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Heiress of the Villain Family RAW novel - Chapter (124)
124화
“그럼 증명해 보일까요? 이쪽으로 오시죠.”
공방주가 책상 위에 대충 쌓아 둔 검날과 창 자루들을 한 손으로 거뜬히 들어 내려놓았다.
후작은 바닥을 굴러다니는 창촉 하나를 발끝으로 슬쩍 건드렸다가, 꿈쩍도 하지 않는 무게에 내심 놀랐다. 이런 것들을 열댓 개씩 거뜬히 옮기다니…….
공방주가 마구잡이로 널려 있던 검 하나를 후작에게 건넸다. 본인은 이미 다른 검을 쥐고 휘두를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자, 잠깐……!”
평생 검과는 인연이 없던 후작이 경악해 외쳤다. 그러나 이미 공방주가 인정사정없이 검을 휘두른 뒤였다.
쩌엉-!
검이 후작의 목을 정확히 찔러 들어간 순간이었다. 후작이 든 검에서 반투명한 결계가 튀어나왔다. 공방주의 검이 결계에 맞고 허공으로 튕겨 올라갔다.
후작은 검을 힘껏 움켜쥔 채 돌처럼 굳었다. 그런 그에게 어느새 바짝 몸을 붙인 공방주가 음산하게 속삭였다.
“예기치 못한 기습에 대비할 수 있는 방어 결계 수식을 새긴 검입니다. 3클래스짜리죠.”
“…….”
“딱 한 번 정도, 목숨을 구하기엔 아주 유용할 겁니다.”
젊은 청년인 듯, 혹은 어린 소녀인 듯, 분간하기 어려운 중성적인 목소리였다. 가면 속의 그늘진 두 눈이 후작을 또렷하게 직시했다.
“……확실하군. 성능도, 자네의 신원도.”
후작은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도 무기의 위력을 충분히 증명하고도 남았다.
몸을 물린 공방주가 시계를 흘끗 쳐다보았다.
“오후에 선약이 잡혀 있어 시간이 얼마 없는데 괜찮으십니까?”
“무슨 선약인가?”
“건물주님께서 공방을 둘러보러 오신다고 합니다.”
“자네가 공방의 주인이 아닌 건가?”
“맞기는 합니다만, 저는 일개 세입자라서요. 수도에 땅과 건물을 살 돈이 어디 있겠습니까? 월세 내는 데도 급급한데요.”
“……자네가 만든 무기들이 얼마에 팔렸는지는 알고 그런 말을 하나. 무기 열 개만 팔아도 부지는 충분히 사들이겠네.”
후작이 어이없다는 투로 지적했다.
공방주가 키득거리며 어깨를 으쓱했다.
“뭐, 제 아가들이 나름 비싸게 팔리는 것 같지만, 이 공방 재건축 비용에, 무기 재료값에, 인건비까지 합치면 돈이 은근히 많이 들거든요. 빚도 있어서 그거 이자도 갚아야 하고.”
“흐음…….”
“그중에서도 재료값이 아주 만만찮습니다. 가뜩이나 아스트로카는 금이 귀해서 금화까지 녹여야 할 판이라니까요. 그마저도 순도는 형편없고. 게다가 특수 강화 재료들은 콩알만 한 마정석 하나에 몇백 골드씩 하니, 뭐……. 실패작이라도 나오면 완전 공치는 거거든.”
의자에 등을 푹 파묻은 공방주가 과장해서 한숨을 내쉬었다.
“이래저래 본전치기도 힘듭니다. 그러니 싼값에 무기 팔라는 제안을 하실 거면 돌아가 주세요. 돈 모아서 이 공방 부지 사는 게 급선무라, 싸게 팔 생각은 일절 없습니다.”
“그런 하수 같은 제안을 하러 온 게 아닐세.”
오르겐 후작은 손을 들어 보좌관을 막은 뒤, 직접 입을 열었다.
“내가 사 주지, 이 공방.”
공방주가 의심스럽게 되물었다.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내가 이 땅과 건물, 모조리 사서 자네 명의로 돌려주겠네. 일종의 계약금이라고 생각해도 좋아.”
“……계약이라면?”
“내가 공방을 자네에게 넘기고, 생활 전반을 보장하지. 그 비싸다는 재료값도 일부 지원해 주겠네. 대신 자네는 달에 일정한 개수로 나를 위한 무기를 만들게. 물론, 설계도 및 제련 매뉴얼도 함께 넘겨야 하고.”
이만하면 객관적으로 매력적인 조건이었다. 아니, 가히 파격적이지. 물심양면 지원해 줄 테니 너는 편하게 무기만 찍어내면 된다는 뜻이었다.
공방주가 눈을 가늘게 뜨곤 팔짱을 꼈다.
“흐음, 몇 개 정도를 원하시는지?”
“한 달에 다섯 개씩.”
“뭐요?”
공방주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가면에 가려진 그의 눈이 불손하게 후작을 쏘아보았다.
“내가 무슨 하루 24시간 내내 대장간에서 사는 줄 압니까? 연금에, 제련에, 정련에…… 무기 하나 만드는 데 드는 품과 시간이 얼만데. 달마다 다섯 개씩? 거 너무 양아치 아니오?”
“말을 조심해라! 이분이 감히 어떤 분이신 줄 알고!”
보좌관이 발끈해 삿대질했다.
공방주가 팽 콧방귀를 뀌었다.
“그 악명 높다는 블라스코도 이런 식으로 제안하지는 않았다 이겁니다. 이거야 원, 무기 제작의 기본도 모르는 분들이 오셔서는.”
블라스코.
그 이름을 듣자마자 후작의 안색이 변했다. 역시 놈들도 손을 뻗고 있었다.
“……그렇다면 몇 개까지 가능하겠나?”
“제대로 된 마도 무기를 뽑아내려면 당연히 몇 년은 걸리지요. 고대 전설의 대장장이 3인이 남긴 역작이 채 열다섯 개가 안 된다는 건 아는 겁니까?”
“꼭 완전무결한 완성작이 아니어도 되네. 조금 전 그 검이나, 실드 스피어 베타 미니Ⅰ과 같은 실험작도 괜찮아.”
“풉, 커흡.”
공방주가 돌연 괴상한 소리를 내며 손등으로 입을 가렸다.
“아, 예……. 그 작은 꼬맹이용…… 아니, 음. 예, 뭐. 그 정도라면 달에 한두 개씩은 가능합니다만.”
“그 정도로도 충분하지.”
달에 두 개씩만 해도 벌써 7000골드였다. 1년만 굴리면 14만 골드가 그냥 손에 들어온다. 게다가 설계도까지 넘기는 조건이니, 그것을 토대로 다른 무기장인들을 교육하면…….
‘어쩌면 그 두 배. 아니, 그 이상도.’
보좌관이 미리 준비해 온 서류를 꺼내 책상에 내려놓았다.
공방주가 잽싸게 서류를 가져가 계약 조항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계약금은 선불입니다. 먼저 이 부지와 공방 건물을 매입해 제 쪽으로 돌려주시지 않으면 계약은 없던 일로 한다는 조항도 추가해 주세요.”
“오늘 바로 사 주지.”
마침 오후에 건물주가 방문할 예정이라고 했겠다, 한시가 급한 상황에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
“호오. 좋습니다, 그럼.”
서류 하단에 서명하는 공방주의 펜촉이 신나게 날아다녔다.
[Aisla Colbas]서명을 마친 공방주가 유쾌한 웃음을 터뜨리며 후작에게 악수를 청했다.
“소개가 늦었습니다. 에이슬라 콜바스라고 합니다. 공방 이름이기도 하지요. 아직 간판은 제작 중이라 없지만.”
“계약 조건은 성실히 이행해야 하네.”
“여부가 있겠습니까.”
일은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약속한 시간에 건물주가 나타나고, 협상이 시작되었다.
“부지와 건물 값은 5만 골드, 그리고 재건축 비용까지 5만 5000골드가 기본에, 앞으로 이 공방이 갖게 될 가치까지 따지면 5만 골드는 더 얹어 주셔야겠습니다.”
“뭐? 총 10만 골드가 넘는다고? 너무 크게 부르는 것 아닌가?”
“후작가라 이 정도에서 끝나는 겁니다.”
건물주는 선대 때 옷감 장사로 한몫을 크게 챙긴 상인이었다. 케브릴이라고 본인을 소개한 호리호리한 남자가 안경을 치켜 올리며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10만 5000골드. 그 아래로는 절대 안 팝니다.”
몇 번의 실랑이 끝에 건물주 케브릴과의 매매 계약서에 오르겐 후작가의 인장이 쾅 찍혔다.
양도 명의는 공방주의 이름, 에이슬라 콜바스. 당장 이번 달 생활비와 재료비 지원금은 별도였다.
그리하여 오늘의 총 지출 합계는 12만 골드였다. 어마어마한 액수에 보좌관의 낯은 이미 퍼렇게 질려 있었다.
“가, 각하……. 당장 지불할 대금이 부족합니다만.”
반면 후작은 의연했다.
“중앙은행 금고에서 할 수 있는 만큼 끌어다 쓰고, 올해 영지 세금을 올려 걷어라.”
“하지만…….”
이미 과중한 세금과 지대로 오르겐 후작령의 불만이 가중되는 시기였다.
그러나 후작은 강경하게 밀어붙였다.
“1년만 두고 보면 흑자로 전환되는 건 금방이다. 진행해.”
“하지만 각하, 2만 골드는 어떻게 충당할 수 있다고 치지만, 남은 10만 골드를 당장 융통할 구석이 없습니다.”
“흐음.”
“아스트로카 중앙은행에서도, 더 이상의 대출은 어렵다고 통보해 온지라…….”
후작은 나직하게 신음했다. 몇 년 전 노이만 운하 건설 사업을 말아먹으며 생긴 구멍이 아직도 이렇게나 크다.
“보증을 설 증인이나, 담보로 잡을 만한 물건이 있어야 할 듯한데요……. 혹 황후께 부탁을 드리심은?”
“그건 안 돼. 황실과 돈 문제로 얽힐 수는 없다.”
황제, 페르테스의 황후에 대한 사랑은 결혼한 지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남달랐다. 로사리아가 남편에게 한 번 웃어만 주어도 황제는 오르겐 후작가에 어떤 명목으로든 황실 예산을 편성해 줄 것이다.
하지만 이미 그렇게 메꾼 돈이 몇십만 골드였다. 7귀족회 내에서는 후작이 황실에 돈을 꾼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그러니 더 이상은 위험했다.
후작은 잘 다듬은 수염을 쓸며 생각에 잠겼다.
“……담보가 좋겠군. 갈테아스 영지의 별장 정도면 충분할 테지.”
갈테아스 영지는 서남부에 있는 오르겐 후작령 중 가장 작은 크기의 영지였다. 작다고는 해도 자연 경관이 빼어난 데다 국경과도 가까워, 타국을 오가는 이들이 중간 기착지로 곧잘 활용하는 지역이었다. 그 정도면 넉넉잡아 20만 골드 정도는 융통할 수 있을 터.
“그럼, 갈테아스 영지와 별장을 담보로 자금 융통을 신청하겠습니다.”
“그래.”
어차피 수년 내로 빚을 탕감할 수 있을 테니, 당장의 부채는 감안하고 갈 부분이다. 부채를 두려워해서야 무슨 사업을 하겠는가?
후작은 공방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공방주를 돌아보았다.
“그럼 잘 부탁하지.”
“이쪽이야말로요.”
공방주가 후작이 내민 오른손을 낚아채듯 잡았다.
후작이 설핏 미간을 찡그렸으나, 공방주는 눈치채지 못한 듯 맞잡은 손을 휘휘 흔들었다. 무척이나 즐거운 기색이었다.
“여러모로 무척 영광입니다. 오르겐 후작가라는 백을 등에 업다니, 이런 날이 오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거든요…….”
주제를 알고 있다니 다행이군.
후작은 속으로 코웃음을 치면서도 온화한 표정을 만들어 냈다.
“그럼 내달 중으로 다시 한번 방문해 주시지요. 이만큼 제게 공을 들이셨으니, 선물이라도 하나 준비해 두겠습니다.”
가면 속, 그늘에 가려져 색채를 뚜렷이 알아보기 힘든 눈이 일순 형형하게 번뜩였다.
후작이 위화감을 느낀 순간, 공방주가 휙 돌아섰다.
공방의 문이 매몰차리만큼 세게 쾅,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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