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Heiress of the Villain Family RAW novel - Chapter (167)
167화
카티샤가 눈을 크게 뜨고 숨을 집어삼켰다.
“자, 자, 잠깐만. 차갑…… 아읏.”
진저리 치며 뒤로 물러나려는 그녀를 아이칼이 도로 끌고 왔다. 도망가지 못하게 손으로 가느다란 등을 꾹 눌러 제게 바싹 붙였다.
“참아.”
“싫어, 천천히 해. 진짜 차갑다고……!”
“금방 괜찮아져. 그러게 내가…….”
마귀랑 놀지 말랬잖아.
아이칼은 그 의미 없는 힐난을 목 뒤로 삼켰다. 어차피 카티는 예전부터 그의 조언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그의 몸을 한 바퀴 통과해 나온 카티샤의 오러가 서서히 본래의 빛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고스란히 그녀의 몸에 다시 흘려 넣자, 상반된 오러가 다시금 그녀의 안에서 균형을 맞추어 갔다.
“으, 이상해……. 오랜만이라 그런가. 넌 여전히 차갑다…….”
카티샤가 바르르 몸을 떨었다. 연약한 떨림과 귓전으로 쏟아지는 가쁜 호흡이 묘하게 자극적이다.
딱딱하게 굳었던 아이칼의 낯이 다시금 흔들렸다.
반면 카티샤의 안색은 파랬다. 영 버티기가 어려운 모양이었다.
“천천히 해 줘. 천천히. 그러면 괜찮아.”
이것보다 어떻게 더 천천히 해?
그들은 외형만 변한 게 아니었다. 아이칼이 내내 걱정해 온 그대로, 신체적인 능력과 체력의 격차도 극명하게 벌어졌다.
“그리고, 좀 덜 춥게…….”
게다가 따듯한 체온은 아이칼이 카티샤에게 나눠 주기 어려운 것 중 하나였다. 몸에 열기를 끌어올리려면 할 수는 있지만, 아마 인간에게 적절한 수준은 아닐 것이다.
아이칼은 입술 안쪽을 깨물며 이불을 끌어와 그녀의 몸에 덮었다.
반색하며 이불을 똘똘 만 카티샤가 이를 부딪치며 중얼거렸다.
“권능이, 아직은, 남아 있나 보네.”
“안 없어져. 적어도 네게 쓸 만큼은.”
“어떻게 그래? 446년인데. 나도 다 알아. 로켓에서 다 읽었다고.”
“여신께서 단번에 앗아 갈 셈은 아니신 모양이지. 그건 카티가 걱정할 부분이 아니야.”
“네가 또 이상한 짓 할까 봐 이러는 거잖아. 또 뭔가를 걸고 여신과 거래를 하려고 든다거나.”
“네가 하지 말라고 하면 안 해.”
“……생각은 있었다는 거야?”
아이칼은 대답을 미루고 카티샤에게서 마기를 몰아내는 데만 신경을 기울였다.
탁한 마기가 허공으로 흩어질수록 카티샤의 안색이 차츰 돌아왔다.
“배 아직도 아파?”
“아니. 지금은 훨씬 나아.”
카티샤가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카티샤의 몸 위에서 피어오르는 오러가 한결 맑고 가벼워진 것이 육안으로 보였다. 내내 찡그리고 있던 미간도 거짓말처럼 펴져 있다.
카티샤가 새침하게 웃었다.
“역시 효과가 좋네, 내 치료제. 대가를 치러야 하니 어쩌니 해서 걱정했는데.”
“그것 역시도 네가 염려할 부분이 아니고.”
아이칼은 카티샤의 표정을 꼼꼼히 살폈다.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그는 의심의 눈빛을 거두지 못했다.
‘이 정도로도 충분하다고?’
그럴 리가 없을 텐데…….
힐라이야의 권능은 크게 세 갈래로 나뉘었다.
정화, 치유, 그리고 재생.
후자로 갈수록 상위 개념이었다.
각각의 권능으로 타락한 것을 깨끗이 정화하고, 손상된 것을 아물게 하며, 이미 파괴되어 사라진 것을 원상태로 되살린다.
446년 올해의 첫날, 아이칼은 그중 일부를 잃었다.
권능이 어디까지 남아 있고 또 남은 것이 얼마나 빠르게 소실될지 그는 아직까지도 파악하는 중이었다. 일단 재생 능력을 완전히 잃은 것까지는 확인했다.
그런데 ‘치유’는 애매했다. 될 때도 있었고, 되지 않을 때도 있었다.
“정말 안 아파?”
“그렇다니까.”
개운하게 심호흡한 카티샤가 그의 목을 끌어안은 채 무게를 실었다.
하잘것없는 무게였지만 일단은 밀려나 주었다.
아이칼을 침대에 대뜸 눕혀 버리곤 그 옆에 따라 자리 잡은 카티샤가 눈을 감았다.
“이제 잘래.”
“……잔다고?”
“응. 그동안 이놈의 마기가 짓누르는 느낌 때문에 몸이 축축 늘어졌는데, 이제 좀 살 것 같아. 지금 딱 잠자기 좋은 타이밍이야. 이제 눈만 감으면 바로 잘 수 있어.”
졸음이 몰려온다는 사람치고는 말이 길었다. 그러나 아픈 애가 이제 자겠다는데 차마 저지할 수가 없어서, 아이칼은 결국 그녀 쪽으로 살짝 몸을 돌렸다.
아무렇지도 않게 그의 팔베개를 벤 카티샤가 얼굴이 보이지 않을 만큼 품에 폭 파고들었다.
이쯤 되면 대체 누가 누구에게 더 치대는 건지.
“…….”
아이칼은 무심코 눈을 아래로 내렸다가 애매하게 회피했다.
어째 곤란한 상황의 연속이다. 조심성 없이 눕는 바람에 어깨에 걸친 숄이 아무렇게나 흐트러져 있었다. 이쯤 되니 자연스럽게 의문이 생긴다.
‘얘가 원래 이렇게 입으나마나 한 옷을 입고 다녔나.’
기억을 더듬어 봐도 화려한 원색과 눈이 돌아갈 만큼 어지러운 패턴을 자랑하는 프릴 잠옷 외에는 떠오르는 게 없었다.
그사이 취향도 바뀐 걸까. 하지만 그 해괴한 취향이 하루아침에 바뀔 만한 건 아니었는데…….
그렇다고 다시 그걸 입겠다고 하면 아무래도 이쪽이 좀 더 따듯하고, 말랑거리고. 눈도 아프지 않지만.
그러나 장점만큼이나 단점도 명확했다. 본능에 충실한데다 인내해본 역사조차도 거의 없는 손이 그녀의 허리를 타고 미끄러졌다. 그러다 곧 정신을 차리고 가까스로 멈춘다.
“…….”
어쩐지 오늘 이후로 밤마다 고단해지리란 예감이 들었다.
그 월경인지 뭔지는 언제 끝난댔지, 사흘 뒤? 아니면 나흘? 일단 오늘은 절대 아니다.
아프다는데 뭘 더 어떻게 할 수도 없고.
‘……이불…….’
아이칼은 낮은 한숨을 내쉰 뒤, 두리번거리며 다른 이불이 더 없나 확인했다. 그 바람에 그는 카티샤가 배가 아픈지 아프지 않은지 재차 확인하려던 것을 깜빡 잊었다.
제게 얼굴을 파묻어 버린 카티샤의 눈물 그렁그렁한 눈 역시 미처 보지 못했다.
‘거짓말쟁이. 권능이 남긴 뭐가 남아……. 아픈 건 그대로인데.’
서로에게 속마음의 일부를 모른 척 감춘 밤이 그렇게 지나갔다.
* * *
몸이 좋았다가 안 좋았다가, 아주 널을 뛴다.
새벽녘, 비몽사몽간에 한 생각이다.
나는 잠결에 허리에 손을 얹고 오만상을 찌푸렸다. 어젯밤에 아이칼이 마기에 물든 오러를 일부 정화해 주며 몸이 가벼워지기는 했지만, 지긋지긋한 월경통은 그대로였다. 아이칼의 치유 능력이 100퍼센트 발휘되지 않았다는 증거다.
‘그리고 너무 차가워…….’
아이칼이 두르고 있는 한기는 소년 시절과는 비할 바가 못 됐다.
고작 추위 때문에 떨어지고 싶지 않아서 오기로 버텼더니 이상 신호가 또 몸으로 온다.
‘이것만은 절대로 입도 뻥끗 못 하겠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다시 스르르 잠이 들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주위에 훈기가 돌았다.
[참지 마. 네가 참으면 내가 몰라.]귓가에 나직하게 떨어지는 목소리를 들은 것 같기도 하고…….
어쨌거나 도중부터 몸이 따듯해진 덕분에 늦은 아침까지 푹 잤다. 그렇게 실컷 자고 일어난 건 좋은데, 눈을 뜨자마자 보인 것에 절로 비명이 나왔다.
“어어엄마야……!”
무척이나 커다랗고 뜨끈한 것에 몸이 반쯤 파묻혀 있었다. 괴상한 비명을 지르며 용수철처럼 침대에서 튕겨 나왔다.
[잘 잤어?]때마침 머릿속으로 직접 전해져 오는 목소리가 없었다면 기절했을지도 모른다.
“아키……?”
방금까지 내 곁에 배를 깔고 엎드려 있던 짐승이 슥 머리를 들었다.
크다.
나는 멍청하게 그를 바라봤다.
침대 반쪽을 전부 덮을 만큼 몸체가 커다랬다. 윤기가 흐르는 하얀 털 군데군데 검은 장미 모양의 무늬가 나 있다. 그것은 몸체를 반쯤 휘감을 정도로 길고 두꺼운 꼬리를 입에 물고 있었다.
나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새끼……가 아니겠구나, 이제…….”
그래, 생각해 보니 그렇다. 인간화한 모습이 그렇게나 바뀌었는데 본체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스윽 몸을 일으킨 짐승이 내 쪽으로 어슬렁어슬렁 다가왔다. 그것이 툭 뱉은 길고 두꺼운 꼬리가 아래위로 흔들렸다.
‘저건 기분이 좋은 상태이거나, 혹은 긍정의 표현.’
[이 모습은 싫어?]커다란 몸체를 생각하면 믿을 수 없을 만큼 가볍게, 설표가 소파 위로 뛰어올랐다.
나는 얼결에 그것에게 떠밀려 소파에 눕고 말았다.
‘어, 어, 어, 엄마야.’
실상 그것은 내게 전혀 무게를 싣고 있지 않았음에도 깔린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것, 그러니까 이제 더는 아키라는 깜찍한 애칭으로 부를 수 없는 눈표범은 아랑곳하지 않고 내게 머리를 비벼 댔다.
[옛날엔 좋아했잖아.]그건 네가 내 품 안에 쏙 차게 안기는 새끼였을 때고.
내 품에 만족스럽게 자리를 잡고 코를 비비는 것만은 새끼였을 때의 습관과 똑같았다.
[싫어도 어쩔 수 없어. 네가 너무 추워해서.]그제야 나는 나를 에워싸다시피 한 복슬복슬한 털이 무척 따끈하다는 걸 알아차렸다. 간밤 나를 둘러싼 온기가 바로 그에게서 왔나 보다.
[본체인 게 체온을 조절하기가 더 쉬워.]“그렇구나…….”
“추우면 춥다고 해, 카티.”
본능적으로 눈표범의 부들부들한 털을 쓰다듬고 있는데, 한순간에 그가 모습을 바꿨다.
나는 아이칼의 가슴팍 언저리를 만지작거리는 내 손을 발견하고 당장 거두어들였다.
‘미쳤어……!’
“네가 말을 하지 않으면 난 몰라. 내가 모르면 네가 다칠 수도 있어. 그러니까 숨기지 마.”
그 와중에도 난 아이칼이 구사하는 완벽한 삼단 논법에 감탄했고, 이른 아침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말끔하고 예쁜 그의 얼굴에 또 감탄했다.
그런데 그러고 나니 지금 내 몰골에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급하게 손등으로 눈가를 문질렀다.
‘눈곱, 눈곱……!’
천만다행으로 눈곱이나 말라붙은 눈물 자국 같은 건 없었다. 그래도 막 일어났으니 봐주기 좋은 꼴은 아닐 텐데.
물론 아이칼은 그런 내 혼란한 심정 따윈 눈치채지도 못했고, 알았더라도 대수롭잖게 여겼으리라.
사실 갑자기 이렇게 의식하는 것도 웃기긴 했다. 어렸을 땐 별 꼴을 다 보여 놓고선.
‘그래도 지금은 아냐!’
허둥지둥 엉망인 머리카락을 정리하는데, 그가 내 뺨에 불쑥 손등을 가져다 댔다.
“이 정도는 어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