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Heiress of the Villain Family RAW novel - Chapter (183)
183화
니엘라가 통신석으로 보내온 전언은 이랬다.
《황태자가 아가씨를 데려오라고 명령했어요. 신수까지 따돌리지는 못하더라도, 블라스코 직계들은 모르게 하라고 하더군요.》
《네. 낌새를 보아서는 진부하게 납치 협박 살인이나 계획할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건 모르는 일이니까요. 대신 아가씨가 가시면 저는 나이락 오르겐과 함께 곧바로 황태자궁으로 들어갈 수 있어요.》
고민해 볼 법한 선택지였다.
니엘라가 하루라도 빨리 황궁에 들어가야만 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첫째.
블라스코의 다음 타깃은 황후다.
현재 황후는 황성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황후궁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고 있었다. 황제가 황후를 우리로서는 찾을 수 없는 피난처로 대피시키기 전에, 그녀 옆에 붙어 동향을 파악할 우리 쪽 사람이 반드시 필요했다. 이건 니엘라밖에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둘째.
황성의 마법 관리국 중앙에 있는 마나 인식 장치를 끌 사람이 필요했다.
황성을 포함한 수도 전역에는 이동 마법을 포함한 개인적인 마법 사용이 전면 금지되어 있었다.
황실 소속의 마법사들만 펠라임 내에서 활동할 수 있고, 허가받지 않은 마법 물품은 금지된다. 수도에서 임의로 마법을 사용하면 황성 마법 관리국의 마나 인식 장치에서 즉각 경보음이 울리며 곧바로 위치가 발각된다.
수도에서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추격전이나 유혈 사태에 적절히 대비하기 위해서는 마법, 특히 텔레포트석이 필수였다. 그러니 황성의 마력 인식 장치를 끄기만 해도 엄청난 이득이었다.
니엘라가 둘 중 하나만 해 줘도 상황이 우리 쪽에 훨씬 유리해진다.
그럼 이미 결론은 나와 있었다. 단지, 내가 프리츠와 직접 대면해야만 한다는 위험성이 있을 뿐.
하지만 그것도 달리 생각하면 영 손해인 것만은 아니다.
‘혹시라도 프리츠가 딴마음을 품고 나를 해치려 시도하기라도 하면, 그 자체로도 블라스코가 반란을 일으킬 훌륭한 명분이 돼.’
쿠데타에서 가장 중요한 건 정당성 있는 명분이다. 별것 아니어 보이는 명분으로 말미암은 전쟁이 세계의 판도를 바꾸고, 정당성을 얻은 반란군은 왕조의 이름을 갈아 치운다.
그러니 나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내 안전이 좀 더 확실하게 보장되기만 한다면 말이다.
……대체 그 방법의 하나로 왜 나와 아이칼의 약혼이 거론되는지는 의문이기는 하지만.
사실, 백의 교단의 파수꾼이자 신수가 내 곁에 껌딱지처럼 붙어 보호한다는 걸 동네방네 소문내는 것보다 확실한 방법이 있을까 싶기도 하고…….
원래 사람들은 남의 로맨스에 관심이 많지 않은가?
나는 내 허벅지에 태평하게 머리를 괸 설표를 흘끗 내려다보았다.
아이칼은 인간들이 뭐라 떠들던 영 관심이 없어 보였다. 지금 화제가 우리의 약혼이라는 걸 알고는 있나 모르겠다. 아니, 그 전에 얘가 과연 약혼이니 결혼이니 하는 의례의 의미를 알고는 있는지도 의문이었다.
“너도 좀 한마디 해 줄래……?”
눈표범이 꼬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리곤 슬슬 몸을 움직여 내게 더 딱 달라붙었다.
‘싫다는 거지, 이거.’
인간화했다간 가족들의 잔소리를 직격으로 맞을 게 뻔하니, 귀찮은 일은 애초에 만들지 않으려는 거다. 결과적으로는 똑똑한 선택이었다. 본체로 돌아가면 우리 아빠의 공격력을 반이나 깎을 수 있으니까.
아빠의 눈동자가 눈표범의 머리부터 꼬리까지 바쁘게 움직였다.
“네가 아무리 그렇게 귀엽게 생겼어도, 그런 눈으로 날 봐도…….”
“정신 차리세요, 아버지. 저 집채만 한 게 대체 어디가 귀여운데요!”
“백의 교단만 아니었으면. 신수만 아니었으면. 저 귀여운 무늬만 없었어도…….”
내가 보기에 가족들의 이성은 이미 결론을 내린 뒤였다. 마음이 머리를 따라가지 않을 뿐.
‘결국에는 정말로 성혼 이야기가 나와 버렸네.’
나는 조금 어색한 기분으로 눈표범의 귀 밑을 긁어 주었다. 그나마 인간 모습이 아니라 그런지 요즘 아키 한정으로 도지는 내 낯가림병도 훨씬 덜했다.
이대로라면 어영부영하는 사이에 정말로 얘한테 시집가게 생겼다.
눈물을 찍어 내던 베르너가 훌쩍이며 물었다.
“카티, 왜 그렇게 웃고 있어?”
“응?”
그제야 번쩍 정신이 들었다.
맞은편에 앉은 가족들이 이상한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제야 나는 내가 바보처럼 실실 웃고 있다는 걸 깨달고 무섭게 정색했다.
“안 웃었는데.”
“아닌데. 방금 분명히 은행 잔고 확인할 때보다 더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는데?”
“……좋아서 웃은 건 아니에요.”
“…….”
“진짜 아니야.”
부정할수록 가족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우중충해졌다.
카티가 저렇게 좋아하는데, 우리가 역시 방해가, 이성적으로나 감성적으로나 가장 말끔한 결론, 어쩌고저쩌고.
아빠와 언니, 오빠가 울상을 지으며 의견을 겨우겨우 합치하는 사이, 나는 입꼬리가 제멋대로 삐죽 솟지 않도록 안간힘을 기울여야 했다.
‘이상하다. 나는 생각도 없는데, 막상 허락해 주신다니까 왜 기분이 좋지?’
게다가 분명히 난 요즘 얘를 열심히 피해 다니는 중인데…….
아무래도 미스터리다. 내 마음을 나도 종잡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널뛰는 감정이 결국에는 어느 곳에 도착하게 될까?
* * *
내가 생애 처음 겪는 카오스에 빠져 있는 와중에도 시간은 착실히 흘렀다.
3월의 마지막 주, 나를 포함한 블라스코 직계들은 드디어 수도 펠라임에 도착했다.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며 영령들께서도 줄줄이 타운 하우스로 따라오셨다. 봉인진을 수도의 저택까지 확장하기 위해 사바나를 관리하는 12인의 마법사들까지 함께 우르르 도착했다.
각자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아버지는 이틀 뒤 열리는 귀족 회의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베르너는 타운 하우스에서 업무를 보았고, 아르닌 언니는 이미 도착하자마자 공방으로 직행했다. 아스트로카 각지와 타국에서 회수한 하자품들이 공방에 줄지어 도착하고 있었다.
“이럴 줄 알고 마법 수식 딱 한 글자만 일괄적으로 고치면 정상 작동하도록 계산해 놨지. 들어간 재료비가 얼만데, 그 많은 걸 왜 다 버려?”
언니는 사흘이면 충분하다며 의기양양하게 단언하곤 공방에 파묻혔다.
그리고 난 내일 프리츠를 만나러 갈 예정이다. 이미 니엘라가 장소를 통보해 왔다. 오빠가 먼저 약속 장소를 살핀 뒤 기사들을 심어 두었다.
그러니 내일부터는 본격적으로 바쁘게 움직여야 할 것이다. 당분간 마지막일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오늘 하루, 나는 아르닌 언니의 공방을 방문할 계획이었다. 오늘이 언니가 말한 사흘의 마지막 날이다.
문을 열고 나오자 맞은편 벽에 기대서 있던 아이칼이 눈을 들었다.
“……안녕.”
“응, 좋은 아침.”
어젯밤 그에게 오늘 외출할 거라는 사실을 미리 말해 두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나들이용 드레스와 모자를 갖춰 입은 나처럼 아이칼 역시 외출복 차림이었다. 아마 교단에서 입는 약식의 제복인 듯했다.
며칠의 시간이 더 지나는 동안 우리 사이에도 약간의 진전은 있었다.
일단 내가 그의 앞에서 더는 도망가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썼다. 대신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스킨십은 피했다.
“손 줘, 카티.”
“어…… 여기.”
음, 공교롭게도 ‘손잡기’는 그 소수의 꼭 필요한 스킨십에 속했다.
그에게 손을 내주자, 기다렸다는 듯 몸속으로 차가운 오러가 밀려들어 왔다.
“으…….”
요즘 아이칼은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내 오러를 정화하려고 들었다. 내가 스킨십을 꺼리니 그나마 허락해 주는 손을 한번 잡으면 도통 놓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럴 때의 아이칼은 어딘지 초조해 보였고, 나는 모르는 강박증에 시달리는 듯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아이칼의 오러가 불안정하게 일렁거리는 것을 느꼈고, 그가 입술 안쪽을 지그시 무는 것도 곁눈질로 보았다.
‘분리 불안일까……?’
특히 밤에는 더 심했다. 어젯밤에는 기어이 이런 말까지 해 나를 놀라게 만들었다.
“안고 자면 안 돼? 네가 일어나기 전에 갈게.”
한참을 꾹꾹 참고 참았던 초조함과 서러움이 결국 한계치를 넘어버린 듯했다.
“내가 다 미안해. 이제 네가 하지 말라는 건 아무것도 안 할게. 고집도 안 부리고, 제멋대로 굴지도 않고…….”
“아키.”
“귀찮게 안 할게…….”
‘어렸을 땐 참다가 터지면 훌쩍훌쩍 울었는데.’
이제는 눈물을 뚝뚝 떨구지는 않는 대신, 물기가 반질거리는 눈가에 발갛게 열이 올랐다. 그렇게 처연한 얼굴을 하고 있으면 나더러 어떻게 당해내라고.
“이상하다, 분리 불안은 졸업할 나이가 됐는데…….”
“그게 뭐야?”
“주인님이랑 떨어져 있기 싫어하는 강아지.”
“나 강아지 아닌데. 그게 좋으면 강아지 할까?”
“무슨, 아냐. 비유하자면 그렇다는 거지. ……들어와.”
어쨌든 그래서 결론은 어제도 같이 잤다.
밤, 침대, 그리고 나를 둘러싼 따끈한 체온과 단단한 품.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편안한 안정감을 주던 요소들이 이제는 반대로 나를 잠 못 들게 했다.
숨결이 목덜미를 스치고 체온이 옮겨 올 만큼 가까운 거리를 어떻게 당연하다고 여겼을까. 귓바퀴나 목선, 슬립 위로 드러난 어깨를 잘근잘근 깨물어 잇자국을 내는 행위를 어떻게…….
아이칼의 손에 잡힌 내 손은 무척이나 작아 보였다. 얼마나 세게 쥐고 있는지 그의 손등에 힘줄이 도드라져 있었다.
“……됐어?”
“아니.”
내 오러가 다시 맑은 주황빛을 띠고 나서야 아이칼이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곤 손을 잡은 채로 앞서 걷기 시작했다.
손을 놓을 타이밍을 놓친 나는 얼결에 그에게 이끌려 저택을 나섰다.
우리의 첫 수도 외출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