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Heiress of the Villain Family RAW novel - Chapter (193)
193화
나는 다급히 그의 망토 자락을 붙잡았다.
“넌 여기 남아서 뭐 하게?”
“할 일이 있어.”
“그러니까 그게 뭔데!”
“나중에 알려 줄게.”
“너, 너 또 파르세네에서처럼 허튼짓하면……”
“안 해.”
아이칼이 두 손으로 내 뺨을 감싸고 눈을 맞췄다.
싱긋, 그가 눈매를 휘어 웃었다.
“카티는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 없어.”
“……위험한 짓은 아니지?”
“이 땅에 날 위협할 것들이 있을까?”
심상하게 대답한 아이칼이 문득 눈을 들어 하늘을 흘끗 쳐다보았다.
“이 세계 너머에 계신 분이라면 또 몰라도.”
“대체 어디서 무슨 소리를 듣고 이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여신께 반항하지 마, 아키. 그분은 네 주인이기도 하시잖아!”
“나도 웬만하면 그러고 싶어. 자꾸 헛소리만 하지 않으시면.”
“방금 엄청 불경했어, 너!”
“그리고 내게 주인은 너 하나뿐이야.”
“세상에, 힐라이야시여. 부디 당신의 불손한 종을 가엾이 여겨…….”
우리가 돔 꼭대기에서 옥신각신하는 사이, 밑에서는 기익거리는 불길한 소리가 올라왔다. 동시에 멀리서 희미하게 사람들이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기척이 잡혔다.
탁, 탁. 황성의 창문에 일시에 불이 들어왔다.
나는 홱 뒤를 돌아보았다. 저 아래, 황후궁으로 향하는 길목을 달리는 기사들이 보였다. 그 뒤로 두 마리 말이 끄는 마차가 달려갔다.
나와 아이칼이 탑에서 빠져나왔다는 것을 황제가 알아챘다. 계획이 틀어졌으니 황후를 대피시키려는 것이다.
나는 초조하게 발밑의 마력 제어 장치를 확인했다. 부품 사이사이로 굴러들어 간 얼음 조각들이 보였다.
유리 돔 내부에 가득 찬 아이칼의 오러가 마나의 흐름을 방해했다. 교차한 수백 개의 마법진에 하나둘씩 빛이 꺼지기 시작했다.
‘얼른 돌아가야 해. 황후가 텔레포트로 도망치기 전에!’
나는 다급히 아이칼의 멱살을 잡고 끌어 내렸다.
“제발 부탁이니까, 털끝 하나 다치지 말고 돌아와.”
그렇게 속삭인 뒤 입을 맞췄다.
아이칼이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 미소까지 확인한 뒤에야 텔레포트석을 손안에서 깨뜨렸다.
일회용 단거리 이동진이 발밑에 펼쳐졌다. 다음 순간, 보름달을 배경으로 서 있던 백색 머리칼의 신수가 눈앞에서 사라졌다.
따스하고 포근한, 내게 익숙한 책 냄새가 온몸을 휘감았다. 아빠의 서재다.
“아기씨!”
“카티샤!”
텔레포트의 영향으로 중심을 잃고 주저앉은 나를 누군가 다급히 일으켰다.
돌아보니 아빠가 놀란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야, 카티? 방금까지 황성에 있었어? 아키는 어디로 가고!”
“도망…….”
“뭐?”
“도망가요, 그 여자.”
나는 숨을 씨근거리며 아빠의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니엘라와 연결된 통신석을 손바닥에 떨어뜨렸다.
“황성에 있는 마력 제어 장치를 껐어요. 황제도 그걸 알았으니 당장 황후를 대피시킬 거예요. 니엘라가 함께 있을 테니, 이동진을 타고 더 멀리 이동하기 전에 쫓아가야 해요.”
아빠의 표정이 무섭도록 굳었다.
나는 당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려는 아빠의 옷자락을 다급하게 잡아당겼다.
“그리고, 그리고! 황후에게서 꼭 챙겨 와야 하는 게 있어요.”
나는 재빠르게 아빠의 귀에 대고 무어라 속삭였다.
* * *
로사리아는 불안하게 황후궁 입구를 맴돌았다.
동이 트기도 전이었다. 황제궁에서 급히 전갈이 날아왔다. 당장 떠날 채비를 하라는 페르테스의 전언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지? 이 새벽에…….”
“걱정 마세요, 폐하. 별일 아닐 거예요.”
긴 금발을 얌전하게 묶어 늘어뜨린 여자가 로사리아를 안심시켰다.
로사리아는 소름이 돋은 양팔을 쓸어내리며 그녀를 힐끗 일별했다.
‘니엘라라고 했지.’
나이락에게 사생아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어릴 적 후작가에 놀러 갔다가 우연히 그 사실을 알게 된 프리츠가 귀띔해 주었기 때문이다. 깐깐하고 엄하던 아버지가 꽤나 신임할 만큼 영특하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저 애라도 있는 게 어디야.’
이대로 잠시 몸을 피해 있는 사이 페르테스가 블라스코를 해결한다고 해도 오르겐의 빚은 그대로다. 그렇다고 동생인 나이락에게 그 막대한 빚을 떠넘길 수는 없는 일.
답은 하나뿐이다.
니엘라를 훑는 로사리아의 눈이 표독스럽게 벼려졌다.
‘저 사생아가 오르겐의 빚을 끌어안고 침몰하게 하면 돼.’
그리고 나이락을 친황제파 귀족들 중 적당한 이의 여식과 결혼시킨 다음, 정통성 있는 후계자를 얻어 가문의 명맥을 이으면 된다.
어차피 차기 황제는 프리츠가 될 테니, 프리츠의 지지를 업으면 오르겐이 재기하는 건 시간문제겠지.
‘그런데 프리츠는 어디 있지?’
그제야 아들에게 생각이 닿은 로사리아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새벽을 틈타 떠난다는 소식을 프리츠에게 전하지 않았을 리 없는데, 아들의 모습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저 멀리서 한 무리의 기사들과 마차가 달려왔다.
“폐하, 이만 가실까요?”
니엘라가 상냥하게 웃으며 손날로 바깥을 가리켰다.
‘프리츠는…… 괜찮겠지. 그 애도 이제 성인인걸.’
로사리아는 급히 몸을 돌려 뛰어나갔다. 그 바람에 그녀는 니엘라가 품에서 통신석을 꺼내 톡톡 두드리는 모습을 미처 보지 못했다.
마법사들이 마차 주위를 에워싸고 있었다.
“텔레포트로 이동할 거야, 로사.”
“마법을 쓴다고요? 하지만 황궁 내에선, 마력 제어 장치가…….”
“괜찮아.”
페르테스는 마력 제어 장치가 개박살이 났음을 굳이 아내에게 말하지 않았다.
나이락을 부축한 니엘라가 먼저 마차에 올랐다.
“이동국의 마법진을 이용하는 게 아니라 짧게 여러 번 끊어 가야 할 거야. 그래도 해가 완전히 뜨기 전에는 남부에 들어설 수 있겠지.”
“언제 돌아올 수 있나요?”
“내 땅에서 블라스코의 뿌리를 뽑고 나면?”
페르테스가 입꼬리를 양쪽으로 끌어당겼다.
“한 명도 남겨 놓지 않고 없애 버릴 생각이야. 아무래도 그것들이 아스트로카에 있으니 자꾸만 황실의 기강을 어지럽히는 듯하여.”
“……하려면 제대로 해요. 확실히.”
“어쩌면 시간이 조금 걸릴지도 모르는데.”
“얼마나 걸려도 좋으니, 안전을 장담할 수 있게 되면 불러요.”
로사리아는 페르테스가 제 손등에 입을 맞추기를 기다린 뒤, 미련 없이 마차에 올랐다.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떠나고 싶은 기색이 완연했다.
마차의 문이 닫히자 마법사들이 일제히 마나를 엮어 이동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텔레포트 진이 발동했다.
“…….”
페르테스는 희끄무레한 빛무리만을 남기고 사라진 마차가 있던 곳을 한참이나 바라보고 서 있었다.
적막이 흐르기를 수 분, 그가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표정을 가다듬었다. 그의 얼굴에서는 다정한 남편의 표상이 싹 씻겨 내려갔다.
“프리츠는 어디 있지? 아직 황성으로 돌아오지 않았나?”
“아직 기별은 없으셨습니다. 찾아볼까요?”
“……아니, 됐다. 두면 돌아오겠지.”
로사리아도 떠난 마당에, 스물한 살이나 먹은 아들놈을 일일이 찾아다닐 필요는 없었다. 가진 마법적 재능도 제 심성처럼 유약하니 큰 도움도 되지 않을 테고.
페르테스가 싸늘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멍청한 놈……. 비기를 알려 줘도 적재적소에 써먹질 못하니.”
프리츠는 어릴 때부터 영특한 면모가 돋보였던 아이라, 적당히 상황 파악이 끝나면 기민하게 움직일 줄 알았다.
블라스코의 막내 공녀와 대면할 때 비기술을 쓰고, 곁을 지킨다는 신수 탓에 영 여의치 않으면 텔레포트 진을 사용해 황성으로 보내기라도 하라 일러두었다.
하지만 이왕이면 프리츠 선에서 끝내는 편이 더 간편했을 텐데. 결과적으로는 오판이었다.
아직 성년식도 치르지 않은 어린 여자애 하나 유혹하는 게 뭐 그리 어렵다고. 달콤한 말로 어르고, 달래고, 미끼를 눈앞에 흔들어도 보고, 그도 안 되면 유혹이라도 해 봤어야지.
‘단 5분만 신수와 떨어뜨려 놓았으면 문제없이 공녀만 탑으로 끌고 올 수 있었을 것을.’
그 여자애의 목에는 많은 것들이 걸려 있다. 루테 블라스코를 포함한 블라스코 직계들, 신수, 블라스코의 영령들, 그리고 영령이 지키는 마검 귀어스트까지.
아스트로카 황실과 블라스코 간의 대립에서 승리의 깃발을 쥐고 있는 게 바로 그 여자애다. 그 애를 빼앗거나, 혹은 지켜 내는 쪽이 승리한다.
그래서 위험을 무릅쓰고 기껏 ‘초대의 탑’을 텔레포트 진의 도착지로 설정해 뒀건만.
아스트로카 황성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인 초대의 탑은 500여 년 전 제국을 건국한 초대 황제 루베니오 1세가 이 황성에서 가장 먼저 세워 올린 탑이었다.
그곳은 초대의 비기부터 시작해 역대 아스트로카 황제들이 자신만의 비기나 기존 것을 변형해 구사한 마법들을 기록해 놓은 장소이기도 했다.
황성 내에서 가장 강력한 마나의 흐름이 집결된 곳이라 대규모 마법의 시전지로 쓰기에도 적합했다.
그 덕분에 프리츠가 공녀와 신수를 초대의 탑까지 보내는 데는 성공한 모양이지만, 신수는 페르테스의 예상보다 훨씬 더 강하고 무모했다.
‘아예 탑 상층부를 죄다 얼려 버리고 빠져나가다니.’
물질적인 것들만 얼린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마나의 흐름마저도 차갑게 얼려 놓았다. 공기 중의 미세한 물방울들을 순간적으로 얼리며 마나의 순환을 방해하는 것이다.
그런 게 가능하다니. 그렇다면 신수는 마법사들이 구사하는 마법마저도 간단히 파훼할 수 있단 이야기가 아닌가?
심지어 신수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곧바로 마법 관리국으로 가 마력 제어 장치까지 깨부쉈다. 아마 공녀는 장치가 무효화된 순간 곧바로 황성을 빠져나갔을 것이다.
일이 이렇게 되면 지금 당장은 그 쥐새끼 같은 여자애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마력 제어 장치는 펠라임의 치안을 유지하는 가장 큰 수단이자, 귀족들의 사병이 마음대로 수도를 침범하지 못하도록 막는 바리케이드 역할을 했다.
페르테스의 미간에 균열이 갔다.
“마력 제어 장치를 원상 복구하려면 며칠이나 걸리지?”
“규모가 규모인지라, 아무리 짧게 잡아도 일주일 정도 소요될 듯합니다.”
“최대한 빠르게 복구해. 장치가 파손되었다는 사실은 철저히 비밀에 부치고.”
펠라임에서 마법을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순간부터 혼돈이 야기될 것이다. 텔레포트석과 좌표만 있다면 누구나 황성에 침입할 수 있단 얘기가 아닌가?
물론 황성 내부의 좌표는 제국의 기밀로 다루고 있으나……. 정보는 어디서든 빠져나갈 수 있다.
“그리고 펠라임 인근의 이동국들은 전부 폐쇄한다. 펠라임의 구획마다 치안군을 주둔시켜.”
“예, 폐하.”
“그리고 또…….”
거침없이 명령을 내리던 페르테스의 두 눈에 돌연 깨달음의 빛이 스쳤다.
아, 설마. 혹시 처음부터 마력 제어 장치를 파괴할 목적이었나?
말이 된다. 막내 공녀를 납치하기 위한 텔레포트 진의 좌표로 삼았던 초대의 탑에서 마법 관리국 건물까지 직선으로 오러가 가로지른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렇다면 왜 마력 제어 장치를 1순위로 노렸나? 유력한 이유라면 대규모 텔레포트 진을 설치하기 위함일 것이다.
블라스코가 세 개의 영지에서 육성하는 사병들, 족히 수만에 달할 군사들이 언제든지 펠라임 내로 소리 소문 없이 침투할 수 있게 된 셈이다.
‘무식한 것들이, 그저 머릿수만 많으면 다인 줄로만 알아서.’
블라스코가 펠라임 내에서 황실과 무력으로 겨루고자 한다면…….
페르테스가 쿡 비웃음을 흘렸다.
“물러나기라도 할 줄 알았나, 루테?”
이곳이 대제국의 수도이기 때문에 내가 몸을 사릴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머릿속에 육탄전을 치를 생각밖에 없고, 그것밖에 할 줄 아는 게 없는 족속들에겐 거창하고 계산적인 작전 따위도 필요 없다. 그저 권력으로 찍어 누르기만 하면 된다.
개개인의 무력이야 블라스코가 절대 강자일지 몰라도, 국가적 권력으로 치면 이쪽이 단연 압승이다.
그러니 그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전에 이쪽에서 먼저 선수를 친다.
페르테스의 냉엄한 명령이 떨어졌다.
“이 시간부로 블라스코를 반동분자로 규정하고, 아스트로카 대제국 및 아스트로카의 속국, 동맹국, 우호국들의 공공의 적으로 취급하겠다. 각 부처에 공문을 내리고, 타국에 협조 요청문을 보낼 것이니 준비해.”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