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Heiress of the Villain Family RAW novel - Chapter (189)
189화
“애원이라도 하고 싶으셨다면 방법이 잘못되었어요, 전하. 무릎을 그렇게 아껴서야 되겠어요?”
심지어는 빈정거리는 말투마저도 똑같았다.
카티샤가 곱씹을수록 기가 막힌다는 듯 피식거렸다.
“복수가 정당하다는 걸 인정한다니. 전하께서 인정하고 말고는 제게 썩 가치 있는 일이 아닌걸요. 황후의 짝사랑 따위에도 관심이 없고요. 그녀를 살려 달라는 부탁을 하러 오셨으면, 변명거리가 아니라 그에 상응하는 조건을 가져오셨어야죠.”
“……난 네게 자비를 구하는 거야. 네가 블라스코 공작을 설득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걸 아니까. 어차피 공작은 이쪽의 말을 들으려 하지도 않을 테니, 중간에 있는 네게……”
“왜 내가 중간에 있다고 생각해요? 내가 누구 때문에 죽었는데.”
“뭐?”
“전하의 어머니 때문에 난 엄마가 없고, 아빠도 없는 줄로만 알고 살았어요. 그런데 내가 왜 황후를 살려 둬야 하죠? 사실 오르겐 후작보다 먼저 죽었어야 하는 게 그 여자인데요.”
“무례하게 굴지 마, 공녀. 난 황태자야. 어머니를 그딴 식으로 지칭하지도 말고.”
프리츠가 눈썹을 치켜세웠다. 그의 눈에 기이한 안광이 비쳤다.
“난 싸우자고 공녀를 부른 게 아니야. 평화로운 방법으로 화해할 방법을 찾자는 거지. 그래서 내가…….”
그가 차마 할 수 없는 말을 하듯 입술을 꾹 깨물었다가 놓았다.
“아버지는 개의치 않겠다고 하잖아.”
“…….”
“폐하께서는, 내가 봐도 정상이 아니야. 늘 어렴풋이 느껴 오긴 했어. 그분은 나를, 어머니의 태에서 갈라져 나온 어머니의 부속품 정도로 인지하고 계신 것 같다고…….”
마치, 그런 가치라도 있으니 내가 어머니 곁에 있는 걸 묵인해 주고 있는 것처럼.
프리츠가 절망적으로 중얼거렸다.
페르테스는 아들에게 지나치리만큼 관심이 없었다. 로사리아와 함께 있을 때에는 부정을 연기하기라도 했지, 둘만 있을 때에는 프리츠에게 시선을 주는 적도 드물었다.
그래서 프리츠는 늘 황성보다는 오르겐 후작가가 편했고, 아카데미를 다니는 시간이 행복했다.
어렸을 적에는 아버지의 냉엄함이 황제의 위엄과 같은 거라 애써 합리화한 적도 있었지만, 결국 틀렸다. 페르테스의 세상에는 오로지 로사리아뿐이었다.
그렇다면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머니가 죽으면 자신이 과연 황실에서 살아남아 제위에 오를 수 있을까?
그 전에 미쳐 버린 아버지의 손에 어떤 식으로든 처리당하는 게 먼저가 아니고?
프리츠는 제게 명령하던 아버지의 비릿한 웃음을 떠올렸다.
“나를 도와줄 거지, 프리츠?”
그때 싫다고 말했으면, 아버지는 어떻게 나왔을까? 자신이 망설이고 있다는 걸 들켰다면.
“……나는 죽고 싶지 않아.”
프리츠는 두려웠다. 누구의 손에든 처리당하고 싶지 않다.
오르겐 후작의 시신이 끔찍한 꼴로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순간, 프리츠의 숨을 옥죈 건 다음은 내가 될 수도 있다는 본능적인 공포였다.
살아남을 확률을 높이려면, 조금이라도 더 자신의 편인 쪽에 붙어야만 했다. 그래도 아버지는 내게 손을 대지는 않겠지, 어머니만 멀쩡히 살아 계시면.
그러나 어머니가 죽으면…….
‘그렇게 되면 틀림없이 나도 죽어. 블라스코의 손에든, 아버지의 손에든.’
황후 로사리아는 죽어서는 안 된다.
어머니를 살려 준다는 확약만 받아 내면 블라스코에 일부 협력할 의향도 있었다. 블라스코가 페르테스를 처리하면, 자신은 아버지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고 다음 대 황위에 오르게 될 것이다.
“어머니와 나를 살려 준다고 약속하면, 내가 할 수 있는 한 네게 협력할게.”
프리츠의 목소리가 점차 다급해졌다.
“네게도 나쁜 조건은 아닐 거야. 잘 생각해 봐. 블라스코에 진짜 위협이 되는 건 나나 어머니가 아니라 아버지잖아…….”
“정말 숨만 붙어 있으면 된다는 건가요?”
카티샤가 냉담하게 그의 말을 잘랐다.
“잘 생각하세요, 전하. 거리의 부랑자로, 평민보다 못한 삶으로 내몰린대도 그저 살아만 있으면 족할지.”
“…….”
“설마 지금의 지위 그대로, 지금까지 누려 온 것들을 계속해서 향유할 있도록 놔두라고 부탁하는 건 아니실 거 아니에요?”
프리츠가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방금 뭐라고……?”
거리의 부랑자? 평민보다 못한?
그의 얼굴에 차츰 경악이 번지기 시작했다. 그런 식으로는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평생을 제국에서 가장 귀한 자로 살아온 그였다.
프리츠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나와 어머니를 거리로 쫓아내겠다는 거야? 내가 네게 협조해도?”
“숨만 붙여 놓는 것도 안 되겠느냐면서요?”
“하지만…….”
프리츠가 생각한 최악의 상황은 황후궁에 평생을 유폐당한다거나, 남부의 별장으로 쫓겨나 다시는 수도로 돌아오지 못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는 그 아래의 삶을 상상으로라도 그려 본 적이 없었다. 물론 지금만큼의 풍요를 누릴 순 없겠지만, 빈곤한 삶을 살게 되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죽기 싫다고 해서 가진 걸 다 뺏기고 지위마저 박탈당한 채 거리로 쫓겨나겠다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프리츠가 숫제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나는, 나는…….”
“전하께서는 뭐요? 가난해진다니까 무서우세요?”
“…….”
“잘 아시네요. 저도 가난이 세상에서 제일 무섭거든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카티샤가 메마르게 실소했다.
“결국 전하께선 아무것도 잃기 싫으신 거죠. 진짜로 제게 미안한 마음이 있기는 하세요? 꼭 그렇지도 않아 보이는데.”
“…….”
“제가 전하를 생각보다 과대평가했던 모양이에요. 자기중심적이긴 해도 악의는 없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카티샤에게 프리츠는 저를 볼 때마다 순진하게 얼굴을 붉히고, 말을 걸고 싶은 티를 풀풀 내고, 까맣게 잊어 갈 때쯤 편지를 보내 안부를 묻던 사람이었다. 적어도 그를 악인이라고 여긴 적은 없었다.
앞으로 닥칠 미래는 조금도 모른 채 오르겐 후작저에서의 평화로운 하루를 적어 보내던 그가 안타깝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제 앞에서 황후를 옹호하는 것만큼은 못 참는다.
카티샤가 아프게 입술을 깨물었다.
“……난 제자리로 돌아오는 데 너무 오래 걸렸어요.”
마기 한 조각에 의지해 육신도 없는 채로 대륙의 북쪽 끝까지 올라가 보기도 했고, 차원 너머로 내던져져 전혀 다른 세계에서 태어나 보기도 했다.
아무리 긍정적으로 살아 보려고 애써도 늘 가족은 없었고, 가진 돈도 없었고, 빚은 감당할 수 없이 늘어나기만 했다.
그렇게 고단한 두 번째 삶까지 겪고 나서야 겨우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왔다. 그러고도 이곳이 내가 정말 있어도 되는 곳인지 확신이 없어 어떻게든 자격을 증명해 보고자 끙끙거렸다.
늘 최선을 다해 장애물들을 잘 뛰어넘어 왔지만, 힘들지 않았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다. 그 모든 불행의 시작점이 바로 로사리아 오르겐, 그 여자였다.
그런데 그녀의 아들이 와서는 한다는 소리가 고작 ‘몰라서 그랬어요.’라니. 그딴 건 면죄부가 될 수 없었다.
카티샤가 싸늘하게 일갈했다.
“하실 말씀은 그것뿐이신가요?”
“…….”
“더 하실 말씀이 없으시다면 이만 가 보겠습니다.”
프리츠가 보는 그녀는 말이 통하지 않는 벽 같았다. 그가 이를 악물었다.
아이칼은 그런 그를 빤히 주시하고 있었다. 프리츠의 주위를 둘러싼 마나가 조금씩 흐름을 달리했다. 아이칼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선을 그리며 묵직하게 출렁거린다.
‘마법을 쓰려는 건가?’
아이칼이 카티샤의 뒤에 바짝 붙어 그녀의 허리를 팔로 감싸 안았다. 바닥에 낀 살얼음이 충격에 대비해 점차 두꺼워졌다.
아이칼이 대놓고 경계의 빛을 내비치는데도 프리츠는 개의치 않는 듯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겠네.”
프리츠가 고통스러운 음성으로 뇌까렸다.
죽기 싫다.
그러나 그렇다고 평민만도 못한 삶을 살기도 싫다.
그러니 아버지 몰래 블라스코와 거래하려던 계획은 물 건너갔다.
프리츠에게 남은 희망은 이제 하나뿐이었다.
그는 결심했다.
나는 지금까지와 달라지는 것 하나 없이 살아남을 거다. 그러니 나를 살릴 가능성이 높은 쪽에 붙을 거야. 원래의 계획대로 일을 진행하자. 아버지가 명령하신 대로.
페르테스의 냉혹한 낯이 또다시 눈앞을 스쳤다.
“죽은 장인께서 말씀하셨던 적이 있지. 루테, 아니지. 루티어드를 죽였을 때와 같은 방식으로 그 귀한 막내따님을 없애면 공작이 받을 충격이 두 배이지 않겠느냐고.”
“아버지…….”
“그러고 보니 프리츠, 블라스코의 막내 공녀와 같은 시기에 아카데미를 다녔더구나.”
“…….”
“나보다는 네가 그 어린애에게 접근할 기회가 많겠지. 내 알려 주마.”
“무엇을, 말입니까?”
“아스트로카 황실에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비기 말이다.”
아스트로카의 황제들은 초대의 피를 물려받아 대대로 걸출한 마법사였다. 특히 현 황제 페르테스는 현존하는 가장 강한 마법사로 알려져 있다. 프리츠는 그의 천재성을 모두 물려받지는 못했으나, 적어도 범인보다는 마법에 뛰어났다.
프리츠가 천천히 두 손바닥을 맞대었다.
“미안해, 카티샤. 내 마지막 손길을 네가 뿌리쳤으니…… 이제 내게는 네가 악인이야.”
그 순간, 아이칼은 프리츠의 양 손바닥 사이에 떠오른 마법 수식을 읽었다.
번개처럼 뻗어 나간 얼음 줄기가 수식을 세로로 베었다.
그 순간, 아이칼의 오러를 타고 프리츠가 엮었던 마나의 형태가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오러가 역방향으로 뒤틀린다.
황실의 비기. 황제 페르테스가 루티어드 블라스코에게 썼다던, 체내 오러의 흐름을 역으로 꼬아 놓는 바로 그 마법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