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Just an Ordinary Office Worker RAW novel - Chapter (73)
평범한 회사원입니다-73화(73/180)
< 73화 >
생각해보니까 오늘은 수요일.
마그웨이가 출근하는 날이구나.
물건 가지러 창고 방에 들어갔다가 여태 앉아서 듣고 있었던 건가.
“죽어라, 우리 가문의 원수!”
너희 아버지 안 돌아가셨거든. 살아계시거든.
왜 자꾸 원수 타령이야.
“지, 진짜 제이스 마그웨이다! 공작이 왜 지구에? 아니, 어, 어떻게 지구에?”
“감히 누구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가!”
마그웨이가 판매용 검을 쥐고 어둠 소속 플레이어에게 달려들어 휘둘렀다.
“으아악!”
어둠 소속 플레이어는 몸이 잘리는 대신 반대쪽 구석으로 날아가 처박혔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마그웨이가 플레이어를 두 동강 내기 전에 내가 잡아서 던져버렸다.
귀중한 단서를 반으로 갈라버리면 큰일이지.
“크훠어, 억.”
이런 실수.
멱살 잡고 던졌더니 머리부터 떨어졌네.
“얼굴이 좀 납작해지기는 했지만, 몸이 분리되는 것보단 낫겠죠?”
“이, 예에…”
분노하는 마그웨이를 겨우 달래놓고 앉혔다.
“그럼 다시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오…오애힘니다… 더능 던 아그에이 공다글 듀긴게…”
“라마, 힐.”
라마는 귀찮다고 투덜대면서도 얼굴이 퉁퉁 부어 말을 못 하는 플레이어를 치료했다.
“크흡, 오해십니다. 저는 전 마그웨이 공작을 죽인 게 아닙니다.”
“방금 네놈이 한 말은 뭐냔 말인가!”
“제가 말한 마그웨이 공작은 선대 공작이 아니라 당신 말하는 겁니다, 당신!”
플레이어는 억울함에 마그웨이를 향해 손가락질까지 하며 외쳤다.
“선대 공작이 흑마법에 휘말려 죽은 건 알고 있지만, 그건 제가 기사단에 들어가기 전에 있었던 일이라고요!”
그 선대 공작 아직 안 죽었다니까.
플레이어 쪽은 진짜로 죽었다고 생각해서 저러는 거겠지만. 마그 너는 왜 정말 부모님을 죽인 원수를 보듯 대하고 있냐.
“그저 같은 방법으로 이쪽 공작에게 흑마법을 걸어 명예를 실추시키고 마그웨이 공작가를 쓱싹하려는 계획이란 건데, 어허흑.”
“그게 무슨 자랑이라고 그렇게 당당하게 말을 하십니까?”
“당당하지 못할 건 뭐가 있나요. 어차피 퀘스트일 뿐인데.”
한국에 유독 라 엘타와 시스템을 게임처럼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기는 하다.
실제로 분위기를 그런 식으로 형성해 놨으니 어쩔 수 없지.
문제는 너무 가볍게 여기다 보니 라 엘타의 주민들도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라 데이터 취급을 하는 플레이어들이 있단 말이지.
이 플레이어도 그런 유형의 사람이었을 거다.
그러다가 줄곧 가상의 세상에서만 존재한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 게임 캐릭터가 뜬금없이 눈앞에 있으니 진짜 당황스럽겠지.
지금도 실시간으로 마그 눈치를 보고 있다.
“그래서… 마그웨이는 대체 왜 여기에…?”
“제가 운영하는 무기 상점 알바생입니다”
“라무상이요? 헉, 거기 알바생이 마그웨이 공작 닮았다는 소문이… 사실은 닮은 게 아니라 본인이었던 거라니! …응? 아니, 대체 왜 공작이 알바 같은 거를…?”
더 큰 의문이 생긴 거 같지만 내 알 바 아니니까 됐고.
“그래서 어둠의 본거지는 알고 있나요?”
“당연히 모릅니다. 사실 어둠이 규모가 거대해 보이는 이유가, 하청 업체처럼 다른 흑마법사 무리가 다닥다닥 붙어있기 때문이거든요.”
이 부분은 나중에 다크 소로우 쪽에 상세히 물어봐야겠다.
“그러다 보니까 흑마법사들이 라 엘타 곳곳에 흩어져 있어서. 얼마나 많은 장소에 퍼져있는지도 모릅니다. 장소를 파악하는 건 불가능 하다고 봐야죠.”
결국은 모른다는 거잖아.
“그럼 서브 퀘스트를 진행하다 보면 어둠을 만나게 될 확률은 얼마나 됩니까.”
“당장은 굉장히 적지만. 퀘스트 하다 보면 어둠과 접촉하게 될 일은 있지요.”
“지금 진행 중인 서브퀘는 어떤 거죠?”
플레이어는 다시 한번 마그웨이의 눈치를 보더니 말을 이었다.
“원래는 공작가 하녀를 꼬셔서 흑마력을 응축시켜 만든 약을 현 마그웨이 공작에게 먹이는 거였는데요.”
흑마력을 응축시켜서 약을 만들었다고?
이쪽에서 받아가서 연구하기 딱 좋겠군.
“이게 약이 무색이 아니라서 색이 있는 액체에 타야 하거든요. 마그웨이 공작이 술도 안 마시고 차도 안 마시는 재미없…지 않고 아주 건강하고 현명한 삶을 살고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실패했죠.”
“그 전에 하녀를 설득하는 건 성공하신 건가요?”
“아뇨. 거기서부터 실패했는데요.”
그러면 왜 약 색깔 때문에 실패한 거처럼 말을 해.
“서브퀘 클리어를 못 했으니 지금은 막혀있겠네요.”
“아. 이게 다른 연계 퀘스트와는 다르게 일정 기간이 지나면 서브퀘를 파기하고 다른 거로 바꿀 수 있더라고요.”
성공하지 못해도 연계되는 퀘스트라니.
메인퀘도 밀어두고 할 만하네.
“마침 이번 주나 다음 주에 만나기로 되어있어요.”
“만나는 건 어떻게 약속을 하고 만나나요. 그쪽에서 아무 때나 찾아오나요?”
“그럴 때도 있는데, 보통은 만날 시기를 잡아놓고 제가 신호를 보낸 후, 그날 밤에 약속된 장소에서 만납니다.”
“좋다! 그럼 당장 출발…”
제일 의욕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당장이라도 어둠에 쳐들어가려 하는 마그웨이를 다시 앉혔다.
“마그 너는 출근하시고. 이건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맡은 일이나 잘해라.”
“말도 안 됩니다! 저희 가문에 관한 일에 제가 빠진다는 건…”
마그웨이가 오만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지만 싹 무시했다.
너 없으면 라마 무기상점은 누가 보냐.
“그런데 이성한 님. 연구소에 협력하면 영웅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이 사실입니까?”
이 플레이어가 왜 이렇게 적극적인가 했더니.
영웅 길드가 목표였냐.
“라무상 표 무기도 주고, 영웅 길드에 꽂아주고 연합에 등록된 던전에도 자유 출입이 가능하다고 들었는데요.”
당연하지만 그런 혜택은 없었다.
있더라도 하나 남은 친구의 아들을 리치로 만들려고 한 놈한테는 안 준다.
하지만 그런 거 없이도 사람을 적극적으로 협조하게 만드는 방법을 알지.
어둠 소속 플레이어를 끌고 형, 라마와 함께 라 엘타로 들어왔다.
물론 포탈 말고 마법진으로.
“뭐지? 여긴 어디지?”
플레이어는 당황해 눈을 끔뻑이며 주위를 살폈다.
“여기는 라 엘타인데요. 메인 퀘스트를 깨도 돌아갈 수 없게 되셨습니다.”
“…예? 그게 무슨 뜻이죠?”
“제가 없으면 당신은 나갈 수가 없다는 뜻이죠. 그러니까 우리 말을 잘 듣는 게 좋을 겁니다.”
“정말 훌륭한 협박이다. 이 순간만큼은 네가 어둠보다 더 사악해 보였을 거다.”
라마가 박수까지 치며 칭찬했다.
“제가 뭘 하면 되는 건데요?”
“그렇게 대화하고 아직도 파악 못 했어요? 어둠이랑 만나게 해줘야죠.”
“네? 그랬다가 저 죽어요! 제가 배신했다는 걸 알면 저를 흑마법에 절여놓고 살을 깎으면서 죽지도 못하게 할 겁니다! 영혼이 지옥에 떨어질 거라고요!”
언제는 게임 같이 여기더니 영혼이 지옥에 떨어지는 소리 하네.
“하지만 여기서 저희 말을 따르지 않으면 지구에 돌아가지 못하고 갇히게 될 텐데요.
마그웨이 공작에게 사실을 들켰으니 공작가에서 쫓겨나는 건 물론, 지명수배까지 걸릴 거고.
당신이 쓸모없어졌다는 걸 알면 어둠에서도 버려질 거고.
그러다 잡히면 어둠과 한패라고 공개처형을 당하거나 정보를 털어놓을 때까지 고문을 당하겠죠.
아쉽게도 아는 정보가 없어서 고문에서 벗어날 수는 없겠지만.
아, 그래도 이쪽은 죽지도 못하게 하면서 살을 깎진 않겠네요. 그냥 살 깎고 죽게 놔두지.”
“하겠습니다. 제발 어둠을 배신하게 해주세요. 그까짓 거 어둠 배신하고 지구 돌아가서 살죠!”
“그렇게까지 부탁하신다면야.”
만나자는 신호는 플레이어가 거주하는 기사단 숙소의 방 창문에 붉은 끈을 달아놓는 것이었다.
그런데 저 붉은 끈.
성 밖에서 보는데도 진짜 잘 보인다.
그리고 엄청나게 수상해 보인다.
누가 봐도 저건 암호인데. 어둠은 어떻게 여태 안 걸리고 활동할 수 있었던 거지.
이 자식들 의외로 엄청 허술한걸.
어둠과 매번 만난다는 약속장소는 골목길 안쪽에 있는 허름한 집이었다.
“저 대신 기다리고 있다가 어둠 쪽 사람이 오면 잡으시려고요?”
“아뇨. 오면 서브 퀘스트 줄 거 아니에요. 이참에 주로 어떤 임무를 시키는지 들어나 봅시다.”
흑마법사를 기다리고 있다가 깜짝 놀라게 해주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자신들이 모여있는 위치를 말해주지 않거나 거짓을 말해준다면 귀찮아진단 말이지.
몰래 숨어서 따라가는 쪽이 오히려 속 편하다.
나는 집 안, 라마는 집 밖에서 대기.
형은 기다리고 있다가 나와 라마가 흑마법사를 추적하기 위해 떠난 후에 어둠 소속 플레이어를 감시하고 있기로 했다.
그리고 약속된 시간.
문이 조용히 열리고 검은 연기가 방 안으로 들어와 뭉치더니 인간의 형태를 만들었다.
상당히 공들여 연출한 등장이네.
영화에서 봤다면 정말 멋지다며 박수 쳤겠지만.
현실에서 저러고 있으니 그냥 설정에 충실한 사람으로만 보여서 전혀 멋있지 않았다.
흑마법사는 흑마법사답게 검은 망토로 몸을 두르고 후드까지 푹 눌러쓰고 있었다.
“일은 잘 해결되었나.”
“실패했습니다. 하녀를 꾀어 약을 타는 것까지는 성공했지만, 지난 몇 주간 계속 공작이 자리를 비우는 바람에…”
저, 저 거짓말쟁이.
약을 타기는커녕 하녀를 꾀는 단계에서 실패했으면서.
“공작이 몇 주 동안이나 자리를 비웠다고? 오히려 기회일지도 모르겠군. 이 정보를 토대로 새로운 계획을 짜야겠어.”
“그동안 저는 무슨 일을 하고 있으면 되겠습니까.”
“영웅이라 불리는 이안이란 자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나.”
“물론입니다.”
뭐지. 혹시 나랑 관련된 서브 퀘스트를 주는 건가.
“영웅의 파멸을 네 손으로 직접 일궈낼 기회를 주지.”
“네? 정말입니까?”
“놈의 최측근이 지금 우리 곁에 있다. 그를 통한다면 놈을 함정에 빠뜨리는 건 간단하지.”
최측근! 덩치를 말하는 거겠지. 언제 덩치가 내 최측근이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덩치를 제외하고 사라진 사람은 없으니까, 뭐. 대충 맞겠지.
사실 내 최측근이라며 어둠에 합류한 사람이 집사만 아니면 된다.
배신감을 느끼고, 슬프고 그런 건 둘째치고.
집사가 처리하고 관리하는 업무량이 덩치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은데 집사가 그만둬버리면 타격이 크단 말이야.
“계획대로 일이 진행된다면 그다음이 네 차례가 될 것이다.”
“알겠습니다,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말을 마친 흑마법사는 연기와 함께 사라졌다.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이유로 마법을 쓰는 놈일세.
그냥 나가면 되는 것을 연기까지 피워가며 뿅 사라진 척하며 나가야 하는 건가.
기껏 연기 피워놓고 막상 나갈 땐 두 발로 뛰어나가는 거 다 봤거든.
온갖 똥폼은 다 잡고 가네.
흑마법사가 집 밖으로 나가자마자 숨어있던 방에서 나왔다.
“아까 엄청나게 좋아하시더라고요.”
“아, 영웅이라는 사람을 제가 직접 나락으로 끌어내릴 생각을 하니 저도 모르게 그만.”
플레이어는 헤헤 웃기까지 하며 대놓고 좋아했다.
그런 플레이어를 마주 보고 함께 웃어줬다.
“그 이안이라는 사람이 바로 전데요.”
“네?”
여전히 웃는 얼굴로 플레이어의 어깨를 두드렸다.
“나중에 봅시다.”
“네? 예? 잠깐. 잠시만요! 아니, 잠깐…”
플레이어의 외침을 무시하고 밖으로 나오니 이미 라마는 흑마법사를 쫓고 있었다.
마법으로 이동할 줄 알고 마력을 추적해서 따라가라고 라마를 대기시켜둔 건데.
이 흑마법사는 그냥 걸어가네.
필요 없는 곳에는 마법을 쓰고, 필요한 곳에는 안 쓰고.
흑마법을 글로 배웠나. 활용성이 빵점이잖아.
걸음걸이도 느려서 추격이 전혀 박진감 넘치지 않았다.
그냥 멀찍이 떨어져서 안 들키게 뒤따라가면 끝.
흑마법사가 향한 곳은 마그웨이 영지 바로 근처의 깊은 산 속이었다.
설마 여기가 본거지는 아니겠지.
굳이 이미지적으로 따지자면 흑마법사 소굴이라기보다는 산적 소굴에 가까운 느낌인데.
상상 속의 어둠에 대한 이미지가 박살이 나고 있어.
라마는 밖에 대기시켜놓고 흑마법사를 마저 쫓았다.
산채… 아니, 건물처럼 개조해놓은 동굴 안쪽으로 따라 들어가니 지하로 향하는 길이 보였다.
땅을 파서 지하를 만들고 감옥으로 개조한 건가.
감옥에 뭐 가둬놓을 게 있다고 만든 거지? 곰?
그 안에는 곰 대신 덩치가 갇혀 있었다.
< 73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