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Heiress of the Villain Family RAW novel - Chapter (141)
141화
* * *
아이칼과 이스마가 사바나로 향한 뒤, 아버지는 빠르게 본가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탑이 언제 다시 붕괴할지 모르니, 세월의 정원에 묻힌 가주님들의 관과 비석, 그리고 동상들까지 먼저 전시관 지하실로 옮겨. 그리고 사바나를 관리하는 마법사들을 전부 소집해라.”
“예, 각하.”
“주치의는 대기시켰나?”
“예. 아가씨 침실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기서 난 괜찮다고 말해도 아무 소용없겠지. 얌전히 선 내게 베르너가 재킷을 벗어 입혀 주었다.
“내 동생, 감기 걸릴라.”
“……미안…….”
“됐어. 들어가서 따듯한 차 마시고, 약 먹고, 누워서 코 자자. 그러면 다 정리되어 있을 테니까. 그 새하얀 미친놈, 아니, 아키는 당분간 사바나에 격리되어 있을 테니까 걱정 말고.”
끄덕끄덕.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었다. 더 이상 가족들을 걱정시킬 순 없었다.
내 ‘진짜’ 가족들인걸…….
나는 말 대신 베르너의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 머리 위에서 그가 으휴, 한숨을 쉬며 내 머리를 도담도담 쓰다듬었다.
어느새 다가온 아르닌 언니가 내 왼뺨에 뽀뽀해 주었다.
“당최 어디로 튈지 모르겠어, 우리 귀염둥이는.”
그러게 말이다.
나는 애매한 웃음을 지으며 오빠에게 다시 얼굴을 묻었다. 낭패한 기색을 숨기기 위함이었다.
‘왜, 왜 또 지금이야……!’
잠옷 속에서 조개 로켓이 또다시 구운 돌처럼 달아오르고 있었다.
하아,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는 후폭풍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겠다. 우선은 아빠가 시급했다.
나는 오빠를 안은 팔을 풀고, 대신 제미언에게 이것저것 지시하는 아버지를 향해 두 팔을 벌렸다.
“아빠, 아빠.”
“응, 카티.”
내 눈빛의 신호를 대번 알아챈 아버지가 다가와 나를 번쩍 안아 들었다. 아직 키도 몸집도 열서너 살짜리처럼 작아서 아버지께 어렵지 않게 안길 수 있었다.
이번에는 오른뺨에 뽀뽀가 날아왔다. 나는 귓가로 쏟아지는 아버지의 한숨 소리를 들으며 서둘러 말했다.
“아빠. 저, 조금만 잘게요.”
“응?”
“하아암, 아무래도 일어난 지 얼마 안 돼서, 다시 졸린 것 같아요…….”
나는 어설프게 연기하며 아버지를 힐끔거렸다. 이러면 내가 좀 오래 자더라도 크게 걱정하지 않으시겠지.
아버지가 손바닥으로 조심스레 내 뒤통수를 쓸었다.
“그래, 자자. 여기서부터는 아버지가 다 정리해 놓을 테니까.”
“으응…….”
정확한 타이밍으로 바로 그 순간 옷 속에서 조개 로켓이 벌어졌다.
나는 에휴, 작은 탄식을 흘리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익숙한 붉은 빛이 나를 아공간으로 데려가기를 기다렸다.
* * *
그렇게 또다시 들어온 로켓 속 창고.
나는 눈에 힘을 주고 화면에 뜬 글자들을 노려보았다.
지금까지는 없던 글자가 붙어 있다. 최종화.
“완결이란 말이지, 드디어?”
긴 이야기에 마지막 방점이 찍힐 시간이었다.
나는 결연하게 눈을 빛내며 책상 앞에 앉았다. 아직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해 본다.
하나, 헤르젠 할아버지가 아이칼의 계획에 동의한 직후, 세계가 사멸하고 다시 이어진 과정.
둘, 그 과정에서 시간이 몇 년이나 뒤로 돌아간 건지. 세계가 재건되는 데 정확히 얼마나 걸렸으며, 그들은 왜 기억을 잃게 되었는지.
셋. ‘나’는 대체 누군지.
이미 [지.우.마>에서 한참 전에 죽었다던 ‘카티샤’가 어째서 대한민국으로 똑 떨어졌다가, 다시 이 세계로 들어오게 된 건지. 대체 어떤 경로로 할아버지네 집 앞에 떨어져 있었던 건지.
그리고 마지막. 대체 ‘사라진 세계’는 어떻게 [지금 우리, 마법처럼>이라는 제목의 이야기로 이 조개 로켓 속에 담기게 된 것인지까지.
이제 모든 일의 전말을 낱낱이 파헤쳐 볼 시간이었다.
* * *
[지금 우리, 마법처럼>172 화 (최종화)
[좋다. 다시 시작해 보자. 과연 우리의 뜻대로 될지는 모르겠으나,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겠지.]헤르젠 블라스코가 미쳤다며 달려드는 영령들을 밀어내고 앞으로 나섰다.
[그러나 파수꾼이여, 한 가지 확실히 해야 할 것이 있다.]“말해.”
[내 손녀를 만난 적이 있는가?]“…….”
[그 아이는 사막으로 건너간 뒤에 2년을 채우지도 못하고 죽었다고 했지. 그런데 너는 설원에서 그 아이를 만났다고 했고. 그렇다면 시기도 장소도 안 맞는 셈이 아닌가?]“……확실해. 적어도 죽은 그 애가 블라스코이고, 귀어스트의 주인 될 자격을 타고난 운명이었다는 것쯤은.”
[하지만 그대는 그 아이의 얼굴도, 심지어는 이름조차도 모르고 있었지. 저 서류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말이야.]“내가 본 건…… 됐어. 여기서 일일이 설명하기엔 기니까. 그래서 결국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지?”
[신수가 가엾은 영혼 하나 구하고자 자비를 베푸는 족속이 아니라는 것쯤은 나도 안다. 네가 이렇게까지 해서 그 아이를 되살리고자 하는 진짜 이유가 무엇이냐?]“…….”
[혹시라도 그 아이를 해치고자 함이라면 나는……]“해쳐?”
아이칼이 기도 차지 않는다는 듯 웃었다. 종전까지 유지하던 고고함이 사라진 그는 어딘지 불안하고 위태로워 보였다.
“난 그 애가 형태도 없는 오러 뭉치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을 때도, 아무 인간의 껍데기나 주워다 뒤집어쓰고 왔을 때도 건드리지 못했어. 단 한 번도.”
니엘라는 그의 목소리마저 조금씩 흔들리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럴 리가 없는데. ‘그’ 아이칼이…….
“해치기는커녕 만져라도 볼 수 있었으면, 관심도 두지 않았을 텐데.”
빈틈없이 견고해 감정 한 오라기 내비치지 않던 낯이 쩍 갈라져 있었다. 문득 니엘라는 그가 비단 그녀에게만 분노한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왜 이런 짓을 하냐고? 그대가 이미 다 말했어. 내가 그 애의 얼굴도 이름도 몰랐다고. 겨우 이름 하나 알게 된 지금도 난 걔가 어떻게 생겼는지 몰라.”
[…….]“그게 전부야.”
어쩌면, 그가 정말로 분노한 대상은 헤르젠 블라스코도 니엘라도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 아닐까.
[……그렇군……. 우리는 다를 게 없구나.]한동안 침묵하던 영령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좋다. 나도 너와 뜻을 함께하마. 대신 너는 어느 순간에서건 내 손녀의 안전을 절대적으로 우선시하겠다고 맹세하거라.]“당연한 걸 굳이.”
[너 자신으로부터도 지키라는 말이다. 신수와 함께한 인간들의 말로가 어떠한지 내가 모를 줄 알고.]“……좋아. 내 이름이든, 영혼이든, 권능이든 뭐든 걸고 약조하지.”
[……영 못미덥지만, 어쩔 도리가 없나…….]그렇게 합의가 끝났다.
가이우스와 유제니를 포함한 영령들이 막을 틈도 없이, 헤르젠이 마검으로 손을 뻗었다.
손바닥만 하던 영령이 190센티미터에 달하는 장신의 노인으로 형체를 바꾸었다.
영령들 중 가장 최근에 영령화한, 즉 가장 최근까지 귀어스트의 주인이었던 자의 영혼이 다른 31명의 영령들을 제치고 단숨에 귀어스트의 마지막 족쇄를 무효화했다.
[자, 이제 어찌하면 되나?]“신을 불러내야지.”
아이칼이 허리를 반듯하게 펴고 섰다.
허공으로 떠오른 마검이 저절로 허공을 크게 내리긋는 동시에, 아이칼이 성검을 횡으로 휘둘렀다.
지축을 울리는 두 개의 검기가 십자로 교차한다. 그 찰나에 불과한 맞부딪침이 순식간에 온 세계로 확장되기 시작했다.
파괴의 권능이 깃든 날실이 세계를 뒤덮었다. 그 위를 재생의 씨실이 촘촘히 가로질렀다.
그렇게 두 힘이 교차한 순간, 성검에 심겨 있던 권능 조각이 빛을 발했다.
가느다란 빛이 일직선으로 이어지며 검은 하늘로 향했다. 대륙의 암흑기에 이 땅을 떠난 신들의 세계로 이어지는 다리였다.
불안정한 암운으로 뒤덮이는 세계 위로, 통로를 타고 온 신성한 음성이 내려앉았다.
“선택하라, 이클라스의 아들이여.”
지금은 인계를 완전히 떠난 신들 중 하나, 치료와 재생의 여신 힐라이야의 음성이었다.
세계의 축이 흔들릴 때부터 줄곧 이곳을 주시하던 여신이 탑 안의 신수를 굽어보았다.
“지금이라도 멈추고 신수로서의 권위를 지킬 것인지, 혹은 세계를 파괴하고 시간 선을 어지럽히는 대가로 너에게 깃든 나의 권능을 회수당할지.”
니엘라는 저도 모르게 숨을 죽이고 그의 답을 기다렸다. 오래 기다릴 필요도 없이, 아이칼이 곧바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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