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Heiress of the Villain Family RAW novel - Chapter (11)
11화
“너, 이름이 뭐지?”
“카티샤 아인슬리입니다, 도련님!”
“아인슬리? 그런 성은 처음 듣는데.”
처음 듣는 게 당연하다. 우리는 오늘 처음 만났으니까.
베르너 역시 나름대로 납득했는지, 고개를 주억거렸다.
“입양됐나 보군.”
그런데 뭘 어떻게 이해한 것인지 모르겠다.
‘정식으로 할아버지 밑으로 입양된 건 아닌데.’
따지고 보면 헤르젠 할아버지와 난 남남이나 다름없는데…….
“너, 빠릿빠릿해 보여서 마음에 들어. 한심하게 겁먹은 기색도 없고.”
“어…… 감사합니다.”
벌써 호감을 얻었다고? 그럴 리가 없다. 허드렛일이야 니엘라도 수준급이었다. 그러나 니엘라는 장장 5년이나 공자의 방을 도맡아 치웠음에도 끝까지 그의 호의를 사지 못했다.
‘잘해 주니까 더 의심스러워.’
내가 미심쩍게 쳐다보거나 말거나, 차가운 캐모마일 티를 들이켠 베르너는 기분이 한결 나아진 것처럼 보였다.
“언제부터 저택에 있었지?”
“오늘로 나흘째입니다, 도련님.”
“나흘째라, 그럼 그것 상판도 봤겠네?”
“네?”
나는 어리둥절해서 반문했다.
상판, 테이블 상판을 말하는 건 아닐 테고…….
아그작, 베르너가 얼음을 씹는 소리가 이상하게도 불길했다. 나는 오래지 않아 그의 말뜻을 알아들었다.
“그 사기꾼 말이야. 하루아침에 블라스코 재산 3분의 2를 쓸어 가겠다고 등장한 간 큰 놈.”
“아아…….”
내 상판을 말하는 거구나.
나는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말을 흐렸다.
이제야 뭔가 알 것 같다. 베르너 블라스코는 내게 심술을 부리고 하녀 대하듯 하며 괴롭히기 위해 청소를 시킨 게 아니었다.
그냥 나를 하녀라고 생각한 것이다.
내 이름을 듣고도 눈치채지 못한 것으로 보아하니, 상속녀의 이름이나 상세한 인상착의에 대해선 모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어떻게 생겼던? 대강 듣자 하니 할아버님이 길에서 주워 온 말라비틀어진 자두 같다던데. 자두였나, 뭐라더라……?”
나는 졸지에 스트리트 출신의 불결한 자두인지 뭐시긴지가 되었다.
아, 치욕스러워. 말 전한 사람 누구야? 당장 나와!
내가 대답 대신 입만 삐쭉거리자, 베르너가 눈썹을 확 치켜세웠다.
“봤다며?”
“차…… 착하게 생겼어요.”
차마 저 성질 나빠 보이는 표정에 대고 ‘사실 전데요’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안 돼, 멈춰. 어차피 금방 들킬 텐데 당장 모면하는 게 무슨 소용이야!
“겁도 많고…… 야, 야망도 없고요. 최대한 공작님께 협조하겠다고 했는데…….”
그러나 내 혀는 이미 제멋대로 나불대는 중이었다.
베르너가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원래 겉으론 순진해 빠진 척하는 것들이 시커먼 속을 숨기고 있지.”
“하지만 주제 파악도 잘하고 있……”
“할아버님을 꼬드겨 당치도 않은 유언장을 작성하게 한 뱀 같은 놈이 야망이 없을 리가.”
점점 더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베르너는 내 필사의 자기변호를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듯했다.
“아버지에게 꼬리를 친다거나, 혹은 밖에서 몰래 들여보낸 스파이라든가, 그런 수상한 낌새는 없었고?”
“절대요. 전혀요. 조금도요!”
“그럼 착하고 순해 빠진 게 유산을 가로채러 아르템까지 기어들어 왔다, 이게 전부인가?”
심장이 콩알만 하게 오그라드는 심정이었다. 또다시 하얘진 머릿속에 뜬금없이 공작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귀여우면 다야!”
“예!”
“그건 그렇지.”
미처 의식할 틈도 없이 입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어, 그리고 귀엽게 생겼어요!”
사실 나는 당당하게 세상 앞에 말할 수 있다. 나는 꽤 귀여운 외형을 타고났다.
공작은 마른 오렌지라며 나를 모독하기는 했지만 사실 내 머리카락은 맛있는 황치즈색이고, 눈은 새순 같은 연두색이다.
머리카락이 조금 많이 곱슬거릴 뿐, 환생하고 나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게 바로 내 외모였다.
‘그래, 자신감을 가져. 난 귀여워.’
심미안을 가진 헤르젠 할아버지도 인정하신 부분이니 손주에게도 먹히지 않을까?
“외모를 무기로 아양을 떠는 족속인가? 생각보다 훨씬 영악하군.”
베르너의 표정이 오히려 종전보다 더 혐오스럽게 변했다. 그의 머릿속에서 블라스코에 등장한 뉴 페이스의 이미지가 산산이 조각나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런 노력도 지불할 대가도 없이 남의 것을 갈취해 가려는 심보라니, 한심하긴. 아르닌에게도 못 넘기는 게 귀어스트인데. 자격도 능력도 갖추지 못한 놈에게 넘길 수 있을 리가.”
“저, 그 상속인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모양인걸요.”
“그렇겠지. 유언장에 마법 관리국의 공증이 찍혀 있다니. 파기는 안 될 테고.”
“그, 그러니 적당히 합의를……”
“그럼 유언장을 찢는 대신 문제의 그 상속인을 해치우면 될 일이네.”
“네엑?”
“간 크게 여기까지 왔단 이야기는 나와 겨룰 각오를 하고 왔다는 뜻이잖아?”
베르너가 어느새 허리춤에 찬 검 자루를 매만졌다.
나는 검집 틈새로 푸르스름한 검기가 새어 나오는 것을 목격하고 당장 입을 닥쳤다.
베르너가 소슬한 음색으로 뇌까렸다.
“분명 평범한 놈이 아니야. 할아버님을 어떤 식으로 꾀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격도 능력도 없는 자에게 유산과 마검을 넘기실 만큼 사리 분별 못 하시는 분은 아니실 텐데. 내 기억으론 그만큼 인정이 있는 것도 아니셨고…….”
아냐, 그거 아니야.
아마 지금 내 낯빛은 푸르죽죽하거나 새하얗게 질려 있을 것이다.
악역 가문이라기에 수장인 공작이 가장 큰 위험 요소일 줄 알았더니, 복병이 바로 여기 있었다.
“뭐, 됐어. 어떻게든 자백을 받아 내면 그만이니. 사기꾼이라면 쫓아내면 될 일이고, 혹시라도 황실과 연관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있다면……?”
“더더욱 지체 없이 처리해야지.”
맨손으로 검날을 쓰다듬는 공자의 눈은 이미 맛이 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블라스코, 아스트로카 황실과 사이가 안 좋았지.’
다행스럽게도 카티샤 아인슬리라는 희대의 사기꾼 – 으로 베르너에게 각인된 나는 황실과는 전혀 연이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 손 들고, 제가 걘데요, 하기엔 여전히 용기가 부족했다.
나는 쩔쩔매며 대화에 끌려갔다.
“혹시 그 여우와 말을 섞어 봤나?”
“어…… 네.”
혼잣말도 나 자신과의 대화긴 하니까…….
내가 어물쩍 대답하자, 베르너가 기다렸다는 듯 명령했다.
“너처럼 쬐끄맣고 귀염상인 꼬맹이에게는 경계를 풀겠지. 친구인 척 다가가서 눈을 떼지 말고 감시해. 혹시 저택 밖 누군가와 접선을 하지는 않는지, 혼자 뭘 하고 지내는지, 진짜 꿍꿍이는 무엇인지까지. 알아 올 수 있는 대로 알아봐.”
“저, 저는……! 새가슴이라서 그런 막중한 임무를 맡기 어렵습니다, 도련님.”
나는 일단 침착하고 정중하게 거절했다.
말이 안 된다. 내가 나를 어떻게 감시해?
그러나 내가 간과한 점이 있다면, 베르너 블라스코의 사고가 내 생각보다 조금 더, 정상인의 판단 기준에서 떨어져 있다는 점이었다.
반쯤 빈 유리컵을 손안에서 돌리며, 베르너가 나른하게 눈초리를 접었다.
“나랑 10분이나 멀쩡하게 대화한 하녀는 네가 처음이야.”
“네?”
정말 구닥다리 대사였다.
“나를 그렇게 빤히 쳐다보는 꼬마도 네가 처음이고. 새가슴이라기엔 좀 어폐가 있군. 난 너 같은 아이를 좋아해.”
공자가 선호하는 타입, 이것도 분명 원작에서 읽었다.
그는 겁 많고 비굴한 족속보다는 차라리 건방져 보일 만큼 기가 세고 당당한 쪽에 더 호감을 느낀다. 어쩌다 보니 나는 그 호감의 경계에 발을 걸친 듯했다.
베르너가 나를 시험해 보기라도 하듯 지그시 응시했다.
“할 거야, 말 거야?”
짧은 사이 머리가 팽팽 굴러갔다.
여기서 사실을 밝히고 당장 베르너의 미움을 사느냐, 아니면 단 며칠이라도 시간을 벌 것이냐?
“다, 당연히…….”
오래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주먹을 불끈 쥐고 당차게 대답했다.
“당연히 해야죠. 도련님 명령인걸요!”
베르너가 이만큼이나 상속녀의 존재에 적개심을 가지고 있다면, 정공법은 이미 물 건너갔다.
그렇다면 이왕 이렇게 된 거, 작전 변경이다. 하녀인 척 접근해서 환심을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아.
나중에 들키더라도 바로 나를 끌어내지는 못하도록 미리 물밑 작업을 해 두는 거다. 자연스럽게,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게.
정신 차려 보니 할아버지처럼 나를 둥개둥개 키우게 되도록 만드는 거야.
“무슨 일이든 맡겨만 주세요, 도련님!”
“좋아. 역시 당차서 마음에 들어.”
나는 달달 떨리는 주먹을 등 뒤로 숨기고 헤실 웃어 보였다.
겁먹지 말자. 나는 하나도 무섭지 않아.
흡족한 표정의 베르너가 탁자의 접시에서 초코 쿠키를 집어 나에게 건넸다.
“먹어, 꼬맹이. 그렇게 비리비리해서야 일이나 제대로 배우겠어?”
사실 아직 입에 초코 맛이 강하게 남아 있었지만, 주는 걸 거절할 순 없으니 받긴 받았다.
최대한 크고 씩씩하게 대답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잘 먹겠습니다!”
“그래. 시키는 일을 잘하면 보너스를 챙겨 주지.”
추가 수당이라니. 베르너는 생각만큼 악덕 고용주는 아닌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왕이면 보너스는 돈 말고 생명 연장권으로 받고 싶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