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Just an Ordinary Office Worker RAW novel - Chapter (80)
평범한 회사원입니다-80화(80/180)
< 80화 >
“그럼 이제 너가 황제가 되는 건가.”
“나는 별로 황제 하고 싶지 않은데.”
“황제가 누구든 상관은 없지만, 그 자리에 반드시 누군가는 있어야 하지 않나.”
드래곤이란 종족이 언제부터 이렇게 인간 세상 걱정을 많이 했다고 신경 써주는 척이야.
“마그나 하라고 주지, 뭐. 어차피 할 일도 없고 맨날 놀고 있던데.”
“마그웨이? 매주 수요일 무기 상점에서 일하고 있지 않나. 그가 빠지면 무기 상점 일은 누가 하지?”
“덩치가 하면 되지.”
“……”
지금 하는 것에서 일이 더 늘어나다니.
라마는 덩치를 위해 묵념했다.
아직 어둠을 통해 알아내야 할 것이 남아있었다.
창시자라는 놈에 대해서도 그렇고.
수정이나 차원 이동 마법진에 관한 건. 이들이 꾸미고 있던 계획들에 관한 상세설명.
그리고 무엇보다, 선대 마그웨이 공작을 치유하는 방법.
치유라고 하기에는 너무 쌩쌩하지만, 반리치라면 반쯤은 죽어있는 거나 다름없으니까.
“클리브를 보낼 테니까 여기서 흑마법사들을 지키고 있어.”
“그때까지만 지키고 있으면 되는 건가.”
“둘이 같이 흑마법사들 데리고 마그웨이 공작가로 가서 선대 공작 치유법 좀 알아내 봐.”
황제는 혹시 모르니까 챙겨가기로 했다.
황궁에 숨겨진 비밀이나 몰래 쌓고 있던 보물 같은 게 있을지도 모르니까 털어낼 건 털어내야지.
“사, 살려주게. 제발, 나는… 컥.”
시끄러워서 기절시켜 버렸지만.
황제를 들쳐업고 지상으로 올라갔다.
연회날이라고 사람도 많고 시끄러웠는데, 그사이에 다 어디 숨은 건지 엄청 조용하네.
연회홀에서 기척이 느껴져서 찾아가 봤더니 귀족들이 모두 그곳에 숨죽이고 찌그러져 있었다.
황실 기사단이 황제가 납치되었다고 생난리를 치니까 혹시라도 불똥이 튈까 봐 연회실에 박혀있었구나.
침입자나 암살자가 온 거라면 밖으로 도망치는 게 상책이지만.
납치범일 경우에는 괜히 황궁에서 벗어났다가 범인으로 지목될 수도 있으니까.
눈치만 빠른 귀족들은 황제를 짐짝처럼 들고 들어온 내 모습이 순식간에 상황을 파악했다.
“이한 님 만세!”
“새로운 황제 폐하 만세!”
이런 충성심이라고는 개미 눈곱만큼도 없는 사람들을 봤나.
반역자라며 내게 달려들던 기사단과는 달리. 귀족들은 자신의 찬란한 미래를 위해 손바닥부터 비비기 바빴다.
“아, 저는 사실 이한이 아니라 이안 본인이고요. 아들도 없고 결혼도 안 했습니다.”
“에, 예?”
“그리고 저 황제 안 합니다. 황제 될 사람은 곧 보낼 테니까 각자 집에 돌아가서 손 깨끗이 씻고 기다리고 계세요. 그럼 안녕.”
당황하는 귀족들을 뒤로하고 클리브를 만나기 위해 헤르타 영지로 향했다.
“이안 님? 그분은 누구시길래 그렇게 데리고 다니십니까?”
“이 사람은 에드워드 알바로 라는 사람입니다.”
“예?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이름인데… 에드워드… 알바로… 알… 황제 폐하?!”
“오늘부터는 황제가 아니지만요.”
“드디어 제국을 장악하기로 하신 건가요! 황제가 되시는 거군요, 이안 님!”
“저는 황제 안 할 겁니다.”
이 말만 오늘 몇 번째 하는 거냐.
“황궁 지하로 가시면 라마가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두 분이 함께 마그웨이 공작가로 가세요.”
“공작가로요? 거기는 왜…”
“공작을 다음 황제로 만들 거라서요. 준비해주세요.”
“네?”
의문이 풀리지 않은 건지 질문을 해대는 클리브를 무시하고 저택으로 돌아갔다.
“이안 님! 들고 계신 그분은 황제 폐하가 아닙니까.”
역시 집사. 바로 알아보는구나.
“어, 황제 맞아. 지금은 전 황제라고 해야 하나? 하여튼 황제 같은 거야.”
“……”
“그런 눈으로 보지 마. 마음에 안 들어서 잡아 온 거 아니니까. 라 엘타를 개판으로 만들고 있던 장본인인 걸 확인하고 끌고 온 거야.”
“일단 알겠습니다. 다음 황제는 어떤 분으로 정하셨습니까?”
이래서 집사랑 대화하는 게 편하다니까.
황제 할 생각 없다고 또 설명해줄 필요도 없고.
농담을 안 받아주는 게 유일한 흠이지만.
“마그웨이.”
“알겠습니다. 어쩐지 우편이 많이 오더라니 이런 이유에서였군요.”
우편?
집사를 따라가니 정말 말 그대로 많은 우편이 쌓여있었다.
발신자는 귀족들.
그것도 아까 황궁 연회홀에 있었던 귀족들이다.
“뭐지? 전부 자기 가문의 비리를 까발리는 내용인데.”
설마 내가 헤르타 영지에 들린 그 짧은 사이에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구구절절한 편지를 써서 우편으로 보냈다는 거야?
왜?
“귀족님들을 협박이라도 하신 겁니까.”
“협박이라니. 그냥 황권 교체가 있을 거니까 손 잘 씻고 기다리고 있으라고 했을 뿐인데.”
아무래도 손을 깨끗하게 씻으라는 조언을 협박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냥 건강을 걱정해줬을 뿐인데.
목 씻고 기다리라는 말이 목을 베어버리겠다는 뜻인 것처럼.
곧 너희 집에 각각 찾아가 그 손모가지를 썰어줄 테니 얌전히 앉아서 기다리란 말로 이해한 건가.
그래서 눈물 자국 찍힌 편지에 자신의 죄를 낱낱이 기록해 사과문과 함께 보낸 거고?
내가 이안 본인이 아니라 아들인 척 정체를 숨기고 황제와 귀족들이 문제 일으킨 건 없나 검사라도 하며 돌아다니고 있는 줄 아나.
암행어사도 아니고.
이 편지 그대로 갖다 주면 차기 황제가 알아서 하겠지.
“전 황제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빈방에 가둬두고 황궁에 비밀 장치나 숨겨둔 방 같은 거 없나 한번 알아봐 줘. 그 후엔 마그웨이가 자리 잡을 때까지 곁에서 돕게 해야지.”
이런 게 인수인계라는 거다.
마그웨이는 생각도 안 하고 있다가 갑자기 황제가 되는 거기도 하고.
공작일도 제대로 해본 적 없는 거 같은데 이런 업무를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니까.
이런 놈을 살려두는 게 영 찝찝하긴 한데 마그웨이 쪽이 불안한 마음이 더 커서…
그러고 보니까 마그웨이.
아직 자기가 황제가 될 거라는 거 모르는구나.
“황제가 될 사람한테는 황제 해야 한다고 말해줘야겠지?”
“네? 무슨 당연한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혹시나 했더니 역시 공작님과 합의하지 않고 혼자 결정하신 겁니까?”
딱히 마그웨이 말고는 할 사람이 없었는걸.
클리브를 시킬 수도 없고.
당장 마그웨이에게 알려야 한다고 등 떠미는 집사 때문에 지구로 돌아갔다.
마그웨이는 자신의 아버지와 가문을 해하려 한 원수의 일원, 어플을 만난 이후로 심각한 분위기를 띠고 있었다.
“드디어 오셨군요, 이안 님. 제 손으로 그 무리를 처단하고 싶습니다, 부디 허락해주십시오!”
마그웨이는 비장하게 외쳤다.
“아, 미안. 네 몫을 남겨놓는 걸 깜빡했어. 그 단체는 이미 내가 찾아서 쓸어버렸고, 알고 보니까 황제가 배후더라. 그래서 황제 자리가 지금 비는데 오늘부터 황제 할 수 있지? 준비하러 가야 하니까 가자.”
“……예?”
진지함 그 자체였던 마그웨이의 표정이 다시 얼빵한 얼굴로 돌아왔다.
지금은 하나도 이해가 안 가는 거 같지만.
가서 즉위식 준비하다 보면 이해하겠지.
조금 더 설명해달라는 마그웨이의 요청을 무시하고 공작성으로 데려왔다.
라마와 클리브 곁엔 선대 공작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왔나. 기다리고 있었네.”
“엔릭. 나와 있어도 되는 거야?”
“그동안 숨어있었던 건 어둠이 나를 빌미로 공작가를 무너뜨릴까 걱정해서였을 뿐. 이제 그들이 없으니 오랜만에 자유를 느껴도 괜찮겠지. 고맙네, 친우여.”
그건 그런데.
지금 공작가에서 일하는 하인들이랑 기사들이 귀신을 본 거처럼 놀라서 심장 부여잡고 있는 거 안 보이냐.
저 사람들이 보기엔 죽은 사람이 걸어 다니고 있는 건데.
아, 반쯤은 리치니까 반은 죽어있는 게 맞긴 하구나.
“아버지…”
마그웨이는 몇 년을 병상에 누워 골골대던 아버지가 겨우 일어선 걸 본 사람처럼 감격에 겨워했다.
너희 아버지 너보다 건강하고 튼튼한 거 안 보이냐.
“다시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올 셈이야?”
“그래야지. 쪽방에 갇혀있는 건 이제 지쳤네.”
쪽방이라뇨. 네가 있던 방, 50평은 되어 보이던데.
“그럼 귀족들 모아놓고 사실 죽은 게 아니라는 걸 공표하겠네?”
“그래야겠지.”
“백성들에게도 사실을 말해야 할 거고.”
“물론이네.”
“장난친 거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어느 정도는 사실을 밝혀야겠지? 흑마법사들의 공격으로 몸을 회복하는 동안 은신하고 있던 거라고 하면 되겠네.”
“좋은 생각일세.”
“그러면 공표하는 김에 하나만 더 얹어서 공작이 아니라 황제 자리에 앉는 거라고 말하자.”
“좋은 의겨… 음?”
이걸 왜 진작 생각 못 했을까.
어딜 봐도 아들 마그보다 훨씬 성능 좋은 버전의 마그웨이가 버젓이 여기 있었는데.
업무 처리 탁월하지.
이미 백성들 사이에서 평판도 좋지.
전 황제처럼 어디 가서 이상한 조직이랑 손잡을까 걱정할 필요도 없지.
누가 봐도 차기 황제로 제격인 남자, 엔릭 마그웨이가 있는데.
내 생각이 짧았다.
“미안, 마그. 이제 필요 없어졌어. 앞으로도 라마 무기 상점 잘 부탁해.”
“네? 아, 네.”
덩달아 마그웨이 서포트 역으로 목숨만 붙여놓으려던 황제도 필요 없어졌다.
그쪽은 엔릭이 황제가 된 후에 넘겨주면 알아서 처리하겠지.
“좋아. 그러면 엔릭의 황제 즉위식 전까지 리치화를 풀 방법부터 알아보자고.”
“아직 승낙하지 않았네만.”
“그래서 안 하려고?”
“…어차피 나 아니면 제이스 저놈 아닌가?”
“그렇지.”
“그러면 내가 해야지 어쩌겠나.”
자기 아들이지만 영 못 미덥다는 반응이네.
결정된 후로 모든 것은 빠르게 진행됐다.
죽은 사람을 다시 살아났다고 발표할 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
‘효과적인 부활 방법’을 검색해보았지만, 좀비 게임에서 좀비를 효과적으로 죽이는 방법에 관한 글만 나왔다.
그래서 그냥 클리셰 적인 방법을 선택했다.
제일 먼저 이안의 이름으로 다음 황제는 마그웨이 공작이 될 거라고 발표했다.
그다음 파티를 성대하게 열어 귀족들을 초대.
여기서 귀족들이 허세 넘치고 당당한 모습으로 와야 놀려먹는 재미가 있는데.
내 눈치를 보는 귀족이 한둘이 아니어서 재미가 좀 반감되었지만 어쩔 수 없지.
파티의 분위기가 무르익자 귀족들은 아들 마그에게 가서 다음 황제가 되는 거냐며 온갖 아부를 떨기 시작했다.
그때!
모두의 앞에 서서 크게 외쳤다.
“저는 제이스 마그웨이를 황제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귀족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어허. 반역 연속 두 번의 기록을 세우는가.”
“자신의 입으로 마그웨이 공작을 황제로 내세우겠다고 했을 텐데 이제 와서 마음을 바꾸신 건가.”
귀족들의 수군거림을 흐뭇한 미소와 함께 한참을 구경하다가.
소란이 커질 때쯤. 쐐기를 박았다.
“제가 황제가 되길 희망하는 마그웨이는 단 한 명뿐입니다. 엔릭 마그웨이!”
이안 경이 드디어 미치셨는가.
죽은 사람이 어떻게!
웅성거림이 더욱 커졌다.
그때 바로 내 뒤쪽에서 엔릭이 기다렸단 듯이 커튼을 젖히고 등장.
“나는 죽지 않았네!”
“허억, 그럴 수가!”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왔다. 이건… 이건 기적이다!”
“세상에 이런 일이…”
드라마나 소설에서 백번 넘게 봤을 법한 장면이었지만.
그건 대한민국 사정이고. 라 엘타 사람들에겐 생소한 연출이었음이 분명했다.
고작 이 정도에도 놀라서 기절한 사람이 있을 정도였으니까.
엔릭은 전 황제의 악행을 낱낱이 까발렸다.
그 이야기를 들은 귀족들은 환호했다.
물론 이 상황이 진심으로 신나서 환호한 건 소수일 거고.
전 황제가 어쨌든 일단 새 황제가 눈앞에 있으니까 일단 잘 보이고 시작하자는 속셈이겠지.
“와아아, 황제 폐하 만세!”
“역시 이안 경이 아무 생각 없이 반역하는 사람은 아니었어!”
“이안 경 만세!”
“영웅도 늙고 노망들면 맛이 간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영웅은 영웅이었구먼. 황제를 끌어내린 이유가 있었어!”
“황제 폐하와 라 엘타의 앞날에 은총만이 가득하기를!”
“심심해서 황제 갈아치우기를 한 줄 알았다니 생각하고 한 행동이었다니 정말 다행일세.”
“와아아아아!”
뭐야.
환호성 사이사이에 헛소리들이 들리는데.
사실은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거냐. 너무하네.
< 80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