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Just an Ordinary Office Worker RAW novel - Chapter (75)
평범한 회사원입니다-75화(75/180)
< 75화 >
지하에 남아있는 건 흑마법사들의 시체뿐.
라마는 없었다.
설마 라마가? 대체 왜.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인간에게 푼 건가. 어쩌면 한 대 툭, 친 건데 힘 조절을 못 해서 실수로 죽여버린 건지도. 그것도 아니라면 라마가 나를 배신?
따위의 의심 같은 건 하지도 않았다.
그냥 딱 봐도 흑마법으로 살해당했네.
라마가 죽였다면 다른 어떤 방법을 썼든 흑마법은 아니었겠지.
이건 누가 봐도 그냥 어둠이 한 짓이다.
같은 처지끼리 서로 의지하고 꽁꽁 뭉치지는 못할망정.
사람을 소모품 취급하고 필요 없어졌다고 바로 내다 버려?
딱 악의 조직이 할 법한 행동 아닌가.
겸사겸사 나와 라마 사이에 오해의 싹을 피우고 싶었던 거 같은데.
흔적을 지울 거면 좀 잘 지울 것이지 이렇게 어설퍼서야.
유일한 의문은 라마가 두 눈 뜨고 지켜보고 있었는데 어떻게 암살에 성공했냐는 건데.
그건 라마를 만나서 물어보면 알 수 있겠지.
라마는 어둠을 쫓아간 듯했다.
덩치처럼 멍청하게 납치나 당하진 않았을 테고.
어차피 마력의 흔적을 쫓는 건 내 전문분야가 아니니까.
그쪽은 라마에게 맡겨두기로 하고 어둠의 은신처나 뒤져보기 시작했다.
“진짜 별거 없네. 엄청 대단한 조직인 거처럼 꾸미고 다녔으면 보석이나 희귀한 마법서라고 갖고 있어야 하는 거 아냐?”
탈탈 털었지만 나온 거라곤 새끼손톱만 한 크기의 검은색 알약 몇 개.
이게 마그웨이한테 먹이려고 했다는 그건가.
약을 챙기고 형을 통해 라마와 연락하기 위해 다시 저택으로 향했다.
“형, 지금 라마가 어둠을 쫓고 있는데 연락이 안… 라마 니가 왜 여기 있어.”
“이제 왔나.”
라마는 뻔뻔하게 형 옆에 앉아서 어서 오라고 손을 흔들고 있었다.
이제 왔고 자시고. 왜 여기 있냐고.
“당연히 소환됐으니까 여기 있는 거다.”
“형이 소환한 거야? 무슨 일 있었어?”
“소환 안 했고 아무 일도 없었다. 네가 나가고 십 분 정도 후에 갑자기 나타났어. 아무 말 없이 계속 여기 앉아있길래 할 일을 마치고 온 줄 알았는데, 아니야?”
이건 또 무슨 상황이야.
“드래곤 하트에 맹세코 내 발로 날아오지 않았다.”
발로 어떻게 날아오냐.
“물론 텔레포트 한 것도 아니다.”
“알아. 내 저택으로 텔레포트가 불가능하게 막아놨으니까. 드래곤이라도 못 해.”
라마는 드래곤도 불가능하다는 말에 자존심에 금이라도 간 건지.
의자에 앉은 채로 몇 번이고 무언가를 시도하다 포기했다.
아무것도 안 한 척 뻔뻔하게 앉아서 딴청 부리고 있는데.
텔레포트 시도한 거 다 알거든.
사실 텔레포트 뿐 아니라 마력을 운용한 마법은 전부 막혀있다.
어차피 나를 포함한 저택 식구 중 마법을 쓰는 사람은 한 명도 없으니까.
플레이어의 스킬은 마법이 아니라 스킬로 분류되는 건지 잘 됐지만.
그래서 더 이상하다는 말이지.
흑마법도 마법인 이상 라마를 내 저택으로 이동시키는 것은 불가능.
애초에 흑마법을 썼다면 라마가 감지했을 테고.
그렇다는 건 라마를 소환한 게 시스템이 맞다는 건데. 막상 형은 소환한 적이 없다고 하고.
설마 시스템 에러? 이제 멋대로 행동하는 거야?
장난해?
“그런데 말이야, 라마.”
“왜 부르나.”
“형이 너를 소환한 적 없다고 하면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채고 바로 돌아갔어야지. 왜 여기 앉아서 쿠키를 먹고 있냐.”
라마는 조용히 들고 있던 쿠키를 내려놓았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요즘 안 맞은 지 오래되긴 했지.”
전자제품과 시스템 그리고 드래곤이 제대로 작동 안 할 땐 몇 대 때려주면 잘 돌아간다는 불변의 법칙이란 게 있다.
“그러, 그런 의미가 아니다! 알아낼 건 다 알아냈으니 쉬어도 괜찮다고 판단했을 뿐이다!”
“어둠 본거지의 정확한 위치와 규모. 그들의 목표, 다음 계획까지 다 알아냈다고?”
“……정정하겠다. 대략적인 위치는 알아냈다.”
이런 쓸모라고는 개미 더듬이만큼도 없는 라마 같으니라고.
“대략적인 위치는 어딘데.”
“수도라고 했다.”
수도?
어디 시골 변두리나 산속, 동굴 속에 숨어 있는 게 아니라 당당하게 수도에 자리 잡고 있다고?
그리고 고작 ‘수도’라는 단서 하나 알아내고 뻔뻔하게 할 일 다 했다며 여기 앉아있다는 건가.
수도가 얼마나 광범위한데 그게 도움이나 될 거 같아?
“역시 실수로 다 때려죽이고 와서 소환당한 척,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는 건 아니겠지.”
“절대로 아니다.”
라마가 저택으로 이동된 건 내가 나가고 십 분 후.
시스템 오류라고 웃고 넘어가기엔 타이밍이 놀라울 정도로 잘 맞아떨어지는데.
누가 봐도 이건 이쪽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가 때를 맞춰 라마를 이동시키고 빈집털이를 한 거란 말이지.
과연 어떻게 이쪽 상황을 살피고 있었던 걸까.
당연하지만 우리를 미행한 건 아니다.
흑마법사들이 우리를 보고 있는데 라마와 내가 눈치를 못 챘다고?
그런 웃기지도 않는 소리를.
고작 흑마법사 따위가 어슬렁거리고 있었다면 내가 파악하지 못했을 리 없다.
“이 상황에서 어둠이 우리를 지켜볼 방법은 딱 하나네.”
우리 셋은 동시에 어둠 소속 플레이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안 그래도 희미한 존재감이 더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조용히 방구석에 박혀있던 플레이어는 깜짝 놀라며 손사래 쳤다.
“예? 저, 저 아닌데요.”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벌써 아니라고 큰 소리로 부정하는 건, 보통 ‘나 수상하니 잡아가시오’란 뜻이지.
“이게 가장 말이 되는 시나리오 아냐? 우리의 대화를 계속 엿듣다가 내가 저택에서 나간 순간 어둠에 연락했거나 직접 라마를 이쪽으로 소환한 거지.”
“마법이 안 된다고 해도 스킬은 가능하다고 했지? 어쩌면 저 플레이어의 스킬일지도 모른다.”
“아니, 아닙니다! 절대, 진짜로, 정말, 네버! 저는 아니라고요!”
됐고, 일단 스킬창부터 확인하자.
“그런 스킬은 없네.”
“서, 설마 진짜로 제 스킬창이 보이세요? 장난치시는 거죠?”
“살다 살다 멀리 뛰기 같은 쓸모없는 스킬은 처음 보네. 어둠 서브퀘가 스탯만 주고 스킬은 안 줬나 봐요?”
“예? 아, 아니. 어떠, 어떻게… 어?”
플레이어는 몇 번이고 스킬창과 나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 그럼 이제 제가 아니라는 건 밝혀진 거죠?”
“스킬은 없지만, 고유 능력일지도 모르지.”
고유 능력은 상태창도 따로 없으니까 확인할 방법도 없고.
“고유 능력이라니 그런 도시 전설 같은 걸 증거라고 들이대면 나는 어떻게 증명하라고…”
플레이어는 해탈한 듯 아예 바닥에 주저앉아 뭐라고 계속 중얼거렸다.
도시 전설이라니.
이성현이라고, 바로 눈앞에 그 고유 능력이라는 걸 가진 플레이어가 앉아있는데.
“이게 제일 딱딱 맞아떨어지기는 하는데. 아무래도 아닌 거 같아.”
바로 우리한테 들킬 거라는 걸 알면서 목숨 걸고 어둠에 충성할 만한 사람은 아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보고 듣는 모든 게 어둠에 전달되고 있는 거라면 또 모를까.
자발적으로 스파이 짓을 하고 뻔뻔하게 저택에 앉아있을 만한 사람은 확실히 아니야.
“나도 아닌 거 같다.”
“이하동문이다.”
플레이어는 우리 셋의 의견이 자신에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일치되는 것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플 씨.”
“네? 저요? 제가 왜 어플입니까.”
“어둠 소속 플레이어, 편의상 줄여서 어플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제 이름은 김…”
“어플 씨는 아직 어둠 소속이시니까 그쪽이랑 연락할 수 있죠?”
어쩌면 이 대화도 어둠 쪽에 전부 노출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만약 그렇다면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하지, 뭐.
“여, 연락은 잘 모르겠는데… 그런데 방금 정보 발설하던 흑마법사들 다 죽었다고 하지 않았나요? 저도 걸리면 죽는…거 아닌가요?”
생명 연장에 대한 이 강력한 욕구!
확실하게 이 사람은 먼저 나서서 스파이 짓 할 사람은 아니다.
“괜찮습니다. 안 걸리면 되잖아요.”
“아니, 어떻게 안 걸…”
“가서 어둠을 찾은 후에 아무것도 모른 척 합류하세요. 거기까지만 해도 지구로 돌려보내 드리겠습니다.”
“저 사실 어둠 소속이라고 한 건 허세 부렸던 건데요! 잘못했습니다, 그냥 일감 받아서 도와주던 거뿐이라 그런 거 못 한단 말이에요.”
그렇게 서러워하면 내가 죽으라고 등 떠미는 거 같잖아.
“그럼 합류까지는 필요 없고, 어둠 쪽과 연락해서 만나기만 하셔도 됩니다. 그렇게 해주시면 그쪽을 향한 의심은 풀게요.”
“어떻… 어떻게 연락하면 될까요.”
그런 건 좀 직접 생각해볼 수 없는 거냐.
***
결국 어플은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움직였다.
창문에 붉은 끈을 걸어두고 어둠에서 찾아올 때까지 매일 밤 약속장소로 나가는 것이 계획.
원래 그 암호로 소통하던 흑마법사들은 죽었지만.
그 흑마법사들을 처단한 놈도 당연히 암호나 약속장소는 알고 있겠지.
계속 연락 요청을 하면 무슨 일인가 궁금해서라도 찾아와 볼 거다.
아마도.
일주일 정도 기다리면 저쪽에서도 간을 보다가 모습을 드러내겠지 싶었는데.
일주일은 무슨. 신호를 보낸 당일 바로 찾아왔다.
어지간히 성격이 급하거나.
조심성이 없거나. 아니면 실력에 자신이 있으니까 함정일지도 모르는 곳에 바로 발을 들인 거겠지.
그것도 아니면 함정이라는 생각 자체를 안 했을 정도로 아무 생각 없는 놈들이거나.
이제 어플, 너만 잘하면 된다!
“어… 그게, 말입니다. 사아실. 제가 어, 마그웨이 공작. 그, 흑마법… 약, 그거… 그거 먹이는 그거 했는데… 어, 의뢰요.”
기대 따위 하지 않길 잘했다.
저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거냐, 아니면 나 수상하니까 빨리 처분해 달라고 설득하고 있는 거냐.
“그게, 실패한 줄 알았는데… 그, 성공해 버려서요. 요즘 마그웨이 공작이 안 보인 게, 제가 성공해서… 어… 대외 활동을 안 한 게 아니라 쓰러져 있었던 건데.”
미리 변명까지 만들어주고 말도 맞춰줬는데 왜 그거 하나 못해!
어차피 원래 목적은 어둠이 접촉하면 뒤를 쫓으려고 한 거라 임무는 다한 거다만.
혹시라도 수상한 걸 눈치채고 도망치거나 엉뚱한 곳으로 가버리면 큰일인데.
“그래서… 네. 흑마법에 걸렸어요. 어… 다른 거… 다른 임무 뭐 있나, 그래서… 궁금해서. 네… 연락했, 습니다.”
어플은 ‘당신은 함정에 빠졌고 저는 미끼랍니다’라는 내용의 연설을 마쳤다.
저걸 듣고도 믿어주는 쪽이 바보지.
가만히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흑마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임무가 내려올 때까지 계속해서 공작에게 약을 먹이면서 기다리시오. 평소 만나던 이가 아니라 내가 와서 놀란 모양인데. 앞으로 자네 임무는 내가 담당하게 됐으니 그렇게 아시게.”
그리고 어둠의 흑마법사는 바보였다.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는데 먼저 나서서 해명하고 위로까지 해주다니.
흑마법사는 흑마력을 응축한 알약을 몇 개 더 건네고 돌아갔다.
지난번 놈이랑은 달리 쓸데없는 연기를 피우지도 않았다.
대신 깔끔하게 마법으로 이동했을 뿐.
보통은 마법으로 사라지면 추격이 어려워지지만.
마나 흐름을 추적 가능한 드래곤이 있는 이상 이쪽이 발로 뛰어 쫓아가는 것보다 훨씬 편했다.
어플은 형에게 맡기고 라마와 함께 흑마법사의 흔적을 쫓았다.
그리고 어둠의 흑마법사가 향한 곳을 찾아낼 수 있었다.
“진짜 여기로 간 거 맞아?”
“진짜로 맞다. 내가 인간의 마법도 읽어내지 못하는 무능한 드래곤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정말 여기가 맞다고?
“이건 참.”
예상치도 못한 곳인데.
< 75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