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Heiress of the Villain Family RAW novel - Chapter (133)
133화
“열이 있군. 아직 오러도 불안정하고. 마가렛, 일단 간단한 식사랑 약부터 준비하도록 해라. 까딱 감기로 번지기라도 하면……”
“아빠……!”
입술이 파들파들 떨렸다. 미처 고르지 못한 말들이 마구잡이로 흘러나왔다.
“내가, ⎕⎕⎕⎕ ⎕⎕⎕, ⎕⎕⎕ ⎕⎕⎕⎕ ⎕⎕⎕, ⎕⎕ ⎕⎕…….”
내가 로켓에서 봤는데, 아빠랑 세레이나 님이랑, 약혼 증서. 거기 내 이름이 쓰여 있었는데. 세레이나 님이 나를 사막으로 보내려고 했는데…….
“⎕⎕ ⎕⎕⎕, ⎕⎕⎕⎕⎕ ⎕⎕⎕ ⎕⎕⎕…….”
내가 죽어서, 할아버지랑 아키가 시간을……. 거기까지 말하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지.우.마>를, ‘사라진 세계’를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그 세계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해 발설할 수 없다. 그것이 세계의 금기다.그 때문에 내 입에서는 묵음 처리되어 알아들을 수 없는 목소리만 쏟아지고 있었다.
나는 망연히 중얼거렸다.
“나, 정말로 ⎕⎕⎕⎕⎕⎕.(나, 정말로 블라스코래요.)”
“카티.”
“나도 있어. 나도 ⎕⎕⎕ ⎕⎕, ⎕⎕⎕, ⎕⎕⎕⎕⎕……. (나도 엄마도 있고, 아빠도, 할아버지도…….)”
“……카티샤.”
“⎕ ⎕⎕⎕ ⎕⎕⎕……. (나 입양아 아니야.)”
사실 늘 그게 마음에 걸렸다.
블라스코가 내게 다정하다고 해서 제국의 모두가 내게 상냥한 건 아니었다.
“쟤야, 하루아침에 신분 상승한 그 상속녀.”
“출신 미상 평민에서 제국 최고 귀족 가문 직계라니. 블라스코도 이제 순혈 귀족이라곤 못 하겠네.”
“이름만 바꾸면 귀족인가? 태생이 별 볼일 없는걸.”
아카테미를 다니는 3년 동안 내 면전에서 무례한 말들을 던진 학생들도 적지 않았다. 그들에게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죽을힘을 다해서 시험 공부에 매달렸다. 수석에서 미끄러지는 순간 날 비웃을 이들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아는 탓이었다.
하지만 남들의 시선 때문이 아니더라도, 나는 끊임없이 내 자격을 증명하고 싶었다.
피로 이어진 가족이 아니니까. ‘진짜’ 직계가 아니니까. 그건 내 아킬레스건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나를 채찍질할 필요가 없었다. 해금된 171 화가 그 어느 것보다 명쾌한 해답이었다.
나는 우리 아빠 딸이다.
하지만, 하지만 그걸 무슨 수로 증명하지?
나는 울먹거리며 아버지의 소맷자락을 세게 움켜쥐었다.
“아부지, 누구 찾으러 갔었어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아버지가 한 달 동안이나 자리를 비우실 다른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세레이나 님이 남기신 아이의 존재를 아신 거야. 그래서 그 아이를 찾으러 가셨던 거야.
난 여기 있는데.
“⎕⎕, ⎕⎕……. (그거, 난데…….)”
여전히 입 밖으로 아무 말도 나가지 않는 게 답답했다.
이러다 평생 말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아빠가 다른 아이를 찾겠다고 하면? 진짜 자식을 찾겠다고 하면…….
내가 진짜 딸이라는 걸 아버지가 모르면.
왈칵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버지의 소매를 동아줄처럼 움켜잡았던 손에 힘이 스르륵 풀렸다.
대신 이불보를 꾹 붙들었다. 나는 최대한 의젓하고 또박또박 말하려 안간힘을 썼다.
“그래도 버리시면 안 돼요.”
“…….”
“나 여기 있을래. ⎕⎕⎕ ⎕⎕ ⎕⎕⎕⎕⎕ ⎕⎕⎕.(있어도 되는 사람이라고 했어요…….)”
아키랑 할아버지가 나 여기로 보냈어.
할아버지가, 이번에는 죽지 않고 살게끔 나를 키워 주시고, 가족도 찾아가라고 블라스코로 보내 줬어.
그러니까 나 ‘진짜’ 블라스코야.
전생에서는 아무리 찾아도 없었던 내 진짜 아버지, 진짜 가족들이 이곳에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주장해 봤자 누가 내 말을 믿어 줄까?
설움이 북받쳐 오르며 눈물이 뺨으로 손등으로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서럽게 눈매를 일그러뜨렸다.
“씨이, 왜 말이 안 나오는 거야. 이런 것 정도는 말하게 해 줘도 되잖아…….”
그때였다. 내내 침묵을 지키던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카티.”
“으응…….”
“눈 비비지 말고.”
“……네에?”
“코 먹지 말고. 뚝 해야지.”
눈물을 닦자마자 다시 그렁그렁 고이는 바람에 시야가 부옜다. 그 바람에 아버지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는 정확히 볼 수 없었으나, 목소리만은 무척 차분하고 다정했다. 평소처럼.
그래, 평소처럼…….
“머리 아프다거나, 토할 것 같다거나, 어지럽다거나. 그런 거 없어?”
“어, 없는데…….”
“다른 아픈 데는?”
나는 얼떨떨한 심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내 쪽으로 상체를 기울인 아버지가 내 얼굴 곳곳을 꼼꼼히 들여다보았다. 그제야 나는 아빠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아버지가 퉁퉁 부은 내 얼굴을 보며 피식 웃었다. 입매가 시원스럽게 양쪽으로 끌려 올라가는 나른한 미소. 처음으로 아빠라고 불러 보라며 나를 놀리던 그날과 꼭 같은 온도의 웃음이었다.
“못난이 호박, 뭐가 그렇게 세상 서럽다고 울어?”
“…….”
“아버지가 어디 가서 안 올까 봐 겁나? 이제 청소년인데 그런 말도 안 되는 상상 하면서 울면 어떻게 해. 뚝.”
아버지가 장난스럽게 내 뺨을 쭉 꼬집어 늘렸다.
나는 얼떨떨한 와중에도 고집스럽게 물었다.
“아부지, 다른 사람 안 찾아갈 거죠?”
“찾기는 누굴 찾아. 무슨 걱정을 하는 거야?”
“찾으러 갔잖아아…… 흐엉…….”
“아무도 안 찾았어. 우리 집 막내가 여기 있는데 애먼 데서 애 찾을 일 없다.”
“……진짜? 아부지한테 사실 다른 아이가 있다고 해도요……?”
“응. 그리고 그런 애 없어.”
확고한 대답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확신하실 수가 있지? 세레이나 님 이름만 나와도 버거운 표정을 하시면서…….
그러나 이어진 아버지의 말에, 나는 눈을 휘둥그레 뜰 수밖에 없었다.
“이미 아버지께서 한참 전에 찾아다가 내게 보내 주셨으니까.”
놀라서 딸꾹질이 나왔다.
아, 아빠가 그걸 어떻게 알지?
아버지가 고개를 숙여 내 뺨의 눈물 자국을 꼼꼼히 닦아 주었다. 눈빛이, 손길이, 체온이 무척이나 다정하고 든든했다.
“네 엄마는 눈물이 별로 없었는데. 우리 꼬마는 누굴 닮아서 이렇게 울보인지 모르겠단 말이지.”
“어…….”
“나를 닮았나……?”
작게 키득거린 아버지가 내 볼을 검지로 톡 두드렸다. 대체 뭘 걱정하느냐는 듯이. 말하지 않아도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눈빛에 담긴 함의가 노곤하면서도 진중했다.
“아버지가 미안하다. 말도 없이 가출해서.”
“…….”
“좀 더 빠르게 우리 막내를 찾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해서 그것도 미안해. 할아버지한테 네 꼬꼬마 시절을 볼 기회를 다 뺏겨 버린 건 좀 억울하고.”
착각일까, 이번에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조금 떨리는 것만 같았다.
떨리는 숨을 모아 들이쉰 아버지가 나와 같은 눈높이에서 시선을 맞추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제서야 뭔가 대단히 바뀌어야만 하는 건 없어, 카티샤. 알지?”
“…….”
“낯설 것도 없고, 혼란스러울 것도 없고……. 무엇보다 이제 불안해하지 않아도 돼.”
나는 멍하니 아버지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의 눈에서 일순 엿보였던 흔들림은 어느새 흔적도 없이 지워져 있었다.
단단함을 회복한 눈빛이 내게 끊임없이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내가 진짜든 진짜가 아니든 간에 아버지가 나를 버리는 일은 결단코 없을 거라고.
아빠와 아빠의 블라스코는 여전히, 그리고 당연히 나의 울타리였다. 과거에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신기한 일이었다. 지난날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아버지의 태도에 갑자기 방금까지 나를 괴롭히던 근심들이 일시에 휘발되어 날아갔다.
내가 사실 아버지의 진짜 딸이었다는 게 정말로 아무렇지 않은 일처럼 느껴졌다.
어차피 5년 전부터 이 집 막내였으니까.
그냥, 실은 내게도 진짜 블라스코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는 조금 더 반가운 사실이 하나 추가되었을 뿐이었다.
나는 코를 훌쩍 들이마시며 우는 듯 웃었다.
‘뭐야……. 뭘 걱정했던 거야.’
허리를 바르게 편 아버지가 익숙하게 양팔을 벌렸다.
“자, 그럼 이제 아버지 안아 줘. 인사도 다시 해 주고.”
“으응…….”
“다녀오셨습니다, 해야지. 대뜸 가출 어른이라고 외치는 게 아니라.”
“……응!”
나는 당장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아빠에게 안겼다.
* * *
“뭔가 달라질까요, 아버지?”
오래 울음을 그치지 못하고 훌쩍거리는 카티샤를 겨우 달래어 재운 뒤 다시 서재로 돌아왔을 때였다.
아르닌이 조용히 물었다.
“제가 짐작하는 게 맞는다면, 앞으로 우리는 무언가 바뀌게 될까요?”
베르너가 눈빛으로 누이와 같은 물음을 던졌다.
루테는 이제는 제 새끼들이나 다름없는 남매를 가만히 바라보다,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무것도.”
“…….”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어. 5년 전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카티샤는 5년 전부터 그의 막내딸이었고, 아르닌과 베르너의 동생이었다. 그렇게 받아들였고, 그렇게 지내 왔다. 이제 와서 새삼스레 ‘진짜’ 블라스코니 뭐니, 구태여 수식어를 붙일 필요가 없었다.
다만 마음 깊이 감사할 이들이 늘어났을 뿐이다.
“선대께 감사해야지.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다가와 준 아이에게도.
남매는 차마 이어지지 못한 말에 숨겨진 뜻을 영민하게 알아차렸다.
아르닌이 반색하며 오빠의 옆구리를 꼬집었다.
“역시 그렇죠? 거봐, 오빠. 내가 뭐랬어? 블라스코가 아닐 리가 없다고 했잖아.”
“부정한 적 없어.”
베르너는 만족스럽게 입꼬리를 씰룩거리고 있었다.
“이제 뒤에서 몰래 내 동생 씹는 것들을 좀 더 후련한 기분으로 패 줄 수 있겠는데…….”
“뭐야, 지금까진 안 그랬단 거야?”
“그건 아니고, 죽기 직전까지 팼거든.”
“그럼 다음엔 죽여 버려도 되겠네.”
서로를 똑 닮은 남매가 서로를 바라보며 키득거렸다.
루테는 등 뒤에서 울리는 그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이곳을 감싼 공기가 따스하고 넉넉했다.
수도의 저택은 소중한 추억과 끔찍한 기억이 마구 혼재되어 루테에게는 늘 버겁기만 했다. 루티어드 부부의 시신을 수습한 곳도 이곳이고, 세레이나를 멀리 보내기 전 마지막으로 입 맞추었던 곳도 이곳이다.
아이의 혼란을 부추길까 두려워 차마 밖으로 표출하지 못했던 감정들이 이제야 조금씩 들썩거렸다.
‘세니.’
아르템에서 다시 수도로 와 막내딸이 깨어나기까지 간신히 유지하고 있었던 평정이라는 가면이 무력하게 허물어졌다.
루테는 손으로 입가를 감싸고 남매에게 얼굴이 보이지 않도록 몸을 틀었다.
세레이나를 떠올리면 늘 가슴 한편이 뻥 뚫린 듯 공허하고, 그 뒤로는 그리움이 그를 질식시키기라도 하려는 듯 밀려들어 왔다. 그런데 앞으로는 대책 없이 눈물부터 날 모양이다.
루테는 속으로 말이 되지 못한 사랑을 쉼 없이 되뇌었다.
네가 이 세상에 이토록 귀한 선물을 남기고 갔다는 걸 지금에서야 알아서 미안하다.
아이가 태어나던 순간에 너를 지켜 주지 못해서 미안해. 혼자 고통을 겪게 내버려 두어서, 내가 너무 늦어서.
루테는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그래도, 3분의 1은 내가 키웠으니 조금은 봐줘…….”
남매에게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속삭임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