 구경했다.
“역시 드래곤 님!”
“드래곤 님의 저 멋진 자태란…!”
연구원들이 감탄하며 무언가를 마구 메모하기 시작했다.
드래곤이 이무기를 발로 차 굴리는 장면을 보며 영감이라도 얻은 건가.
“드래곤은 대체 어떻게 테이밍 하신 겁니까?”
브라이언이 감탄사처럼 질문을 내뱉었다.
아까 테이밍 하는 방법을 보여줬을 텐데. 왜 또 묻는 거지.
“강한 몬스터일 수록 보통 지능이 높죠.”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몬스터들은 보통 패면 알아서 깁니다.”
“네?”
브라이언은 설마 통역이 잘못됐나 싶어 통역기를 톡톡 두드려 상태를 확인했다.
통역기는 멀쩡했지만.
“그러면 설마 드래곤도… 아까와 같은 방식으로 테이밍 했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물론이죠.”
“하하, 농담이 참 재미있습니다.”
농담 아닌데.
진지한 내 표정이 브라이언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저, 정말로… 저런 걸 직접…?”
브라이언이 매직미러 너머를 다시 한번 바라봤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렸던 이무기가 공중을 날고 있었다.
물론 그 잠깐 사이에 나는 법을 배운 건 아니다.
거대한 레드 드래곤이 이무기를 발로 차 날려버려서 잠시나마 하늘을 나는 새의 기분을 맛볼 수 있었을 뿐.
라마는 이무기를 아예 갖고 놀고 있었다.
나한테 받은 스트레스를 저기에 푸는 건지.
아주 그냥 밟고 차고 난리가 났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미국 연구원들이 작게 속닥였다.
“저 이무기가 불쌍해지는 날이 올 줄이야.”
“그러게 말이다. 그런데 저 드래곤도 아까 같은 방법으로 테이밍 된 거라면…”
“…난 죽어도 한국과 척지지 않겠어.”
“나도.”
그러면 이제 내 할 일은 정말 다 끝난 건가?
미국까지 온 것 치곤 별거 없네.
“그런데 저희 연구소 소속 연구원분들은 왜 부르신 겁니까?”
“예?”
“연구원이요. 원래는 그분들이 여기에 와서 합동연구를 하는 게 주목표고 저는 그냥 같이 온 거잖아요. 혹시 저를 부를 목적으로 거짓말한 건 아니겠죠? 그렇다면 저희 7층 연구원분들이 매우 실망하실 겁니다.”
거짓말을 하는 건 나였다.
연구원들은 전혀 실망하지 않을 테니까.
원래라면 실망하고 서운해하고 슬퍼했겠지만.
지금이라면 뭐? 거짓말? 신난다, 당장 한국으로 돌아가서 라 엘타로 가자! 라면서 달려갈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내 휴가는?
출장으로 와서 연차 하나도 안 쓰고 월급 받으면서 휴가처럼 펑펑 놀고 펑펑 쓸 수 있는 내 시간은?
“아. 연구원분들을 부른 게 주된 이유는 맞습니다. 반년 전부터 추진하고 있었던 건데 계속 무산되고 있었죠.”
“왜요?”
“그게…”
브라이언은 잠시 머뭇거리다 말을 이었다.
“연구소에서 별다른 성과를 보인 적이 없어서 그랬습니다.”
브라이언은 자기가 말해놓고 혼자 놀라서는 손사래를 쳤다.
“아, 아니 그렇다고 한국을 무시한 건 아닙니다! 단지 합동연구를 통해서 시너지가 나지 않을 거 같았을 뿐입니다!”
왜 이렇게 눈치를 보냐. 그냥 물어본 건데.
“그러면 왜 이제 와서 합동연구를 진행하기로 결정하신 거죠? 여전히 별다른 성과는 없을 텐데요.”
사실 별다른 성과가 전혀 없는 건 아니고.
뭔가 많이 알아낸 거 같긴 한데.
연구원들끼리 모여서 연구하고 연구결과가 나오면 연구결과를 연구하고, 연구결과의 연구결과를 연구하고. 연구결과의 연구결과의 연구…
하여튼 그렇게 끝이 나지 않는 연구를 하는 듯했다.
솔직하게 말해서 나도 정확하게 그 사람들이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지난번에 연구실에 들렀을 땐 오염된 쥐가 리본을 메고 있던데.
그냥 나랑 장난치는 건가 싶기도 하고.
“실은 얼마 전에 이상한 것을 발견해서요. 저희 선에서 연구해서 답이 나올 게 아닌 거 같아서 연락드렸습니다. 학문적인 것과는 별개로 한국은 플레이어 강국이지 않습니까.”
“학문적인 것과는 별개라…”
확실히 남들 눈에는 한국이 플레이어 강국인 것에 비해 데이터 적인 부분에서 많이 뒤처지는 거로 보이겠지.
하지만 그건 우리 7층 연구원들의 시작이 늦어서 그런거고.
자료가 주어진 지금은 누구보다 빨리 달려나가고 있다고!
“아, 학문적인 부분이 부족하다고 무시한 건 절대, 절대, 절대! 아닙니다!”
브라이언은 아예 고개와 양손을 동시에 휘저으며 외쳤다.
“발견했다는 게 뭔가요?”
어차피 연구소와 함께 가기로 한 마당에 숨길 것도 없다는 건지.
아니면 거짓말을 했다간 드래곤에게 두들겨 맞는 이무기 꼴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건지.
브라이언은 바로 발견했다는 것을 가져와 보여줬다.
“이렇게 생긴 수정입니다. 그냥 수정처럼 보이지만 던전에서 발견된 거여서요. 저희가 연구를 했는데 이게…”
브라이언이 뭐라고 계속 설명했지만 듣지 않았다.
그렇게 이과만 알아들을 말 해봤자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고.
이게 뭔지 적어도 이 사람들보다는 더 잘 알고 있었으니까.
보라색인지 자주색인지 오묘한 색상의 수정.
던전에서도 나오고, 광산에서도 나오고. 자꾸 여기저기서 나타나서 눈에 치이는 수정.
또 그 수정이다.
“이게 뭔지 혹시 아십니까?”
“아니요. 저도 궁금하니까 꼭 연구해서 뭔지 알아내 주세요. 꼭이요.”
수정이고 뭐고 어차피 연구원들의 영역은 내가 한 번 더 차에 치여서 또 50년간 라 엘타에 다녀와도 이해 못 할 분야.
내일 연구원들이 오면 알아서 같이 연구하고 결과를 뽑아내겠지.
“하나라도 더 있으면 비교분석을 할 수 있을 텐데. 그게 조금 아쉽습니다.”
나한테 세 개나 있는데.
하나는 집에 굴러다니고 있고, 하나는 형 인벤토리에. 다른 하나는 덩치 인벤토리에 있다.
“미국에서 같은 수정이 하나 더 발견됐지만, 플레이어 클럽에서 갖고 있어서 가져올 수가 없었습니다.”
한숨 섞인 브라이언의 말에 처음 듣는 단어 하나가 섞여 있었다.
뭔 클럽?
플레이어 클럽?
< 67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