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Heiress of the Villain Family RAW novel - Chapter (196)
196화
“…….”
루테는 부하들이 혼절 직전인 황후의 뒤처리를 하고 마차에 싣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키스 경이 다가와 뚜껑을 연 작은 함을 그에게 내밀었다. 루테는 피 묻은 단도와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요사스럽게 움직이던 살덩이를 함 속에 툭 던져 넣었다.
마지막으로 장갑을 벗어 난간 아래로 휙 던졌다.
루테는 곧 본래의 말끔한 차림으로 돌아왔다.
“……아, 맞다.”
그제야 깜빡 잊고 있던 것에 생각이 미쳤다. 카티샤가 다른 것은 몰라도 그것 하나만은 꼭 챙기라며 신신당부했던 것이 있었다.
루테가 여상한 걸음으로 마차 앞으로 다가갔다. 입속에 붕대를 한가득 넣은 채 모로 쓰러진 여자가 빛 꺼진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루테는 그녀의 왼손을 잡아 올려 약지에서 큼지막한 다이아몬드 링을 빼냈다. 페르테스와 로사리아의 결혼 반지였다.
루테는 그것을 함 속에 마저 던져 넣었다. 여자가 결국 눈을 까뒤집으며 혼절했다.
루테는 초라한 피투성이 황후를 보며 나직하게 뇌까렸다.
“너는 모든 걸 봐. 네 추잡한 사랑이 네 나라를 망하게 하고, 자식을 사지로 내몰고, 남편을 죽이고, 마침내 너 자신마저 파멸로 몰아넣는 것을.”
너는 끝의 끝까지 살아남아 모든 것을 보고, 나와 같은 심연 속에서, 그러나 나보다 더 처절하게 죽느니만 못한 삶을 살아가라. 짐승처럼.
루테는 마차의 문을 냉정히 밀어 닫았다.
“죽지 않을 만큼 먹이고 재워. 중간에 자결하지 못하게 날붙이는 절대 주지 말고.”
“예, 각하.”
“출발.”
이윽고 마차가 서서히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마차는 건너편 절벽의 이동진을 이용해 아르템으로 이동할 것이다.
루테는 아직 키스의 손에 든 함 속의 내용물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서서히 갈색으로 말라 가는 피투성이 함 속에서 불순물 한 점 없는 다이아몬드만이 광채를 발했다. 이 정도면 훌륭한 맞춤 선물이다.
그는 개운하게 함의 뚜껑을 눌러 닫았다.
“이건 황성 앞에 갖다 둬라. 페르테스 베르누아에게 보내는 선물이라고 대문짝만 하게 써 붙여서.”
* * *
“블라스코를 반동분자로 규정한다.”
나는 방금 막 황성에서 각부 각처에 내렸다는 공문을 소리 내어 읽었다.
“따라서 블라스코에서 공작 작위를 박탈하고, 7귀족회에서 영구 추방하며, 이 시간부로 수도와 황성의 전면 출입 금지를 명한다. 아스트로카 중앙은행에 보관한 공작가의 자산은 전액 국고로 환수하며…… 아니, 잠깐만.”
낭랑하게 공문을 읽어 내리다가 하마터면 눈이 튀어 나갈 뻔했다. 있어서는 안 될 구절이 있었다.
중앙은행의 금고 전액 국고 환수?
“악, 내 돈!”
미처 생각을 못 했다! 은행에서 미리 내 귀여운 금화들과 남은 아티팩트들을 아르템으로 옮겨 놨어야 하는데!
나는 황급히 중앙은행 패스를 꺼내 반질반질한 표면을 마구 두드렸다. 패스 위에 냉정한 글자들이 떠올랐다.
[※보안상의 이유로 접근이 불가합니다.※] [※거래가 제한된 금고입니다.※] [※금고 해금을 위해서는 증빙 서류를 지참하여 아스트로카 중앙은행 본점을 방문하여 주십시오.※]내 어깨에 턱을 괴고 그 안내 문구들을 함께 읽은 아르닌 언니가 와악 비명을 질렀다.
“아악, 내 희귀 재료랑 강화 재료들!”
왜 은행에 먼저 손을 써 둘 생각을 못 했나!
나는 아르닌 언니의 머리카락을 물고 오열하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내 유산, 내 백만 골드…….”
“괜찮아, 카티. 그리고 아르닌. 보아하니 즉각 국고로 환수되지는 않는 모양이네. 잠금만 하나 더 걸렸다는 소리잖아.”
베르너 오빠가 머리를 맞대고 우는 우리를 다독였다.
“황성에 들어가게 되면 황성 금고부터 한번 들어가 보자. 거기 가 고대 유물 천국이래.”
“흐흑…… 진짜아……?”
“그래, 아르닌. 금방 다시 찾을 수 있어.”
오빠가 제법 어른스럽게 언니를 달랬다. 언니는 금방 기분이 좋아졌지만 나는 여전히 우울했다.
패스 위에 떠오르는 든든한 잔액이 없다니! 순식간에 제국 최고 부자에서 가난뱅이가 되어 버렸잖아.
‘미친 황제, 가만 안 두겠어.’
투지가 맹렬히 불타올랐다. 다행히 앞으로의 계획에 목돈이 들어가는 일은 이제 없다. 남은 건 예상컨대 잠시의 대치 상황, 그리고 전면전.
아르닌 언니가 내가 읽다 만 공문을 마저 훑었다.
“그나저나 황제가 먼저 우리를 대놓고 견제하고 나설 줄은 몰랐네. 이거 먼저 선빵 날린 거 맞지?”
“그런 것 같은데. 만 하루 안에 수도에서 나가지 않으면 척결하겠대. 대놓고 칼부림 한번 해 보자는 거 아니야?”
“걍 여기 배 째라 누워 있다가 달려들면 슥삭슥삭해 버리면 안 돼?”
“안 돼요.”
나는 단호히 손을 내저었다.
“속은 개싸움이어도 겉 포장지는 우아해야 한다니까.”
블라스코 셋을 데리고 명분의 중요성에 대해 설파하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이 사람들의 사고 회로는 기승전슥삭이 기본이었다.
하지만 명분, 즉 누가 더 ‘정당하게’ 싸움을 거느냐는 생각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다.
‘왜냐하면 명분에는 보통 민심이 따라오거든.’
우리가 황성을 싹쓸이해 봤자 제국민이 인정하지 않으면 블라스코는 그저 피와 철로 황실을 장악한 살인귀들에 그치는 것이다. 안 그래도 소문이 안 좋은데 말이지.
나는 두 주먹을 꽉 쥐며 다시 공문의 내용에 집중했다.
황제가 내건 블라스코 반동분자 규정의 명분은 블라스코의 직계가 신수와 작당하여 황성에 무단 침입해 황성의 기사들에게 상해를 입혔다는 것이었다.
나는 아쉽게 혀를 찼다.
“으, 잔머리……. 이거 내가 쓰려고 했던 건데.”
으앙 황제와 황태자가 죄 없는 나를 황성으로 납치해 죽이려고 했어요! 빠져나가기 위해 황성을 헤매다가 제국군에게 진짜 죽을 뻔했어요! 그래서 우리 가족들이 불같이 화가 났어요! – 가 내가 생각해 뒀던 블라스코 반란의 명분들 중 하나였다. 그런데 선수를 뺏겼으니 어쩌면 좋담.
뭐, 다른 더 좋은 걸로 때우면 그만이다.
나는 흘끗 눈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슬슬 아빠가 돌아오실 때가 됐는데.’
내가 당부한 건 다 챙겨 보내셨으려나?
다른 건 몰라도 황후의 반지나 머리카락같이 특정할 수 있는 물건 하나는 꼭 있어야 했다. 그래야 페르테스가 미쳐 날뛸 테니.
내 원대한 쿠데타 플랜의 마지막 장 직전, 바로 이 시점에서 황제는 한번 제대로 눈깔이 돌아 줘야 했다.
황제 페르테스의 폭정. 그게 내가 준비한 블라스코 반란의 결정적인 명분이니까.
간단한 이야기다. 쿠데타가 정당하다는 것을 보여 주려면 무엇이 중요한가? 갈아 치울 대상이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만큼 썩어 빠졌다는 것을 만천하에 드러내면 된다.
그렇다면 그 썩은 내막을 민중에게 어떤 식으로 보여 주느냐? 그건 이미 한참 전부터 현재 진행 중이다.
황후와 오르겐 후작가가 짜고 친 대대적인 사기극에 관한 소문은 이미 수도 전역에 널리 퍼져 있었다. 내가 지시한 대로 루시스 경을 필두로 하여 평민으로 위장한 블라스코 기사들이 밤마다 광장에 벽보를 열심히 붙여 댄 덕분이다.
거기에 황제와 황후가 실은 쇼윈도 부부라는 의혹까지 살포시 추가해 뒀지.
나는 루시스 경을 손짓해 불렀다.
“루시스 경, 벽보 효과가 좀 어떤 것 같아? 요즘 수도 사람들 분위기는 어떻고?”
“황가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 말씀이십니까? 그야 끝없이 추락하는 중이지요.”
루시스 경이 자랑스럽게 어깨를 쭉 폈다.
“아가씨께서 세금 폭탄과 전쟁의 가능성을 꼭 강조해 걸고넘어지라고 하신 게 톡톡히 각인된 모양입니다. 요즘 사람들, 모였다 하면 황실 욕부터 하기 바쁘거든요. 이대로면 거의 블라스코와 동급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망할 오르겐.”
그렇게 하락해서 블라스코와 동급이 됐다니. 이게 당최 좋은 소식인가, 나쁜 소식인가. 대체 평민들 사이에서 블라스코의 이미지를 얼마나 개떡같이 망쳐 놓은 거람!
그러나 곧 루시스 경이 덧붙였다.
“그래도 블라스코에 대한 인식들이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좋아졌습니다. 일단 백의 교단의 파수꾼인 신수가 블라스코 편에 붙었고, 아가씨와 약혼까지 할 예정이라는 소문이 퍼진 게 아주 효과가 좋습니다. 요즘 청년들과 중장년층을 가릴 것 없이 가장 인기몰이 중인 화제는 황제 부부의 쇼윈도 부부설, 그리고 공녀와 신수의 펠라임 데이트 목격설, 약혼설, 결혼설, 이미 결혼했다설……”
“아냐!”
“그리고 신수 데릴사위설 등이 있습니다.”
마지막 두 갠 아냐. 뭔가 이상해. 너무 갔어!
“특히 뭐, 파르세네 관객들의 목격담이 수도에도 슬슬 퍼지면서 파수꾼의 인기가 아주 하늘을 찌르던걸요. 우리 아기씨 좀 긴장하셔야 되겠습니다.”
“……아기 아니야. 이상한 길로 빠지지 말고 계속해 줘.”
“예, 아기씨.”
내가 루시스 경을 뾰로통하게 쳐다보자, 그가 웃음기 만반인 얼굴로 큼큼 목을 가다듬었다.
“그리하여 최종 정리하자면, 평민들의 인식 기준 황실은 하락세, 황후와 오르겐은 지하까지 처박혔고, 블라스코는 쾌적하게 상승세를 타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좋아. 여기까진 완벽하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아직 부족했다. 타격을 입은 건 황후의 평판이지, 정작 중요한 황제에 관한 악평은 전무하지 않은가?
그러니 더더욱 이 시점에서 황제의 민낯을 밖으로 끄집어내야 했다.
페르테스 베르누아가 이성을 잃고 미쳐 날뛸 만한 이유라면 두말할 것 없이 딱 하나뿐.
황후 로사리아의 죽음, 혹은 그녀가 죽었다고 믿게끔 만들 증표다.
곧 아빠가 가져오실 그거 말이다.
‘뭘 가져오시려나?’
이번 일에서 나는 오르겐 후작, 황후, 그리고 황제의 최후를 모두 가족들에게 맡겼다. 아빠가 과연 황후의 무엇을 가져오실지는 나도 꽤 궁금했지만, 음, 모르긴 몰라도 평범하지는 않을 터다.
황후는 마지막까지 숨을 붙여 놓을 거라 하셨으니 그녀의 일부……일 텐데……. 음…….
생각 안 할래. 꿈에 나올지도 몰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