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Heiress of the Villain Family RAW novel - Chapter (103)
103화
* * *
결과적으로, 나는 이번 방학을 수도에서 보내는 데 성공했다.
‘힘들었다…….’
수도에 오는 건 장장 4년 만이었다.
나는 한숨을 푹푹 쉬며 펠라임의 블라스코 타운 하우스를 둘러봤다.
‘아버지는 수도엔 절대 못 오게 하니까.’
이유는 대강 안다. 나를 황실과 오르겐 후작의 눈에 띄지 않게끔 하려는 것이다. 아버지는 1년에 두 번 황제를 알현하러 갈 때도 절대 나를 데려가지 않았다.
게다가 아버지에게 수도는 좋은 기억으로 남은 곳도 아니다. 루티어드 님께서 바로 펠라임에서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허락을 받아 내는 데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나는 아련하게 지난 일주일간 벌어진 나와 가족들의 설전을 떠올렸다.
“수도는 절대 안 돼. 너는 아직 너무 어리고, 사교계 데뷔도 아직 멀었고. 굳이 그 똥통에 미리부터 발 담글 필요 없어, 카티. 어렸을 때 납치당할 뻔했던 건 기억 안 나?”
아빠는 웬만하면 내 부탁을 그렇게 딱 잘라 거절하는 일이 없었다. 그렇게 말할 정도면 정말 들어줄 생각이 없는 거다.
그길로 나는 영령의 탑으로 달려갔다. 헤르젠 할아버지를 붙들고 아버지가 나를 가둬 키운다며 서러움을 토로하자, 할아버지는 한참을 껄껄 웃었다.
[드디어 너희 부녀가 싸우는 날이 오겠구먼. 그럴 때 할애비가 어떻게 하라고 했지?]나는 할아버지가 일러 준 방법을 떠올리자마자 다시 본저로 달려갔다. 그리고 집무실 문을 발칵 열어젖힌 다음, 배에 단단히 힘을 주고 소리쳤다.
“아빠는 내가 평생 친구도 못 사귀고 외톨이인 채로 아르템에서만 틀어박혀 지냈으면 좋겠어요?”
“……카티, 뭐라고?”
“나 커서 사업가도 되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지금부터 미리미리 수도에 자리 잡아 놔야 하는데. 내가 아카데미에서 귀족 자제들 인맥을 얼마나 열심히 모았는데.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뭔지도 모르면서!”
“아니…… 잠깐, 잠깐만. 카티샤.”
“아빠는 내 마음을 하나도 몰라!”
그렇게 우다다다 외치고 서재 문을 쾅 닫았다. 그리고 아차 싶어서, 얼른 내 침실로 올라온 다음 방문을 쾅 닫았다. 부모님 방 문이 아니라 내 방 문을 쾅 닫고 들어와야 하는 거였다.
놀라 따라온 아버지가 들어오지 못하게 문도 단단히 걸어 잠갔다.
“……저게 그 말로만 듣던 ‘문 쾅’이야?”
“그렇답니다, 각하. 사춘기 딸내미에게 미움받으셨어요! 축하드립니다.”
제미언은 문밖에서 그렇게 깐죽거리다가, 그 자리에서 월급을 5퍼센트나 삭감당했다.
‘어쨌든 문 쾅 작전 성공.’
바로 어제, 나는 무사히 수도에 도착한 참이었다. 물론 가족들은 물론이고 마가렛과 제미언, 키스 경, 호미 주방장님까지 전부 함께였다. 뿐만 아니라 블라스코의 기사들도 무려 서른 명이나 따라왔다.
나는 시험 삼아 내 방문을 슬쩍 열어 봤다. 마가렛이 바로 문 앞에서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뭐 필요하셔요, 우리 아기씨?”
“……나 아기 아닌데.”
“아! 그렇죠. 우리 아가씨. 필요하신 게 있으면 말씀하세요. 제가 가져다드릴게요.”
“치이, 없어어……. 마가렛 미워.”
나는 울적해져서 도로 방문을 닫았다.
‘……사실 문 쾅 작전은 반만 성공…….’
절대 나를 혼자서는 타운 하우스 밖으로 내보내지 않겠다는 블라스코 사람들의 의지가 보였다. 이래서야 오르겐 후작가에 다녀오겠다는 내 계획은 초장부터 물 건너간 셈이었다.
‘초대받은 티타임이 고작 이틀 뒤인데.’
이번 기회가 아니면 언제 후작가를 방문할 수 있을지 모른다.
결국 나는 수도에 와서도 계속 토라진 척을 해야만 했다.
“카티, 밥 깨작거리지 말고 먹어야지.”
“…….”
“레몬 소르베 먹을래?”
“네! 아, 아니…….”
“안 먹어?”
“……안 먹어요!”
식사를 할 때도.
“오후에 말 타러 갈까, 카티? 아직 승마 잘 못하잖아.”
여가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궁리할 때도.
“승마가 싫으면, 아버지가 검 봐줄까?”
‘헉. 아빠 특별 과외.’
그 대목에서는 귀가 솔깃해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 나 혼자 백날 수련하는 것보다 아빠가 딱 한 시간 봐주는 게 훨씬 도움이 됐으니까.
‘……아냐!’
나는 단단히 마음을 다지며 고집스럽게 아버지의 눈을 피했다. 비단 오르겐 후작가에 가야만 하기 때문은 아니었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조금 엄해졌다.
“우리 꼬맹이, 대답해야지. 언제까지 삐져 있을 거야?”
“…….”
“아가, 여기 보고.”
“……나 이제 아기 아니야. 꼬맹이도 아니에요.”
난 블라스코에 처음 왔을 때부터 아기가 아니었다. 그리고 나 이제 열다섯 살인데, 언제까지 꼬꼬마 취급할 거야! 이참에 나에 대한 인식들을 바꿔 놓아야 했다.
분개한 나를 본 아버지가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 쳤다.
“네가 꼬마지 그럼, 어른이야?”
그 말이 내 자존심을 확 긁어 놨다.
“……청소년이야!”
나는 정말로 토라져서 의자에서 펄쩍 뛰어내렸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이닝 룸을 빠져나오는데, 등 뒤에서 아르닌과 베르너가 아빠에게 한 소리씩 하는 게 들렸다.
“왜 애기 심기를 거스르고 그러세요, 아버지! 카티 요즘 온 저택 사람들에게 나 아기 아니라고 정정하고 다닌단 말이에요.”
“우리 꼬마, 마음만은 이미 어른인 모양입니다. 마냥 어린아이 취급해도 안 돼요. 물론 아직 조그맣지만. 뺨도 통통하지만.”
다 들었어. 짧은 사이에 아기, 꼬마, 네 번이나 나온 거! 저러라고 화해시켜 놓은 게 아닌데!
열 살 때 갑자기 쓰러진 적이 있기 때문인지, 그 뒤로 가족들은 물론이고 온 블라스코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든 배 터져라 먹이고 꽁꽁 싸매고 품에 싸고돌지 못해 안달이었다. 물론 그렇게 사랑받는 거 너무너무 좋지만, 그래도.
‘보호받기만 하는 건 싫어. 내가 지켜 주고 싶단 말이야.’
그러려면 니엘라부터 얼른 찾아와야 하는데, 일이 초장부터 안 풀리니 갑갑할 따름이다.
“열다섯 살이면 진짜 청소년인데…….”
서럽게 중얼거리자, 어느새 인간화한 아이칼이 짓궂게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맞아, 카티 청소년이야. 키만 안 컸을 뿐인데. 저 인간들이 나쁘다, 그치?”
“……너까지 놀리지 마아.”
“귀여워서 그러지.”
아이칼이 키득거리며 고개를 숙여 내 목에 뺨을 비볐다.
아키는 5년 동안 이 집에서 지내더니 말도 쑥쑥 늘고 표정도 늘었다. 생각만큼 쑥쑥 자라지 않는 건 내 키뿐이었다.
“간지러워. 하지 마…….”
나는 시무룩하게 어깨를 흔들어 아이칼을 털어 냈다.
* * *
내 억울함과 서러움이 눈 녹듯 녹은 건 그다음 날이었다.
나를 제외한 가족들은 오늘 황성을 방문할 예정이었다. 황제를 알현하고, 분기마다 열리는 귀족 회의에 참석하기 위함이다.
나는 아르닌 언니의 손을 잡고 쭈뼛거리며 저택 앞까지 가족들을 배웅했다.
‘셋 다 황성 가는 거 엄청 싫어하면서…….’
이 와중에 나는 절대 안 데려간다.
시간이 한참 지나고 안 사실인데, 공작뿐 아니라 공자와 공녀까지 매번 황성을 방문하는 이유는 황제의 소환령 때문이었다. 블라스코를 경계할 목적으로 직계들을 한꺼번에 황성으로 호출하는 것이다.
물론 가만히 고개 숙여 줄 리가 없는 우리 직계들은 그 소환령을 역이용해, 황성에 방문할 때마다 악명들을 하나씩 얹어 돌아왔다.
작년에 아버지와 황후가 알현실 복도에서 대놓고 언성을 높였다는 일화는 이미 유명하다. 그러니 간단히 말하면 반년에 한 번씩 황실과 기 싸움을 하고 오는 셈이다.
황제의 소환령을 받은 ‘직계’에는 나 역시 포함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내가 따라오는 걸 절대 불허했다.
‘내가 아직 약하니까.’
이제 어리지는 않지만, 언니 오빠처럼 기가 센 것도 아니고, 검술 실력도 한참 모자라고. 그러니까 날 세상에 내보이면 블라스코의 약점만 되니까. 그래서 그런 거야…….
“카티샤.”
한창 땅굴을 파는 내게 아버지가 손짓했다.
나는 입을 꾹 앙다물고 아버지에게 다가가 허리를 껴안았다.
“……안넝히다녀세욥…….”
알아듣지 못할 만큼 빠르게 웅얼대자, 머리 위에서 낮은 한숨 소리가 들렸다.
“카티, 아버지랑 제대로 이야기도 안 할 거야?”
“…….”
“이제 아빠 보기도 싫어?”
아니야. 그거 아니야.
나는 덩달아 울적해졌다.
‘괜히 고집부렸어. 이러려던 게 아닌데.’
아부지는 그냥 내가 걱정되어서 그런 건데…….
약한 한숨을 쉰 아버지가 허리를 굽혀 나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엄격한 푸른 눈을 마주 보지 못하고 시선을 내리는데, 눈앞에 새끼손가락이 불쑥 다가왔다.
“자, 위험한 곳에는 안 가겠다고 약속해.”
나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얼른 새끼손가락을 걸라는 듯 아버지가 손을 흔들었다. 여전히 목소리는 엄격했다.
“루시스랑 아키 꼭 데려가고. 무리하지 말고, 딱 봐도 수상한 곳에는 발도 들이지 말고. 오러도 함부로 꺼내 쓰지 말고. 또 순환 장애가 오면 안 되니까.”
“……진짜 나가도 돼요? 저 은행도 갈 거고, 쇼핑도 막 하고, 그리고 친구 집에 가서 차도 마실 건데.”
“내 딸이 하고 싶다는데 내가 무슨 수로 막아? 해, 괜찮아. 대신 약속은 하고.”
갑자기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나는 차마 아버지의 눈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슬금 손만 내어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약속.”
“그래. 착하다.”
아버지가 정복 주머니에서 작은 구슬들을 한 주먹 꺼내 내 손바닥에 우르르 쏟았다. 나는 그것들을 오도카니 들여다보았다. 텔레포트석 다섯 개, 소환석 세 개였다.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돌아오고, 아버지 필요하면 언제든 부르고. 알겠지?”
“…….”
“삐진 척하면서 괜히 눈치 보지 말고, 카티샤.”
내가 온 힘을 다해 생떼를 부리고 있었다는 걸 아버지는 진작 알고 계셨던 모양이었다.
내게서 도로 구슬들을 가져간 아버지가 그것들을 줄이 달린 작은 주머니에 넣고, 내 목에 걸어 주었다. 그리고 양팔을 벌렸다.
“자, 이제 아버지 다시 안아 줘. 대충 말고 성의 있게.”
“으응…….”
나는 울지 않으려고 입술을 삐쭉거리며 얼른 아버지의 목을 꼭 끌어안았다.
‘너무 어리광 부렸어. 공작님이 맨날 받아 주셔서 그래.’
아버지가 내 뒷머리를 쓰다듬으며 힘주어 물었다.
“그럼 이제 앞으로 문 쾅 닫을 거야, 안 닫을 거야?”
“안 할 거야…….”
“아버지 혼자 안 둘 거지?”
끄덕끄덕. 나는 아빠 목깃에 코를 닦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
“잘 다녀오세요……. 버릇없이 굴어서 죄송해요.”
“착한 청소년은 아빠한테 버릇없이 굴어도 돼. 재미있게 놀고 와.”
그게 뭐야. 나는 마가렛이 건네준 손수건에 코를 훌쩍거리며 떠나는 마차에 대고 오랫동안 손을 흔들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