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Just an Ordinary Office Worker RAW novel - Chapter (87)
평범한 회사원입니다-87화(87/180)
< 87화 >
유리창을 깨고 창문 밖으로 던져진 태현오는 비교적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플레이어 자격증을 운으로 딴 건 아닌가 보네.
“창밖으로 던진 건 좀 너무하지 않았냐? 아프잖아.”
아프라고 던진 건데.
“이제 말할 생각이 좀 드냐?”
“미안한데, 애초에 말해주고 싶어도 말할 수가 없는 거라서.”
“그럼 글로 써봐.”
“나는 지금 장난하는 거 아닌데.”
우연이네. 나도 아닌데.
장난 아닌 진심으로 태현오를 한 번 더 창밖으로 던질 준비를 했다.
‘띠링’
타이밍 좋게 형한테서 톡이 와서 말았지만.
[성한아.] [혹시 지금 영웅 길드 마스터랑 싸워?]어떻게 안 거지. 우연이라기엔 타이밍이 너무 좋은데.
물론 싸우고 있는 게 아니라 일방적으로 던지고 두드리고 발로 차줄 예정이지만.
“그 사이에 형한테 연락했냐?”
“왜? 성현이가 나 괴롭히지 말래?”
괴롭히다니. 그런 귀여운 수준에서 끝낼 생각 없거든?
태현오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등신처럼 하하하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내가 말한 거 아니다. 그것도 이성현 능력이야.”
그래서 그 대단한 능력이라는 게 대체 뭐냐고.
형한테 연락 온 김에 물어보자는 생각으로 답장을 보내봤다.
[형 고유능ㄹ혁머임?] [고유능ㄹ겨] [고ㅓ유능력] [뭐임?]그리고 답은 없었다.
형 성격에 말 못 할 일이면 솔직하게 말해줄 수 없다고 하지, 모른 척은 안 할 텐데.
아예 대답조차 안 한다고?
역시 태현오 쪽을 뜯어내는 게 빠를 거 같다.
“왜 형의 고유능력을 알려줄 수 없는지 말이라도 해봐라.”
“나는 너희 형에게 위해를 가할 수 없어.”
고유능력을 알려주는 게 어떻게 형한테 위해를 가하는 게 되는 건데?
“성현이가 나한테 분노를 느끼면, 내가 감정적으로 성현이에게 해를 끼쳤다고 판정돼서 머리가 아프게 되는 거 같더라고.”
“해를 끼치면 안 된다면서 고작 머리 아프고 끝난다고?”
심지어 확신하지 않는 말투인데.
실시간으로 아무 말 지어내고 있는 거 아냐?
“그건 가벼운 해라서 그런 게 아닐까. 실제로 공격하거나 상처를 입히면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 같은 이유로 이성현에 대한 정보를 함부로 유출하는 것도 금지야.”
“내 정보를 뿌리는 건 괜찮고?”
“물론 이성현 말고 이성한의 정보를 뿌리는 건 전혀 문제없지.”
아니, 이런 멋대로 판정이 다 있어.
내 정보를 퍼뜨려서 결국은 형을 바쁘고 곤란하게 만든 거잖아.
이성현 당사자를 대상으로 한 행동이 아니면 우회해가도 괜찮다는 거냐?
“이성현 본인이 그 행동으로 인해 위협을 느끼지 않는다면 괜찮아. 그쪽은 내가 고의로 정보를 퍼뜨렸다는 걸 모르고 있으니까.”
형이 알게 되는 순간 너는 두통 고문에 시달리게 된다는 거구나.
내가 집에 돌아간 순간 두고 보자.
“지금 이런 정보는 말해도 되는 거냐.”
“그러게. 이 정도는 말해도 되나 보네, 하하.”
즐겁냐?
“이 이상 정보를 발설하면 얼마나 아프게 되는데?”
“글쎄. 두통은 확실하고. 직접적인 공격을 가하는 게 아니고, 악의적인 의도가 없으니까 일반인으로 치면 아주 심한 독감에 걸려서 3주간 앓을 정도가 아닐까?”
“…왜 그렇게 구체적이야?”
“사실 예전에 성현이 친구를 불러서 성현이의 능력과 나와의 관계에 대해 말해본 적이 있거든. 그 후로 딱 3주 앓았지, 하하.”
형한테 유일하게 하나 있던 친구랑 갑자기 어울리지 않던 게 너 때문이었냐!
이런 미친놈을 봤나.
뭐, 덕분에 정보 발설을 해도 형한테 해가 가지 않는다는 건 잘 알았다.
“잘 봐봐. 3주간 고열로 앓는 게 더 아플까. 아니면 팔이 뽑히는 게 더 아플까?”
“글쎄. 팔이 뽑혀본 적은 없지만, 고통보다 불편함이 더 크지 않을까.”
이런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태현오.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뻔뻔하다고 해야 할지.
농담인 줄 아나 본데, 나는 언제라도 너의 팔을 뽑아줄 준비가 되어있다.
결국, 백기를 든 건 그쪽이었다.
언젠가는 이런 상황이 올 거라고 예상한 건지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는 거 같기도 하고.
혹시라도 아파서 쓰러질 것을 대비해, 태현오는 푹신한 소파에 몸을 기대고 앉아 입을 열었다.
“나는 반마족이야.”
“뭐?”
시작부터 이해를 못 하겠다.
마족? 마족이란 게 진짜로 있……을 수도 있지. 몬스터도 있고 시스템도 있고 차원 이동도 있는데 마족이 있다고 해서 새삼 놀라울 것까지야.
“그리고 성현이의 고유능력은 마족 계약이다.”
“뭐?”
“나를 처음 봤을 때부터 왠지 싫고 거부감이 들지 않았나? 그건 네가 마력에 민감해서 그래. 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느끼지 못하는 거부감을 느끼고 괜히 나를 경계한 거야.”
확실히 이유 없이 얼굴만 보면 패고 싶고, 입만 열면 때리고 싶고, 근처에만 있으면 쳐주고 싶은 기분이 언제나, 늘, 항상 들기는 했다.
가끔 나도 왜 그런 기분이 드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는데. 종족 거부감을 느낀 거라는 거야, 뭐야.
“반마족이면 마족과 인간 혼혈인 거야?”
“그렇겠지. 나는 지구에서 나고 자라서 몰라.”
“마족이란 게 있다면 마계도 있는 건가?”
“헬하운드도 키우고 있는 놈이 무슨 소리야.”
헬하운드?
“너희 집 개. 이름이 까망이었나? 마계에서 온 마수잖아.”
어쩐지 내가 처음 보는 몬스터 타입이더라니.
라 엘타는 넓고 몬스터는 많으니까 모르는 몬스터가 한두 가지쯤 있겠지 싶어서 넘어갔는데.
마계에서 온 마수였구나. 헬하운드가 저렇게 귀여워도 돼?
형이 마계 친화적인 능력을 갖고 있는 거라면 왜 그렇게 마수들이 들러붙은 건지 이해가 된다.
까망이도 유독 형을 잘 따랐고.
얼마 전에 본 고양이 마수도 형 좋다고 졸졸 따라다녔지.
“그럼 우리 형이랑 계약했다는 거야?”
“하고 싶어서 한 건 아니고. 성현이를 처음 만났을 때 말을 걸었더니 멋대로 계약됐어. 끊는 법을 몰라서 둘 다 내버려 두고 있는 거야.”
말을 걸었는데 계약이 됐다고?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능력 발동 조건이 다 있냐.
마계 가서 모든 마족에게 인사하고 다니면 강제계약 맺고 마족 군단이라도 만들 수 있겠는데?
“아니, 잠깐. 두 사람이 만난 건 플레이어가 된 후가 아니라 훨씬 전부터였잖아. 처음 만났을 때 계약이 됐다고?”
태현오는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정말로 머리가 아픈 건지 어딘가 불편한 기색이었다.
꼴 좋다.
“성현이는 플레이어가 나타나기 훨씬 이전부터 고유능력을 갖고 있었다.”
형이 특별한 건지.
아니면 고유능력이라는 게 처음부터 시스템이랑 관련이 없었던 건지는 모를 일이지만.
형은 운 좋게 라 엘타로 출입하기 전부터 반마족인 태현오를 만나서 고유능력이 개방됐다는 거지.
아니지, 이 경우엔 운이 좋은 게 아니라 운이 더럽게 나쁜 건가.
“형이랑 만난 게 우연이기는 해?”
“우연이지. 같은 버스를 탔는데 이상하게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는 거야. 나는 기본적으로 모든 인간에게 거부감이 느껴지거든. 가끔 기분 안 좋을 땐 전부 없애버리고 싶기도 하고.”
라는 말을 해맑은 미소와 함께 말하는 태현오.
“네가 나한테 느끼는 감정을 나는 다른 모두에게 느낀다고 생각하면 돼.”
그것참 불편하겠군.
지금도 저 웃는 얼굴에 침을 뱉고 싶은 충동이 실시간으로 드는데.
그런 기분을 세상 모든 사람에게 느낀다면 살기 힘들겠다.
그건 그렇고 정말 기분 나쁜 인상이네, 저 자식.
“형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드는데.”
“내 눈앞에서 치워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어. 평범한 사람이 평범하게 다른 사람들에게 느끼는 기분이 아닐까?”
여태 웃는 얼굴로 세상에서 인류를 지워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아온 거냐.
그것참.
정말…
때려주고 싶게 생긴 인상이다.
“형이랑 무슨 대화를 했는데.”
“평범하게 이름을 물어봤지. 내 이름도 말해주고. 그러니까 바로 계약이 되더라고.”
형, 왜 그랬어.
모르는 사람이 버스에서부터 따라오면 이름을 알려줄 게 아니라 주먹부터 날렸어야지.
괜히 쓸데없이 마족도 아니고 반쪽짜리만 마족인 거 주렁주렁 달고 다니게 생겼잖아.
“그러니까 펫이나 노예 같은 위치라는 거군.”
“하하, 그거랑은 조금 다르지.”
“뭐가 달라. 라마랑 이묵이랑 위치가 똑같구만. 말 들어야 해, 형을 해칠 수도 없어. 계약을 멋대로 파기할 수도 없어.”
멋대로 계약이 맺어지고 파기할 수도 없다니.
그런 이상한 고유능력이 다 있나 싶기도 한데.
언젠가 계약을 파기해야 할 때가 오면, 뭐. 둘 중 하나가 죽으면 파기되겠지.
형이 죽을 일은 없으니 죽는 건 이쪽이겠네.
“내가 형의 능력에 대해 알게 되면 널 죽이고 싶을 거라는 건 뭐야.”
“아, 그건.”
태현오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이마를 꾸욱 눌렀다.
머리 아픈가?
이왕 아플 거 바닥에 데굴데굴 구르며 울 정도로 아플 것이지.
고작 저 정도 아플 거면서 엄살은.
“네가 사고가 났을 때 너를 라 엘타로 보낸 게 나거든.”
“……뭐?”
좀 이해가 가려고 하니까 다시 대화가 이해할 수 없게 됐다.
그러니까 태현오가…… 뭐?
“형이 나를 다른 세상으로 보내 달라고 했다고?”
“그건 아니고. 그냥 생명을 유지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는데. 별다른 방법이 생각 안 나서 라 엘타로 보내버렸어.”
반쪽짜리 마족도 마족이라고 그런 능력까지 있던 거냐.
“너 정도면 라 엘타에 금방 적응할 수 있을 줄 알았지. 결론적으로는 모든 게 잘 되었으니 너무 원망하진 마라.”
맞는 말이다.
결과적으로는 최상의 선택이었고 최고의 결말이 나왔으니까.
그래서 너무 원망 안 하고 조금만 원망하는 마음으로, 다시 창밖으로 던져버렸다.
두 번이나 5층 건물에서 떨어진 태현오는 절뚝거리며 돌아왔다.
반마족 플레이어도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다치는구나! 좋은 걸 배웠다.
“너무하네. 나는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
시키는 대로 한 거 같은 소리 하네.
형은 코마 상태의 동생이 죽지 않고 목숨을 연장하는 정도만을 바랬지.
라 엘타로 가서 그 고생을 하다 온 줄은 몰랐겠지.
그래서 내가 사실 이안이고, 라 엘타에서 몇십 년을 보낸 걸 밝혔을 때 그렇게 화가 난 표정이었구나.
바람 쐬고 오겠다는 형과 태현오가 나갔다 들어온 후에 두 사람이 싸우는 걸 봤다는 목격담이 그렇게 많았던 이유를 알았다.
실제로 싸우지는 않았겠지만, 분위기가 흉흉한 걸 보고 소문이 퍼지면서 이상하게 변한 거겠지.
그 후에 태현오가 머리 아프다고 하루 종일 징징댔던 거까지 이해가 간다.
죽어가는 동생 좀 살려달라고 했는데.
동생 영혼 냉큼 다른 세상에 던져놓고 시키는 대로 잘했다고 혼자 만족해하고 있었으니.
그 정도면 화를 내는 게 아니라 참수형에 처해도 인정 아닌가?
아. 생각해보니까 형 고유능력 정보 캐러 여기까지 온 게 아니었지.
태현오가 어떻게 퀘스트도 하지 않고 귀환 포탈을 사용한 건지 물어보러 온 거였는데.
그 전에 반마족도 플레이어가 될 수 있는 거야?
파티 맺었을 때 분명 ‘플레이어 태현오’라고 나오기는 했는데…
플레이어 자격증도 상태창 없으면 못 따는 거잖아.
나는 예외지만.
“플레이어는 맞아.”
태현오는 다시 소파에 몸을 묻고 말했다.
“그런데 지구 플레이어는 아니야.”
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
언제는 지구에서 나고 자랐다면서요.
“정확하게는 마계 플레이어라고 할 수 있지.”
보통은 이 상황에서 라 엘타 플레이어가 나와야 하는 타이밍 아냐?
그런데 마계 플레이어요?
이름만 들어도 적같은 놈이다.
보통 마계고 마족이고 마수면 적인 거 아냐? 아, 물론 우리 까망이는 예외다.
좋아.
결론은 태현오는 적이고, 죽여봐야 재활용도 안 될 놈이라는 게 확실해졌다.
그럼 이제 죽여도 되나?
< 87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