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Heiress of the Villain Family RAW novel - Chapter (170)
170화
“어떻, 게……?”
패닉에 빠진 머리로도 가장 유력한 가설은 떠올랐다.
‘그럼, 그때 페르테스의 비기술에 당해 죽은 게.’
루테가 아니라 루티어드였다면?
형제의 이름으로 아직까지 살아 있는 루테가, 20년간 발톱을 숨기고 웅크리고 있던 그가 이제 와 본모습을 드러낸 것이라면, 그 이유는…….
“내, 내가 하지 않았어요.”
로사리아가 말라붙은 입술로 더듬더듬 말했다.
“내가 시킨 게 아니야. 나는, 나는. 그래, 나는 말렸어요, 공. 그때 그 사고는, 전부, 페르테스가…….”
그때 곡의 음률이 다시 한번 바뀌었다.
로사리아의 몸이 한 번 더 빙글 돌았다. 그 짧은 사이 그녀는 이쪽을 주시한 적지 않은 시선을 인식했다.
이곳은 파르세네의 전당이다. 온 대륙의 최정상들이 지금 그녀를 면밀히 관찰하고 있었다.
머리에 찬물을 뒤집어쓴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여기서 동요한 것을 들켰다간 끝장이다. 스스로 아스트로카가 블라스코를 해하였음을 증명하는 증거물을 제출하는 꼴이었다. 심지어 백의 교단까지 이 파르세네에 도착한 최악의 시기에!
겨우 허리를 펴고 선 로사리아를 보며 공작이 퍽 다정하게 조언했다.
“애원하는 자세가 틀렸습니다, 폐하. 무릎을 아끼면 안 되지요. 거짓말도 하면 안 되고.”
“고, 공작.”
“물론 그래 봤자 달라지는 건 없었을 테지만.”
목이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더 이상 발뺌하는 건 의미가 없었다.
“우리에게…… 복수를 하려는 건가요?”
한 번 더, 로사리아는 스텝을 밟으며 한 바퀴를 돌았다. 왈츠곡은 점점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20년이 지났어요. 다 지난 마당에, 이, 이제 와서 복수를 꿈꾼다고 당신이 얻는 게 뭐죠?”
“…….”
“주, 죽은 사람은 안 돌아와. 무용한 복수에 힘 쏟지 말고 원하는 걸 말해요. 폐하께, 내가 폐하께 간언을 올릴 테니까.”
“간언?”
공작이 어이가 없다는 듯 그녀의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했다.
“나는 형과 내 아내가 될 여자를 잃었고, 내 조카들은 부모를 잃었고.”
“…….”
“내 딸은 한 번 죽은 걸로도 모자라 다시 살아나고도 부모 없이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그저 간언이라. 고작 그거라?”
“원하는 게, 있다면…… 말을……”
“사람 넷의 목숨. 남은 자들이 보낸 20년의 세월. 그 끔찍한 비극의 대가를 당신들 목숨이 아니면 대체 뭘로 배상할 겁니까?”
공작에게 잡힌 로사리아의 손이 위태롭게 꺾였다.
그대로 손가락이 부러질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이 엄습했다. 허리에 닿은 그의 손에는 칼날이 들려 있을 것만 같았다.
냉혹하고 스산한 음성이 귓구멍을 파고들었다.
“하나 알려 드릴까요, 로사리아 오르겐.”
“무, 무엇을?”
“오늘 밤, 당신들 셋 중 누군가는 무사히 펠라임으로 돌아가지 못할 겁니다. 아- 아들까지 합치면 넷인가?”
로사리아의 안색이 백짓장처럼 새하얘졌다.
공작이 웃음기 띤 음성으로 속삭였다.
“누가 될까? 가장 먼저 처리되는 건.”
그녀의 어깨가 멀리서도 보일 만큼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으나, 이미 새파란 살기가 로사리아의 주위를 겹겹이 에워싸고 있었다.
“그리고 또 그다음은 누굴까?”
“고, 공…….”
“그렇게 마지막은?”
로사리아는 자신이 살려 달라고 비명을 질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상 그녀의 입술은 파리하게 질려 숨만 씩씩거릴 뿐이었다. 그녀는 살기에 관통당하고 있었다.
‘숨, 숨이…….’
폐부를 할퀴는 듯한 통증이 닥친 순간.
곡이 끝났다.
로사리아는 자리에 엉거주춤 멈춰 섰다. 주위의 커플들이 서로에게 우아하게 인사하고 있었다.
정확한 박자에 멈춰 선 공작이 그녀에게서 손을 뗐다. 끼고 있던 검은 장갑을 한 짝씩 벗는다.
허물처럼 그에게서 떨어져 나온 장갑이 로사리아의 손안에 툭, 툭 떨어졌다. 그녀에게 닿았던 부분을 몸에 지니는 것조차 혐오스럽다는 듯한 태도에 모멸감이 밀려들었다.
파트너에게 의례적인 미소조차 짓지 않은 공작이 돌아섰다.
망연히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기를 또 얼마. 심상찮은 분위기를 인지한 프리츠가 다가와 그녀를 자리에서 이끌었다.
“어머니, 괜찮으세요? 안색이…….”
“……프리츠.”
로사리아는 아들의 소맷자락을 세게 움켜쥐었다.
도망쳐야 한다.
루티어드는 인내와 절제를 안다. 그러나 루테는 달랐다. 그는 하고자 하면 할 것이다.
‘죽일 거야.’
무려 20년을 기다려 온 자다. 쉽게 죽여 주진 않을 것이라고, 광기가 번들거리던 새파란 눈이 예고하고 있었다.
페르테스, 프리츠, 오르겐 후작, 그리고 자신.
넷 중 하나는 펠라임에 도착하기 전에 살해당한다.
로사리아는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아들을 연회장에서 끌어냈다.
“공관으로 돌아가야 한다. 당장! 그리고 거기 너, 가서 로드리고 경을 불러 호위하게 해. 그리고 오르겐 후작께도, 지금 바로 블라스코보다 먼저 아르템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을 전달…….”
그때였다. 열정과 열기가 떠도는 홀의 머리 위로 냉기가 스쳤다.
육중한 무언가가 질질 끌리는 듯한 소리가 괴이쩍게 울려 퍼졌다. 떠들썩하던 연회장 안이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누군가 홀에 들어서고 있었다.
막 정원으로 통하는 테라스를 이용해 연회장을 빠져나가려던 로사리아가 자리에 우뚝 멈추었다.
흰 가면을 쓰고 백색 제복을 입은 두 명의 교단병이 그녀의 앞길을 막고 있었다.
‘백의 교단.’
로사리아는 천천히 돌아섰다. 눈을 찌를 듯한 샹들리에 빛에도 물들지 않은 정결한 백색이 눈을 사로잡았다.
신수가 홀에 도착했다.
영문도 모르고 로사리아의 손에 끌려가던 프리츠가 어느새 연회장 한복판까지 들어선 청년을 발견하고 인상을 찌푸렸다.
“파수꾼…….”
그러나 그의 탐탁잖은 기색은 곧 경악으로 뒤바뀌었다.
신수의 소맷자락이 온통 피범벅이었다. 그는 피가 지저분하게 튄 손으로 누군가의 멱살을 틀어쥐고 있었다.
“……쿨럭.”
목이 거의 졸리다시피 한 채 질질 끌려온 사내가 고통스럽게 기침했다. 저항이 심했던 탓에 얼굴 반쪽이 피떡이었다.
그의 얼굴을 알아본 귀족들이 침음을 흘렸다. 로사리아와 프리츠, 오르겐 후작은 이미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형편없는 몰골로 끌려온 저자는 에펠 로드리고, 이번 검술제에서 전체 랭킹 3위를 기록한 아스트로카 황실의 기사단장이었다.
* * *
“아마 시각적인 효과가 굉장할 거야. 일부러 특수 효과를 다 때려 넣었거든.”
나는 아이칼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오전 중에 아르닌 언니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에펠 로드리고 경이 가진 무기는 아르닌 언니가 특별히 고심해서 제작한 검이었다. 그가 반격을 꾀하기도 전에 아이칼이 묵사발을 만들어 놓는 바람에 그 검의 진짜 위력이 발현하지 않은 것뿐이다.
하지만 오히려 잘됐다. 백의 교단의 손에 그 무기의 비밀이 밝혀지는 쪽이 훨씬 더 극적이니까.
아이칼은 연회장에 들어선 직후부터 단 한마디도 내뱉지 않았다.
그는 피투성이가 된 로드리고 경을 도축당한 가축처럼 끌고 들어와서는 연회장 한복판에 던져 놓고, 그의 옆구리에서 달랑거리는 검집을 발로 차 허공으로 튕겨 올렸다. 검을 낚아채 발도하는 동작까지 물 흐르듯 유려하게 이어졌다.
저 검을 완성하던 날, 아르닌 언니가 해 주었던 설명이 머릿속에 메아리쳤다.
“여기엔 두 가지 마법 수식이 새겨져 있어. 첫째, 오러 흡수 및 정제 마법. 오러 유저가 아닌 자의 체내 오러를 흡수해 검기로 전환하지. 평범한 인간을 오러 유저로 둔갑시키는 마법이야.”
검자루를 쥔 아이칼의 손을 타고 하얀 오러가 흘러나가는 것이 보였다. 검은빛이 돌던 검날에 새하얀 검기가 끼었다.
“둘째, 오러 증폭 마법. 검에 끌어올린 검기의 위력을 정확히 두 배로 뻥튀기해 주는 마법이지.”
검날에 유유히 흐르던 검기가 미친 듯이 소용돌이치며 증식하기 시작했다.
아이칼이 검을 횡으로 가볍게 휘두르자, 초승달 모양으로 날아간 검기가 정면의 파이프 오르간을 박살 냈다.
“……!”
이제는 오러를 눈으로 보지 못하는 이들까지도 장내에 흐르는 압도적인 기운을 체감하고 있었다. 산소조차 짓누르는 강대한 기백을 두 배로 불렸으니 오죽하겠나.
“어…… 하지만 그렇게 되면 그냥 미친 사기급 무기가 되는 거 아니에요, 언니?”
“그럴 리가. 난 그 두 가지 마법에 제한을 걸어 놓지 않았거든. 게다가, 두 배씩이나 증폭한 오러는 금강석도 못 버텨 내.”
저 검은 사용자의 오러를 무한히 빨아들인다. 생명 에너지인 오러는 피와 같아서, 심장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몸 전체로 순환하며 결코 무한하지 않다.
“그러니 한계 없이 계속해서 빨아들인 오러가 임계치를 넘기면…….”
기억 속에서 아르닌 언니가 빙그레 미소 지었다. 경쾌하게 손가락을 딱 맞부딪치며.
“터지지. 펑.”
아이칼의 손에서 검이 폭발했다. 비정상적으로 증식해 허공에 짙게 낀 오러 역시 굉음을 내며 터져 나갔다.
콰앙-!
지축을 울리는 진동과 고막이 터질 듯한 굉음이 장내를 뒤흔들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