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Just an Ordinary Office Worker RAW novel - Chapter (86)
평범한 회사원입니다-86화(86/180)
< 86화 >
파티를 맺고 라 엘타 퀘스트를 깼는데 누구는 귀환 조건이 충족되고. 누구는 안 됐다?
그렇다는 건 둘 중 하나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뜻이겠지. 확률은 반, 반.
하지만 그 ‘누구’ 중 하나가 태현오라면 말이 달라진다.
둘 중 하나가 아니라 그냥 이놈이 거짓말 하고 있는 게 분명해.
그 자식, 전부터 수상한 게 한둘이 아니었다고.
물론 덩치가 거짓말을 했다는 가능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지구로 돌아가기 싫었을 수도 있지. 정확하게는 출근하기 싫은 거겠지만.
그런데 안 돌아가고 버틴다고 거짓말까지 해봤자 마법진으로 데려가면 그만인데?
파티 맺고 순식간에 메인퀘 하나 클리어 해주는 방법도 있는데?
거짓말하다 들켰을 때의 위험까지 감수하고 바로 들킬 거짓말을 했을 것 같지는 않지만.
일단은 예의상 확인을 해주기로 했다.
바로 다음 날 흑마법사 플레이어 몇 명을 데려와서 실험해봤다.
파티를 맺고 퀘스트 클리어 후 다른 플레이어들의 귀환 포탈이 생성되는지 확인. 확신을 위해 위 과정을 세 번 정도 반복했다.
그리고 확실해졌다.
파티를 맺고 라 엘타 퀘스트를 클리어해도. 퀘스트 수락을 한 당사자 외에는 귀환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
태현오, 그놈은 대체 뭐지.
분명 나와 형이랑 같이 들어가서. 같이 행동하고, 같이 나왔는데.
퀘스트를 몰래 따로 할 시간은 없었어.
퀘스트 보드에 들리지도 않았고. 중간에 퀘스트 창을 열어서 퀘스트를 받은 적도 없지.
만약 그랬다면 내가 못 봤을 리가 없다.
유일하게 태현오가 내 눈앞에서 꺼져줬던 때가 형이 바람 쐬러 간다는 걸 따라갔을 땐데.
그때 태현오, 이성현 목격담이 엄청나게 쏟아졌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두 사람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태현오가 퀘스트를 받아서 혼자 퀘스트를 깨러 갔다면 분명 누군가는 그걸 목격했겠지.
둘이 싸워서 베라포드를 초토화했다는 말은 있었지만 태현오가 퀘스트 하러 가는 걸 봤다는 말은 단 한 줄도 없었어.
그렇다면 태현오는 어떻게 귀환 포탈을 열 수 있었던 거지?
혼자 궁금해하고 있어봤자 답도 안 나오고.
태현오에 관해 알만한 사람을 찾아가기로 했다.
형은 별로 말해줄 거 같지 않으니까. 형은 패스.
덩치도 영웅 길드였다는 걸 깨닫고 물어봤지만, 아는 게 없었다. 덩치가 모르면 다른 일반 길드원들도 모르겠지. 간부급은 알아도 말하지 않을 테고.
그래서 탈탈 털면 정보를 뱉어낼 만한 사람을 찾아갔다.
정확하게는 사람이 아니라 단체, 플레이어 연합에 간 거지만.
영웅 길드가 플레이어 연합 후원한다는 건 알 사람은 다 아는데. 이 중 누군가는 태현오에 대해 아는 게 있겠지.
운이 좋으면 뭐라도 하나 건질 수 있을 거다.
“태현오 씨 일로 찾아왔는데요.”
“안녕하세요, 이성한 플레이어님. 담당자를 불러드리겠습니다.”
담당자?
각성 테스트받으러 간 거 말고는 연합이랑 뭘 한 적이 없는데 내 담당자가 따로 있다고?
플레이어 별로 담당자가 있는 건가.
다짜고짜 찾아왔는데도 쫓아내기는커녕 얼굴을 알아보고 반겨주네. 그래도 플레이어 관련 단체라고 플레이어들 얼굴, 이름은 외우고 있나 보다.
나가라고 하면 플레이어 개인으로 온 게 아니라 연구소 대표로 온 거라고 우기려고 했는데.
회의실로 보이는 넓은 방으로 안내되어, 커피를 마시며 기다리고 있자 곧 정장을 입은 남자가 방으로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이성한 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를 왜 기다려? 만나자는 약속도 안 했는데.
플레이어니까 당연히 한 번쯤은 연합에 방문할 거라고 생각한 건가.
그런데 이 사람. 어디서 본 적 있는 얼굴 같은데.
흔한 얼굴도 아닌데 왜 자꾸 낯이 익지.
“박승민이라고 합니다.”
얼굴도 얼굴인데 명함을 내미는 포즈가 꽤 낯익… 아. 그때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그 사람이다.
남의 집까지 쫓아와서 기다리다가 나 출근하는데 라엘타산찹쌀떡이 맞냐고 명함 내밀던.
“그 극성 출판사 직원.”
“아, 아닙니다. 저는 플레이어 연합 소속입니다.”
한번 시도하고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길래 집 주소까지 알아내서 찾아온 거치고는 끈기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또 이렇게 만날 줄이야.
“그때 제대로 인사드리지 못해서 아쉬웠는데. 이렇게 다시 뵐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아, 예. 반갑습니다.”
“바로 다시 찾아뵈려고 했는데 태현오 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니 어쩔 수 있겠습니까, 하하. 저희는 그저 시키면 따라야죠.”
태현오가 나를 찾아가지 말라고 시켰다고?
여기 오면서도 태현오 이야기를 들을 가능성은 적다고 생각했는데. 시작부터 월척이다.
이쪽에서 낚싯대를 던지기 전부터 덥석 물고 들어오네.
“정보 유출 건 때문에 오신 거 맞으시지요?”
정보?
무슨 정보.
“갑자기 들어온 요청이라 연합도 난리였죠. 막고 있던 정보들을 한꺼번에 풀려니까 저희도 고생이었지만. 이성한 님께서도 수고가 많으셨을 거 같습니다.”
내 정보 풀린 게 한두 개가 아니어서 어떤 거 말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그게 그냥 대한민국의 용감한 키보드 워리어들이 신상 털어서 찾아낸 게 아니라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풀어낸 거라고?
그것도 연합에서? 태현오가 시켜서?
연합 돌아가는 꼴이 막장이네. 고소해도 되냐.
“무슨 정보요?”
“예? 그, 그거 때문에 오신 거 아니셨습니까? 이성한 님에 관한, 그… 설마 모르고 계셨습니까? 합의된 부분인 줄 알고…”
연합 직원은 눈치를 보더니 입을 다물었다.
“죄송합니다. 이 부분은 제가 말해선 안 될 부분인 거 같습니다.”
그래, 이해한다.
나도 직장인으로서 업무와 관련된 내용을 함부로 떠들고 다니면 안 된다는 걸 잘 이해해.
그런데 그 업무가 나랑 관련되어 있다면 또 말이 달라지지.
이 사람이 모르는 게 한 가지 있는데, 사실 나는 설득 마스터다.
남들과는 다르게 입이 아니라 손을 쓰는 설득을 즐기지만.
물론 나는 일반인은 패지 않는다.
하지만 일반인을 던전에 던져 넣고 생사를 오가는 상황에서 굴리면 플레이어로 각성할 가능성이 크다는 인터넷 루머를 아주 잘 믿는 편이다.
일반인이어서 설득할 수 없다면, 우선 플레이어로 만들어 준 후에 시작하도록 하자.
라는 내용을 예쁘게 포장해, 웃는 얼굴과 함께 설명해주니 연합 직원은 결국 입을 열었다.
“이성한 님께서 연재하신 ‘라 엘타에서 50년’은 잘 읽었습니다.”
거짓말 치지 마라.
얼마 전에 궁금해서 들어가 봤는데 천 개가 넘는 덧글 대부분이 왜 이렇게 글을 못 쓰냐는 내용이더라.
“소설이 인기를 끌고 여러 길드와 단체에서 작가 ‘라엘타산찹쌀떡’을 찾았는데, 제일 먼저 찾아낸 것은 저희 연합이었습니다.”
소설이 인기를 끈 게 아니라 논란이 된 거겠지.
“그때 이성한 님을 찾아뵀었는데 아쉽게도 대화를 하지는 못했죠. 그래서 금방 다시 찾아가려고 했는데…”
“태현오가 그걸 막았다, 그 말이군요.”
“아, 예. 태현오 님께서는 그 후, 작가 ‘라엘타산찹쌀떡’이 이성한 님이라는 걸 알아낼 수 없도록 모든 정보까지 차단해두었습니다.”
어쩐지 그렇게 논란이 되고도 아무 일 없었다는 게 이상하다 했어.
대한민국에서 신상 털리는 거 한순간인데 너무 잠잠하다 싶었지.
“그러던 중, 이성한 님께서 퀘스트 제한 없이 포탈 이동이 가능한 일반인이라는 것과 아돌의 포션 판매자라는 정보를 의도적으로 풀라고 연락하셨습니다.”
시간상 형, 태현오와 함께 파티 퀘스트를 깨고, 둘에게 내가 이안이란 걸 드러내고 돌아온 직후겠군.
“왜 갑자기 그런 결정을 한 건진 말이 없던가요?”
“예. 이유는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영웅 길드와 이성한 님께서 소속되신 연구소가 긴밀한 관계에 있기에 당연히 동의하에 진행되는 거로 생각했습니다.”
긴밀하긴, 무슨.
그냥 어쩌다 보니 그쪽 부길마가 우리 형이었을 뿐인데.
“정말 죄송합니다, 이성한 님.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주의하겠습니다.”
허리 숙여 사과하는 연합 직원을 뒤로하고 나왔다.
운이 좋으면 태현오와 관련된 정보 몇 가지 들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온 거였는데.
운이 좋아도 너무 좋았네.
기분은 나빠졌지만.
태현오가 그때 의도적으로 정보를 푼 거였다고?
왜?
나에 대해 정보가 퍼지는 건 상관없지만.
다른 사람이. 그것도 태현오가, 내 정보를 맘대로 문지르고 다녔다는 건 기분 더럽다.
그동안은 형 친구… 비슷한 거라고 그나마 예의를 갖춰줬는데.
예의고 뭐고 다 내다 던지고 태현오를 찾아가 제일 먼저 멱살부터 잡았다.
“이런. 오랜만에 보는 얼굴인데 멱살부터 잡는 거야?”
“태현오.”
“왜, 이성한? 우리가 언제부터 친구 하기로 했었지?”
정말 주먹을 부르는 표정이다.
아니, 표정도 표정인데.
내가 다짜고짜 찾아와서 멱살부터 쥐었는데 놀라지도 않는구나.
설마 연합의 그 직원. 그사이에 연락해서 일러바쳤냐?
“정보 푼 거에 대해 따지러 온 거지?”
와, 설마 했는데 진짜냐. 한국인 아니랄까 봐 ‘빨리빨리’에 최적화되어있는 거 봐라.
연합, 그쪽은 보안이라는 것에 대한 개념이 없는 거냐.
아니면 그냥 그 직원이 개념이 없는 거냐.
사실 정보 푼 거 때문에 찾아온 건 아니고 귀환 포탈 사건 때문에 온 건데.
일단 변명이나 들어볼까.
“왜 남의 정보를 갖고 장난치고 그랬냐.”
그리고 태현오의 답변은 예상 답안 TOP100 중 100위에도 못 드는 괴상한 것이었다.
“성현이가 나한테 화를 내고 있었으니까.”
뭐?
이건 또 무슨 신박한 개소리인가.
순간 잘못 들은 줄 알고 삼 초간 고민하다 되물었다.
“지금 우리 형이 너한테 화를 내서 나한테 대신 화풀이를 했다는 거야?”
저 나이 먹고 화풀이라니. 유치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지만 태현오가 이상했던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냥 시선을 돌릴만한 것이 필요했을 뿐이야. 실제로 네 정보가 퍼지고 성현이가 바빠져서 나한테 화를 낼 시간이 없어졌잖아. 이성현이 나한테 분노를 느끼면 머리가 아프거든.”
“…………뭐?”
차라리 화풀이였다고 말해.
뭐라고 하는 거야, 대체?
이놈이 하는 말이, 정말이지 손톱 때만큼도 이해가 안 간다.
뭐라는 거야. 머리가 아프다고?
골치 아프다고 비유하는 거야, 아니면 실제로 두통을 느낀다는 거야?
형이 화를 내면 머리를 아픈 게 아니라 분노라는 감정 그 자체를 느끼면 머리가 아프다고?
저건 대체 어느 나라 변명이야. 지금 말이 된다고 생각은 하면서 말을 하는 거야?
생각할 뇌가 존재하기는 하는 거야?
“성현이가 자기 고유 능력이 뭔지는 안 가르쳐줬나 봐?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
태현오 놈이 소리 내 웃었다.
그래봤자 멱살 잡혀 있어서 별로 멋져 보이지도 않거든?
“우리 형의 고유 능력이 화를 내면 다른 사람 머리를 아프게 하는 거라고?”
무슨 그런 하찮아 보이는데 은근히 쓸모 있을 거 같은 능력이 다 있지.
“대충 그렇지. 비슷하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고.”
비슷하면 비슷한 거고, 다르면 다른 거지 뭐라는 거야.
“나는 형이 화를 낼 때 머리가 아픈 적이 없었는데?”
“애초에 성현이는 너한테 화 안 내잖아.”
그렇다. 형은 나한테 화를 내지 않는다.
하지만 나한테는 물론, 애초에 그 누구에게도 화를 잘 내지 않는 성격이거든?
이 새끼는 형한테 뭔 짓을 했길래 고유 능력이 발동할 정도로 형이 화가 났다는 거야.
“성현이 고유 능력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건 아니니까 걱정하지마. 네가 형 때문에 머리 아플 일은 없을 거야.”
“형의 고유 능력이 정확하게 뭔데.”
“그건 직접 가서 물어봐. 아마 말해주지 않겠지만.”
“왜 말해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태현오는 ‘젠틀해 보이지만 한없이 얼굴 한가운데에 주먹을 꽂아 넣고 싶게 만드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네가 나를 죽이고 싶어질 테니까.”
“어, 그래.”
뭔진 모르겠지만.
죽이고 싶은 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멱살 잡은 손을 그대로 휘둘러 태현오를 던져버렸다.
건물 밖으로.
어차피 이 정도로는 안 죽는 거 다 안다, 태현오 새끼야.
< 86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