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Evil Wife of a Young Husband RAW novel - Chapter (179)
아기 남편의 흑막 아내입니다 (179)화(179/180)
매너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는 황태자였다.
소드마스터라 걸어가도 충분할 텐데 말이야.
나는 훗날 소소하게 복수해 주리라 다짐하며 키브린과 파티장으로 들어갔다.
키브린은 순식간에 사람들에게 둘러싸였다.
한 폭의 그림처럼 온기라곤 없는 표정이었어도 키브린은 다가오는 사람들을 내치지 않았다.
내 업무를 도와주면서 귀족들을 많이 응대한 탓에 사교성이 훌쩍 오른 것 같았다.
반면에 내 주변은 휑했다.
한 달 전, 메라에게 되도 않는 흑심을 품었던 대머리 남작을 공개적인 장소에서 패 버린 대가였다.
그래도 그놈은 맞을 만했다!
주스를 홀짝거리는데 한 영애가 나를 보며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주변에서 떠드는 소리가 자연스럽게 내 귀로 흘러 들어왔다.
“에이, 아무리 영애의 약혼자가 별로여도 황태자 전하만큼 별로겠어요? 전하는 연인과의 첫 번째 데이트 약속도 잊어버리시는데. 2시간이나 지각했다면서요? 게다가 완전히 거지꼴, 크흠, 못 봐 줄 몰골로 오셨대요.”
응, 아그라베인 잘못 맞네.
마차를 내어 줄 게 아니라 수도까지 걸어가게 했어야 했어.
“저어, 공자비님.”
나에게 미소를 보낸 영애였다.
그녀가 천진한 미소로 인사했다.
“오래전부터 공자비님을 직접 만나 뵙고 싶었어요. 낙마 사고를 당했던 제 어머니를 공자비님이 치료해 주셨거든요. 정말 감사드려요.”
내가?
나는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파티 참석자 명단을 미리 숙지했기 때문에 그녀가 누구인지 정도는 알았다.
하지만 내가 치료한 사람들의 신상을 일일이 알지는 못했다.
업무량이 극에 달했을 때는 구체들만 출장 보내는 선에서 처리했었고.
과거의 언니가 개인의 이득을 위해 사람들을 치료해 주었다면, 나는 공작가의 평판 개선을 위해 정기적으로 무료 치료를 베풀고 있었다.
영애가 뺨을 붉혔다.
“실은 저요, 오늘 공자비님이 파티에 참석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일주일 동안 달려왔어요. 저희 가문은 워프 게이트를 이용하기에는 재정이 빠듯해서…… 아, 아무튼! 듣던 대로, 아니, 그 이상으로 아름다우세요! 실례가 안 된다면 제 이름을 기억해 주실 수 있을까요!”
어려운 부탁도 아닌데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나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게요.”
“와아……!”
그녀가 아이처럼 기쁘게 웃었다.
적당히 대화를 이어가고 있을 때 마린이 불쑥 나타났다.
“저 로즈 님을 포기할게요. 사랑으로도 종족 차와 나이 차는 극복할 수 없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체셔 님은 사람이죠?”
넹?
나는 동공 지진을 일으켰다.
“체셔가 사람은 맞는데…….”
체셔의 나이가 칼리스타 제국보다 약간 많다는 말을 하기도 전에 마린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그럼 그쪽을 노릴래요! 사실 공자님 얼굴을 자주 봐서 다른 영식들은 눈에 안 차거든요? 체셔 님이면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왜 종족이 다르고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애들한테만 눈길이 가는 건데!
극복할 수 없는 상대만 골라잡는 놀라운 능력이었다.
나는 이번에도 사실대로 알려 주려고 했다.
“체셔는 마린이랑 나이 차이가…….”
“앗, 부모님이 부르세요. 저 다녀올게요!”
“…….”
나는 멀어지는 마린의 뒷모습을 떨떠름하게 바라보았다.
뭐, 로즈나 체셔나 겉모습은 사람들이 호감을 가질 만했다.
로즈야 초승달 성에서도 시녀들에게 인기가 엄청 많았고.
내 눈에는 철부지인데 백마 탄 왕자님처럼 화려한 정석 미남이라며 입소문이 자자했었다.
체셔는 더벅머리였을 때는 ‘입술에 피어싱을 한 공자비의 수상한 호위1’ 정도로 인식되곤 했다.
그러나 보다 못한 아시어스 할아버지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뜯어고쳐서 지금은 잘생긴 얼굴이 진가를 발휘했다.
물론 이 역시 다른 사람들의 평가였고…… 내 눈에는 체셔도 로즈랑 똑같은 애였다.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누르며 키브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슬슬 한계치에 달한 듯, 표정이 아까보다 싸늘해져 있었다.
저런. 남편 구해 주러 가야겠다.
내가 다가갔을 때 키브린은 얼음장 같은 눈으로 백작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주제도 모르고 혀를 놀렸다간 선대 백작보다 단명할 텐데.”
살벌한 경고에 키브린을 에워쌌던 귀족들이 썰물처럼 뒤로 빠졌다.
으응, 내 남편도 다음번 파티에서는 나처럼 느긋하겠어.
나는 키브린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저분이 무슨 얘기했어요?”
“시골 중의 시골인 모르페우스 영지보다 자기 영지에 투자해 달라는 얘기요.”
나는 볼을 부풀렸다.
공작가의 재산을 갈아 넣어서 밤새도록 열심히 개발 중입니다만!
“그래도 화 안 내고 좋게 말했어요. 체리아 님, 저 잘했어요?”
키브린이 눈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다들 겁먹어서 도망쳤는데 대체 뭘 좋게 말했다는 거예요.
내가 대답하려는 찰나에 근처에서 무언가가 박살 나는 소리가 났다.
모르페우스 영지를 시골 중의 시골이라고 했던 백작이 자기가 와인 잔을 떨어트린 줄도 모르고 경악에 차 있었다.
나를 지극히 편애하는 키브린의 모습을 처음 본 몇몇 귀족들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내 남편이 아무리 성질 더럽기로 소문났다지만 부인한테 조금 웃었다고 이런 반응이라니.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키브린에게 제안했다.
“잘했어요. 우리 춤출까요?”
키브린이 손을 내밀었다.
우리는 스테이지로 올라갔다.
박자에 맞춰 느긋하게 한 바퀴 돌았을 때 영애들이 속닥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저도 공자님처럼 완벽한 분과 한 번이라도 춤을 췄으면 소원이 없겠어요.”
“속으면 안 돼요. 공자비님이 곁에 계셔서 완벽하고 근사해 보이는 거예요.”
저기요?!
순간 발이 삐끗했으나, 키브린이 내 허리를 잡고 들어 올렸다. 그리고 사뿐히 내려 주었다.
덕분에 내 실수는 아무도 모르게 지나갈 수 있었다.
키브린의 몸에 몸이 밀착되는 순간을 노려서 나는 작게 물었다.
“키브린도 저런 말들이 다 들릴 텐데 어떻게 무시할 수 있어요?”
“사실이잖아요?”
너무 간단하게 인정하는 거 아닌가요!
이후로 우리에게 다가온 사람은 마린뿐이었다.
파티가 끝나고 우리가 돌아가려고 할 때에 마린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공자비님, 타고 오셨던 번쩍번쩍한 마차는 어디 갔어요?”
“황태자 전하께 갈취당했어.”
마린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러고보니 아까 황태자 전하도 오셨었죠? 안 들어오신 건 현명한 선택이었는데…… 전하의 만행이 여기까지 알려져서요. 제 마차를 빌려드릴까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오늘 즐거웠어.”
굳이 새 마차를 구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체력에 한계가 있을까 의문인 키브린을 보며 눈을 빛냈다.
“저 업어 주세요!”
과연, 키브린은 나를 업고도 전혀 힘들이지 않고 길을 빠져나갔다.
음음, 바로 이 안정감이야.
로즈의 등도 제법 익숙해졌으나 수시로 업혀 봤던 키브린의 등이 주는 편안함은 차원이 달랐다.
달빛이 머리카락을 물들여 가는 사이 나는 입을 열었다.
“아까 마린이 사랑으로도 종족 차와 나이 차는 극복할 수 없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키브린도 아시다시피 재해는 3년도 채 살지 못했…….”
“지난 생은 지난 생이고. 이번 생은 달라요. 그리고 제 정신 연령은 언제나 신체 나이보다 높았어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키브린은 전생의 자신과 선을 그었다.
나는 쿡쿡거리고 웃었다.
“그래도 상관없다고 말하려고 했지만, 뭐어, 저보다 한 달 하고도 하루 늦게 태어난 키브린 말도 맞네요.”
둘만 있는 시간이 나쁘지 않았는지, 키브린은 이동하지 않고 체리 성까지 걸어갔다.
성에 도착했을 때는 에스의 저녁 산책을 맡은 다니엘이 반겨 주었다.
원래도 동물을 좋아했던 그는 내가 봉급을 올려 주지 않는다고 해도 성에 눌러앉을 기세였다.
“파티는 즐거우셨나요?”
“네. 에스는 얌전히 있던가요?”
예의상 건넨 질문이었는데 다니엘의 눈동자가 활기를 띠었다.
“그럼요. 저에게 드래곤을 돌볼 기회를 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에스가 얼마나 똑똑한지 아시나요? 배려심이 넘친다는 것도요. 제가 역사책을 두고 와서 잠깐 방으로 돌아가야 할 일이 있었는데 에스가 가져다 주었답니다. 비록 잇자국이 생기긴 했지만 그마저도 귀엽고 기특하지 않을 수가…….”
갑자기 내 자식 자랑에 흐린 눈을 하던 아그라베인이 생각났다.
이런 심정이었나……!
“정말 귀엽고 기특하네요! 전 피곤해서 이만 들어가 볼게요!”
나는 맞장구를 쳐 준 다음 후다닥 성 안으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메라가 반갑게 나를 맞이했다.
“다녀오셨어요?”
“네! 아니, 응. 다녀왔어.”
메라에게는 오랫동안 존댓말을 했던 터라 아직도 하대가 입에 붙지 않았다.
하지만 메라는 내가 성년을 앞둔 데다가 모르페우스의 영주가 된 만큼 아랫사람에게 하대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그치만 키브린도 대부분의 사람들한테 존댓말을 쓰는걸요?
―공자님은 계속 존댓말을 쓰셔야 해요. 부드럽게 말하는 방법도 더 배우셔야 하고요. 그렇게라도 포장하지 않으면…… 후우…….
―…….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는 메라를 보며 참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했었지.
나는 메라의 시중을 받으며 목욕을 하고, 키브린의 방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로즈도, 체셔도 없었다.
“키브린, 저 왔어요! 오늘은 꼭 같이…….”
어라? 문이 열려 있네?
나는 방으로 들어가다 말고 숨을 멈췄다.
어둠 속에서도 찬연하게 빛났던 눈동자가 지금은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