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Heiress of the Villain Family RAW novel - Chapter (123)
123화
직계들이 바깥에서 따스한 햇살과 차를 즐기는 동안, 블라스코의 사용인들은 저택을 깨끗이 청소했다.
니엘라가 블라스코에서 일하기 시작한 지도 벌써 스무 날을 채웠다.
살가운 표정과 말투를 꾸며 내는 것 정도는 익숙했으니 공작가에 쉽게 녹아들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블라스코의 사용인들은 정말 딱 맡은 소임에만 충실했다. 청소를 맡은 이들은 오로지 청소에 관한 이야기만 하고, 식사를 담당하는 이들의 화젯거리는 언제나 늘 똑같이 ‘내일은 뭘 차려 드릴까’였다.
오르겐 후작가의 하녀들은 두 명 이상 모이기만 하면 늘 시녀장이나 주인 나리들을 욕하는 재미로 살았다. 그런 뒷말들에서 종종 쓸모 있는 정보가 튀어나온다. 모시는 주인의 은밀한 속사정까지 속속들이 아는 이들이 하녀니까.
그런데 이 집 인간들이 머리를 맞대고 하는 말이라고는…….
“우리 아가씨는 오늘도 너무 예쁘셔.”
“왜 이제는 옛날처럼 뽀뽀를 안 해 주실까?”
“지난번에 여쭤봤는데, 뽀뽀 졸업했다고 하셨어. 이제는 열다섯 살이니까 포옹으로 바꿀 거라고…….”
“너무 슬프다. 그럼 몇 해 더 지나면 포옹도 졸업하시려나? 의젓한 악수로 바뀌는 거 아니야?”
“악수라니, 정 없게! 그런데 우리 아가씨 발상이라면 왠지 정말 그럴 것 같기도 해…….”
‘그딴 한심한 대화들이나 하고 앉았으니.’
속이 터지다 못해 꽉 막힌 듯 갑갑할 지경이었다.
이 집 사람들은 왜 그렇게 공녀의 뽀뽀에 목을 매는 거지? 아무리 공녀가 예쁘고 귀엽다고 해도 말이다. 유난이 심해도 너무 심하다.
‘그렇다고 공작의 서재에 접근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니엘라에게 허락된 공간은 오로지 막내 공녀, 카티샤의 침실뿐이었다.
그것마저도 새로 들어온 그녀에게는 침실 청소를 온전히 맡기는 경우가 드물었다.
그러니 오늘이 적기였다.
공작의 집무실이나 공자의 개인 서재, 특히 공녀의 대장간이 있는 별채에 접근할 수 없는 건 아쉽지만, 의외로 막내 공녀의 침실이 노다지일 수도 있다. 블라스코는 직계건 사용인들이건 가리지 않고 막내 공녀에게 속을 다 터놓는 모양이니까.
그렇게 따지면 이 저택의 실세는 카티샤였다.
‘요즘 초미의 관심사인 익명의 무기 제작자. 그자와 관련한 자료라면 뭐라도 좋아.’
복도의 인기척이 멀어지는 것을 확인한 뒤, 니엘라는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눈에 띄는 서랍이란 서랍은 모두 열어 보고, 비에스토 아카데미 방학 과제들이 잔뜩 쌓여 있는 책상도 꼼꼼히 뒤진 뒤 물건들을 원위치로 돌려놓았다.
그러다 문득, 책상 구석에 놓인 편지함이 눈에 띄었다.
니엘라는 천천히 편지함의 뚜껑을 열었다.
공녀에게 온 수많은 서신들이 함에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었다.
‘어디…….’
편지의 발신인은 대부분 아스트로카 귀족가 자제들이었다. 아카데미에서 함께 수학하는 동기들의 편지인 듯했다.
그러다 중간 즈음에 끼어 있는 봉투 한 장이 눈에 띄었다. 그것 하나만 아무런 무늬가 없었다.
니엘라는 조심히 봉투를 열고, 안에 든 편지 한 장을 꺼냈다.
안에 쓰인 내용을 읽어 내려가는 니엘라의 표정이 차츰 변하기 시작했다.
“…….”
이 정도면 충분하고도 넘친다.
니엘라는 편지의 글자들을 씹어 먹을 듯 응시하며 내용을 전부 외웠다. 그리고 재빠르게 편지함을 원래대로 정리해 돌려놓았다.
드디어 쓸 만한 정보를 찾아 속이 시원한 한편, 이것을 곧바로 후작에게 가져갈 생각을 하니 이유 없이 가슴이 답답했다.
‘보고……해야겠지.’
니엘라는 커튼이 내려진 창문을 흘끔거렸다. 아무도 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몇 번이나 확인했는데도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 * *
그다음 날, 늦은 저녁. 오르겐 후작가.
“3서클 방어 결계 수식이 새겨진 창이라…….”
오르겐 후작은 서재 한가운데의 단상에 똑바로 세워 둔 스피어를 흡족하게 관찰하고 있었다.
마공학적 설계를 따른 마도 무기.
실드 스피어 베타-미니Ⅰ.
베타라는 단어가 들어간 걸 보면 실험작이라는 뜻일 텐데, 완성도는 전설로 전해져 내려오는 고대 대장장이들의 작품과 거의 흡사했다.
통상적인 창의 길이보다 훨씬…… 아니, 조금 많이 짧기는 했지만.
날카로운 창촉이나 창 자루에 새겨진 마법 수식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마법의 기본 에너지는 마나다. 이 무기는 마나를 다룰 줄 모르는 일반 검사를 마검사로 만들어 주는 가히 사기적인 아이템이었다.
후작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3500골드가 전혀 아깝지 않군.”
이게 베타 버전이라면, 제대로 만들어 낸 물건은 얼마나 더 대단할까?
수소문한바, 그 익명의 장인은 아직 블라스코에 소속되어 있지 않았다. 하기야 블라스코 소속이었더라면 경매에 무기를 내놓지도 않았을 터.
‘그 장인만 이쪽으로 끌어들이면…….’
몇 달 동안 마도 무기만 찍어 내게 해도 돈이 얼만가?
하나에 최소 3000골드라고 치면 열 개만 만들어도 3만 골드다. 그 장인의 기술력을 다른 이들에게 전파하면, 벌어들이는 수익이 두 배, 네 배, 여덟 배씩 껑충 뛰어오를 것이 분명하다. 놓칠 수 없는 현금 수급의 기회였다.
그리고 몇 시간 후.
오르겐 후작저에 한 통의 서신이 도착했다.
니엘라와의 연락책 역할을 맡은 하인이 그녀의 서신을 후작에게 전했다. 신원 미상의 누군가가 공녀에게 보낸 편지가 고스란히 옮겨 적혀 있었다.
[일전에 제안해 주신 동업 조건을 긍정적으로 고려하고 있습니다. 한번 뵙고 이야기를 나누면 좋을 듯해요.공방 주소는 아래에 적어 두겠습니다. 시간이 나실 때 한번 꼭 들러 주세요.
공녀님의 앞날에 눈이나 얼음 한 조각 없는 따끈한 봄날만이 이어지기를 바라며, 이만 줄입니다.
-A. SLA]
“……막내 공녀가 그 익명의 무기 제작자와 안면이 있다?”
니엘라는 서신에 공녀가 일전에도 천재 무기 장인의 소재에 대해 흘리듯 언급한 적이 있었다고 써 두었다.
하기야, 그만한 대가를 블라스코에서 가만 놔둘 리가 없었다. 그쪽도 이미 공작에 들어갔나?
니엘라가 보낸 편지를 읽은 다음 날, 오르겐 후작은 반신반의하며 편지에 적힌 주소로 보좌관을 보냈다.
과연, 그곳에는 정말로 번듯한 공방이 하나 지어지고 있었다.
“공방주를 만나지는 못했다는 말이냐?”
“예, 각하. 공방을 짓고 있는 인부들의 말에 의하면, 공방의 부지와 건물 주인은 따로 있고, 공방주는 그 건물을 임대하여 사용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공사가 완료된 후에 도착할 예정이라더군요.”
공사가 완료되는 날짜까지는 일주일이 남았다.
후작이 내심 초조하게 일주일을 기다리는 동안, 경매에는 몇 개의 마도 무기들이 더 출품되었다. 후작가의 금고를 아낌없이 털어 전부 낙찰받아 오라 지시했으나, 두어 개는 블라스코 쪽에 빼앗겼다.
“블라스코 직계들이 직접 경매에 참가했다고?”
“예, 각하. 막내 공녀가 대뜸 5000골드를 거는 바람에…….”
“몇 골드가 되었든 낙찰받아 왔어야지!”
버럭 소리를 내지른 후작은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고 집무실을 서성였다.
당장 현금 몇 푼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보통 장인도 아니고 무려 마도구 제작자다.
이미 세간에는 전설의 대장장이들의 뒤를 이을 천재가 나타났다며 소문이 자자했다. 그 제작자 한 명의 가치가 블라스코의 장인들 100명을 합한 것보다 더 높다.
블라스코가 마도 무기 장인까지 포섭한다면, 무기 제작 명가라는 그들의 아성을 짓밟을 기회가 날아가는 것은 물론이고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그들의 품에 들어가는 꼴을 닭 쫓는 개마냥 쳐다보고 있어야만 한다.
‘절대 놓칠 수 없는 거위지.’
공방의 공사가 완료된 바로 그날, 오르겐 후작은 직접 마차에 몸을 실었다.
* * *
수도 외곽에 지은 공방은 규모가 크지는 않았으나, 고급스럽고 깔끔했다. 외관부터 내부 구조, 동선까지 꼼꼼히 신경 쓴 티가 났다.
갑자기 들이닥친 후작과 보좌관을 맞은 이는 남색 후드를 푹 뒤집어쓴 호리호리한 사내였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후드 밑에서 걸걸하게 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후작의 눈짓을 받은 보좌관이 당당하게 앞으로 나섰다.
“실드 스피어 베타-미니Ⅰ 및 최근 경매에 올라온 마도 무기들의 제작자를 찾아왔소만. 당신이 이 공방의 주인이오?”
“그렇습니다만……. 아직 개업 전인데 어찌 아시고?”
“자네를 찾아 수도 곳곳을 수소문했지. 이렇게 만나게 되어 영광이군. 내가 자네가 출품한 마도 무기 일곱 점을 낙찰받은 사람이네.”
“아, 제게 2만 골드나 안겨 주신 그분이시군요?”
머뭇거리던 공방주가 반색하며 보좌관의 손을 낚아채듯 잡고 흔들었다.
“덕분에 제가 월세도 내고, 질 좋은 재료들도 잔뜩 구했습니다. 제 아기들 잘 부탁드립니다.”
말투는 상냥한데 악력은 원수 다루듯 장난이 아니었다.
보좌관이 쩔쩔매며 그와 악수하는 틈을 타, 후작은 공방 내부를 휘 둘러보았다.
아직 본격적인 개업 전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듯 내부는 어수선했다. 구석에 아무렇게나 쌓인 미완성 무기들을 발견한 후작의 눈에 탐욕이 번뜩였다.
‘저것들이 다 마도 무기라면…….’
작업장으로 향하는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그러나 공방주는 안쪽을 안내할 생각은 없는 듯했다.
“찾아오신 이유가 있겠죠. 일단 앉으세요.”
후드를 휙 벗어젖히고 머리칼을 툭툭 턴 공방주가 고개를 들었다. 지저분한 고수머리의 그는 얼굴 전체를 다 덮는 가면을 쓰고 있었다.
“……그 가면은?”
“아, 보기 흉한 얼굴이라서요. 꺼지지 않는 이실라드의 불꽃에 전신 화상을 입은 적이 있는지라, 귀하신 분들께 보여 드릴 만한 얼굴이 못 됩니다.”
전신 화상 흉터라니. 후작은 무의식적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로브 아래로 흘끗 보이는 공방주의 손은 굳은살과 허연 새살이 돋은 흉터로 가득했다.
손목은 생각보다는 가늘었다. 그러고 보니 체격 자체도 통상적인 대장장이들에 비하면 작다.
“……그런데 자네, 정말 공방주가 맞나?”
그 대단한 마도 무기들의 제작자가 맞는 건가?
후작이 그런 의문에 휩싸였을 때였다.
공방주가 쿡 웃었다. 기묘하게도 꼭 비웃음에 가깝게 들렸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