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Evil Wife of a Young Husband RAW novel - Chapter (178)
아기 남편의 흑막 아내입니다 (178)화(178/180)
체셔는 하룻밤 같이 자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했지만, 왠지 아쉬워서 나는 외출을 제안했다.
키브린이 잠깐 업무를 봐주는 사이 나는 체셔와 로즈를 데리고 체리 성 밖으로 나갔다.
마차를 이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영지민들과 종종 마주칠 수밖에 없었는데, 아이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말을 붙여 왔다.
“영주님이다!”
“영주님이 세상에서 제일 예뻐요!”
“영주님! 번개 만들어 주세요!”
“저 어제 무지개 봤어요. 영주님이 한 거예요?”
아닙니다! 자연현상입니다!
어린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날씨를 조종하는 영주가 되어 있었다.
정령 아빠의 몸을 침식했던 타르를 너무 요란하게 제거한 여파였다.
그래도 내딴에는 최선이었다. 보약까지 먹어 가며 본래 예상한 기간보다 닷새를 줄였으니까.
내 이능은 한계가 없었으나 그걸 사용하는 내 신체는 한계가 있었다.
그때 키브린은 시간이 지날수록 이 간극도 줄어들 거라고 격려해 주었다.
―전 이제 다 컸는데 언제요?
비록 시부모님이며 로즈며 하나같이 웃음을 참는 기색이었다만.
뚱한 표정을 짓는 나에게 키브린이 웃으며 말했었다.
―300년쯤 뒤에?
……다시 생각해도 꿈도 희망도 없군.
나는 어깨에서 힘을 빼고 터덜터덜 걸었다.
그러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
“워, 괜찮으세요?”
체셔가 휘청거리는 나를 단단히 붙들어 주었다.
“응, 고마워.”
로즈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곧 우리는 시장에 도착했다.
마물들의 습격으로 괴멸 직전까지 갔던 마을이라곤 믿을 수 없이 활발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영주님! 딸기 좀 드셔 보세요! 무척 달아요. 우리 영지의 자랑이라니까요?”
“무슨 소리예요? 포도가 제일이에요!”
“둘 다 아니에요! 저희 가게의 설탕과자야말로 3년째 가장 잘 나가는 관광 상품이랍니다!”
얼떨결에 나는 사람들이 주는 간식들을 받았다.
내가 버거워하자 로즈와 체셔가 나눠 들었다.
끙. 너무 눈에 띄네.
나는 골목길로 들어가서 주섬주섬 후드를 뒤집어썼다.
그리고 자신만만하게 나왔으나, 지나가던 모녀가 멈칫했다.
“어, 영주님이다!”
“쉿, 얼굴을 가리셨잖니. 모르는 척해드려.”
왜 얼굴을 가려도 아는 건데?!
얼빠진 나를 보며 로즈가 황당해했다.
“네 얼굴만 가리면 무슨 소용이야? 내가 항상 너랑 같이 다니는 걸 누가 모른다고? 그리고 넌 얼굴만 가리는 수준으로는 못 숨기거든?”
갑자기 로즈가 내 이마를 짚었다.
“열은 없는데 아까부터 왜 이렇게 흐느적거려? 어제 무리한 거 아니야?”
흐느적?
나는 고개를 기울였다.
“나 괜찮아. 긴장을 풀어서 그런가 봐.”
“…….”
미심쩍어 하는 로즈에게 나는 배시시 웃어 보였다.
“헤헤, 신들도 더 이상 쳐들어오지 못할 테니까 조금 느슨하게 있어도 될 것 같아서……. 지금은 너랑 체셔도 같이 있구.”
후드를 썼어도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는 내 표정이 전부 보일 터였다.
로즈가 내 뺨을 잡아당겼다.
“우리는 계속 네 옆에 있거든? 체력도 제일 약한 주제에 무리하지 마. 평소에도 느슨하게 있어도 지켜 줄 테니까.”
“맞아요. 저도 경비 잘 서요. 게다가 키브린 님도 계시는데 뭐가 걱정이에요?”
체셔도 거들었다.
내 가족 든든하다!
로즈는 웃기만 하는 내가 못 미더운지 나를 등에 업었다.
문득 전생의 나이를 더하면 내 나이가 까마득하게 많다는 사실이 체감되었다.
나는 로즈의 어깨에 턱을 올렸다.
“이게 바로 잘 키운 자식한테 효도받는 기분…….”
“역시 상태 안 좋다니까.”
로즈가 쯧쯧거렸다.
우리는 사람들이 준 과일을 먹으며 한적한 강가를 지나쳤다.
예전보다 눈에 띄게 좋아진 수질이 인상적이었다.
강 위에서 작은 거북이 한 마리가 헤엄치며 유유자적하게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수도에서 수질을 좋게 해주던 마물을 영지로 데려왔다고 했을 때 아그라베인은 좋은 건 다 가져간다고 투덜댔었다.
그러나 그도 수도에 이 마물을 계속 방치할 수는 없다는 데엔 동의했었다.
거북이가 나를 잘 따르기도 하고.
내가 모르페우스의 영주가 된 이후, 아그라베인은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을 무려 세 번이나 찾아왔었다.
나한테 내적 친밀감을 가진 모양인데, 문제는 언제 어디서든 나를 처제라고 부른다는 거였다.
하지만 정작 언니는 아그라베인과 무슨 사이냐고 물으면 시큰둥한 반응만 보일 뿐이었다.
“어.”
딸기를 우물거리던 체셔가 불현듯 고개를 들었다.
“체리아 님 언니분 오셨네요.”
로즈의 어깨에 기대서 늘어져 있던 나는 눈을 부빗거렸다.
언니가 하늘에서 유성처럼 뚝 떨어졌다.
“동생! 한참 찾았잖아!”
긴 금발이 바람을 타고 넘실거렸다.
언니가 대뜸 말했다.
“나 이제 아그라베인이랑 말도 안 섞을 거야. 그런 줄 알고 있어.”
갑자기요?
“그러니까 너도 그 놈이 처제라고 부르게 두지 마. 알았지? 잘 있어! 안녕!”
언니는 내 대답을 듣지도 않고 다시 날아가 버렸다.
……뭐지?
로즈와 체셔도 고개를 갸웃거리긴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강에서 배를 타고 논 다음 체리 성으로 돌아갔을 때는 또 다른 방문객이 와 있었다.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연애 상담하러 왔다고 하면 쫓아낼 거예요.”
자고로 남의 연애사에는 절대 끼어들면 안 된다고 했다. 암.
내 칼같은 거절에 아그라베인이 침울한 표정을 했다.
“우리 사이에 매정하군.”
정말로 연애 상담을 하러 온 거였어?!
“그리고 저 오늘은 좀 바빠요. 저녁에 마린이 주최하는 파티에 참석하기로 했어요.”
“나도 가지.”
넹?
아그라베인이 뻔뻔하게 말했다.
“황태자가 간다는데 초대장이 없다고 못 오게 할 귀족이 있겠어? 가서 얘기해도 돼.”
“…….”
연애 상담을 위한 권력 남용이었다.
결국 아그라베인은 나와 키브린이 파티 준비를 끝낼 때가지 기다렸다 같이 마차에 올랐다.
키브린이 자기를 어떻게 죽일까 고민하는 것도 모르고 아그라베인이 입을 열었다.
“내가 잘못했는지 처제의 의견을 묻고 싶어.”
“네. 전하 잘못이에요.”
“……아직 설명 안 했는데.”
아그라베인이 키브린을 돌아보았다.
“키브린 너는 내 편이지?”
“마차 밖으로 던져 달라고?”
키브린이 싸늘하게 반문했다.
로즈와 체셔는 내 가족이었기 때문에 받아들였으나 아그라베인에겐 가차없었다.
예의도 내다 버린 질문에 아그라베인이 재빨리 자아 성찰을 시작했다.
“생각해 보니까 내 잘못인 것 같아.”
큰 덩치를 마차 구석에 구겨 넣는 모습이 아주 조금 안쓰러워서 나는 결국 질문했다.
“무슨 일인데요?”
“그게…….”
하필 아그라베인이 말문을 열려는 순간 마차가 멈췄다.
키브린이 먼저 내려서 내가 내리는 걸 도와주었다.
굳이 나를 기다리고 있던 마린이 대번에 달려왔다.
“공자비님! 그런데 로즈 님은요?”
글쎄 그 콩깍지 빨리 벗으래도.
여기나 저기나 연애로 난리였다.
으으음, 마린한테도 로즈의 실체를 알려 주어야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즈가 좋다고 하면 나도 더 이상 말리지 않을 생각이었다.
나는 아그라베인에게 잠깐 기다려 달라고 눈짓하며 마린에게 말했다.
“로즈는 안 와.”
“그런가요?”
마린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생각보다 로즈를 더 좋아하는 것 같았다.
나는 데굴 눈을 굴렸다.
“혹시 로즈한테 관심 있어?”
마린이 정곡을 찔린 것처럼 움찔했다.
“그, 그러면 안 되는 건가요?”
“안 되는 건 아닌데 로즈는 정신연령이 많이 어리고 결정적으로 내…….”
“음? 로즈? 네 조류 아들?”
아그라베인이 불쑥 끼어들었다.
잠깐 기다려 달라는 내 눈짓을 뭘로 해석하셨던 거지, 이 황태자 전하는…….
어쨌든 내가 하려던 말도 똑같아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정식으로 공표하지는 않았는데 우리 자식이야.”
마린이 나와 키브린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누가 봐도 성인인 로즈가 우리 친자식이 아니라는 건 너무나 쉽게 알아차렸을 거고.
이 다음 흐름은 아무래도…….
“잠, 잠깐만요. 조류라는 말은 뭐예요?”
“그게, 사람이 아니거든.”
공작가에서도 알 만한 사람들은 아는 비밀인지라 나는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마린이 입을 벙긋거렸다.
“사람……이 아니에요……?”
“으응.”
“조류라고요?”
“응, 조류.”
나는 계속 긍정했다.
마린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이윽고 마린의 입에서 뜬금없는 말이 튀어나왔다.
“저, 저는 닭고기 좋아하는데…….”
……닭고기요?
“로즈가 조류는 맞는데 닭은 아닌…… 마린?!”
“흐윽!”
마린이 울며 뛰쳐나갔다.
아니, 무슨 오해를 하는 거야!
마린을 따라가려는데 아그라베인이 근엄하게 내 어깨를 붙들었다.
“때로는 현실이 냉혹한 법이지. 받아들일 시간을 줘.”
나는 어이가 없었다.
“로즈는 닭이 아닌데요. 불사조예요!”
“불사조는 날개 없어? 부리 없어? 무슨 차이인데?”
유클리드 황제가 들으면 분통 터질 소리를 아그라베인이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했다.
이 황태자는 전설에 관심도 없나 보다, 라고 생각하며 나는 말했다.
“설명해 드릴까요? 로즈가 본체로 변하면 날개에서 작은 불꽃이 나와요. 그게 되게 멋지……지는 않고 귀여워요! 체구는 작은데 멀리서 봐도 특별한 새인 걸 알 수 있어요. 그래서 예전에는 신관들도 로즈를 길조 취급했거든요? 예로부터 불사조가 행운을 가져온다는 전설도 있고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깃털은 그늘 속에서는 붉은빛에 가까운데 햇볕을 받으면 황금색이 되고, 꼬리깃은 특히 반짝반짝…….”
“……그만 들어도 될 것 같아. 충분해.”
아그라베인이 미친 듯이 머리를 흔들었다.
나는 콧잔등을 구겼다.
“아직 절반도 얘기 안 했는데요.”
그러자 아그라베인이 여태 붙잡고 있었던 내 어깨를 슬그머니 놓았다.
“저 영애를 따라간다고 하지 않았나? 내가 괜히 발목을 잡은 건 아닌지 모르겠어.”
“발목 안 잡았어요. 로즈 얘기 더 해도 돼요?”
키브린은 웃음을 참는 얼굴이었고, 아그라베인은 어색하게 헛기침을 했다.
“크흠, 생각해 보니 나도 바쁜 일정이 있었어. 이만 가 봐야겠군. 로즈 얘기는 다음 생에…… 아니, 다음에 듣도록 하지.”
그가 재빨리 물러났다.
나는 아그라베인의 독촉에 못 이겨 출발하는 마차를 황당하게 응시했다.
“……우리가 타고 온 마차를 타고 돌아가면 우리는 어떻게 돌아가라는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