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Heiress of the Villain Family RAW novel - Chapter (192)
192화
“저도 나랑 똑같은 주제에……. 마귀 따위 잘난 이 검으로 직접 베었으면 될 걸, 굳이 신수에게 맡긴 이유가 뭔데? 제 손으로 하기 싫었던 거 아냐. 안 그래? 자기가 못 하겠으니까 대신 떠맡겨 놓곤 네 본분이니 뭐니.”
“야아, 너 말이 너무 심……”
“마귀를 사랑했다는 거 누가 모를 줄 알고. 내게 훈계할 계제가……”
“무슨 소리야, 너 그러다 진짜 여신께 혼나!”
신성 모독이 점차 도를 지나친다.
나는 경악할 만한 소릴 여과 없이 내뱉는 저 입을 한 대 때릴까 말까 심각하게 고민했다.
“왜 이래, 대체? 여신께서 날 납치해 가기라도 하신대?”
“……아니.”
“그럼 뭐가 문제인 거야?”
늘 확신으로만 가득 차 있던 은푸른빛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네가 나를 불완전하게 만들어.”
문득 그 말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하지만 인간은 원래 완벽할 수 없다. 모자란 부분은 다른 이가 채워 주고, 또 다른 이의 모자람을 채워 주며 사는 게 인간이니까.
혼자서는 온전치 못해도 함께라면 비로소 완전해지는 것이 인간이 사는 방식이다. 나는 그것을 아이칼에게 알려 주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가볍게 한숨을 쉬고, 그가 내게 했던 것처럼 얼굴 이곳저곳에 쪽쪽 입을 맞춰 주었다. 종전과 달리 차분하게 목소리를 바꾸어 조곤조곤 달래기 시작했다.
“우리 옛날에 약속했던 거 잊었어? 나는 항상 네게로 돌아간다고 했잖아.”
“…….”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든, 혹시 또 오랫동안 떨어져 있어야 한다고 해도, 상처 하나 없이, 말짱하게 네게 돌아올게. 약속해.”
“…….”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위험한 짓도 하지 말고.”
아이칼은 한참을 더 침묵했고, 마침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눈동자에 쉴 새 없이 퍼지던 파문이 드디어 멈췄다. 아직 스산한 예기까지 가라앉지는 않았으나, 적어도 이성을 되찾은 것 같기는 했다.
“……정말이지.”
나는 검지로 아이칼의 코끝을 장난스럽게 꾹 눌렀다.
“내 울보 기사님. 이제 그만 진정하고, 옷 좀 입혀 주실래요? 슬슬 추운데.”
“아…….”
그제야 아이칼이 내가 어떤 꼴을 하고 있는지 드디어 알아챘다.
그가 얼굴을 파묻고 있던 어깨며 가슴께에 눈물 자국이 흥건했다.
“……허.”
제가 이만큼 울었다는 것조차 지금 알았는지, 아이칼이 맥없이 헛웃음을 지었다. 눈가가 빨갰다.
“너 우는 거 진짜 오랜만에 봐. 귀여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카티뿐일걸.”
아이칼이 깊이 호흡을 고르며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의 엄지가 지나가는 곳마다 눈물이 희미한 연기를 피워 올리며 증발하기 시작했다.
손가락이 가슴 근처로 다가오자, 나는 괜히 긴장하여 어깨를 움츠렸다. 그러나 아이칼은 가슴 위쪽을 한참 보고만 있더니 고개를 숙여 그곳에 입술을 댔다. 혀로 할짝거리며 살갗에 남은 눈물 자국을 지워 냈다.
나는 숨조차 쉬지 못하고 그 야릇한 감각을 고스란히 느껴야만 했다. 혀가 천을 제치고 아래로 미끄러지기라도 할까 봐 섣불리 움직일 수가 없었다.
실제로 아이칼은 찰나간 고민하는 듯했다. 내 허리를 감싼 손이 느릿하게 움직이더니, 어깨뼈 아래를 가로지르는 끈을 슬며시 움켜쥐었다가 놓기를 반복했다. 그의 손톱이 등을 긁듯이 스칠 때마다 몸이 오싹했다.
“…….”
입안이 바짝 말랐다.
어둑하게 잠긴 은푸른빛 눈동자 속에 너울거리기 시작한 충동의 열기가 내게까지 고스란히 번졌다.
“……아이칼.”
미쳤어.
머리가 그렇게 외치고 있는데도 혀가 제멋대로 움직였다.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돼.”
“…….”
“어차피 여기선 시간이 흐르지 않고…….”
“카티.”
“나보고 느리다며? 맞춰 볼 테니까……. 대신 네가 이렇게 불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아이칼이 고개를 비틀어 나를 올려다보았다.
“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는 알아?”
“……넌 가끔 나를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처럼 보더라.”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그렇게 중얼거리자, 아이칼이 나직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너를 알다가도 모르겠어.”
“……싫으면 말고.”
“누가 싫대?”
그렇게 되묻기는 했지만, 그는 더 이상은 내게 손을 대지 않았다.
그저 한참 동안 빗장뼈 부근에 입술만 대고 있다가, 손으로 옆을 더듬어 옷가지를 잡았다. 그러곤 내 팔을 한 쪽씩 재킷에 끼워 주었다. 단추까지 꼼꼼하게 채워 준다.
“고, 고마워.”
얼결에 인사해 버렸다.
아이칼은 대답하는 대신 망토를 찾아 내 어깨 위에 둘렀다.
몸이 완전히 가려진 뒤에도 흐르는 미묘한 공기에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어색함과 민망함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대는 내게 아이칼이 장난스럽게 속삭였다.
“주기로 한 건 나중에 확실히 받아 갈게.”
“……나중이 있다고는 말 안 했는데.”
“나중이 없어도 지금 여기서는 안 되지. 나도 그 정도 상식은 있어.”
그가 키득거리며 내 콧잔등에 쪽 입을 맞췄다. 귓불이 참을 수 없이 화끈거렸지만, 어느새 다시 평소처럼 잔잔하게 가라앉은 아이칼의 눈동자를 보고 나니 그제야 안도감이 밀려왔다.
‘그런데 나중이라고 하면 언제……?’
그제야 내가 벌인 짓의 의미가 현실로 다가왔다.
안절부절못하는 나를 빤히 보던 아이칼이 귀엽다는 듯 머리를 쓰다듬고 뺨을 꼬집었다.
“……아기 취급하지 마.”
“아기라기엔 너무 용감하던데?”
“계속 장난치면 다 없던 일로 할 거야…….”
“알겠어. 입 다물게.”
아이칼이 얌전히 입을 닫는 시늉을 했다. 거짓말처럼 다시 기분이 좋아진 모양이다.
나는 공연히 혀로 입술만 축이다가, 겨우 그에게 눈짓했다.
“그, 그럼 이제 나가자.”
“그래.”
“나가자마자 일단 앞뒤 가릴 것 없이 다 얼려 버리는 거야. 뭐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니까. 알지?”
“걱정 마.”
아이칼이 나를 가볍게 안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제한 시간이 슬슬 다 되어 가는지, 로켓이 따끈하게 달아올라 있었다.
밖으로 나가는 통로인 궤짝에 한 발씩 걸치자마자, 눈앞의 풍경이 뒤바뀌었다.
* * *
로켓에서 나오자마자 일시 정지 상태였던 프리츠의 이동 마법진이 마저 작동했다.
마접진을 이루던 마지막 수식이 사라졌을 때, 우리는 어느 건물의 지하로 내려와 있었다. 기둥에 새겨진 황가의 문양을 보아하니 황성의 지하로 내려온 게 틀림없었다.
굳이 그렇게 추론할 것도 없었다. 우리가 돌바닥에 발을 딛자마자 황실 직속 기사단복을 입은 기사들이 벌 떼같이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아이칼은 번거롭게 도망치거나 한 명 한 명 잡아 상대하는 대신, 더 빠르고 효율적인 방법을 택했다.
지하 감옥 전체가 무서운 속도로 얼어붙기 시작했다. 속으로 채 10초를 세기도 전에 기사들의 발이 바닥에 붙은 채 꽁꽁 얼었다. 어찌나 험악한 기세였던지, 4년 전 그가 영령의 탑을 살뜰히 부숴 버렸던 때가 저절로 떠올랐다.
나는 급히 그를 만류했다.
“죽이지는 마. 얼음도 남지 않게 하고. 몰래 황성에 잠입해서 기사들을 죽였다는 사실이 밖으로 퍼지면 곤란해지니까.”
막 검을 뽑으려던 아이칼이 얌전히 손을 내려놓았다.
“장기까지 얼리지는 않았어. 겉만 녹으면 멀쩡해질 거야.”
“……음, 그건 그것대로 대단하다.”
서른 명의 기사들을 서른 개의 살아 있는 얼음 동상으로 만들어 놓은 아이칼이 내게 손짓했다.
나는 후다닥 달려가 그의 손을 잡았다.
“마법 관리국까지 가자. 들키지 않고 갈 수 있겠어?”
“이리 와. 안겨.”
잽싸게 아이칼의 목을 끌어안자 그가 내 허리와 무릎 뒤를 받쳐 가뿐히 들어 올렸다.
바깥에서 수십 명, 어쩌면 백 명이 넘는 기사들이 한꺼번에 우르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바닥이 진동한 순간, 머리 위의 창살이 쩍 소리를 내며 뜯겨 나갔다.
강한 바람이 두피까지 훑고 지나갔다. 방금까지 있던 곳이 지하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거대한 탑이었다. 황성의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을 만큼 높다란 탑.
‘뭔가, 영령의 탑과 비슷하게 생긴 것 같은데?’
그런 의문이 든 순간, 아이칼이 나를 안고서 밑으로 몸을 날렸다.
허공에 불러낸 얼음 발판을 딛고 도약하기를 몇 차례, 중앙부에 마나가 밀도 높게 응집되어 있는 돔 형태의 건물이 눈에 띄었다. 황성 안에 있는 공공 기관, 마법 관리국이다.
“저기야, 아키. 저 안에 있는 마력 제어 장치를 망가뜨리면 돼.”
그렇게 되면 펠라임 내에서 모든 마법의 사용이 가능해진다.
당장 텔레포트석을 이용해 타운 하우스로 돌아갈 수 있는 건 물론이고, 펠라임에는 출입이 엄격히 금지된 가문의 사병들을 불러올 수도 있었다.
돔 위에 가볍게 착지한 아이칼이 나를 내려놓았다.
희미하게 보이는 돔 아래에 수천 개의 기하학적인 도형이 입체적으로 얼기설기 엉켜 있었다. 거대한 마법진 덩어리가 시계 방향으로 느리게 회전했다.
아이칼이 유리 돔을 발로 가볍게 걷어찼다. 돔 안쪽 천장에서부터 수십 개의 고드름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바닥에 닿을 만큼 길게 자라난 고드름이 사방에서 마력 제어 장치를 관통했다.
마법진 덩어리가 서서히 회전을 멈추었다. 주위의 마나를 통제하고 있던 무형의 벽이 사라지자, 일순 호흡이 탁 트였다. 굳이 시험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해제, 됐다.’
가벼운 전율에 어깨를 떠는데, 아이칼이 불쑥 입을 열었다.
“카티, 텔레포트석 어디 있어?”
“아, 여기.”
급히 재킷 주머니에 손을 넣어 텔레포트석 두 개를 꺼냈다. 로켓 속에서 가지고 나온 것이다.
아이칼이 반투명한 유리 돔 아래로 흘끗 시선을 던졌다. 그리고 주위에 들어찬 황성의 건물들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점찍어 둔 희생양을 찾는 양, 눈빛의 서슬이 푸르다. 이내 그가 조용히 말했다.
“먼저 가, 카티.”
나는 돔 위에 엉거주춤 선 채 그를 올려다보았다.
먼저 가라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