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Heiress of the Villain Family RAW novel - Chapter (155)
155화
소녀가 말릴 새도 없이 더 바짝 다가와, 이번에는 내 목을 유심히 들여다봤다.
“이 상처는 왜 안 낫는 거야?”
“……그 부위가 재생되어도 곧바로 다시 상처가 생겨서.”
“그럼 이걸 풀기만 하면 상처는 사라지겠네?”
“그렇겠지. 하지만 그럴 일은 없으니까.”
교단이 내 목과 양 손목에 채운 건 오러의 흐름을 강제하는 금제구였다. 신수를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다.
교단병들이 흘리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들이 처음부터 신수를 탄압한 것은 아니었다. ‘나’ 이전에 성검 힐라이야와 교단을 지키는 파수꾼 역할을 맡았던 이클라스족 신수 하프는 오히려 교단의 왕처럼 떠받들었다고 했다. 그 이유인즉슨 성격이 정말 개 같았다고 한다.
그 때문인가, 교단은 다음 대인 ‘나’를 상대로는 초장부터 기를 잡으려고 했다. 내가 필요 이상의 오러를 내뿜으면 금제구에 내장된 침이 목에 안정제를 투여했다.
말이 안정제지 효력은 마비 독과 거의 유사했다. 그 침을 맞고 나면 오러가 마비될 뿐 아니라 사고도 정지했다.
머리가 어지럽고 눈앞이 캄캄해지며 몸에는 힘이 쭉 빠진다. 그렇게 기절하고 깨어나면 족히 며칠은 온몸을 두드려 맞은 듯 고통이 심했다.
별다를 것 없는 일상이다. 당시의 내게는 그런 취급이 익숙하고 당연했기에 몰랐다. 그 애가 짐짓 단호하게 못 박기 전까지는.
소녀가 엄격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픈 거, 좋은 거 아니야.”
“……네가 뭘 알아?”
시비를 거는 게 아니라 순전한 궁금증이다. 몇 년 전까진 말도 못 하던 영혼 조각에 불과한 게 무엇을 알아서?
그러나 그 애는 제법 고집스러웠다.
“나 아픈 거 뭔지 알아. 아픈데 아무도 안 도와줘서 내가 이렇게 된 거야.”
“…….”
“나처럼 몸도 없이 떠돌아다니고 싶어?”
“난 안 죽어.”
고통은 느끼지만 죽지는 않는다. 죽음에 이르는 것보다 재생하는 속도가 빠를 테니.
“죽어도 최소 300년 정도는…….”
“안 죽는다고 아픈 게 아무렇지도 않은 건 아니야.”
그 애는 ‘내’ 말에 꼬박꼬박 대꾸한 뒤, 비장하게 말했다.
“내가 이거 열쇠 가져다줄게.”
“열쇠?”
“응. 이거 풀어 줄게, 내가.”
내가 네게 그거 하나는 해 주고 가겠다며 그 애가 실없이 웃었다.
그 말을 얼른 이해하지 못해 입을 다물었다.
사실 내가 그 애의 뜻 모를 말에 곧장 대답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다 정리하지 못한 말들이 목구멍 아래에서 어지럽게 엉켰다. 뒤죽박죽인 머리를 감당하지 못해 신경질적으로 주먹만 움키는데, 불쑥 그 애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언젠가 말이야.”
그리고 침묵.
성마른 마음에 재촉했다.
“언젠가, 뭐?”
“언젠가 우리,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
“…….”
“마법처럼.”
소녀가 날 돌아보며 배시시 웃었다. 형편없는 시체의 낯빛인데도 그 웃음이 기묘하리만큼 반짝거렸다.
“난 네가 좋아.”
“…….”
“이곳도 너무 좋았어. 하얗고 반짝반짝. 너처럼 예뻐서.”
수척한 양 뺨에 발그레한 생기가 도는 것만 같은 착각이 인다. 또다시 훈기가 맨살을 타고 구석구석 퍼져, 마침내 왼쪽 가슴께로 모여들었다. 심장이 크게 뒤흔들렸다.
“언젠가는, 다시 또. 진짜 마법처럼…….”
바람결에 소중하게 목소리를 실어 보낸 그 애가 자꾸만 웃었다.
낯선 감정에 휩싸인 채 어쩔 줄 모르는 와중에, ‘나’는 문득 네 원래 얼굴이 궁금해졌다.
* * *
바로 그다음 날 새벽이었다.
성검이 모셔져 있는 교단의 최상층 아래, 내게 배정된 좁은 우리로 무언가가 던져졌다.
전부 다르게 생긴 열쇠가 수십 개씩 매달린 열쇠 꾸러미였다.
내게 그것을 던져 준 교단병이 얼빠진 표정으로 헤실거렸다. 그 웃음만으로도 저 안에 그 애가 들어가 있음을 알아챌 수 있었다.
이윽고 교단병이 앞으로 푹 고꾸라지고, 그의 정수리에서 빠져나온 노을색 오러 한 줄기가 춤추듯 허공을 헤엄쳤다.
우리의 창살을 가볍게 통과한 그 애가 나를 한 바퀴 휘감았다. 그러곤 손톱만 한 창문 너머로 스르르 사라졌다.
어쩐지 불안한 마음으로 그것의 자취를 눈으로 좇았다.
‘다시 오겠지.’
왜인지 이대로 보내면 안 되겠다는 예감이 들었으나, 다시 오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늘 그랬으니까.
아무리 밀어내고 쫓아내도 그 애는 늘 자석처럼 이곳으로 돌아왔다.
그 사실을 상기하자 거짓말처럼 생각이 전환했다.
‘해방.’
기묘한 고양감에 휩싸인 채, ‘나’는 그 애가 훔쳐 온 열쇠 꾸러미를 들고 가장 먼저 금제구부터 풀었다.
그다음은 우리의 문을 열어젖혔다. 그 후에는 성검을 모신 최상층 제단의 문을 부쉈다. 늘 교단주의 허락을 받아야만 손에 쥘 수 있었던 검을 뽑아낸 뒤, 한 층 한 층 다시 내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날 눈이 제대로 뒤집혔다. 이성이 끊긴다는 게 무슨 뜻인지 그때서야 제대로 체감했다.
그날 교단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숫자는 채 스무 명이 되지 않았다.
* * *
교단은 핏빛으로 물들었고, 눈밭에는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나’는 오랜 구속에서 풀려나 비로소 설원의 지배자가 되었다.
더 이상 절벽을 기어오르는 마물을 처리하러 나갈 필요도, 언제 금제구가 목을 찌를지 몰라 신경을 곤두세울 일도 없었다. 마침내 교단에서 해방되어 신수로서의 권위를 되찾은 것이다.
그 애가 없었다면 불가능했겠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아프다는 게 어떤 것인지도 모르는 머저리가 되어 불합리한 체제에 순응했을 것이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고마움이라는 감정을 알았다.
그래서 그 애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하루, 이틀, 사흘.
일주일, 이 주일, 그렇게 몇 주가 지나 한 달, 두 달, 석 달.
반년이 지나고, 결국 1년을 채우도록 그 앤 어떤 모습으로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때 ‘나’는 비로소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알았다. 네가 외롭다는 말을 입에 담았을 때 지금의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까?
“언젠가 우리,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 마법처럼.”
그 말이 작별 인사였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그렇게 내게 말할 때 이미 떠날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다.
놀랍게도 분노보다 초조함이 앞섰다.
그 앤 죽은 영혼이었다. 내가 없으면 이 세계에 오래 머물 수 없다. 내가 가진 힘, 재생의 권능에 주기적으로 노출되어야 영혼이 안정적으로 이 땅에 매여 있을 수 있었다.
‘소멸하면 안 되는데.’
그래서 결국은 찾아 나서기로 했다. 아마 또다시 어느 인간의 몸에 들어가 세상의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고 있을 것이다.
자의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직접 찾는 수밖에.
드넓은 이렐 반도, 세상의 끝이라 불리는 절벽 아래 펼쳐진 차디찬 북해, 심지어는 인간들의 세상까지도.
찾아서 다시 내 옆에 둬야지. 네가 예쁘다고 했던 내 곁에, 나의 반짝이는 겨울 속에.
단서는 그 애가 그토록 좋아했던 금발, 그리고 내도록 두르고 있던 마귀 귀어스트의 마기. 그 둘뿐이었으나 상관없었다. 어차피 신수에게는 남는 게 시간이다.
‘귀어스트라…….’
공교롭게도 그것은 여신 힐라이야가 한때 사랑했고 결국은 증오하게 된 마귀였다.
그녀가 자신을 따르는 신수 이클라스에게 자신의 이름을 딴 성검을 하사한 이유가 바로 귀어스트가 다시 활개 치는 미래를 대비하기 위함이다. 마귀를 정화하는 것은 여신의 오래된 숙원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마귀의 흔적을 쫓아가자.
그 애가 이 땅에 존재하기만 한다면 언제가 되었든 찾을 수 있다.
그렇게 오만하게 자신하며, ‘나’는 태어난 이래 처음으로 이렐 반도를 벗어났다.
결국 내가 손에 쥐게 될 것이 고작 그 애가 겪은 짧은 삶과 초라한 죽음에 대한 전말이라곤, 조금도 예상하지 못한 채로.
[지금 우리, 마법처럼>외전 2 끝
* * *
활짝 열린 창문으로 삭풍이 불어닥쳤다.
액체란 액체는 죄다 얼릴 기세의 혹한이었다. 칼바람은 바닥에 흥건한 피를 꽁꽁 얼리고 피비린내를 훑어갔다.
아이칼은 교단주의 침대에 걸터앉아 발을 까딱거렸다. 그의 발치에 교단주가 덜덜 떨며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아이칼은 늙은 노인의 이마에 푹 파인 주름에 시선을 주었다가, 손끝으로 제가 앉은 침대를 꾸욱 눌렀다.
“침대가 여전히 푹신하네. 편했겠어.”
“죄, 죄송…….”
“언제부터 내게 존대를 했나? 원래대로 해, 영감.”
교단주의 등이 흠칫 굳었다. 상대의 음성은 평연했으나 그렇다고 곧이곧대로 반말을 내뱉을 수야 없는 일이었다.
눈앞의 신수는 더는 예전의 어린 소년이 아니었다.
짧은 백색 머리칼이 열린 창문으로 불어 드는 칼바람에 가볍게 흩날렸다.
그는 교단주가 똑바로 마주 보고 서도 눈을 볼 수 없을 만큼 훌쩍 큰 장신이었다.
발목까지 끌리는 로브로도 감출 수 없는 체격이 두드러졌다. 성스러운 짐승이라는 위명에 맞게 숭고한 성상처럼 고결한 이목구비는 유년기보다 선이 굵고 날카로웠다.
이쪽을 오연하게 쏘아보는 눈빛이 서리처럼 차갑다. 무엇보다 폐부를 압박하는 엄청난 위압감에 숨을 쉴 수 없었다.
‘성체…….’
더는 부정할 수 없이, 완벽한 성체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