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Heiress of the Villain Family RAW novel - Chapter (13)
13화
마가렛이 그렇게 단단하게 무장한 이유는 금세 밝혀졌다.
블라스코의 수련장 가까이 다다랐을 때였다. 나는 정체 모를 한기에 어깨를 움츠렸다.
바늘 수백 개로 살갗을 콕콕 쑤시는 듯한 섬뜩한 감각, 어디선가 느껴 본 적이 있었다.
나는 소매 밑으로 드러난 양팔을 박박 문지르다가 기시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살기였다. 블라스코 공작의 서재에서 아주 잠깐 접했던 감각과 정확히 일치했다.
나는 마가렛의 치맛자락을 붙들고 슬그머니 그녀 뒤에 몸을 숨겼다.
“마, 마가렛, 수련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은데요. 그냥 보통 대련이 아닌 것 같은데.”
“어머, 검기가 느껴지세요, 아기씨?”
“못 느끼기엔 너무 잘 보이는걸요.”
수련장에 때아닌 돌풍이 불어닥치고 있었다. 대체 저게 뭔가 싶어 눈을 가늘게 뜨니, 각각 채도가 다른 두 개의 푸른 기운이 허리케인처럼 수련장을 에워싸고 거칠게 휘도는 게 보였다.
오러. 오러다.
족히 100년은 넘게 묵었을 것만 같은 고목들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나뭇잎이 불길하게 서로 사각사각 부딪치고 있었다.
‘아, 아파.’
이제는 살갗을 바늘로 찌르는 정도가 아니라 고양이 발톱으로 세게 할퀴는 것 같은 통증이 일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베르너를 어떻게 꼬여 내기도 전에 내가 꽥 기절할 위기였다. 나는 서둘러 마가렛의 치맛자락을 붙들었다.
“저 그냥 돌아갈래요. 이거 너무 아프……”
막 위협적인 돌풍이 우리를 덮치려는 순간, 마가렛이 나를 덜렁 들곤 땅을 박차고 허공으로 몸을 솟구쳤다.
악, 땅이 멀어진다!
“꽉 잡으세요, 아기씨!”
그 말을 이제 하기엔 좀 늦은 것 같은데요, 마가렛!
나는 본능적으로 마가렛의 목을 꼭 끌어안았다. 체공 시간이 엄청났다.
탓, 타앗!
마가렛이 신들린 몸놀림으로 수련장 입구에서 거리를 벌렸다. 내가 눈을 끔뻑하기도 전에 마가렛이 근처의 고목 위로 몸을 날렸다.
“어휴, 아슬아슬했네요. 놀라셨죠?”
마가렛이 나를 꼭 안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지만 적응하셔야 해요. 일상이거든요.”
“그게 대체 무슨 말……?”
나는 얼떨떨하게 되물으며 무심코 아래를 보았다가 아연실색했다. 방금까지 내가 딛고 있던 풀밭이 짐승의 발톱으로 할퀸 것처럼 쩍쩍 갈라져 있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다음 순간, 수련장의 목재 문이 산산이 조각나며 폭발하듯 사방으로 튀었다. 그 안에 갇혀 있다시피 하던 두 개의 기운도 용틀임하듯 터져 나왔다.
콰아앙!
밖으로 빠져나온 건 검기뿐만이 아니었다. 먼지구름을 뚫고 누군가의 험악한 음성이 들려왔다.
“이 씨×…….”
처음 듣는 목소리다. 여자인 것 같았다. 나는 곧 이 저택에서 당당하게 욕설을 지껄일 수 있는 여성은 딱 한 명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먼지 돌풍이 서서히 멎자, 길고 검은 포니테일을 휘날리는 소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르닌 블라스코. 공작가의 유일한 공녀였다.
나는 처한 상황도 잊고 입을 헤 벌렸다.
‘미인……!’
누가 미모의 블라스코 아니랄까 봐, 공녀는 아버지와 오빠 뺨치게 아름다운 미소녀였다. 길고 늘씬한 체구의 그녀는 왼손에 서슬 퍼렇게 간 대검을 쥐고 있었다.
딱 봐도 아르닌이 누구와 검을 겨뤘는지 알 것 같다. 친오빠이자 영원한 라이벌, 베르너다.
과연, 휘몰아치는 검기 한가운데서 베르너가 걸어 나왔다. 그는 몸에 딱 맞는 훈련복을 입고 있었는데, 멀찍이서 봐도 키와 근육의 비율이 장난이 아니었다.
“넌 나한테 안 된다니까, 아르닌. 그렇게 학습 능력이 없나?”
“닥쳐, 이 ××야. ×××, ××××……. 재수 없는 ××. 너 약 하지? 아니면 강화 마법 걸었어? 나 몰래 뭔 강장제를 처먹길래 붙을 때마다 지는 거야, ××…….”
마가렛이 조용히 내 귀를 막아 주었다.
“아기씨는 아직 저런 못된 말 들으면 안 돼요. 귀 썩어요.”
이미 다 들었는걸요.
아래에선 여전히 남매의 대치가 이어지고 있었다. 아르닌이 대검을 펜 돌리듯 가볍게 고쳐 잡았다.
“한 판 더 해!”
“고집은.”
베르너가 고개를 내저으며 방어 자세를 취했다. 둘의 신형이 다시 한번 엉겨 붙으며 굉음을 터뜨렸다.
‘와, 남매 싸움 스케일…….’
앞에서 블라스코 공작가는 대대로 마검을 차지하기 위한 직계들 간의 경쟁이 치열한 가문이라고 했다.
이제 부연 설명을 좀 해 보겠다.
내가 지지난 새벽 조개 모양 로켓 속에서 복기한 내용이다.
베르너와 아르닌의 사이는 역대 모든 블라스코의 직계들을 통틀어 가장 살벌했다. 일단 남매는 괴물 같은 신체 스펙을 타고났다.
둘 다 오러 유저인 것은 기본이고, 서포트 마법 정도는 호흡처럼 구사하며 마검사로서의 역량 또한 갖추고 있었다. 바로 3, 4년 전까지만 해도 서로 비등하게 검을 겨루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사기급 남매의 사이에도 레벨을 가르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생겼다. 바로 아르닌의 부상이 원인이었다.
타고난 스펙만 믿고 혹독하게 스스로를 몰아붙인 것이 원흉이었다. 아르닌이 검을 드는 오른쪽 어깨에 골절상을 당한 뒤, 베르너와 아르닌의 격차는 급격히 벌어졌다.
아르닌은 부상 이후, 반강제로 진로를 틀어야 했다. 그녀의 선택은 제련과 장비 강화. 한마디로, 부상을 커버하기 위해 장비에 승부를 거는 타입이라 이거다.
지금 시점으론 고작 열다섯 살에 불과한 소녀임에도 불구하고 아르닌은 블라스코 제련업의 요직을 맡고 있었다.
하지만 검술을 향한 열정은 식지 않은 듯했다. 실력 차이가 벌어졌다는 걸 아는데도 저렇게 베르너에게 덤벼드는 걸 보니 말이다.
이번 대련에서도 역시 베르너가 쉽사리 우위를 점했다. 직선으로 찔러 오는 동생의 검을 가볍게 비껴 낸 베르너가 아르닌의 등으로 검기를 날려 보냈다.
“……!”
순식간에 30미터 가까이 밀려난 아르닌이 허공에서 빙글 돌아 착지했다. 여지없이 욕설이 들려왔다.
“이 씨…….”
“몸을 단련하는 게 중요하다, 아르닌.”
여유롭게 검을 검집에 꽂아 넣은 베르너가 누이를 향해 돌아섰다.
“특히 너, 오른쪽이 자꾸 비어. 어깨의 가동 범위가 그만큼 나오지 않는다는 거지. 검을 왼손으로 쥔다고 오른편을 등한히 했다간 실전에선 동맥을 꿰뚫리기 십상이다.”
나는 그의 훈계를 듣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뭐야……? 사이코패스야……?’
저거 인성 파탄 아냐? 알고 저러는 거라면 사이코패스고 모르고 저러는 거라면 눈치가 약에 쓸래도 없는 둔탱이인 거다.
내가 설명을 요구하는 눈으로 마가렛을 올려다보자, 그녀가 내 귀에 소곤거렸다.
“그게 사실, 공녀님께서, 음, 가볍게 부상을 입으신 적이 있는데, 공자님께서는 그걸 모르세요.”
“아…….”
“공녀님께서 공자님께 입 뻥끗하기라도 하는 날엔 다 때려 부술 거라고 하도 협박을 하셔서……. 그래서 오해가 쌓이는 바람에 저렇게 사이가 안 좋아지신 거예요.”
후자군.
베르너는 둔탱이였다. 하기야, 자존심 강한 아르닌이라면 죽어도 오빠에게 아픈 티를 내지 않을 것 같긴 했다.
“장비만 강화할 생각 하지 말고 근력과 민첩성을 더 길러. 계속 이런 식이다간 넌 10년이 더 지나도 나를 이기지 못할 거다.”
전후 사정을 알고 나니 조금 안타까워졌다. 베르너는 나름대로 여동생이 더 발전할 수 있도록 충고를 해 주는 것 같은데, 그게 아르닌의 자존심에 대못을 쾅쾅 때려 박는 게 분명했다.
“……오지랖 부리지 마. 넌 여전히 재수 없어.”
아르닌이 나직하게 욕설을 씹어뱉곤 휙 돌아섰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중이라 베르너가 어떤 눈으로 여동생을 보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다만 그 역시 오래 멈춰 있지 않고 반대편으로 돌아섰다.
그 둘이 충분히 멀어졌다고 여겨질 때 즈음, 마가렛이 나를 안고 가뿐하게 나무 아래로 착지했다.
“일단은 아기씨, 바로 도련님을 뵙기는 어렵겠어요. 아직 오러의 흐름이 가라앉지 않아서 다칠 수도 있답니다.”
“그러면…… 공녀님께 가도 돼요?”
“아르닌 아가씨께요? 글쎄요, 그것도 그다지 좋은 선택은 아닐 것 같은데…….”
마가렛이 곤란한 듯 말을 흐렸다.
나는 얼른 그녀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었다.
“그냥 멀리서 살짝만 보고 올게요. 공녀님 어깨, 불편하신 것 같아서…….”
“아…….”
“걱정이 돼서……. 그, 저는 아무것도 아닌 애지만, 그래도…….”
아닌 척하지만 아르닌의 오른 어깨가 미묘하게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그렇구나. 우리 아기씨께서 공녀님을 걱정해 주시는구나……. 그러면 가야죠! 가야 하고말고요.”
마가렛의 얼굴에 왜인지 감동이 짙게 흐르고 있었다.
그녀가 나를 다부지게 끌어안고 지면을 박찼다.
마가렛의 선택은 지붕이었다. 그녀는 몇 번의 도약만으로도 순식간에 아르닌이 머무는 별채의 3층 발코니 지붕에 안착했다.
저 아래에, 별채로 돌아오는 아르닌이 보였다. 기세 좋게 욕설을 퍼붓던 연무장에서와는 달리, 그녀의 걸음은 느릿하고 쓸쓸했다.
“공녀님, 제발!”
아르닌의 뒤로 주치의로 보이는 사내가 허둥지둥 따라붙었다.
“가볍게 살펴보기만 하게 해 주십시오! 혹시라도 근육이나 뼈 조직이 파열되었다면 당장 응급 처치를……”
“됐어. 필요 없으니까 저리 치워.”
아르닌은 끈질기게 호소하는 의원을 단호하게 밀어냈다.
“내 몸은 내가 제일 잘 알아. 그러니까 주제넘은 참견 말고 돌아가.”
하지만 그렇게 일축하는 것과는 반대로, 그녀의 오른쪽 어깨는 눈에 띄게 굳어 있었다. 안색 역시도 창백했다.
“공녀님…….”
“쓸데없이 입 놀리고 다니지도 마. 특히 아버지나 베르너에게는 내 꼴이 이렇다는 거, 한마디도 들어가지 않게끔 해. 말이 퍼지는 날엔 해고야. 알겠지, 리온?”
의원은 거의 울 것 같은 얼굴로 마지못해 물러났다.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준 아르닌이 별채 안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아마 이 아래 있다는 그녀만의 대장간으로 돌아가는 듯했다.
“걱정이네요……. 아르닌 아가씨, 저렇게 고집만 부리시는 게 능사는 아닌데.”
나를 꼭 안은 마가렛의 목소리에도 근심이 한가득이었다.
아르닌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지자, 그녀는 다시 지붕을 밟고 허공으로 몸을 띄웠다.
나는 순식간에 다시 연무장으로 돌아왔다.
“오늘은 아무래도 두 분을 뵙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요, 아기씨. 두 분 다 상태가 구리, 아니, 기분이 썩 좋지 않으시니까요.”
힐끔 연무장의 상태를 확인한 마가렛이 자연스레 나를 감싸고 돌아섰다.
“대신 다른 걸 하시면 좋을 것 같은데, 하고 싶으신 거 있으셔요?”
“으음…….”
“볕이 좋으니 영령의 탑 앞에 있는 세월의 정원을 산책해 보셔도 되고요. 블라스코 역사 전시관을 관람하시는 것도 재미있을 거예요. 아니면 말을 태워 드릴까요? 북쪽의 블라스코령 사바나에도 이것저것 볼 게 많을 텐데요.”
일단 사바나는 절대 싫어.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니요, 마가렛. 제가 하고 싶은 건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