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Just an Ordinary Office Worker RAW novel - Chapter (77)
평범한 회사원입니다-77화(77/180)
< 77화 >
황제에게 알현 요청을 한 지 3일 만에 연회 초대장이 날아왔다.
1대 1 알현이 아니라 연회라.
이렇게 되면 일이 더 쉬워지는데. 이거 고마워서 어쩌지.
“라마. 내 모습으로 변해봐.”
“일루젼 마법이라도 걸라는 건가.”
“마법 말고 폴리모프.”
“폴리모프에 대해 너가 오해를 하고 있는 거 같은데.”
왜 이 정도도 모르냐고 깔보는 느낌을 받은 건 내 착각이겠지, 라마야.
“이건 단순하게 다른 모습으로 변하는 능력이 아니다. 특정 종족으로 변할 때 내가 어떤 모습이 되고 싶은지 직접 설계를 하면, 그게 나라는 개체의 정해진 외형이 되는 거란 말이다.”
말 한번 어렵게 하네.
그러니까 새로운 게임 시작할 때 외형 설정해놓으면 바꾸기 어려운 거랑 같다는 거잖아.
“한번 외형을 정하면 바꾸는 게 얼마나 까다로운지 아는가. 그리고.”
라마는 형과 똑같은 얼굴을 한 자기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지금, 이 모습이 인간일 때의 라리오스 마커스다.”
남의 얼굴 복제해 놓고 그 얼굴이 자기 얼굴이라니 그게 무슨 드래곤 풀 뜯어 먹는 소리야.
“한번 설정하면 바꾸기 까다롭다는 건 바꿀 수 있다는 거잖아.”
“하지만 바꾸려면…”
“바꿔.”
라마는 온 세상의 불평불만을 다 끌어다 모은 모습을 한 나로 변했다.
내 얼굴이 그렇게 마음에 안 든다는 거냐.
두고 보자, 라마.
“분명 똑같이 생겼긴 하는데. 확실히 분위기가 다르네.”
그냥 빨간 머리 빨간 눈을 한 무표정의 내 얼굴을 보는 거 같다.
엄청 미묘한 기분인데, 이거.
형은 라마 볼 때마다 이런 기분인 건가.
“어딘가 조금 달라 보이는 거 같은데. 어차피 이안 본인이 아니라 이한으로 가는 거니까 상관없나. 알아볼 사람도 없고.”
“네가 직접 가면 되는 걸 왜 나한테 이런 꼴을 시키는 거냐!”
이런 꼴? 방금 그 발언 적립해둔다.
“나는 네가 황제랑 대화하는 동안 황궁을 뒤져볼 거야. 우리 목표가 황제를 만나는 게 아니라 수상한 게 없는지 알아보려는 거란 걸 잊은 거야?”
“그렇다면 내가 알아볼 테니 너가 황제랑 만나고 있어라.”
“어디의 드래곤이 또 엉뚱한 곳으로 소환돼놓고 일 안 해도 된다고 앉아서 과자나 먹고 있을지도 몰라서 믿을 수가 없네.”
라마는 온갖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내 얼굴로 그러지 마라, 소름 끼친다.
나도 번거롭게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은데.
백작가 파티 때 나를 이한이라고 소개받은 사람이 많으니 이한은 이안과 똑같이 생겼다고 소문이 퍼졌을 거란 말이지.
황제는 내 얼굴을 아니까 영 다르게 생긴 사람을 데려갈 수도 없고.
마법으로 얼굴을 변형시켜도 황궁 안에 들어가는 순간 무효가 될 테니.
마나 사용이 금지된 황궁에서도 자유롭게 유지 가능한 드래곤 폴리모프 밖에 선택지가 없었다.
내가 황제와 대화하는 동안 라마더러 알아 오라고 하면 라마가 잘하고 있나 궁금하고 답답해서 못 참을 거 같으니까.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머리카락이 아닌가. 이렇게 붉고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갖고 들어간다면 아무도 내가 이한이라고 믿어주지 않을 거다.”
그렇지. 라 엘타에는 염색이 마법 염색밖에 없으니까.
검은색 마법 염색약을 쏟아부어봤자 비싸기만 하고 어차피 황궁에 들어가면 지워질 마법이다.
하지만 간과한 게 있군, 라마.
우리가 지금 있는 곳은 라 엘타가 아니라 한국이라는 것을.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가!”
“그러면 재주껏 마법 사용 없이 머리카락 색도 바꿔보든지.”
“이건 내가 레드 드래곤이라는 증명이나 마찬가지다! 그걸 다른 색으로 덮으려고 하다니 말도 안 된다!”
오늘부터 너는 블랙 드래곤이다.
한국의 염색 기술은 그야말로 굉장했다.
짙은 검정 머리를 금발이나 핫핑크로도 바꿔주는데 빨강을 검정으로 못 바꿀 리가.
라마는 몇 시간의 고생 끝에 레드 드래곤이라고 우길 수 없는 상태로 재탄생했다.
드래곤이라고 염색이 안 되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그런 건 또 아니어서 다행이네.
“이건 또 뭔가.”
“이건 렌즈라는 건데, 지금부터 네 눈에 넣을 거야.”
“눈에? 신종 고문인가. 눈에 갖다 대면 눈알을 갉아 먹는 벌레류 몬스터인 건가. 그런 거치고는 생명이 느껴지지 않는데… 내가 뭘 그리 잘못했다고 나한테 이러는 거냐!”
눈알을 왜 갉아 먹어.
처음 만난 날 이후로 라마는 억울해 보일 때가 많았지만 오늘 유독 더 그랬다.
평소에 나를 어떻게 생각했길래 가만히 있는 드래곤을 고문하는 사람으로 보냐.
온 힘을 다해 거절하는 라마에게 컬러렌즈를 겨우 끼우자.
라 엘타의 레드 드래곤을 마법 사용 없이 완벽한 한국인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이한이 아니라 이안 본인이라고 했어도 속였겠는걸.
그리고 연회 당일.
여전히 부루퉁한 표정의 라마는 이안의 아들 이한으로.
나는 그의 호위기사로 가장해 황궁에 들어섰다.
누군가가 우리 둘을 보고 얼굴이 똑같이 생겼다며 논란을 일으키기 전에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숨었지만.
라마는 알아서 잘하리라 믿고 황성으로 숨어들었다.
들어가서 서 있다가 누가 말 걸면 가끔 대꾸만 해주는 간단한 일인데 문제 일으킬 것도 없겠지.
사람도 많고 사용인들도 모두 연회 준비로 바빠서인지. 그들 틈에 숨어 몰래 움직이는 건 아주 쉬웠다.
기사들도 대부분 연회홀 주변에 배치되어 있고.
이렇게 숨어서 돌아다니는 건 내 성미에 맞지 않지만 어디 황궁 탐방 한번 시작해볼까!
당연하지만 보통 이런 경우엔 제일 먼저 지하실을 살펴보는 게 예의다.
지하실에 아무것도 없다면 그다음 단계는 숨겨진 비밀의 방. 대부분은 주방이나 창고 같은 곳과 연결된 경우가 많다.
비밀의 방이나 숨겨진 통로도 없다면 마지막으로 살펴봐야 하는 곳은 황제의 방이다.
침실이든 서재든, 황제가 개인으로 사용하는 공간.
하지만 2단계 비밀의 방을 찾기 위해서는 황궁 곳곳을 쥐잡듯이 뛰어다녀야 하니. 이왕이면 1단계, 지하실에서 결판이 나면 좋겠네.
빙고.
2단계까지 갈 필요도 없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1단계인 지하실을 살펴봤는데 1, 2, 3단계가 한 번에 클리어됐다.
지하실에 있는 황제의 개인 공간에 비밀 통로가 있었으니까.
너무 예상 범위 내에서 놀아주니까 시시하네.
분명 비밀 통로를 여는 방법도 간단할 텐데.
책장의 책을 특정 배열에 맞춰서 옮긴다거나. 어떤 가구를 정해진 순서대로 움직인다거나.
물론 당장 내가 알아낼 방법은 없었다.
그렇다고 책 재배열만 몇 시간 동안 반복하고 있을 수도 없고.
그래서 나는 그냥 문을 잡아 뜯기로 했다.
콰드득.
상당히 비싸 보이는 문인데 이렇게 쉽게 뜯겨 나가다니.
들인 돈에 비해 보안이 허술한 거 아닌가.
나름대로 강제 침입에 대한 대비책은 있던 건지 통로에 들어서자마자 온갖 함정이 쏟아졌다.
별건 아니고. 화살 비나 독바늘이 날아오는 정도?
그냥 잡아서 던져버렸다.
통로는 그저 침입자를 걸러내는 용도였는지 함정 외에는 특별한 게 없었고.
통로 끝에 다다르니 문이 하나 더 있었다.
“안 열리네.”
잡아 뜯어도 열릴 생각을 안 하는 걸 보면 특수처리가 되어있는 건가.
이런 건 힘을 쓴다고 해결될 게 아니어서 여기서 문 잡아당기고 애써봐야 소용없지.
물론 그렇다고 아주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문을 잡아당겨도 안 뜯어지면.
벽 채로 뜯어내 버리면 되는 거잖아.
생각은 쉬웠고 행동으로 옮기는 건 더더욱 쉬웠다.
아주 간단하게 문이 달린 벽을 뜯어내 옆으로 치워버렸다.
“괴물이다!”
“아니, 저런 벽을 뜯어가는 무식한 생각을 하는 놈이 다 있어!”
“이,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공격하라!”
밖에서 나는 소란을 듣고 대기하고 있었던 건지.
비밀 방 안에 숨어있던 이들이 동시에 나를 향해 무언가를 날렸다.
“성공이다!”
“이 강력한 흑마법을 열 개나 넘게 동시에 맞고 살아있을 수는 없어!”
“꼴 좋구나, 방해꾼이여!”
미안하지만 간지럽지도 않았다.
그리고 나를 공격한 게 흑마법인 걸 확인시켜줘서 아주 고맙다.
내가 나서서 정체를 캘 수고를 덜었으니까.
황궁 지하에 어둠의 본거지가 있다, 라.
어이가 없네. 굳이 따지자면 세상에서 제일 안전한 곳에 숨어있는 거 아닌가.
그동안 본거지 들킬 걱정 없이 발 뻗고 잘 잤겠네.
본거지가 아니라 수많은 은신처 중 하나일 수도 있으니까 확인은 해야겠지만.
“아, 아닛! 어떻게 살아있는 거지.”
“그것도 멀쩡하게. 옷자락조차 그을리지 않았어!”
그런데 지하는 마법 사용이 가능한 건가.
건물 전체가 아니라 지상에서만 마법 사용이 불가능하게 막아두는 건 까다로웠을 텐데 신경 썼네.
웅성대는 흑마법사들은 놀라서 얼어붙은 건지. 내가 안쪽으로 들어서는 데도 막아서지 않고 멀뚱히 보고 있을 뿐이었다.
맞서도 소용없다는 걸 깨닫고 얌전해진 걸 수도 있지만.
내부에 있는 흑마법사들은 약 30명 정도였다.
그 30명이 동시에 나를 쳐다보고 있든 말든 집들이 온 사람처럼 내부를 살피기 시작했다.
온갖 기괴한 실험재료나 봐도 뭔지 모를 장치들. 딱 흑마법사들이 좋아할 법한 음산하고 어두운 분위기.
“여기가 어둠의 본거지가 맞나요?”
“그렇다!”
“방금 대답한 거 누구야!”
“대답하지 마라! 적은 한 놈뿐이다. 우리를 현혹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적이 질문해도 절대 입을 열지 말거라!”
인원이 삼십 명쯤 되면 이런 상황에서도 진실을 외치는 입이 하나쯤은 있는 법.
다시 한번 내 수고를 덜어줘서 아주 고맙다.
“으아악, 도망쳐!”
“놈이 움직인다, 출구를 향해 달려라!”
본거지라는 것을 확인했으니 겸사겸사 흑마법사 청소도 해줬다.
죽인 건 아니고. 그저 마나를 못 다루는 몸으로 만들어줬을 뿐이다.
나는 평화를 사랑하니까.
라 엘타 곳곳에 퍼져 있는 다른 어둠 흑마법사들도 다 찾아내야 하고.
“이 악… 마… 쿨럭.”
흑마법사 관점에서 볼 때 ‘악’이란 좋은 거니까 악마라고 한 건 사실 최고의 칭찬이 아닐까.
묶어둔 흑마법사들을 비밀 방 한쪽에 차곡차곡 쌓아놓고 뜯어낸 벽을 다시 예쁘게 제 자리에 끼워놨다.
자, 그럼 이 모든 사건의 원흉을 모시러 가볼까.
보통 평범한 소시민으로서 황제라는 거대한 적과 맞서 싸워야 하는 이런 상황에서는.
꼼꼼하게 증거를 수집하고 황제가 증거조작을 하지 않게 심혈을 기울이고.
물밑작업으로 소문을 퍼뜨리는 것부터 시작해 백성들이 황제가 어둠의 조직을 은폐 중이라는 것을 의심하게 만든 다음에.
당당하게 황제에 대한 모든 것을 까발리고 정식으로 그 자리에서 끌어내려 처단하고.
어쩌고저쩌고.
이런 번거로운 작업을 거치겠지.
그런데 왜 그렇게 귀찮고 시간 걸리는 작업을 해야 하지?
원래 이런 건 일단 다 까서 뒤집어 놓고 나중에 가서 설명하면 되는 거 아닌가.
백성들이 안 믿으면? 안 믿으면 어쩔 건데.
번거로운 모든 과정을 생략하고 황제 폐하를 알현하기 위해 위층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대로, 라마와 대화 중이던 황제를 납치해왔다.
< 77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