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Heiress of the Villain Family RAW novel - Chapter (102)
102화
* * *
‘우와아, 너무 늦었다!’
나는 시간을 확인하며 종종걸음을 쳤다.
‘오빠한테 딱 15분만 기다려 달라고 했는데.’
15분이 뭐야, 이미 30분은 지난 것 같았다. 기숙사에 두고 온 물건이 있다고 둘러대고 왔는데. 이대로 정문까지 걸어갔다간 의심을 살 게 뻔했다.
‘이럴 때를 위한 치트 키가 있지.’
나는 내 옆에서 느긋하게 보폭 맞춰 걷는 아이칼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그리고 두 팔을 활짝 벌렸다.
“아키, 아키. 나 교문 앞까지 데려다줘!”
“이리 와.”
기다렸다는 듯이 아이칼이 내 허리에 팔을 감고 나를 훌쩍 안아 들었다. 나는 얼른 그의 목을 꼭 껴안았다.
기척을 최소한으로 줄인 아이칼이 도움닫기 한 번 없이 2미터가 훌쩍 넘는 담벼락 위로 도약했다. 얼마 전에 내가 가지런한 일자로 잘라 준 하얀 머리칼이 시야에 마구 흩날렸다.
‘음, 시원하다.’
나는 소년에게서 풍기는 차갑고 깨끗한 겨울 냄새를 맡으며 기분 좋게 눈을 감았다.
4년 동안 아이칼은 나보다 키가 한 뼘은 더 컸다. 아직 본체가 성체로 자라려면 몇 년 더 남았지만, 인간화한 모습은 얼추 인간 나이에 맞게 성장하는 듯했다.
어쨌든 그래서, 결과적으로 승차감이 엄청나게 편해졌다. 이렇게 폭 안기기도 좋고, 기대기도 좋고, 또 훨씬 든든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물론 아카데미 안에서는 조심 또 조심해야 하지만.’
비에스토에 반려동물을 한 마리까지 들여올 수 있다는 규정이 있어서 다행이다. 덕분에 나는 아카데미에 다니는 4년 내내 아이칼과 붙어 다닐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칼이 인간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들키면 금방 쫓겨날 거다. 원칙적으로는 남학생이 여학생 기숙사에 들어올 수 없으니.
‘그렇지만 이제 아키가 옆에 없으면 잠이 안 오는걸.’
아침마다 얘가 깨워 주지 않았다면 수업에 지각을 밥 먹듯 했을 거야.
아이칼이 골목골목에 꽉꽉 들어찬 지붕을 휙휙 밟으며 교문까지 도착하는 데는 채 2분도 걸리지 않았다.
저 멀리 익숙한 나비 문양이 그려진 마차가 보였다. 아이칼은 교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날 내려 주었다.
“조심.”
“고마워. 역시 네가 최고야.”
내 아부에 피식 웃은 아이칼이 곧바로 모습을 바꿨다.
나는 새끼 눈표범을 번쩍 안아 들고 마차로 달려갔다.
“아빠!”
마차 문에 등을 기대고 있는 인영이 보였다.
내가 냅다 소리치자, 그 사람이 곧장 몸을 바로 하고 이쪽을 돌아보았다.
“카티.”
“헤헤. 아부지다.”
나는 얼른 손을 흔든 뒤, 마차로 다다다 달려갔다.
아직 아카데미를 떠나지 않은 학생들이 이쪽을 힐끔거리는 게 느껴졌다. 학생들뿐 아니라 그들을 데리러 온 학부모들도 이쪽을 열렬히 훔쳐보고 있었다. 위험스럽게 뺨을 붉히는 귀부인들도 몇 명 있다.
저기, 옆에서 남편분이 눈을 부릅뜨고 계신데…….
‘하긴, 불가항력이지. 미모가 죄라면 우리 아빠는 사형감이니까.’
어쩐지 내가 다 뿌듯했다.
나는 얼른 달려가 아버지에게 쏙 안겼다. 그리고 아버지가 허리를 굽혀 주시기를 기다려 뺨에 뽀뽀도 했다.
“헤헤, 다녀왔습니다아.”
“그래. 고생했어.”
웃음기 띤 목소리와 함께, 아버지가 커다란 손으로 내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4년 사이에 키가 족히 한 뼘은 더 커서, 이제 꼬꼬마 시절처럼 아빠에게 홀랑홀랑 안겨 다닐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제 전봇대 밑의 강아지처럼 낑낑대며 고개를 쳐들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좋다.
‘나 이제 아기씨도 꼬마도 아니니까!’
아버지가 나를 빙글빙글 돌려 가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꼼꼼히 살폈다.
“어디 아프거나, 다친 덴 없었고?”
“응! 전혀요.”
열흘 만에 갑자기 어디가 안 좋아졌을 리도 없지만.
“이번 학기는 어땠어?”
“재밌었어요. 작년보다 확실히 배우는 게 더 많아졌고요.”
“또 1등 했다며?”
“히히, 새삼스럽게.”
“열심히 안 해도 된다니까. 이렇게 공부를 잘하면 나중에 가주밖에 못 돼, 카티.”
아, 아니야. 그거는 안 할래.
나는 어물쩍 대답을 회피했다.
아버지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내 볼을 쭉 꼬집었다.
“집에 가자. 다들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으니까.”
“넵!”
나는 얼른 마차에 올랐다. 그리고 곧장 대기하고 있던 아르닌 언니의 품으로 옮겨 갔다.
“이게 얼마 만이야, 우리 귀염둥이!”
‘열흘…… 조금 더 됐나……?’
나는 언니의 뽀뽀 세례를 받으며 허허 웃었다. 한 달에 두세 번씩 학부모 면담 신청하는 사람들이, 매번 무슨 몇 년씩 떨어져 있다가 상봉하는 것마냥…….
“언니가 우리 카티 보여 주려고 새로운 무기고를 하나 만들어 뒀는데, 가서 같이 보자. 곧 있으면 5클래스 방어 결계까지 새기는 것도 가능할 것 같아.”
처음 들었을 땐 나도 거의 뒤로 넘어가다시피 했는데, 편지로도 듣고 만나서도 듣고 벌써 댓 번은 들었더니 더 놀랄 기운도 없었다.
보다 못한 베르너가 나를 아르닌에게서 휙 떼어 왔다.
“지지난 주에 봤잖아. 애 좀 가만히 내버려 둬, 아르닌.”
‘그러는 오빠는 매일매일 나랑 세끼 같이 먹겠다고 3학년 교실에 찾아오잖아…….’
나는 이번에도 그냥 실없이 킬킬대고 말았다. 이야기한들 무엇 하리? 시정되는 게 하나도 없는걸.
열두 살까지 아르템에서 지낼 때까지만 해도 이 사람들이 이렇게 나를 졸졸 따라다닐 줄은 몰랐는데, 아무래도 아카데미의 영향이 컸다. 1년에 여덟 달은 아르템을 떠나 있어야 하니까.
마지막으로 마차에 오른 아버지가 옆자리를 툭툭 쳤다. 나는 잽싸게 아르닌 언니로부터 탈출해 아버지 옆에 쏙 자리 잡았다.
아버지가 내게 크고 빵빵한 쿠션을 안겨 주며 물었다.
“가을에도 또 학교 갈 거야, 막내?”
“나 졸업해야죠, 아부지…….”
“공부를 왜 이렇게 열심히 하는 거야, 대체.”
아버지는 매 학기가 끝날 때마다 이렇게 묻곤, 매번 달라지지 않는 내 대답을 못마땅해했다. 하지만 이제는 나도 요령이 생겼다.
“하지만 방학마다 하루 종일 아빠랑 언니 오빠랑 놀고 있고, 그리고 졸업까진 앞으로 2년밖에 안 남았는걸요.”
“그렇긴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아카데미를 너무 빨리 보냈어. 꼬맹이 때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녔어야 하는데.”
애는 어릴 때 부모와 시간을 많이 보내야 한다는데,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녀야 한다는데, 애는 너무 빨리 자라, 등등. 익숙한 한탄이 이어졌다.
나는 이번에도 허허 웃었다.
‘누가 보면 나 벌써 열아홉 살은 된 줄 알겠다.’
“그래, 카티. 말 나온 김에, 올해 여름은 뭘 하고 싶어?”
어디서 났는지, 아르닌 언니가 거대한 세계 지도를 꺼내 들었다. 휴가를 보낼 여행지들이 빨갛게 표시되어 있었다.
‘아, 맞다.’
나는 셋이서 머리를 맞대고 본격적으로 휴가지를 고르기 전에 얼른 손을 들었다.
“미리 말하는데 저, 이번에는 멀리 여행 못 가요.”
“왜?”
셋이 동시에 입을 모아 물었다. 어딜 봐도 몇 년 전까지 서먹서먹했던 가족이라곤 상상하지 못할 합치였다.
나는 짐짓 단호하게 못 박았다.
“이번 방학엔 수도에 가야 해서요.”
“펠라임에는 왜?”
“친한 친구들이 놀러 오라고도 했고요, 아르닌 언니 공방 부지도 알아봐야 하고. 제가 소유주로 있는 정보 길드에도 한번 들러서 보고를 받아 봐야 하고. 그리고 또…….”
오르겐 후작가에도 들러야 하거든요.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마지막 말은 속으로 삼켰다. 말하면 난리가 날 게 뻔하니까.
‘황태자한테 말도 안 되는 시비를 털어서 얻어 낸 기회야.’
프리츠가 당황하는 틈을 타 밀어붙여 만들어 낸 오르겐 후작가로의 티타임 초대권.
나는 히죽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간신히 내렸다.
왜 이번 방학을 반드시 수도에서 보내야만 하느냐?
‘왜긴, 니엘라를 찾아야 하니까!’
내가 블라스코에 입양된 지 벌써 4년이 지났다. 난 이제 막 열다섯 살이 됐고, 니엘라는 나와 두 살 차이가 나니 이제 열일곱 살이 되었을 것이다.
원래라면 그녀는 지금쯤에 블라스코의 문하생으로 들어왔어야 했다. 그래야 [지.우.마>의 시작 시점과 얼추 맞아떨어진다.
‘그래서 올해 초에 문하생 발탁 시험을 쳤을 줄 알았는데, 눈을 씻고 봐도 안 왔잖아.’
그러면 직접 찾아내야지 별수 있겠는가?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먼저 들어가야지.
나는 세상이 다 무너진 얼굴을 하고 있는 가족들에게 싱글싱글 웃어 주었다. 등 뒤로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찾는다, 니엘라. 이번 여름, 반드시!’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