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Heiress of the Villain Family RAW novel - Chapter (166)
166화
* * *
“검술제에는 왜 온 거야?”
“네가 파르세네로 올 예정이라고 들어서.”
“누구한테?”
“이스마.”
“아아, 그렇구나. 아저씨는 어떻게 아셨담. 근데 그러면 검술제에 참가는 왜 했어?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알아?”
“알아. 원래 이럴 계획은 아니었지만, 여러모로 인세에 끼어들기에 효과적인 방법이라. 네 아빠랑 거래한 바가 있기도 하고.”
“‘네 아빠’라니……. 최소한 공작님이라고는 해 줄래……?”
카티샤가 고운 눈썹을 찡그리며 웃었다.
아이칼은 그런 그녀를 가만히 관찰했다. 한참 재잘거리더니 이제야 긴장이 풀린 모양이다.
4년의 공백 때문인지 그를 낯설어하던 기색은 쏙 들어간 참이다. 제가 티 나지 않게 슬슬 그녀를 제 다리 사이로 끌어오는데도 별다른 저항이 없다.
“나는 아카데미 졸업했는데. 열한 살에 입학해서 열일곱 살에 졸업한 학생은 내가 처음이래. 수석 입학에 수석 졸업이다!”
“축하해. 밤 엄청 새웠겠네.”
“으응. 밤샘할 때 네 생각 엄청 났어. 아키가 있으면 옆에 조용히 앉아 있다가 간식거리 물려 줬을 텐데 하면서…….”
쉼 없이 조잘거리는 목소리가 듣기 좋다. 투명한 구슬이 또르르 굴러가는 듯 명랑한 목소리는 아직 변하지 않은 몇 가지 것들 중 하나였다.
아이칼은 자꾸만 움찔거리는 손을 조용히 주먹 쥐었다.
속눈썹이 섬세하게 뻗은 연한 녹색 눈과 부드럽게 솟은 콧날. 장밋빛 홍조가 도는 뺨과 계속해서 오물거리는 산호색 입술. 미끄러진 숄과 주황색 곱슬머리 사이로 드러난 목이 희었다.
‘언제 이렇게 컸지.’
어린 시절처럼 조그맣고 귀여운 소녀가 그대로 남아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게 바보 같을 지경이다.
그녀에게서 달콤한 향이 풍겼다. 자꾸만 목이 탔다.
그러나 아이칼은 곧 카티샤의 체향에 희미하게 밴 이질적인 냄새를 알아챘다. 아까부터 뭔가 이상하다 싶더라니…….
‘……피 냄새?’
“아르닌 언니 공방은 이제 공장이 됐어. 개량형 마공학 무기들을 잔뜩 찍어 내고 있거든. 이미 상당수는 팔렸고 나머지도 계약이 목전이었는데 이번 검술제에서 헛물을 켜서 지금쯤 아마 머리를 싸매고 있을……”
“카티, 잠깐만.”
아이칼은 고개를 저으며 그녀의 말을 막았다.
“가까이 와 봐.”
“……?”
그새 경계를 풀어 버린 카티샤가 고개를 갸웃하며 무릎걸음으로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왔다.
아이칼은 그녀의 목에서부터 가녀린 어깨선, 숄로 돌돌 감싼 가슴께와 그의 눈에는 똑 끊어질 것만 같아 보이는 허리를 훑었다.
어디지. 어디에서 피 냄새가 나는 거지?
카티샤가 의아하게 물었다.
“왜 그래?”
“다쳤어?”
“응?”
“피가 나는 것 같은데…….”
순진무구하게 되묻던 카티샤가 순간 굳었다. 멍하니 눈을 깜빡거리던 그녀의 얼굴이 이내 화르륵 불타올랐다.
“아, 그게. 그…….”
“어디 다쳤어? 봐 봐.”
“아냐!”
미쳤, 카티샤가 급기야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기껏 좁혔던 거리를 다시 슬금슬금 벌리기 시작한다.
“그, 아무것도 아니야. 다친 건 아니고, 그게, 그러니까…….”
“다친 게 아니면 왜 피가 나?”
아이칼이 미세하게 눈썹을 치켜세웠다.
신수도 넓게 보면 짐승이다. 인간의 피가 반이 섞였어도 본질은 동물에 가까웠다.
그중에서도 아이칼은 육식에 속했다. 유년기에는 그다지 예민하지 않았던 오감은 성체화를 거치며 잘 벼린 듯 날카로워졌다.
육식 동물에게 혈향은 식욕을 돋구는 군침 도는 만찬의 냄새다.
달콤한 체향에 뒤섞인 피 냄새가 후각을 자극했다. 한번 인식하기 시작하니 단내가 점차 짙어지고 있었다.
아이칼의 눈에 그늘이 졌다는 것을 모르는 카티샤가 조그맣게 웅얼거렸다.
“이건, 그러니까…… 여자는 어른이 되면 다 이래.”
“어른이 되면 피가 난다고? 인간은 그래?”
“그, 꼭 인간만 그런 건 아닌데. 너 같은 종족……은 아닐 수도 있고……. 어쨌든 이상한 건 아냐.”
그 엉성한 설명으로 의문이 풀릴 리가 없었다.
아이칼의 미간이 여러 의미로 점점 더 찌푸려졌다.
“알려 주기로 했잖아.”
“뭘?”
“내가 돌아오면, 그동안 어디가 어떻게 변했는지 전부 다 알려 주기로 약속했잖아. 기억 안 나?”
내가 너에 대해 모르는 게 단 하나도 없도록.
“……아.”
그 약속을 뒤늦게 떠올린 카티샤의 뺨이 빨개졌다.
* * *
잠시 뒤.
“…….”
“…….”
침대 위에 썰렁한 침묵이 흘렀다.
부끄러워 죽으려고 하는 건 카티샤 혼자였고, 아이칼은 방금까지 그녀가 더듬거리며 늘어놓은 설명을 곰곰이 곱씹는 중이었다.
장황하기 짝이 없는 카티샤의 설명을 요약하면, 그녀에게서 나는 피 냄새는 종족 번식을 위한 인간 여성체의 신체 변화에 수반하는 부작용, 정도가 되겠다.
카티샤는 꽤 전문적인 용어로 설명하려 애쓰는 것 같았지만 아이칼이 알아들은 건 딱 거기까지였다.
그가 못마땅하게 미간을 좁혔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출혈이라니.’
카티샤의 일부가 그렇게 덧없게 사라진다니 통탄할 일이다.
그딴 걸 하지 않을 방법은 없냐고 물었더니 한 30년쯤 지나면 안 할 거란다. 안 듣느니만 못한 대답이었다.
이런 건 예상을 못 했는데.
달갑지 않은 변화에 아이칼의 표정이 차츰 굳어 가는 사이, 카티샤는 이제 제 머리색과 얼굴색이 비슷할 지경에 이르렀다.
“내가 왜 너한테 이런 걸 말하고 있는 거야. 민망하게…….”
카티샤가 결국 두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그 반응에 아이칼은 도리어 의아해졌다.
“아픈 게 민망해? 왜? 이상한 거 아니라며.”
“……물론 그런 건 아니지. 아주 자연스러운 거고. 응…….”
입술을 꼭 앙다문 카티샤가 손부채질을 했다. 그러고도 또 한참을 하얗게 질린 채로 우물쭈물.
저렇게 말을 못 할 정도면 정말 안 좋은 건가 보다. 아이칼은 이제 그 월경이라는 게 대체 얼마나 심각한 고통을 수반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하기에 이르렀다.
“카티, 많이 아파?”
“……으응.”
카티샤가 결국 조그맣게 고개를 끄덕였다.
부끄러움이 한차례 지나가고 나니, 이제 거리낄 게 뭐 있겠냐 싶어진 모양이었다.
지금까지 열심히 참고 있었다는 듯, 이번엔 그가 당기지 않아도 먼저 제 발로 안겨 오며 칭얼거렸다.
“아파……. 주인님 아파, 아키.”
어릴 적 습관이었다. 카티샤는 제 가족이라는 자들에게는 도통 약한 모습을 보이기를 싫어하면서, 그에게는 제 기분이나 상태를 스스럼없이 미주알고주알 조잘대곤 했다. 원체 어리광이 많아 맘껏 투정을 부리는 걸 좋아한다.
“진짜 거지 같아. 넌 상상도 못 할걸. 한 달에 일주일씩이나 좀비처럼 흐느적거려야 한다니, 이건 불공평해.”
그런 것치고는 언사가 조금 과격했지만…….
‘그래도 귀여워.’
한 달에 며칠씩이나 그렇게 아파야 한다니 마음이 쓰리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칭얼대는 카티는 귀엽다. 이렇게 어리광을 부리는 상대가 자신뿐이라는 점은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럽고.
그리고 이렇게 바짝 안겨 오는 보드랍고 따끈한 몸은…….
의식하지 못한 사이 아이칼의 눈이 아래로 미끄러졌다. 카티샤가 야무지게 치켜올린 것이 무색하게 도로 흘러내린 숄 아래로 가는 등허리가 드러났다. 부드러운 면 위로 어깨뼈의 굴곡이 톡 불거져 있었다.
예쁘다.
건드려 보고 싶게.
카티를 껴안았던 적은 셀 수도 없이 많지만, ‘이런’ 카티샤를 안는 건 처음이다.
아이칼은 불타는 고구마가 된 카티샤가 더듬더듬 늘어놓았던 설명 중 한 구절을 되새겼다.
“아이, 에서 어른, 이 되는 거야……. 네가 성체화를 겪은 것처럼, 여자들이 겪는 변화인 거지.”
소녀에서 여자가 되었다는 증빙 같은 것이라.
그런 변화를 체감할 수 있는 부분들은 사실 아주 많았다. 젖살이 빠져 갸름하고 섬세해진 얼굴선. 혹은 더 붉고 통통해진 입술이라든가. 족히 한 뼘은 더 큰 키와 길쭉하고 낭창해진 몸선. 쏙 들어가고 나오는 허리선이라든가, 확연히 굴곡이 진 가슴이라든가.
무심코 거기까지 생각하는 순간, 카티샤가 그의 목을 끌어안으며 몸을 가까이 붙였다. 그리고 자연스레, 아이칼은 지금까지 미처 신경이 닿지 못했던 부분을 인식했다.
‘……아.’
옷이 얇다.
체온은 뜨겁고.
인지하는 순간 등골이 오싹했다.
잠자코 카티샤의 등에 머물러 있던 그의 손이 움찔거렸다.
본능적으로 알았다. 지금 이 손이 어디로 향해야 그녀의 변화를 가장 만족스럽게 느낄 수 있을지.
“실은 요즘 몸이 진짜 안 좋아.”
카티샤가 그렇게 말하지만 않았더라면 망설이지 않고 실행에 옮겼을 것이다.
숨까지 멈춘 아이칼의 머릿속에 찰나간 치열한 고민이 스쳤다.
“……그래?”
그러나 그녀의 등 위에서 망설이던 손은 이내 꽉 주먹 쥐어졌다.
얄팍한 등허리를 천천히 쓸어내리는 손길에 아쉬움이 짙게 묻었다.
“어떻게 해 줄까?”
“아무것도 안 해도 돼.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냐. 그냥, 내가 짜증을 내도 들어 주고, 갑자기 고슴도치처럼 굴어도 그러려니 하고. 그거면 돼.”
“아니잖아. 그게 끝이 아닐 텐데?”
아이칼은 목 뒤로 갈증을 삼키며 그녀의 손을 가져갔다.
손바닥이 위로 향하게 뒤집어 놓고 오러를 뽑아냈다.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짙어진 색의 오러가 작은 손 위에 고였다. 인상이 저절로 구겨졌다.
‘색이…….’
마기가 깊숙이 밴 주황색 오러 군데군데 검은빛이 섞여 있었다. 마기와 뒤섞여 쉽게 분리하기가 힘든 영역이다.
그러고 보니 카티샤의 오러를 정화해주지 않은지도 4년이 훌쩍 넘었다.
아이칼은 주저 없이 제 오러를 그녀의 몸속에 밀어 넣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