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Heiress of the Villain Family RAW novel - Chapter (171)
171화
이곳저곳에서 사람들이 팔로 머리를 감싸며 비명을 질렀다.
“위험, 위험. 하여튼 아르닌, 과격하긴.”
베르너 오빠가 내 어깨를 감싸 안으며 보호하듯 앞을 막았다.
‘언니가 장담했던 게 맞았네. 엄청 직관적이다…….’
뿌연 먼지구름이 걷히자, 여전히 그 자리에 우뚝 서 있는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얼른 까치발을 들고 오빠의 어깨 옆으로 눈을 쏙 내밀었다.
‘괜찮은 거지? 폭발하겠다 싶을 즈음에서 적당히 손을 떼라고 말해 놨는데.’
여기까지는 내가 그린 그림과 한 치의 어긋남도 없었다.
백의 교단이 아스트로카에 개입하려는 이유가 황실이 검증되지 않은 위험한 마도 무기를 무분별하게 대륙 전역에 유통시키려 했기 때문이라면?
그 정황을 파악하기 위해 검술제에 난입했다고 한다면.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명분이다. 바로 그걸 보여 주기 위한 쇼였다.
그러나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나는 하던 생각을 전부 잊었다.
투둑, 툭.
아이칼의 발치로 산산이 조각난 검날이 떨어졌다.
그가 검자루까지 살뜰히 부서진 검을 무신경하게 손에서 털어 냈다. 끈적한 핏방울이 공중에 휘날렸다.
이제는 반대로 사위가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아스트로카 황실과 오르겐 후작가가 몇 년간 득의양양하게 전면에 내세워 왔던 마공학 무기가 개박살이 난 것이다.
좌중의 시선이 천천히 옮겨 갔다. 송곳 같은 수백 개의 시선이 오르겐 후작에게로 꽂혀 들었다.
싸늘하게 가라앉은 군중이 무언으로 후작을 압박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분명 완전무결한 고대 역작의 재현이라 떠벌리고 다녔으면서.
후작이 바짝 마른 입술을 힘겹게 여는 것이 보였다.
“시, 신수가 검을 잡은 탓이오. 인간의 무기가 신의 힘을 어찌 이기겠어……!”
“저 모습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옵니까, 후작?”
그와 가장 가까이 있던 페테로 왕국의 귀족 청년이 날카롭게 반문했다.
“저 손을 좀 보십시오. 파수꾼의 손을요!”
그제야 후작은 신수를 다시 살폈다. 오래지 않아 사태를 파악한 그의 낯이 희게 질렸다.
“인간이 쥐었다면 머리까지 터져 나갔겠군.”
신수가 무심히 중얼거리며 오른손을 왼팔 소매에 대강 문질러 닦았다. 엉망으로 찢어진 손바닥에서 피가 울컥울컥 뿜어 나오고 있었다.
그가 제작한 무기가 폭발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사용자에게, 그것도 신수에게 상처를 입혔다.
오르겐 후작과 마도 무기 수급 계약을 맺었던 나라의 장들이 기가 막힌다는 듯 헛숨을 내뱉었다. 그들 중에는 이미 마도 무기를 들여와 국경과 수도에 배급한 나라들도 몇 끼어 있었다.
공중에 피비린내가 짙었다.
아이칼은 익숙하지 않은 통증에 미간을 보일 듯 말 듯 찌푸렸다가, 고개를 들어 2층의 귀빈석을 길게 훑었다.
“이 정교한 쓰레기를 가져간 머저리들은 전부 회수해. 알아들었나?”
파랗게 질린 왕족 몇 명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저마다 기사를 불러 급히 명령을 내리느라 2층의 귀빈석이 잠시 소란스러워졌다.
누군가 소리 높여 외쳤다.
“그, 그렇다면 회수한 무기들은 전부 어디로 보내면 되오?”
“블라스코.”
아이칼이 흘끗 오른편으로 시선을 던졌다.
주머니에 손을 비딱하게 찔러 넣고 선 루테 블라스코가 어깨를 으쓱했다. 동의한다는 의사 표현이었다.
블라스코는 현존하는 검가 중 가장 오랜 시간 명맥을 이어 온 가문이었다. 심지어 가주와 직계들은 오러 유저이기까지 하다.
‘한 마디로 전문가!’
서부 국가의 왕족들의 얼굴에 그제야 화색이 돌았다.
신수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딱 한 명을 제외하면.
“무슨 소리! 오르겐으로 반환하십시오.”
오르겐 후작이 다급히 끼어들었다.
“이쪽에서 제작부터 유통까지 전담했으니, 제품에 하자가 있다면 다시 일괄적으로 재점검하는 것도 이쪽의 몫…….”
“블라스코로 보내겠소!”
서부의 분쟁 지역 중 한 곳인 로아힌 왕국의 왕자가 벌떡 일어나 외쳤다.
“아스트로카와 오르겐이 서부의 전시 상황을 이용하려 이득을 취하려 한 것일지 우리가 어찌 아는가?”
“그런 의도는 결단코……”
“제3자에게 맡기면 명명백백하게 가려낼 수 있겠지. 후작, 그대가 정말 결백하다면 블라스코에 조사를 맡기지 않을 이유도 없지 않겠소?”
대꾸할 말이 없었다.
후작이 분한 기색으로 입을 다물자, 관전하고 있던 아이칼이 나직하게 내뱉었다.
“조사가 끝난 뒤로 벌어지는 모든 일의 책임은 아스트로카 황실에 묻겠다.”
“…….”
“이의 있나?”
장내에 살벌한 긴장감이 돌았다. 귀족들의 시선이 하나둘씩 2층 귀빈석의 정중앙 자리로 향했다. 수백 개의 시선이 가리키는 곳에서 누군가 입을 열었다.
“협조하지.”
페르테스 베르누아. 신수가 막 영예의 전당에 들어섰을 때부터 사태를 지켜보고 있었던 아스트로카의 황제였다.
“대륙 평화의 수호자로서 이 일의 오명을 벗기 위해서라도 협조해야지. 염려 마시게, 파수꾼.”
대제국의 황제답게 여유와 위엄을 잃지 않은 목소리였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아이칼을 보고 있지 않았다.
황제가 그의 발아래 펼쳐진 홀을 천천히 뜯어보았다. 가장 먼저 테라스 근처에서 떨고 있는 아내 로사리아와 그 곁의 아들 프리츠를 확인한 뒤, 시선을 옮겨 반대편의 오르겐 후작을 잠시 일별했다.
감정을 읽을 수 없는 눈이 마지막으로 도달한 곳은 블라스코 공작이었다.
눈이 마주치고, 공작이 빙긋 웃었다.
그가 고개를 비스듬히 까딱해 인사를 해 보였다. 분명 저를 올려다보고 있음에도, 한없이 깔아보는 듯 불손한 눈빛. 기시감이 선득하게 목덜미를 베었다.
‘저자.’
황제, 페르테스의 시선이 정해진 것처럼 다시 테라스 근처의 황후에게로 돌아갔다.
로사리아의 낯빛은 병자처럼 해쓱하게 질려 있었다.
무심하고 차분한 성격의 그녀가 저렇게까지 격렬히 동요하는 적은 드물었다. 로사리아는 분명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이 블라스코 공작에게 붙박여 떠나지 않았다.
극심한 공포감에 사로잡힌 와중에도 공작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마치 관짝을 열고 나온 시체를 보는 양.
그 시체가 한때의 정인이라도 했던 양 두려워하면서도 애달파하는…….
‘아.’
그 순간, 황제는 마침내 사태의 진면목을 명확히 파악했다.
그의 눈동자에 살기 어린 불꽃이 튀었다.
루테 블라스코.
자신의 아내가 생애 단 한 번 유일하게 마음을 주었던 놈이다.
그 놈이다.
인지하자마자 남자에게 남아 있던 루티어드 블라스코의 흔적이 완전히 씻겨 내려갔다.
20년 전과 거의 변하지도 않은 모습의 사내가 대신 그 자리를 차지했다. 이제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놈이 돌아왔다.
페르테스가 손등에 힘줄이 불거질 만큼 세게 주먹을 움켜쥔 순간이었다. 적막해진 공간에 불길한 소음이 울려 퍼졌다.
삐이이이-.
오르겐 후작의 주머니에서 나는 소리였다.
* * *
후작은 파르세네 영예의 전당을 뛰쳐나오며 손바닥만 한 둥근 마력석을 마구 두드렸다.
비상시를 대비해 수도의 오르겐 저택과 연결해 둔 통신석이었다. 긴급한 일이 생기면 곧바로 경보음을 내도록 설계되어 있다.
조금 전 이것이 시끄럽게 소음을 내는 바람에 그 핑계로 홀을 벗어났다. 그러나 결코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마력석 위에 본가의 누군가 보내온 메시지가 떠올라 있었다.
《레바토 후작의 경매 낙찰 물건 반품 요청》
《일리아스 변경백으로부터의 항의》
《벨리가 자작령 연무장에서 폭발 사태》
전부 후작과 계약을 맺었던 아스트로카 지방 귀족들이었다. 이곳저곳에서 항의가 빗발치고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동시다발적으로!’
이렇게 되면 더는 해외 수주가 문제가 아니었다. 당장 아스트로카 국내의 귀족들에게 유통한 무기부터가 말썽이라면…….
후작은 코트 자락을 펄럭이며 입구에 대기한 마차를 향해 달렸다.
후작이 막 마차에 오르려는 순간, 어느샌가 따라온 로사리아가 다급히 그를 붙잡았다.
“지금 가시면 안 돼요, 아버지!”
“안 가면, 어디 숨을 곳이라도 있단 말이냐?”
“저와 폐하와 같이 가셔야 해요. 위험하다고요! 저들이, 루테가, 루테가 우리를…….”
“여기서 꾸물대다 오르겐이 고발이라도 당했다간 그를 어찌 수습하라고!”
오르겐 후작은 딸의 팔을 매몰차게 떼어 냈다. 아직은 수습할 기회가 있다. 아직은!
“텔레포트 진을 이용할 거다. 먼저 펠라임으로 돌아가 있을 테니, 넌 네 남편이나 잘 달래도록 해. 루테 그놈을 보고 또 폐하께서 눈이 뒤집히셨다간 될 일도 복잡해진다. 이제 블라스코의 꼬맹이들이 더는 어린애들이 아냐! 첫째와 둘째까지 전부 오러 유저라고!”
후작이 사납게 일갈하며 마차에 몸을 실었다. 눈물 젖은 딸의 얼굴이 마차 창문 밖으로 멀어졌다.
그는 매정하게 창문의 커튼을 내린 뒤 화를 다스렸다.
‘하자가 발생한 원인을 찾고, 적당히 보수해서 돌려주면 된다. 돈이야 잃겠지만 신용은 지킬 수 있어.’
마차가 전속력으로 파르세네 인근의 이동국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