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Just an Ordinary Office Worker RAW novel - Chapter (7)
평범한 회사원입니다-7화(7/180)
< 7화 >
눈을 천천히 감았다가 다시 떠보았다.
여전히 베라포드였다.
세월이 흘러서 많은 것이 변했지만 베라포드가 확실하다.
대체 뭐지?
나 플레이어 아닌 거 아니라면서.
플레이어 아니면 포탈 이용 못 한다면서!
“상태창.”
여전히 상태창은 뜨지 않았다.
내가 뭐랬어, 나 플레이어 맞다 그랬잖아.
상태창 안 떠도 플레이어인 게 확실하다고 그랬잖아.
포탈 타고 이동해서 라 엘타까지 왔어. 그러면 나 플레이어인거 맞지? 그렇지?
“그럼 나 이제 플레이어 자격증 따고 플레이어 할 수 있는 거야?”
퇴사의 꿈은 이루어진다!
하지만 퇴사도 지구로 돌아가야 할 수 있는 것.
지구에서 라 엘타로 가는 포탈은 한번 생기면 장소가 바뀌지 않지만, 귀환 포탈은 그렇지 않다.
플레이어가 귀환 조건을 충족시킨 후에 ‘귀환을 희망한다.’고 머릿속으로 떠올리면 바로 앞에 포탈이 생겨난다고 하던데.
귀환 조건은 라 엘타 퀘스트 클리어 1회 이상.
그러니까 퀘스트를 깬 후에.
‘집에 갈래. 지구로 돌아가자.’
이렇게 생각하면 된다는 건가?
그냥 생각을 정리하고 내려다봤을 뿐인데 바로 앞에 방금 본 포탈과 똑같이 생긴 검은 구체가 생겨 있었다.
“뭐야. 이게 왜 생겨. 나 퀘스트도 안 깼는데?”
내가 뭔가 잘못 알고 있었던 건가.
설마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건 아니겠지?
밑져봐야 본전. 포탈 위로 냉큼 올라가 버렸다.
라 엘타로 이동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아주 짧은 순간 눈앞이 컴컴해졌다가 풍경이 바뀌었다.
익숙한 얼굴들이 웅성웅성 떠들다가 나를 보고 순식간에 조용해진 것이 보였다.
“세상에! 벌써 돌아온 겁니까? 아무리 레벨 0 퀘스트라지만 그렇게 빨리··· 난이도 1을 선택하셨나 봅니다.”
수원 포탈 관리원 아저씨의 호들갑이 들리긴 했는데 신경 쓰지 않았다.
혹시 이 사건이 딱 한 번 생긴 우연 같은 거였다면 어떻게 하지?
다시 포탈 위로 올라섰다.
“아니, 다시 들어가면 퀘스트를 또···!”
흐려지는 목소리를 뒤로하고 정신을 차리니 역시나 베라포드였다.
“설마 나, 퀘스트 클리어하지 않고도 라 엘타와 지구를 오갈 수 있는 건가?”
대박이다.
퀘스트 깨는 게 귀찮아서라도 라 엘타에 안 오는 사람도 있을 텐데 나는 왔다 갔다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뜻이잖아.
내가 라 엘타에서 보낸 50년은 지구에서 3년이었다.
시간 비율이 정확하게 떨어지지 않는 것은 이상했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차에 치이고 이세계에 다녀왔는데 눈 떠보니 세상 모두가 같은 세상에 들락날락하고 있었다는 시점에서 이미 시간 비율 같은 건 아무래도 좋았으니까.
대충 시간 비율은 15:1 정도인 거 아닌가 싶어서 형한테 물어보니, 웬걸.
라 엘타와 지구의 시간 비율은 1:1이라고 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계산해 보니 딱 맞아떨어졌다.
나는 라 엘타에서 50년의 세월을 보냈고, 51년 차에 갑자기 지구로 돌아왔다.
정확한 날짜를 계산해 본 것은 아니지만 50년 하고도 반년 정도는 더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지구에서 첫 2년 하고 6개월 동안 라 엘타에서 50년이 흘렀다면?
그러면 시간 비율은 20:1로 딱 맞아떨어진다.
그 후에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지구와 라 엘타가 연결이 되었고. 지구에는 몬스터들이 생기고 라 엘타에는 플레이어들이 출입하면서 시간 비율이 1:1이 된 거다.
그래서 지구와 라 엘타가 연결된 반년 동안 나도 10년이 아닌 반년이 흐른 거고.
그 반년 동안 내가 베라포드에 있었더라면 다른 플레이어나, 심지어 형도 만나 봤을 수도 있었을지도 모르지.
그때 나는 베라포드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신나게 몬스터 들을 잡고 있어서 이 모든 변화를 알 수 없었지만.
물론 이 모든 건 가설일 뿐이다.
“내가 신도 아니고, 모든걸 다 알 수는 없지.”
오늘 라 엘타로 돌아오면서 확실해진 것은 한가지.
지구와 라 엘타가 연결되면서 영향을 끼친 것은 두 차원 사이의 시간 비율뿐만이 아니다.
나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얼마만큼 끼쳤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상태창은 보이지 않으면서 포탈을 이용할 수 있을 만큼의 영향은 끼쳤다.
이럴 거면 상태창도 보이게 해주지 그랬냐. 플레이어 하게.
“밖에 사람들이 기다릴 테니 돌아가 봐야 하나.”
아니지. 내가 퀘스트를 깨는 중이라고 생각하고 기다리지 않고 해산했을지도.
이론상 원할 때마다 포탈 이동이 가능한 것은 맞지만, 그건 지구의 포탈에 접근 권한이 있을 때 한정이다.
포탈 이동은 가능하지만 상태창이 보이지 않으니 플레이어가 아니라고 자격증을 안 주면?
라 엘타로 돌아오는 것이 힘들 수도 있다.
그렇다면 돌아가기 전에 들러야 한다.
베라포드의 저택에.
내가 살던 저택은 베라포드에 있는 건물 중 영주 성 다음으로 큰 건물이다.
마음만 먹으면 영주 성보다도 크게 지을 무력도 있고 재력도 있지만, 영주 체면도 있고 영 모르는 사이도 아니어서 그냥 적당하게 큰 저택을 짓는 것으로 만족했었지.
그때만 해도 큰 건물이라고는 영주 성과 내 저택밖에 없었는데 베라포드도 많이 달라졌다.
큰 건물도 들어서고, 마을보다는 도시에 가깝게 변했고.
그러고 보니 마지막으로 베라포드에 들렀던 게 언제였더라.
전쟁 끝나고 저택이 다 지어지자마자 10년을 내리 베라포드에 박혀 있었는데.
그러다 무슨 바람이 불어 저택을 집사와 사용인들에게 맡기고 훌쩍 떠나버렸지.
10년 반 동안 몬스터 토벌한다고 들르지도 않다가 또 지구로 돌아가는 바람에 3년 넘게 시간이 흘렀으니까……
14년 만에 돌아오는 게 되나?
오랜만에 보는 집사와 사용인들이 자신을 보고 놀라고, 기뻐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어쩐지 코끝이 간질간질해졌다.
이게 바로 서프라이즈지!
바로 저택으로 달려가 문을 쾅쾅 두드렸다.
누군가가 나와 보길 기다리면서 괜히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옷차림이 와이셔츠에 정장 바지 차림이었지만, 골드는커녕 실버 하나 없는 상태여서 옷을 살 수도 없고.
“누구십니까?”
문을 두드리고 몇 초 정도 기다리자 커다란 문이 열렸다.
열린 문틈으로 보인 것은 집사였다.
못 본 사이에 흰 머리도 많이 생기고 나이를 먹은 티가 많이 났지만 확실하게 집사였다.
“서프라~이즈!”
아, 이렇게 말하면 못 이해하려나?
“내가 왔다!”
“아, 오셨습니까?”
가슴을 붙잡고 너무 놀라서 거품 물고 기절! 까지는 아니더라도 ‘헉, 이안 님!’ 정도의 반응은 기대했는데.
이런 건조한 반응이라니!
이러면 내가 더 뻘쭘해지잖아.
“아, 어어. 오랜만이다.”
어색함에 뒷머리를 긁적이며 안으로 들어섰다.
“어머, 오셨네요, 이안 님.”
“오셨습니까?”
“오셨네요. 오랜만입니다.”
집사의 뒤를 따라 걸어가니 지나가던 사용인들이 정말 어제 만나고 오늘 또 만난 사람을 보는 것처럼 인사를 건네왔다.
사실 내 존재감이 개미 더듬이만큼도 없어서 내가 없는 동안에도 없는 줄 몰랐던 거 아냐?
나 조금 서운해지려고 해.
“오랜만에 보는데 나 안 반가워?”
안내를 받아 방에 들어가 앉자마자 대뜸 집사에게 물었다.
집사는 새삼스럽게 무슨 말이냐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평소에도 늘 몇 년에 한 번씩 얼굴을 비추시지 않았습니까?”
“내가?”
“예. 지하 수련장에서 식사하시고, 주무시고. 이, 삼 년에 한 번씩 나오셨죠. 몬스터 토벌을 하시겠다고 저택을 떠나신 후에도 이안 님이 가신 줄 모르고 메리가 반년간 지하로 식사를 날랐습니다.”
“메리가?”
“예.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와서 이안 님이 반년 전부터 식사를 안 드시는데 수련장 안에서 돌아가신 것 같다고 펑펑 울었죠.”
그러고 보니 몬스터를 잡으러 가겠다고 인사도 없이 떠났었지.
아니, 나는 내가 일주일 정도 있다가 돌아올 줄 알았지.
“몬스터 토벌하시는 동안의 활약은 간간이 신문에 실려서 소식은 듣고 있었습니다.”
그런 것도 신문에 실렸구나.
전혀 몰랐다.
쓸 기사 없다고 아무 기사나 마구 집어넣는 건 지구나 라 엘타나 똑같네.
“한 4, 5년 전부터는 아무런 소식이 들리지 않아 진짜 변고라도 생긴 것인가 걱정했습니다. 정보 길드에 의뢰라도 해야 하나 고민하던 참이었는데 때를 맞춰 잘 오셨네요.”
“근데 나 좀 젊어지지 않았어? 훨씬 어려 보이지 않아?”
오랜만에 봤다고 전혀 놀라거나 반가워하지 않으니 방향을 틀었다.
“아, 예. 그러고 보니 더 젊어지신 것 같네요. 나가 계신 동안 좋은 거 드시고 오셨나 봅니다.”
처음 이 저택을 샀을 때가 50살.
몬스터를 잡겠다고 집을 뛰쳐나갔을 때가 60살 때였다.
물론 외형은 30대로 보였지만.
그랬던 내 모습이 지구로 귀환하면서 20대 초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외형은 10년이나 젊어지고 영혼은 몇십 년씩 젊어 져서 다시 만났는데 이런 뜨뜻미지근한 반응이라니.
정말 기운 빠지는 반응이다.
차라리 처음에 들어올 때 나는 이안 경의 아들입니다, 하고 들어왔으면 정말 재미있는 반응을 볼 수 있었을 텐데.
누가 시간을 몇십 분만 앞으로 돌려줘!
“이 옷은 안 이상해? 베라포드… 아니, 라 엘타에서는 본 적 없는 옷이잖아. 이런 옷 입고 있는데 왜 안 놀라?”
“유행에 많이 뒤처지신 것 같습니다, 이안 님. 몇 년 전부터 베라포드에 나타나는 사람들이 처음에 입고 오는 종류의 옷이 아닙니까. 2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옷들이 유행했는데 지금은 한물갔지요.”
내가 유행에 뒤처진다니, 충격이다.
집사는 마치 ‘그래, 니가 산속에서 은둔하다 나와 보니 이런 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 신기해서 한 벌 구해다가 왔나 보지. 근데 우린 몇 년 전에 이미 다 해봤던 거란다.’라고 말하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아니거든.
나는 이런 옷들을 만드는 세계에서 온 거든.
유행에 뒤처지고 그런 거 아니거든.
“됐어. 나 나갔다 올 거니까 말리지 마.”
“몇 년 후에 뵙겠습니다.”
“며칠 후에 돌아올 거다!”
‘저거, 저거. 삐쳤군.’이라는 시선을 무시하고 저택을 나왔다.
어쩐지 조금 서러워졌지만 내 저택과 재산이 무사하다면 됐다.
권위는 바닥을 치고 있는 것 같다만···
서러움을 뒤로하고 저택을 나와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도 엄청 많네.
누가 봐도 지구인인 사람도 있고.
진짜 MMORPG 게임의 시작 마을 같은 풍경이다.
“퀘스트 보드. 퀘스트 보드는 어디로 가야 하지.”
“뉴비세요? 퀘보는 저기로 가면 돼요. 사람들 많은 거 보이시죠?”
혼잣말 한 것뿐인데 지나가던 지구인이 안내를 해주는 수준이다.
그나저나 뉴비라니.
진짜 게임이라도 하는 기분이잖아.
지나가던 지구인이 가르쳐준 대로 사람들이 제일 우글우글 모여있는 곳으로 가니 퀘스트 보드가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귀환을 위해서라면 퀘스트 깨는 게 필수지만 나는 아니지.
그렇다면 여기까지 왜 찾아왔느냐.
퀘스트를 할 수 있는지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상태창도 없는데, 퀘스트 보드는 반응하나?
“퀘스트 보드에 손을 대면 ‘활성화’가 시작된댔지.”
연구소에 다니는 게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퀘스트가 활성화된다면 나도 상태창이 생기지 않을까, 라는 기대를 품고 퀘스트 보드에 손을 갖다 댔다.
자, 어서 활성화를 시작해라!
그리고 나한테도 상태창과 퀘스트 창을 줘!
[퀘스트 보드의 업데이트를 시작합니다.]오오! 안내창 처음 받아봤어.
이제 나도 안내창 받아본 사람이라… 어?
업데이트?
활성화가 아니라 업데이트?
분명 라 엘타에 다녀온 수십, 수백, 수천의 플레이어들이 연구소와 인터뷰를 하면서 ‘처음으로 퀘스트 보드에 손을 대면 퀘스트 보드가 활성화됩니다.’ 같은 말을 했을 것이다.
그 정보를 바탕으로 라엘타닷컴에 기록이 올라가는 거고.
만약 백 명 중 한 명이라도 ‘활성화’가 아닌 ‘업데이트’가 됐었다는 말을 했다면.
[‘활성화’가 아닌 ‘업데이트’가 되는 예도 있다고 한다] 같은 말이 주석으로 달렸을 텐데.내 기억상 그런 말은 적혀 있지 않았다.
[업데이트가 종료되었습니다.]생각하는 사이에 업데이트가 종료됐다.
그래서?
그래서 업데이트되어서 어떻게 된 건데.
퀘스트 창을 몇 번 더 두드려보았지만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왜 이래.”
퀘스트 보드 활성화 후에 다시 터치하면 퀘스트 목록이 뜬다 그랬는데.
목록은커녕 글자 하나 보이지 않았다.
뭔데. 그럼 기대라도 하지 않게 업데이트도 하지 말든가.
그 업데이트는 뭐였는데.
“어? 못 보던 퀘가 생겼는데?”
“야, 나 서브퀘 생겼어.”
갑자기 옆에 서서 퀘스트 보드를 보고 있던 사람들이 뜬금없는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너도? 혹시 퀘스트 이름이 ‘이안 경을 찾아서’ 야?”
“어. 이안 경이라는 사람한테 가서 자기소개하는 것만으로도 근력 오른다는데?”
“미쳤다. 이건 반드시 해야 해.”
뭐야.
설마 이 미친 퀘스트 보드.
내가 손 갖다 대니까 내 퀘스트를 업데이트한 게 아니라 나를 뺀 다른 모든 사람의 퀘스트를 업데이트 시켜준 거야?
장난해?
< 7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