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Just an Ordinary Office Worker RAW novel - Chapter (76)
평범한 회사원입니다-76화(76/180)
< 76화 >
어둠의 흑마법사가 향한 곳은 황궁이었다.
정확하게는 황궁 바로 앞이었지만.
“마나의 흐름은 여기서 끊겼다. 성안으로 바로 이동하진 않은 모양이다.”
그렇겠지. 그래도 황제 사는 곳인데 마법 사용은 당연히 금지됐을 테니 내부로 텔레포트 하진 못했을 거다.
사실 그래서 흑마법사가 황궁으로 향한 게 의외인데.
손발이나 다름없는 마나가 묶이는데 옳다구나 좋다고 황궁에 자리 잡고 살 마법사가 대체 어디 있냐.
“여기로 텔레포트 한 후에 다른 장소로 이동한 걸지도 모른다.”
“수도에 널린 게 골목길인데 다른 장소로 이동할 거면 굳이 경비 삼엄한 황궁 앞으로 텔레포트 하진 않았겠지.”
그 흑마법사 놈, 진짜 황궁으로 들어간 건가.
황궁 문이 이렇게 가벼웠었나.
언제부터 아무나 들락날락하는 곳이 되었지.
“그럼 이곳이 어둠의 본거지라는 건가.”
“그건 모르지. 아까 그 흑마법사가 여기 사는 걸 수도 있으니까.”
황족이 아니더라도 황궁에 사는 사람이야 많다.
시종, 호위, 기사단, 마구간지기, 요리사, 기타 등등.
그냥 그중의 한 사람이 겸업으로 흑마법사를 하고 있고, 업무를 마치고 본업으로 돌아간 것일 수도 있으니까.
쉽게 황제나 황궁 전체가 어둠이랑 관련되어 있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
“그러면 지금부터 황성에 쳐들어가는 건가. 나는 브레스를 준비하면 되나, 인간.”
“누가 드래곤 아니랄까 봐. 왜 생각하고 계획을 짜기도 전에 쳐들어갈 생각부터 해?”
“……그간의 네 행동 패턴을 분석하여 낸 합리적인 결론이었다만.”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자칫 잘못했다가는 일이 더 번거로워질 텐데. 아무리 나라도 황궁에 쳐들어가는 건 부담스럽다고.
괜히 들어가서 다 날리고 부순 후에 ‘어라? 황궁 전체가 흑막인 줄 알았는데 그냥 흑마법사 하나가 보조 주방장으로 일하고 있었던 거네요. 하하하.’ 웃으며 나올 수 있는 스케일이 아니란 말이지.
설명하기도 번거롭고 자칫 잘못하다간 수배자 되는 수가 있다.
수배자가 돼 봤자 우리를 수배하러 오는 쪽이 안쓰러워질 뿐이겠지만.
“그럼 황제가 어둠과 연관이 있는지부터 알아봐야겠군.”
“그래야지.”
“생각하고 있는 방법이라도 있는 건가.”
“가장 좋은 방법은 황궁에 직접 들어가는 거야.”
정보원을 풀 수도 있지만, 시간도 걸리고 꼬리가 밟힐 수 있으니까.
“좋다. 그럼 지금부터 들어가나?”
지금부터 무작정 들어가는 거랑 쳐들어가는 거랑 뭐가 다르냐.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려면 공식적으로 들어가는 쪽이 좋겠지. 물론 생각해 놓은 건 있어.”
“뭔가.”
“이한의 이름으로 들어가면 되지.”
라마는 단번에 그 이름을 기억해냈다.
“이한? 네 아들 말인가.”
“난 아들 같은 거 없지만 굳이 말하자면 이안 아들이라는 설정이니까 그렇게 되네.”
“그 이름만 대면 황궁이라도 네 집처럼 들어갈 수 있는 건가.”
당연하지만 황궁을 내 집처럼 들어가려면 내가 황제가 되어야겠지.
“이안이라고 하고 가는 쪽이 나아 보이는데 왜 이한으로 가는 거지?”
마그웨이가 다른 귀족들 앞에서 이안의 아들 이한이 저택에 머물고 있다고 발표해버린 덕분에 다들 이한이 돌아와서 활동 중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거기에 대고 사실 이한이란 건 농담이고 이안 본인이 돌아왔다고 공표하는 것도 웃기잖아.
그냥 멋대로 착각하라고 내버려 두자고.
“이쪽에서 황제 알현 요청을 하면 당장이라도 오라고 할 거다.”
“귀족도 아닌데 엄청난 취급이군.”
“나는 귀족은 아니지만 황제 입장에선 귀족이나 다름없거든.”
그것도 아주 눈엣가시인 귀족.
황제파도 아니고 귀족파도 아닌 것이 자꾸 거슬려서 당장이라도 치워버리고 싶은 그런 귀족.
“황제도 그 아들이라는 놈을 초대해서 아버지는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왜 혼자 저택으로 돌아온 건지. 앞으로의 계획은 뭔지 엄청나게 물어보고 싶을걸.”
특히 앞으로 자신의 앞길에 방해가 될지 도움이 될지 가늠해보고 싶을 거다.
이안 쪽은 눈치를 봐야 했는데 아들 쪽은 구워삶을 수 있다면 황제에겐 두 팔 벌려 환영할 일이다.
대충 귀족 작위 아무거나 하나 찔러 넣어주고 제 쪽으로 끌어들이려고 하겠지.
생각만 했는데도 벌써 귀찮네.
“그럼 그 알현 요청은 어떻게 하면 되는 건가. 직접 편지라도 쓰나?”
“뭘 직접 편지를 써. 그냥 집사한테 가서 말하면 알아서 처리해 줄 거야.”
저택으로 돌아와 집사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이안이라는 이름이 아닌, 이안의 아들 이한이라는 이름으로 황궁에 방문할 거라는 말에 집사의 표정이 벌레 씹은 거처럼 되기는 했다만.
집사가 생각하는 서프라이즈 농담 대잔치 같은 이상한 짓 하려는 게 아니고.
그냥 황제가 어둠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흑마법사 조직과 결탁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맞다면 조용히 황제만 갈아치우고 올 거라고 설명했더니 납득했다.
빠르면 일주일. 늦으면 한 달 내로 황제의 초청이 오겠지.
“자, 그럼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은.”
“황제를 만나는 걸 대비하는 건가. 아니면 어둠과 전면전을 벌일 준비? 이 전투가 전쟁 규모로 커질 거라고 예상하는 건가, 인간.”
“아니. 덩치가 없는 동안 연구소 쪽 업무가 마비돼서 그거 처리하러 가야지.”
“……”
“뭔가 착각하고 있는 거 아니야? 우리는 처음부터 어둠을 쓸어버리려고 한 게 아니라 납치된 덩치를 구하러 온 거잖아.”
“……정확하게는 도망친 줄 알았던 덩치를 잡으러 온 거다.”
“그게 그거지.”
그리고 다시 지구로 돌아왔다.
물론 어플도 함께.
“그때는 진짜 조오금 무서웠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저 엄청 대단한 경험을 한 거네요. 친구들한테 자랑해도 되나요?”
“사건이 마무리되기 전까진 안 됩니다.”
“어쩔 수 없죠. 그러면 제가 필요할 때 또 불러주세요. 어둠이랑 관련된 일에는 반드시 저, 김…”
“안녕히 가세요!”
연기력이 있어야 하는 일에는 절대로 부르지 않을 거다.
덩치도 연구소로 복귀했다.
밀린 업무를 보더니 다시 납치당하고 싶어 하는 얼굴이었지만.
“사고가 있었는데 저 며칠만 쉬면 안 되나요.”
“물론 안 됩니다.”
절망하는 덩치 앞에 기존 업무 외에도 추가된 일을 쌓아줬다.
“혹시 동물 잘 다루시나요?”
“아니요. 저는 동물을 정말 못 다룹니다. 제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게 동물이고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동물과 관련된 알레르기가 있어요.”
지난번에 까망이 잘만 쓰다듬고 예뻐하는 거 다 봤는데 어디서 거짓말을.
“오늘부터 잘 다루셔야 할 겁니다.”
“…까망이 오늘부터 제가 돌보나요?”
까망이는 우리 집에 상주하는 마그웨이가 돌보고 있어서 필요 없다.
“까망이 말고 좀 더 큰 동물이 있습니다. 정확하게는 동물형 몬스터요.”
“걔보다 크다고요? 뭐 소나 말이라도 됩니까?”
“뭐, 대충 비슷한 거죠.”
그리고 덩치에게 묵이를 소개해줬다.
“이게 뭐야악!”
“이묵입니다.”
“이, 이무기요?”
“성이 이, 이름이 묵. ‘이묵’입니다.”
원래 펫은 주인 성씨를 따라가는 거지.
“까망이보다 조금! 더 크다면서요. 저희 집보다 크잖아요!”
묵이는 라 엘타에 있는 라마의 고향에서 살기로 했다.
다른 사람이라고는 연구소 플레이어들과 연구원들밖에 없으니 숨어 살 필요도 없고.
유일한 단점이라면 연구원들이 실험하겠다며 따라다닐 예정이라는 것과 먹이를 직접 구할 수 없다는 건데.
덩치는 그런 이무기의 상태를 수시로 확인하고 먹이를 공급하는 일을 담당하게 됐다.
이무기는 의외로 덩치를 졸졸 쫓아다니며 잘 따랐다.
“누가 봐도 저를 비상식량으로 보고 관리하려는 거잖아요!”
입맛을 다시고 있는 거 같지만 착각이겠지.
“소도 아니고 말도 아니고. 하다못해 코끼리도 아니고. 상식적으로 이무기는 너무하지 않습니까.”
“확인해보니까 역소환 하면 라마처럼 라 엘타로 가는 게 아닌 거 같더라고요.”
아마 시스템 속으로 들어가는 게 아닐까.
그곳에서는 시간이 멈춰 있는 건지.
아니면 어두컴컴하고 좁은 곳에서 막연히 소환되기만을 기다리며 갇혀있는 건진 알 수 없지.
“안 들어가 봤으니 어떤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곳에 갇혀있으면 답답하고 괴롭겠죠.”
“저도 지금 답답하고 괴로운데요.”
“일단 펫 등록도 제대로 해놨으니까 형이 허락하기 전까지 공격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곧 과로로 쓰러질 예정이라 차라리 이무기의 한 끼 식사가 되는 쪽이 편안할 거 같습니다만.”
덩치는 불평불만을 내뱉으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
연구소가 안정을 되찾아가는 사이.
황궁은 난리가 났다.
“이안 경이 아닌 그의 아들이 오는 건 확실한가.”
“예, 확실합니다. 마그웨이 공작이 그가 이안 경의 친아들임을 공증하기도 했고. 그 후로도 몇 차례 베라포드에서 활동한 것이 확인됐습니다.”
황제는 자신이 이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엔 이안의 공이 크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이안이라는 사람이 불편했다.
그자는 자신을 황제에 앉히기 위해 전쟁에서 공을 세운 게 아니라. 그냥 칼부터 휘두르고 봤더니 겸사겸사 황제발굴단이 되어있었을 뿐이니까.
차라리 탐욕 있는 자라면 그걸 충족시켜주며 제 사람으로 끌어들였을 텐데.
뭘 해주려고 해도 번거로우니 방해하지 말라, 귀찮으니 말 걸지 말라.
황제에게 이안이라는 사람은 건드릴 수 없으니까 놔두기는 하는데 제발 사라져줬으면 하는 사람 1순위였다.
언제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검 끝이 다음 순간 자신을 향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이안 경은 영웅으로서 귀족이 아님에도 대접을 해줬지만, 그의 아들은 그저 한 사람의 평민일 뿐입니다. 거절하셔도 되는 건인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안이었다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알현 요청.
이런 경우는 뻔했다.
제 아비가 거절한 작위를 요구하는 것이거나.
이안이라는 이름을 팔면 떨어질 콩고물이 없나 바닥을 살피러 오는 거겠지.
차라리 욕심을 부리는 쪽이 좋다.
다루기 쉬우니까.
“연회를 열어라. 이안 경의 아들 이한을 성대하게 환영하고 그의 말을 들어 줄 것이다.”
그리고 일주일 후, 연회 당일.
“폐하! 평민 이한이 막 황궁에 들어섰다고 합니다.”
황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만나자고 요청했더니 왜 연회를 열었냐고 이한이 통보 없이 잠적하진 않을지 너무나도 걱정했건만.
제 아비의 얼굴을 그렇게 닮았다는데. 다행히 성격까지 빼닮은 건 아닌 것 같았다.
“혼자 왔는가!”
“호위 하나와 함께 왔습니다.”
“호위라고?”
기억 속의 이안은 언제나 혼자였다.
애초에 호위 같은 게 필요하지 않았겠지만.
“닮은 건 얼굴뿐. 검술 실력까지 물려받을 수는 없었나 보군. 이안 경이 들으면 무덤 속에서도 통곡할 일이 아닌가.”
이안을 이미 죽은 사람 취급하며 황제는 싱글벙글 미소지었다.
자식 농사는 허탕이구나. 꼴 좋다.
연회홀은 시작도 하기 전부터 이미 귀족들로 가득 차 있었다.
원래라면 연회나 파티 시간과 상관없이 천천히, 편한 시간에 방문하여 느긋하게 여유를 즐기는 귀족들.
이렇게 연회를 시작하기 훨씬 전부터 홀을 꽉 채운 경우는 드물었다.
이한이 연회홀에 들어서자 귀족들이 수군거렸다.
“나는 이안 경을 실제로 본 적이 있네. 그분과 정말 똑같이 생겼군.”
“저렇게 새까만 머리카락에 검은 눈은 처음 봤는걸.”
“요즘에는 베라포드에만 가도 검은 머리에 검은 눈을 한 사람이 넘쳤는데 무슨 말인가.”
“이방인들은 나도 봤네만. 그들보다 더 짙은 색의 검정인 것 같아.”
“옛날에만 해도 저런 색은 이안 경 고유의 색이었지. 블랙 드래곤 님이라는 소문이 있을 정도였으니.”
이한은 귀족들의 수군거림에도 아무 말 없이 무표정으로 서 있을 뿐이었다.
어딘가 상당히 불쾌해 보이는 모습으로.
“황제 폐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황제는 이한과 협상할 시간을 연회 시간 직전으로 정했다.
곧 연회가 시작되니 빨리 결정해야 한다고 시간적 압박을 주어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기 위해서.
이한은 황궁에 도착하자마자 연회홀에 발 도장 한번 찍고 바로 알현실로 향해야 했다.
“어서 오게, 자네가 이안 경의 아들 이한이 맞는가.”
황제의 질문에 이한은 여전히 무뚝뚝한 표정으로 침묵했다.
감히 황제를 살펴보듯 머리부터 발끝까지 쭉 훑어보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그렇다.”
< 76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