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Heiress of the Villain Family RAW novel - Chapter (164)
16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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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제의 최종 승자는 베르너 블라스코로 확정이 났다. 결승전에서 기권패가 나오는 유례없는 상황이 발생하기는 했지만 이견을 제시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것으로 모든 경기가 끝났다. 하지만 검술제는 아직 끝이 아니었다.
파르세네의 우승자가 결정되고 나면, 파르세네 경기장 뒤편에 있는 영예의 전당에서 검술제의 폐막을 기념하고 새롭게 결정된 랭킹을 발표하는 축하연이 열린다.
당연히 그 축하연에는 아스트로카 황족들과 오르겐 후작도 참석한다.
그 행사까지 참여하고, 계획한 일들을 마무리 지은 뒤 아스트로카로 돌아가는 것이 우리 블라스코가의 본래 일정이었다.
하지만 결승전에서 벌어진 일련의 일들로 축하연에는 뜻하지 않게 백의 교단까지 참석하게 됐다. 그 때문에 각국의 왕족들과 귀족들이 머무는 공사관들은 하나같이 바짝 긴장한 상태였다.
아스트로카 귀족들이 머무는 공관으로 돌아오는 동안 나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아이칼의 갑작스러운 등장으로 백지가 되어 버렸던 머릿속이 다시금 차분히 정리되고 있었다.
가장 처음 든 생각은.
‘절대적인 아군이 생겼다.’
단지 그가 내 친구라서가 아니다.
인간들은 대부분 신수를 두려워한다. 그것도 200년 만에 나타난 이클라스족의 성체, 성검 힐라이야의 주인이라면 더더욱.
게다가 아이칼이 이끌고 온 건 백의 교단이다.
견고한 중립, 선악의 심판자.
백의 교단이 가지는 상징적인 의미는 대륙 어느 곳에서나 통용된다.
‘블라스코가 백의 교단의 비호를 받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이웃 국가들을 우리 쪽으로 끌어들이기도 쉬워. 아스트로카의 우호 동맹국들은 말할 것도 없고, 어쩌면 대륙 중부와 서부의 강대국들까지도.’
블라스코의 최종 목표는 반란이다.
쿠데타가 깔끔하게 하루아침에 끝난다면 더할 나위 없지만, 대립이 장기화할 경우를 대비해 이쪽의 아군을 최대한 많이 만들어 둬야 했다.
유사시에 정치적으로는 물론이고 군사적으로도 지원을 요청할 수 있는 세력. 우선은 아스트로카와 국경을 접한 우호 동맹국들이 포섭 대상이었다.
아스트로카는 대륙 중부에서부터 동부까지 아우르는 대제국이다. 아스트로카와 국경을 맞댄 국가들은 말이 동맹국이지 실상은 속국이나 다름없었다.
지난 4년간, 아버지와 오빠는 그들의 정치 경제적 독립을 돕겠다는 의사를 은연중에 내보이며 유대를 다져 놓았다. 이제는 그들에게서 실질적인 동맹 의사를 끌어낼 때였다.
그 때문에 이번 파르세네 참석은 경기 관람이 아니라 그 이후에 이어질 국제적인 축하연에 본목적이 있었다.
그런데 백의 교단의 등장해 우리 쪽에 섰으니, 동맹국들을 포섭하는 과정이 엄청나게 단축된 것이다.
이제 백의 교단에서 적절한 명분거리만 던져 준다면 그들이 아스트로카에서 완전히 등을 돌리는 건 시간문제일 터.
‘그렇다면 관건은, 축하연에서 백의 교단이 어떤 명분을 던져 주느냐.’
그들이 아스트로카 황실을 ‘악’으로 규정해 마땅한 이유.
눈길이 저절로 아르닌 언니를 향했다.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후작의 손에 들어가 에펠 로드리고에게 전달된 아르닌 언니의 무기.
나도 모르는 새 입꼬리가 호선을 그렸다.
‘계획대로만 흘러가 준다면 최상의 시나리오다.’
다만 변수가 몇 개 있기는 했다.
일단 검술제 내내 나를 따라다니는 황태자 프리츠의 시선이 마음에 걸렸다.
아까도 곧바로 쫓아와 나를 붙잡았지.
‘지난 4년 동안 프리츠에게선 별다른 수상한 지점을 발견하지 못했는데…….’
황태자도 이제는 만년 2인자라는 사실에 부들부들 떨던 애송이 청소년이 아니었다. 그의 시선은 언제든 감시와 의심의 눈길로 뒤바뀔 수 있다.
‘조심해서 나쁠 거 없으니까. 남은 축하연 기간 동안 프리츠 곁에는 얼씬도 하지 말아야겠다.’
막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마차에 앉아 돌아오는 내내 조용하던 아버지가 절묘하게도 비슷한 말을 꺼내셨다.
“뭐니 뭐니 해도, 남자를 제일 조심해야 한다, 카티샤.”
“아?”
어떻게 아셨지?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제 보니 언니와 오빠도 아버지와 비슷한 표정들을 짓고 있었다. 그제야 난 마차 안의 분위기가 무척이나 음울하게 가라앉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버지가 세상을 잃은 표정으로 중얼거리셨다.
“아직 애긴데, 이런 잔소리를 하게 되다니…….”
“저 아기 아닌데요…….”
“아니긴. 쬐끄만 금귤 같은 게 서재 문을 부술 기세로 들이닥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아버지, 딴 길로 새지 마세요.”
베르너가 단호하게 아버지의 넋두리를 끊었다. 그러더니 비장한 눈빛으로 날 돌아본다.
“우리가 그간 너무 방심했어, 카티샤. 성체화가 끝나면 다시 돌아오리란 건 알았지만 이렇게 앞뒤 없이 들이닥칠 줄은 몰랐지. 미리 대비했어야 했는데. 그러면 미리 널 가르칠 수도 있었을 테고…….”
“제가 뭘 배워야 하는데요?”
“그야 당연히, 남자 조심하는 법이지!”
“됐어, 베르너. 카티랑은 내가 이야기할 테니까 넌 닥쳐.”
이번에는 아르닌 언니가 성가시다는 듯 베르너의 말을 끊었다.
“아버지도 조용히 하세요. 이런 걸 가르치는 건 언니 몫이니까. 카티는 언니랑 얘기 좀 하자.”
때마침 마차가 공사관의 별관 앞에 멈췄다.
나는 영문을 모르고 언니의 손에 이끌려 침실로 올라갔다. 흘끗 뒤를 돌아보니 아버지와 오빠는 여전히 우중충한 낯빛이었다.
역시, 저렇게 심각할 이유라면…….
“언니. 백의 교단이 걸고넘어질 구실이라면 우리가 원래 계획했던 대로……”
“카티, 언니가 진지하게 당부하는데, 너 이제 그 신수랑 아가 때처럼 그렇게 스스럼없이 지내면 안 돼.”
“응?”
이번에도 나만 어리둥절해졌다.
이 이유가 아니었어?
후, 답답한 한숨을 쉰 언니가 검지를 척 치켜세웠다.
“자, 카티샤. 따라 해. 아키 그놈이 손을 잡으려고 하면 일단 물러난다.”
“어어……. 왜요?”
“보통 그게 시작인 경우가 많으니까. 그리고 이렇게 한 걸음 앞까지 다가와서 끌어안으려고 하거나, 뽀뽀하려고 한다거나, 그보다 더한 걸 하려고 하면……”
“그보다 더한 게 뭔데?”
“그러니까 예를 들면 키……. 하아.”
차마 말을 잇지 못한 언니가 두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나는 어리둥절해서 언니를 올려다보았다.
키? 키, 뭐?
“우리 카티, 아직 애긴데…….”
“……?”
언니가 숨을 가다듬었다. 그리곤 결심한 듯 내 양어깨를 짚었다. 눈빛이 최후의 전투를 앞둔 장군처럼 결연하기까지 하다.
“후, 그러니까. 그놈이 키스하려고 덤벼들면, 절대 허락하면 안 돼.”
“응……?”
언니의 말을 듣자마자 입이 멍청하게 벌어졌다.
언니가 사정없이 쐐기를 박았다.
“그 이상의 것은 더더욱 안 되겠지?”
그제야 나는 언니가 이렇게 안절부절못하는 이유를 알았다. 덤으로 아빠와 오빠의 안색이 흙빛이었던 이유도.
‘키…….’
차마 다음 글자까지 이어 생각하지도 못한 채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나는 언니를 똑바로 보지 못하고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렸다. 손은 왜 저절로 맞잡아지는지 모를 일이다.
엄한 시선을 회피하며 우물쭈물 변명했다.
“아, 아키는 나한테 그런 거 안 해…….”
“그건 네가 너무 순진해서 그렇게 생각하는 거고, 카티. 남자는 보통 안 그래. 언니가 다 겪어 봐서 안다니까. 조금만 유하게 대해 주면 단단히 착각해서는 몸부터 들이미는 게 남자 새끼들이야. 베르너도 그럴걸? 제가 그 산증인이니까.”
“아…….”
“물론 그렇지 않은 바르고 성실한 청년도 있겠지. 하지만 그게 그놈은 아니라고! 언니의 촉이 외치고 있다니까……!”
졸지에 나는 나만 모르고 있던 언니와 오빠의 연애담까지 알게 돼 버렸다.
‘그러니까 둘 다 나 몰래 연애를 하고 있었다 이거지?’
두 살에 요절한 첫 번째 생은 물론이요, 한국에서 보낸 두 번째 생에도, 지금 세 번째 생에서도 연애와는 담 쌓은 사람으로서, 저게 다 가진 자의 여유라고 생각하니 배신감이 차올랐다.
“아예 네 방엘 들이지 마. 만나려거든 응접실이나, 다이닝 룸이나. 그런 건전한 곳에서만 보고, 침실은 절대 금지. 특히 침대는! 같은 침대는 이제 절대……”
“치, 언니도 오빠도 다 해 봤다면서 왜 나는 안 돼?”
내 반항에 아르닌 언니가 뒷골을 잡았다.
“넌 아직 성년도 아니야, 카티샤!”
“이제 한 달도 안 남았는데요?”
“아닌 건 아닌 거지!”
“그럼 한 달 뒤에는 돼요?”
“뭐어!”
아르닌 언니가 꼭 아까의 아빠처럼 나라 잃은 얼굴이 되었다.
나는 황급히 변명했다.
“아니, 그렇다고 내가, 그, 아키랑 그런 걸 하겠다는 건 아니고…….”
“세상에, 카티……. 이미 그렇게 말했다는 것부터가, 힐라이야시여, 맙소사. 어린 양을 보우하소서……. 제기랄, 힐라이야는 그놈 신이잖아? 다른, 그래, 역시 질투와 불화의 여신 카시아 님께 빌어야!”
“안 해요. 진짜로……!”
아까부터 계속 목덜미가 뜨끈뜨끈한 게, 아무래도 몸이 다시 안 좋아지려는 게 틀림없다. 얼른 이 민망한 대화를 마무리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안 할게요. 조심할게요. 애초에 생각도 없었어요!”
“정말? 약속한 거다?”
“으응…….”
나는 눈을 내리깔고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오늘 밤에 내 방으로 그를 불러들였다는 사실은, 일단 오늘은 비밀에 부치기로 마음먹은 채로.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