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Heiress of the Villain Family RAW novel - Chapter (120)
120화
‘체할 것 같아.’
니엘라는 저 여자애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카티샤 아인슬리라는 이름이 처음 수도에 퍼졌을 때, 그 이름을 처음 들은 순간부터 그녀는 얼굴도 모르는 그 소녀가 싫었다.
당연히 존재하지 않았어야 하는 것이, 갑작스럽게 그녀의 앞길에 장애물처럼 돋아난 듯 거슬리고 불편하다. 그런데 제게 바짝 다가와 새초롬하게 웃는 얼굴을 보면 아주 순간이나마 거부감이 줄어들고 가슴이 뛰었다.
거기까지 생각하고, 니엘라는 화들짝 놀라 스스로를 다그쳤다.
‘어차피 다 똑같은 블라스코잖아. 공녀가 널 협박해서 후작가로 끌고 간 거 벌써 잊었어?’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서 또 다른 니엘라가 시무룩하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공녀는 내가 신수의 손에 죽을 뻔했을 때 구해주기도 했는걸.’
소름 돋는 한기와 함께 그날의 두려움이 생생히 살아났다. 그녀를 쏘아보던 눈빛과, 소년의 섬세하면서도 유려한 생김새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거슬려. 둘 다, 다 거슬려…….’
마음이 마구 지끈거렸다. 니엘라는 어렵게 마음을 다잡았다.
‘정신 차려. 상식적으로 ‘그’ 블라스코 공작도 여태껏 꺾지 못한 오르겐 후작가를 공녀 따위가 어떻게 무너뜨릴 수 있겠어?’
다 사탕발림일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다시금 생리적인 거부감이 산처럼 높이 쌓였다. 니엘라는 눈을 길게 감았다 떴다.
자신은 오르겐의 사람이다.
니엘라는 그 사실을 애써 스스로에게 되새겼다.
‘……공녀가 장인을 만나러 간다고 했지.’
누굴까, 그 재야의 고수라는 사람이?
블라스코가 아직 끌어들이지 못한 무기 장인이라면, 후작가에서 먼저 손을 뻗을 수도 있지 않을까?
‘정보를…… 빼내 봐야겠다.’
고민하는 니엘라의 적갈색 눈이 어둡게 잠겼다.
* * *
‘사용인들 입단속을 철저히 해야 해, 마가렛. 아무도 니엘라에게 블라스코의 내부 사정을 흘리지 않도록.’
마가렛에게 그렇게 속삭인 뒤, 나는 멀어지는 니엘라와 루시스 경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사실 못 가진 사람에게 돈 자랑하는 게 할 짓은 아니긴 한데…….’
그래도 나름 선물들을 잔뜩 안겨 줬는데. 통하긴 했으려나? 나는 이렇게 직접 고른 선물을 받으면 기분 좋던데…….
이걸로 니엘라의 마음이 움직인다면 다행이다. 이중 첩자 역할을 톡톡히 해 줄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사실, 이 뇌물 공략이 통하지 않았더라도 상관없었다.
그렇게 되면 나는 앞으로 블라스코에서 정보를 야금야금 캐내 후작에게 바치는 니엘라를 지켜볼 셈이었다.
물론 ‘가짜 정보’들이겠지만. 내가 일부러 의도한 미끼 말이다.
나는 흡족하게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좋아, 그럼 이제 미끼를 만들러 한번 가 볼까.”
후작이 니엘라에게 빼내 오라 명령한 정보는 ‘블라스코의 장인’들에 대한 것이다.
일단 있는 재원들을 지키는 게 급선무. 오늘 쇼핑한 대부분의 물건들은 블라스코에 소속된 장인들과 인부들에게 복지 차원의 선물로 날아갈 것이다.
‘어차피 원래도 충성심과 자부심이 강한 자들이라, 후작이 꼬신다고 쉽게 넘어가지는 않을 거야.’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니, 후작이 다른 장인들에게는 눈도 돌리지 않을 만한, 아주 먹음직스러운 미끼로 정신을 빼놓아야 했다. 멀리서 찾을 것도 없었다.
지금 내 옆에, 블라스코에서도 100년에 한 번 나올까말까 한 천재 대장장이가 휘파람을 불며 파티셰리에서 사 온 빵 봉지를 뒤적거리고 있었으니까.
“크림빵 먹을래, 카티? 이 집 빵이 참 맛있더라.”
“아르닌, 나는 호밀 쿠키.”
“뭐래. 네 건 네가 사 먹어.”
천재 대장장이가 천재 검사와 티격태격하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선글라스를 착용한 뒤, 아르닌 언니를 향해 손짓했다.
“언니, 때가 왔어요.”
내 입에 에클레어를 물려 주려던 아르닌 언니가 의아한 눈을 했다.
“때가 왔다니, 그게 무슨 뜻이야?”
“제가 몇 년 전부터 계속 계획해 왔던 거 있잖아요. 언니의 꿈!”
아르닌 블라스코의 일생일대의 꿈이자 원대한 최종 목표. 그것은 바로 블라스코라는 가문의 위상에 의존하지 않고 본인의 이름을 딴 무기 공방을 여는 것이다.
나는 얼른 드레스에 달린 주머니를 뒤져 돌돌 만 두루마리를 꺼냈다. 내 방 침대 밑의 금고에 소중히 보관해 왔던 계약서였다.
5년 전의 내가 삐뚤빼뚤한 글씨로 한 바닥 가득 채운 조항들이 조로록 나열되어 있었다.
그 밑에는 공적 효력을 입증하는 기관들의 인장이 쾅쾅쾅 찍혀 있었다. 뒷장은 세부 계약서로, 나와 언니의 수익 분배율이 명시되어 있었다.
‘제반 비용은 전부 내가 부담, 대신 수익률 분배는 5 대 5.’
상속 시험을 칠 때 사바나에서 무사히 돌아오면 9 대 1로도 계약서를 적어 주겠다고 약속을 받아 냈지만, 양심상 반반으로 합의를 봤다.
아르닌 언니가 당황스럽게 중얼거렸다.
“이거 진심으로 쓴 거였어?”
“그럼 언니는 이게 다 거짓말인 줄 안 거예요……?”
“아니, 그게…….”
“지금까지 내 투자금만 날름 먹고 도망갈 생각만 한 거야……?”
나는 우리가 환상의 찰떡 사업 메이트가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충격 어린 눈으로 언니를 보자, 언니가 허둥지둥 엄지를 치켜세웠다.
“아니야. 먹었으면 뱉는 것도 있어야지! 자, 그럼 뭐부터 할까, 우리 애기?”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땅 보러 가요.”
“땅? 지금?”
“네, 일단은 부동산…… 아니, 정보 길드에 먼저 들를까 봐요. 가서 적당한 땅이 있는지 물색한 뒤에 오늘 당장 둘러보고, 언니 마음에만 들면 바로 도장 찍으려고요.”
“어. 그, 그래…….”
지금 이렇게 허비할 시간이 없단 말이야. 당장 오늘 공사 시작해도 아무리 빨라야 보름인데!
‘오르겐을 탈탈 털 방법을 구체화해 놔야 우리 아빠가 황족 살인범이 되는 걸 말릴 수 있어.’
나는 전투적으로 아르닌 언니의 팔을 질질 끌었다.
* * *
그로부터 약 두 시간이 더 흘러, 마침내 길고 긴 쇼핑이 끝났다.
오늘의 최종 지출은, 각종 상점들에서 긁은 약 7200골드에 더해, 수도 남동쪽 끄트머리에 있는 땅과 빈 건물 한 채를 매입하는 데 든 5만 골드.
나는 손을 조금 떨며 패스를 확인했다.
“…….”
잔액의 앞자리가 바뀌었다. 오늘 내가 써 재낀 돈을 총합하면 아이칼을 약 28명 정도 살 수 있는 거금이었다.
나는 매매 계약서를 쥐고 남몰래 눈물을 삼켰다.
‘수도 땅값이 비싸다더니, 틀린 말이 아니었네…….’
고작 50평밖에 안 하는데 5만 골드라니. 수도 땅값, 이대로 괜찮은가?
“정말 매물이 이것밖에 없었나요……?”
오늘 복덕방 주인 역할을 해 준 이는 내가 소유주로 있는 정보 길드, 밤비의 수장 플로비아 씨였다. 키가 껑충 크고 호리호리한 그가 곤란하게 턱을 긁었다.
“예, 공녀님. 말씀해 주신 평수의 땅, 적당한 높이의 건물, 수도 구석진 곳에 있으면서도 유동 인구가 적지는 않은 그런 조건을 만족하는 환상의 목은 딱 이곳뿐입니다.”
“흑…….”
어쩔 수 없지. 대대로 블라스코의 정보통 역할을 맡아 오신 분이니 믿을 수밖에.
나는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며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그리고 플로비아 씨에게 단단히 일러두었다.
“블라스코가 이곳을 사들였다는 사실은 절대 비밀에 부쳐 주세요. 그 어느 귀족의 귀에도 들어가지 않게요.”
“예, 공녀님. 아, 그리고 서신으로 말씀하셨던 경매에 올릴 물건은 어디 있는지요?”
“아 참, 그거. 지금 드릴게요.”
나는 마차에 넣어 둔 아공간 가방을 뒤져 미니 창을 끄집어냈다.
3클래스 마법 수식이 새겨진 짤막한 어린이용 창. 바로 5년 전, 아르닌 언니가 내가 준 매뉴얼을 토대로 처음으로 만든 마법 무기였다. 사바나에 가지고 들어갔던 바로 그것이다.
나는 창을 플로비아 씨에게 넘겼다.
“제게 소중한 거니까, 경매에 넘기는 척만 하고 도로 수거해 오셔야 해요.”
“걱정 마십시오. 최고가로 낙찰받아 오겠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건 입소문이에요. 아시죠?”
“그럼요. 제대로 선전하고 오겠습니다. 홍보 문구는 ‘역사 속에 묻힌 마도 무기의 재등장. 전설의 대장장이 야칸, 드디어 환생하다?!’”
“푸흡.”
베르너가 괴상한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고, 곧 아르닌 언니에게 등짝을 맞았다. 언니의 얼굴은 이미 새빨갛게 익어 터지기 직전이었다.
반면 나는 웃음기 한 점 없이 진지하게 손뼉을 쳤다.
“오, 좋아요. 거기다 블라스코가 그 무명의 장인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사실도 추가로 퍼뜨려 주시고요.”
“알겠습니다, 아가씨.”
플로비아 씨가 사람 좋게 껄껄거리며 검지와 중지를 이마에 착 붙였다.
좋아, 믿음직스러워.
플로비아 씨가 떠난 뒤에도, 나는 좀처럼 은행 패스에서 손을 떼지 못했다. 바뀐 앞자리가 너무도 마음 아팠던 탓이다.
사실 중앙은행의 금고는 명의만 내 이름으로 되어 있지 실질적으로는 블라스코의 공금이었다.
해마다 벌어들이는 수익의 일부를 가문 예산안으로 편성하고, 남은 금액들이 전부 이 금고로 들어온다.
내 마음대로 공금을 꺼내 썼으니 다시 채워 넣어야지. 그 돈은 모두 오르겐 후작가의 금고로부터 나올 예정이다.
아까 건축 인건비와 자재비는 다 지불했으니까, 당장 오늘부터 공사에 들어가면 된다. 나는 이를 갈며 전투적으로 의지를 불태웠다.
“우리 개업까지 얼마 안 남았어요, 언니. 목표는 오늘 지출 금액 전액 환수예요.”
“……좋아. 이제야 내 동생이 정말 제대로 일을 벌이려고 한다는 걸 알 것 같네.”
아르닌 언니가 자신만만하게 허리에 손을 얹었다.
“그동안 내 무기고에만 감춰 뒀던 예쁜이들을 세상에 보여 줄 때가 왔다 이거지?”
“바로 그거예요.”
나는 입꼬리를 씨익 끌어당기며 언니에게 엄지를 들어 주었다.
* * *
그 시각, 아스트로카 황성.
“……누가 왔다고?”
황후궁에서 오후의 티타임을 즐기고 있던 황후에게, 시종이 덜덜 떨며 고했다.
“브, 블라스코 공작께서 오셨습니다. 지금 당장 전하를 만나고자 하십니다.”
“단둘이?”
“예…….”
블라스코 공작이 황후에게 비밀리에 독대를 청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