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Just an Ordinary Office Worker RAW novel - Chapter (78)
평범한 회사원입니다-78화(78/180)
< 78화 >
이한과 대화를 하던 황제는 매우 기분이 나빴다.
그래도 이안 아들이라고 반겨주고 대접도 해줬더니, 뭐?
그렇다아?
얼굴은 복제 수준으로 제 아비와 똑같이 생겼지만, 성격만큼은 안 닮은 줄 알았는데.
적어도 이안 그놈은 예의를 갖추는 척이라도 했다.
이건 대체 뭔가.
아버지를 등에 업고 세상이 제 것이라도 되는 양 구는 놈이라니.
불쾌했지만, 황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이한에게 말을 걸었다.
“이안 경과 아주 똑같이 생겼네. 아버지는 살아 계시는가?”
“그렇다.”
젠장. 이안 놈 살아있었던 건가.
“그, 그렇군. 혹시 이안 경이 보내서 온 건가?”
“맞다.”
“…이안 경이 내게 무슨 용무라도…”
“그래.”
“어떤 일인지 말해보게.”
“음.”
황제는 답답하고 불안해 속이 터질 거 같아서 차라리 눈앞에 있는 게 이한이 아니라 이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살아생전 처음으로 이안 그놈이 보고 싶어지는 순간이었다.
***
라마, 저거.
황제가 말을 걸면 대꾸하지 말고 대충 맞장구만 쳐주라고 했더니.
황제를 갑갑해서 미쳐버리게 만들 셈인가.
알현실에 몰래 숨어들어 잠시 두 사람을 구경하다가.
황제의 인내심이 터져버리기 전에 모습을 드러내고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입니다?”
“아, 아니? 이안 경? 아니, 이한? 어느 쪽이지…? 설마 이안 경의 아들이 쌍둥이였던 건가!”
오랜만에 만난 황제에게 인사를 했더니 침까지 튀겨가며 질문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이안 본인이냐.
아니면 이쪽이 진짜 아들 이한이고 나는 가짜와 대화하고 있었던 거냐.
여긴 어떻게 들어온 거냐. 등등.
질문이 너무 많길래 설명하기 번거로워졌다.
그래서 그냥 납치했다.
“감히 이 몸을 납치하다니! 네 이놈들!”
내 입으로도 납치라고 하긴 했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이건 납치라고 보기 어렵지.
위층의 알현실에 있던 사람을 지하 비밀 방에 옮겨다 놨을 뿐인데.
여전히 본인 집에 있는데 납치는 무슨 납치.
“이게 쳐들어오는 것과 뭐가 다른가, 인간.”
그 짧은 사이에 잽싸게 형과 닮은 원래의 모습으로 외형을 바꾼 라마가 태클을 걸어왔다.
“어둠이랑 연관이 있다는 게 확실해졌으니까 이 정도는 해도 돼. 조용하게 황제만 납치해 온 거잖아.”
“납치가 조용한 일인 건가.”
“저쪽도 덩치 납치해갔었는데 우리라고 황제를 못 납치하겠냐.”
“지금 덩치와 한 제국의 황제를 같은 선상에 놓고 보는 건가.”
물론 다르지.
황제는 나한테 있어서 쓸모라곤 손톱만큼도 없지만, 덩치는 일단 도움이 되기는 하니까.
“서, 설마… 이안 경. 정말 자네인가?”
딩동댕. 드디어 정답에 도달하는 데 성공하셨네.
“그, 그럼 저쪽은…?”
“저쪽은 사실 그냥 지나가던 드래곤이고요.”
“드드, 드래곤?”
“저는 아들이 없답니다. 서프라~이즈.”
이런. 집사랑 서프라이즈 안 하겠다고 약속했는데 결국 해버렸네.
“뭐 하는 건가! 제국의 황제인 내게 이러고도 무사할 거라 보는가. 지금이라도 놓아주게. 이번 한 번 만큼은 자네와의 인연을 생각해 넘어가 주겠네.”
이걸 지금 협상이라고 하는 건가.
다른 곳으로 데려온 것도 아니고 이미 항복한 흑마법사들이랑 온갖 연구자료 다 보이는 곳으로 데려왔는데.
이런 상황에서 어둠을 모르는 척하진 않겠지.
“정녕 반역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평생 반역자로 낙인찍혀 쫓기는 삶을 살고 싶은 건 아니겠지.”
누가 반역이야.
사실상 그 황제 자리도 내가 앉혀준 거나 다름없는데.
“혹시 라 엘타에서 벌어지는 오염. 그것도 어둠에서 한 겁니까? 황제라면 자기 땅이 풍요로워야 좋은 거 아닌가? 왜 파괴하고 있는 거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입을 열지 않겠다!”
황제야, 네가 아직 뭘 모르나 본데.
매타작 앞에 드래곤이고 황제고 그딴 거 없다.
황제는 생각보다 입이 가벼웠다.
직접 때린 것도 아니고 맛보기로 맨손으로 벽 가르기 정도만 보여줬는데 술술 말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물론 ‘이다음에는 뭐를 갈라볼까?’ 노래를 부르며 황제 쪽으로 손을 갖다 대기는 했지만.
“이게 다 자네 탓이라고!”
이건 또 뭔 소리야.
“그런 힘을 갖고 있으면 어디 처박혀 아무것도 하지 말든가. 세상에 나올 거면 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히 수용할 줄을 알든가.”
내가 내 힘으로 범죄를 저지르고 다니기를 했어, 반란을 일으키기를 했어.
왜 내 할 일 잘 하고 있는 사람한테 처박혀 있으래.
“작위도 안 받아, 돈도 안 받아, 황궁으로 들어오라는 제안도 거절해, 이것도 거절해 저것도 거절해. 사실 내 등에 칼을 꽂으려고 호시탐탐 노리는 건 아닌가. 매일 밤 잠도 잘 수 없었네!”
아니 내가 왜 밤에 당신 등에 몰래 검을 꽂아.
그냥 툭 쳐도 저승 구경시켜줄 수 있는데 그런 번거로운 짓을?
“아군이면 아군. 친구면 친구. 그것도 아니라면 적이면 적이라고 확실하게 자신의 위치를 보여야 내가 뭐라도 해볼 거 아닌가.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니면 불안해서 살 수가 있나!”
그래서 선택한 게 이 세상을 황폐하게 만드는 흑막이 되는 거였나.
어디서 자기 합리화야. 누가 들으면 내가 진짜 나쁜 사람인 줄 알겠네.
어이가 없다 못해 허탈해질 지경이었다.
이보게 황제 양반.
보통 사람들은 그런 이유로 불안하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건강한 취미를 만들거나 상담을 받으러 다니지 악의 조직을 꾸리지 않는다고.
“어둠은 내가 만든 단체가 아닐세.”
증거도 떡하니 있고 설립 개요까지 잘 들었습니다만 인제 와서 발뺌이라니요.
“어둠은 원래부터 존재하던 단체였어. 그저 내게 다가와 서로에게 힘을 빌려주지 않겠냐고 제안했을 뿐일세!”
아무 대답 하지 않고 듣고만 있었더니 내가 이해라도 해준다고 생각했는지 황제는 끊임없이 변명해댔다.
“나는 그냥 허수아비였을 뿐이야. 나는 잘못이 없어! 그들이 내가 원하는 힘을… 자네에게서 나 자신을 보호할 힘을 주겠다고 했단 말일세.”
“음, 음.”
라마 너는 왜 고개 끄덕이냐?
“그래서 어둠과 손을 잡은 건 언제부터였습니까.”
“……재, 재작년…?”
“제가 사람의 입에서 진실만 나오게 하는 능력이 있는데요. 아까 폐하께 보여드린 그 기술인데, 아직 부족했나 봅니다.”
드래곤에게도 효과가 좋은 스킬이라고.
“28년! 28년 전부터일세!”
황제는 내가 한 발짝 다가가는 것도 참지 못하고 크게 외쳤다.
28년?
28년 전이면 황제가 된 후가 아니라 황권 전쟁 도중이잖아.
그때면 내가 활약을 하기도 전이라고.
그런데 나 때문에 불안하고 스트레스를 받아 어쩌고 저째?
마치 내가 본인을 몰아넣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다는 것처럼 참 구구절절 논문을 쓰시더니 헛소리 셨네요.
“……”
“……”
황제도 찔리는 바가 있는지 눈이 마주치자 시선을 피해버렸다.
“그들이 당신을 황제로 만들어준다고 하던가요.”
“그, 그때는 그랬지… 그런데 그 약속을 한 직후에 자네가 날뛰기 시작하는 바람에 어둠이 뭘 도와줄 새도 없이 전쟁이 끝나버렸네.”
“그러면 계약조건이 바뀌었겠군요.”
“그렇지. 건강이나 영원한 젊음, 힘. 그런 것을 주겠다 약속했네.”
영원한 젊음?
황제 즉위했을 때 20대 중반쯤이었던 걸로 알고 있는데. 그러면 지금 50대 아닌가?
무슨 6, 70대 같은 얼굴을 하고 영원한 젊음 같은 소리를 하고 있어.
어둠한테 사기당한 거 아니야?
“힘과 권력을 대가로 무엇을 제공한 겁니까. 그냥 따스한 보금자리 마련해주고 안전하게 보호해주는 게 전부는 아니었을 텐데요.”
뒤쪽에 구겨져 있던 흑마법사들이 위대한 계획을 발설해서는 안 된다며 웅성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쩌겠어. 계약서는 종이 쪼가리고 주먹은 바로 앞에 있는데.
“라 엘타를 오염시키고 있었네.”
“그건 의심하고 있긴 했는데, 땅을 오염시켜서 얻는 게 뭐 있다고 그런 겁니까? 우리도 그동안 고통스러웠으니 너희도 고통스러워 봐라, 뭐 그런 못된 심보?”
“자세한 건 나도 몰라. 그냥 하라는 대로 했을 뿐일세.”
“그래요? 그러면 거기 있는 어둠…”
“저들도 모를 걸세.”
여기가 어둠의 본거지라더니. 여기 있는 흑마법사들도 어둠의 목표를 모른다고?
“어둠을 만든 이는 따로 있어. 이들도 결국 그가 내리는 지령을 그대로 이행할 뿐일세.”
기껏 여기까지 찾아왔더니 이번에는 창시자까지 찾아가야 할 판이다.
아, 이제 안 해.
어차피 밑에 있는 놈들 다 잡아놨는데 창시자라고 혼자서 뭐를 더 할 수 있겠어.
나중에 시간 남아돌 때 생각나면 라마 보고 잡아 오라고 시키든가 해야지.
“내 주 임무는 최대한 많은 땅과 몬스터를 오염시키는 것이었네. 하지만 거기서 방해꾼이 등장했지.”
아, 나구나.
어쩐지 전쟁 끝나고 박혀있는 10년 사이에 몬스터가 엄청나게 늘어났더라.
아무 생각 없이 실컷 몬스터 잡고 성수 낭비해가며 정화하고 다녔는데 그게 악의 조직을 방해하는 일이었다니.
나도 모르게 세상의 평화를 지키고 있었잖아.
“자네의 영향을 받은 건지 몬스터 토벌을 시작한 용병도 늘어났어. 아주 미쳐버릴 지경이었네. 자고 일어나면 베개에 쏟아져 있는 머리카락이 나를 얼마나 슬프게 하던지…”
어둠이 약속한 영원한 젊음에 머리카락 보수공사는 포함 안 되어있었답니까?
“결국, 어둠에서도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네. 그래서 자네를 지구로 돌려보낸 거야.”
그렇구…은?
방금 라 엘타 주민에게서 나올 것이라고는 예상도 못 한 단어 1위가 황제 입에서 나온 거 같은데.
“지구요?”
“그래, 지구. 자네의 고향 아닌가.”
아니, 이걸 어떻게 알…… 수도 있지.
어둠은 지구랑 라 엘타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었잖아.
그렇다면 지구에 대해서 알 수도 있고 황제에게도 알려줬을 수도 있지.
그런데 말이야.
“저를 지구로 돌려보낸 게 어둠이었단 말이죠.”
“그, 그렇…네. 몰랐는가…? 다 알고 온 줄 알았…는데.”
황제는 뒤에 나열된 흑마법사들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이미 늦었습니다만.
“저를 이쪽으로 불러온 것도 어둠입니까?”
“설마. 자네를 어떤 이유에서든 불러왔다면 어둠으로 끌어들였겠지. 지금처럼 우리 일을 방해하게 놔두진 않았을 걸세.”
그것도 그렇지.
“지구를 오염시킨 것도 어둠의 짓인가요.”
“물론일세. 원래는 좀 더 빠르게 일이 진행될 예정이었다만… 자네가 단기간에 너무 많은 땅을 정화하는 바람에 전반적인 일정이 미뤄졌어.”
그 외에도 몇 가지 질문을 더 했지만, 황제가 아는 것은 딱 여기까지였다.
어둠을 만들고 조종하고 있는 자에 대해서도. 나를 지구로 돌려보낸 방법에 대해서도 아는 게 없었다.
어차피 여기서 내 할 일은 끝.
지구로 돌아가서 발 뻗고 자고 나머지는 라마와 덩치에게 맡겨놓자.
그 전에 황제까지만 처분하고.
그렇게 생각한 순간, 모든 플레이어의 앞에.
정확하게는 이성한을 제외한 모든 플레이어 앞에 상태창이 떠올랐다.
< 78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