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Heiress of the Villain Family RAW novel - Chapter (178)
178화
프리츠는 혼란의 바다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간신히 호흡을 골랐다.
‘아버지께서 카티샤의 부모를 죽였구나…….’
페르테스는 까만 절망으로 뒤덮이는 아들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어쩔 줄 모르고 방황하는 눈길, 당혹감에 질끈 깨문 입술, 미세하게 떨리는 손등……. 그 모든 단서를 조합하자 한 가지 사실이 튀어나왔다.
그는 참지 못하고 소리 내어 웃음을 터뜨렸다.
“피는 못 속인다고, 너도 어미를 닮았군. 오르겐의 핏줄들은 블라스코에 끌리도록 설계라도 되어 있는 것인가?”
마음을 들킨 프리츠의 귓불과 목덜미가 붉게 달아올랐다.
한참 동안 광소를 터뜨린 페르테스가 웃음기 남은 입가를 쓸었다.
“블라스코 근처에서 활동하던 오르겐 후작의 세작들을 전부 소환했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더군. 9년 전에 그 집안에 입양된 소녀가 옆에 끼고 살던 흰 털 새끼 짐승에 관해 말이다.”
“…….”
“파르세네에서 보니, 그것이 그 이클라스족의 하프였던 모양이야.”
프리츠도 블라스코 막내 공녀가 키우는 반려동물에 관해서는 익히 알았다. 함께 아카데미에서 수학하던 시절 그 하얀 눈표범은 특유의 사랑스러운 외양으로 종종 학생들의 화젯거리에 오르곤 했다.
“선악의 추를 원래대로 되돌리기 위해서라는 그럴듯한 이유를 붙이기는 했으나, 그 신수가 블라스코 쪽에 붙은 진짜 이유는 따로 있을 터. 아마 그 막내 공녀 때문이겠지?”
“…….”
“신수는 변덕스러운 만큼이나 독점욕이 강하다지. 신수가 공녀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는 한, 네가 그녀를 얻게 될 일은 없겠구나, 프리츠.”
페르테스의 집요한 시선이 아들에게 달라붙었다. 입술을 꾹 깨물고 흔들리는 시선을 감추기 위해 눈을 내리깐다. 프리츠는 명백히 동요하고 있었다.
페르테스는 탐탁지 않게 혀를 찼다. 저를 닮아 어릴 적부터 소유욕이 대단했던 아이다. 그러나 원하는 것을 효과적으로 손에 넣는 방법까지는 아직 몰랐다.
“프리츠, 갖고 싶은 것을 더 이상 갖지 못하게 되었을 때, 혹은 누군가에게 완전히 빼앗겼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니?”
“……말씀하십시오.”
“없애 버리는 거야.”
“…….”
“로사리아도 같은 선택을 했다. 가질 수 없다면 죽여 버리기로. 그 무의미한 감정에 잡아먹히기 전에.”
프리츠가 당장 내리깔았던 시선을 들었다.
“아버지! 지금 그 무슨!”
“네가 못 하겠다면 이번에도 내가 대신 해 주마.”
프리츠의 두 눈에 두려움이 한가득 들어찼다.
그에게 비친 아버지는 이제 더는 정상인으로 보이지 않았다. 광기가 번들거리는 황제의 만면에 잔인한 비소가 떠올라 있었다.
“더 이상 그놈들이 내 아내와 아들의 심기를 어지럽히지 못하게. 황실에 단 한 발자국도 들일 수 없게. 20년 전과는 비할 바 없이 절망하고 처절하게 울부짖도록.”
“아버지…… 폐하!”
“놈들보다 먼저 선수를 치는 거다. 시작은, 그래. 애석하게도 프리츠 네가 마음에 뒀다는 그 어린애부터.”
루테 블라스코와 신수를 한꺼번에 쥐고 흔들 수 있는 최고의 약점. 파르세네 최고의 장미라고 추켜세워지던 막내 공녀. 목표물을 정한 페르테스가 나른한 숨을 내쉬었다.
그가 아들을 돌아보며 다정하게 물었다.
“나를 도와줄 거지, 프리츠?”
“…….”
“내 아들로서, 그리고 가엾은 네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다음 대 아스트로카의 황제로서.”
“…….”
“그리할 거지, 프리츠?”
프리츠는 떨리는 입술을 말아 물었다. 결국 그 자리에서 그가 내놓을 수 있는 대답은 없었다.
* * *
아르템으로 돌아온 지 일주일이 흘렀다. 그 뜻인즉슨, 아이칼과 내가 처음으로 목소리를 높여 가며 싸운 지도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는 뜻이다.
우리 사이는 그날 밤과 달라진 게 없었다. 입을 열면 또 싸울까 봐 침묵을 지키는 쪽을 택했더니 마찬가지로 내게 말을 걸지 않더라.
대화하지 않겠다는 무언의 의지인지, 아예 눈표범 모습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쯤 되니 나도 오기가 생겼다.
‘그래, 누구 고집이 더 센지 어디 한번 해 보자.’
그러나 8일째 되는 날, 우리는 한 번 더 싸웠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아이칼이 옆에 없었고, 목에 걸고 잤던 로켓이 활짝 벌어져 있었다.
당장 상황을 눈치챈 내가 로켓으로 들어가려던 찰나 웬일로 인간화한 아이칼이 나타났다. 손에 푸른 공단으로 감싼 길쭉한 물건을 움켜쥔 채로.
내가 그의 눈에 띄지 않게 로켓 속에 숨겨 놓았던 마검이었다.
아이칼의 표정은 내가 지금까지 본 그 어떤 때보다 차갑고 싸늘하게 얼어붙어 있었다.
들켰다. 낭패다. 망했다.
나는 동요한 기색을 애써 감추며 손을 내밀었다.
“이리 줘.”
“싫어.”
“……어쩌려고?”
“네 아빠에게 당장 이거 가져가라고 할 거다.”
“미쳤어?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잡으면 큰일 나, 그거! 봉인도 온전치 않아서 금세 마기에 잠식될……!”
“다른 인간이 어찌 되든 내가 알 바 아니잖아.”
“우리 아빠가 죽어버려도 괜찮다고? 계속 그런 식으로 말할 거야? 따지고 보면, 네가 영령의 탑을 박살 내는 바람에 결국 내가 보관하게 된 셈이잖아.”
“그러니까 이걸 왜 네가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마검은 가주의 소유라며?”
“융통성이라는 걸 좀 발휘해 볼래? 너 아빠한테 입도 뻥끗하지 마……!”
“이거 놔.”
“지금 가면 너랑 다시는 같이 안 잘 거야.”
“그러든지, 그럼.”
“……하! 그래. 다 네 마음대로 해!”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일주일 만에 나눈 첫 대화이자, 그날의 마지막 대화가 되었다.
* * *
“사랑싸움도 참 유분수지요…….”
마가렛이 한숨을 쉬는 동시에 혀를 끌끌 찼다.
그녀가 욕조에 더운 물을 한 바가지 더 들이부으며 한탄했다.
“파르세네에서 다시 만나셨을 땐 그렇게 좋아 죽겠다는 얼굴을 하시더니, 일주일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으셨기에 이렇게 냉전 중이실까?”
“난 잘못 없어……. 그리고 사랑싸움 같은 거 아니야.”
욕조 안에서 무릎을 끌어안고 몸을 옹송그렸다. 향긋한 레몬 허브 향이 코끝을 간질였다. 뜨거운 물이 전신을 녹진하게 녹였다.
어제 아침에 그렇게 싸운 뒤, 결국 아이칼은 아빠에게 마검을 들고 찾아가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대가인지 뭔지 어젯밤엔 내 침실에도 들르지 않았다.
‘나쁜 놈…….’
얼굴이 저절로 우중충해졌다.
마가렛이 의아하게 고개를 갸웃했다.
“대체 뭐가 문제일까요? 그 신수에게 물어보려고 해도 도통 인간화를 하질 않아서, 말이나 붙일 수 있어야지.”
“아무래도 그 커다란 몸체를 하고 있으면 다가가기가……. 물기라도 하면 어떡해요. 새끼 땐 귀엽기만 했는데 지금은 성깔이 좀 있어 보여서. 아가씨, 손 이리 주세요.”
물속에서 내 손을 용케 찾은 카렌이 본격적으로 손톱을 다듬기 시작했다. 내 시녀 언니들은 가끔 이렇게 나를 때 빼고 광내는 재미로 사는 것 같을 때가 있다.
“아무튼, 그래서 좀 아쉬워요. 내가 매일 밥 챙겨 준 새끼 눈표범이 인간 모습으로는 어떻게 컸나 좀 보려고 했는데.”
“후후, 나는 봤지.”
내가 우울하게 물 표면에서 보글거리는 사이, 마가렛과 카렌은 주거니 받거니 저들끼리 아주 신이 났다.
“파르세네의 축하연이 열리던 날 오전에, 아주 잠깐이지만. 그리고 경기 기록이 담긴 영상석도 봤고. 세상에, 아가씨. 몇 년 전의 그 소년이라고는 생각도 못 하겠던데요. 아무리 신수라고는 하지만 그렇게 바람직하게 커도 되는 걸까요?”
“원래 그 나이대 사내애들은 빨리빨리 커. 우리 도련님만 해도 봐, 열일곱이랑, 스물둘이랑, 지금 스물여섯이랑 확확 다르잖아.”
듣다 보니 어이가 없다.
나는 괜히 물장구를 치며 볼멘소리로 투덜거렸다.
“둘, 어째 예전과는 입장이 완전히 반대다?”
“여러모로 예전하고는 다르니까요. 일단 백의 교단을 전부 이끌고 왔고요. 말 한마디로 나라 몇 개의 판도를 뒤바꾸는 절대 권력이잖아요.”
“게다가 젊고, 잘생겼죠. 부마 삼고 싶어서 발 동동 구르는 나라들이 한둘이 아닐걸요.”
부마?
속사포처럼 지나가는 카렌의 말 중 그 한 단어가 귀에 쏙 걸려들었다.
“어떻게든 신수와 만날 자리를 한 번만 마련해 달라는 서신들이 하루에도 수십 건씩 쏟아져요, 아가씨. 물론 아키는 거들떠도 안 보지만.”
신수가 인세에 나타났으니 눈독 들이는 나라들이 많을 것이라는 건 예상 범주 내였다.
하지만, 하지만…….
나는 얼떨떨하게 눈을 깜빡였다.
‘혼맥은 생각 못 했는데……?’
그건 인간의 방식이잖아.
‘신수도 결혼이라는 걸 하나?’
아버지 서재에서 뒤져 본 신수 대백과사전에는 하프가 인간과 결혼했다는 사례는 없던데.
쿼터도 거의 드물고……. 한곳에 정착하는 습성이 아니니까……. 하지만 아예 없는 건 또 아니었다.
머리에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증식하기 시작했다.
‘아키 옆에 다른 여자?’
상상 속에서 무심코 아이칼 옆에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있는 걸 그려 보았다가, 그만 기분이 바닥까지 메다 꽂히고 말았다.
그런 스스로를 인식하고 나니 이번에는 심장이 쿵 떨어졌다.
나는 한 박자 늦게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아냐, 아냐. 이미 전례가 있잖아. [지.우.마>를 생각해.’
지금은 사라진 세계에서 니엘라가 아이칼에게 은근슬쩍 추근거리던 장면들의 페이지가 후루룩 넘어갔다. 그리고 내 기분은 더더욱 저조해졌다.
“…….”
예전에는 어떻게 그 내용들을 좋다고 읽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못마땅했다.
대사 하나, 묘사 한 줄까지 다.
‘짜증 나…….’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