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Heiress of the Villain Family RAW novel - Chapter (199)
199화
그러나 페르테스의 혼란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또다시 누군가 집무실을 다급하게 노크했다. 이번에는 황제 직속 보좌관이었다.
“폐하, 레바토 후작이 알현을 청하고 있습니다.”
“물러가라 해.”
“알현이 불가하다면 긴급 귀족회 소집을 요청한다고 전해 달라 하셨습니다. 안건은 어제 자로 공표된 블라스코 반동분자 규정에 대한 이의 제기를……!”
보좌관의 목소리가 끝을 맺지 못하고 흐려졌다. 그를 돌아보는 황제의 눈빛이 흡사 광인의 것이었다.
“레바토…… 하! 그쪽까지 건드렸나?”
레바토 후작이라면 7귀족회에서 블라스코 공작가와 비등한 발언권을 가진 거물이었다. 친황제파와 친귀족파 중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고 중립을 지켰던 가문이다.
그러나 최근 몇 달간 레바토 후작가의 행보는 확연히 친귀족파로 기울어 있었다. 고대 물품 수집가인 후작이 오르겐에서 열린 마공학 무기 경매에서 거액에 무기를 매입했다가, 그것이 하자품이라는 것을 알고 길길이 날뛴 직후부터였다.
페르테스의 낯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자신이 간과해 버린 사이, 아스트로카 내부에서 시작된 균열은 이미 틈이 깊었다.
“……물러가라 해.”
“폐하, 하지만……”
“물러가라 하라고! 내가 몇 번을 더 말해야 하나!”
페르테스가 이성을 잃고 고함을 질렀다.
어차피 그들을 들여 봤자 똑같은 소리만 늘어놓을 것이다. 황후를 공개 재판에 올리고, 블라스코를 반동분자로 규정한 결정을 재고하라. 지금은 그 어느 쪽도 불가능했다.
“앞으로 일절 알현은 받지 않겠다. 귀족회의 소집도 철저히 금한다. 내가 허락하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황성에 들이지 마. 그 누구도!”
“예, 예. 폐하.”
“그리고 로사리아를 계속 추적해. 머리를 잘라 보내지 않았으니 어딘가에는 살아 있을 거야. 아직 죽지는 않았어, 죽지는…….”
황제가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하고 창틀 위로 허리를 고꾸라뜨렸다.
절망감에 눈앞이 새카맣게 명멸했다.
블라스코가 언제 로사리아를 앞세워 그를 위협할지 모른다. 분명히 그럴 것이다. 그래서 저렇게 뻔뻔하게 버티고 있는 거다. 자신을 도발하려고, 먼저 고개를 숙이고 들어오라고 이딴 협박을 하는 거다.
“하하, 내가 도발에 넘어가면 감당할 수나 있으려고!”
나는 넘어가지 않아.
페르테스의 눈이 불타올랐다.
황위를 넘겨도 루테 그 자식은 로사리아를 그에게 돌려주지 않을 것이다.
‘죽이겠지. 아니면 보란 듯이 취할 수도!’
상상이 제멋대로 가지를 뻗어 나가며 그의 정신을 마구잡이로 들쑤셨다.
‘죽인다.’
그놈이 로사리아를 데리고 협박질을 하기 전에 먼저 죽인다. 이곳으로 끌어들이는 거다. 한번 들어오면 절대 다시 나갈 수 없게…….
힘줄이 불거지도록 창틀을 움켜쥔 페르테스의 손 위로 파르스름한 마나가 모여들었다.
‘그래. 한번 보여 주마. 나를 이딴 식으로 자극하면 어떤 꼴이 나는지.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 인간인지.’
황제의 심상찮은 기세에 흠칫한 기사단장이 서둘러 인사를 올리고 물러났다.
집무실의 거대한 문이 닫히기 직전 그가 본 것은 피투성이 살덩이가 빛나는 마나에 휘감겨 허공으로 둥둥 떠오르는 장면이었다.
핏기가 씻겨 나간 살점을 다시 상자에 소중히 넣던 황제가 문득 이쪽을 돌아보았다.
“……참. 하나 잊었는데.”
기사단장은 마른침을 삼켰다.
멀쩡해 보이지만 제정신이 아닌 채로, 황제가 음산하게 물었다.
“이 안에 있던 내용물, 본 사람이 몇 명이라고?”
“두…… 둘입니다.”
“그래. 그대로 둘 수는 없지. 감히 황후의 일부를 보았던 눈들을.”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이어 떨어진 황제의 명령에 기사단장의 안색이 파리하게 질렸다.
그날 오후. 황후의 반지와 잘린 혀를 본 순찰병과 성문지기 케사르의 목이 잘려 나갔다.
그들의 시체는 불길한 글씨가 쓰인 성벽 아래로 무참히 내던져졌다.
* * *
황제가 블라스코를 반란군으로 규정한 지 사흘째, 그리고 황성의 전면 봉쇄를 명한 지 이틀째 되는 날.
마력 제어 장치가 파괴된 사흘 전 새벽부터 황성 안에서 비밀스럽게 움직이고 있는 이가 있었다. 아이칼이었다.
그는 아스트로카 황성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라는 초대의 탑에 들어와 있었다.
이 탑은 블라스코에 있는 영령의 탑과 겉모습만 비슷할 뿐, 내부 공간까지 같지는 않았다.
건축 시기로 보면 초대 황제의 제위 기간에 세워진 초대의 탑이 먼저고, 그 뒤가 2대 블라스코 가주인 가이우스 블라스코가 아르템에 세운 영령의 탑이다.
탑의 1층에는 이 탑이 세워진 역사가 기록되어 있었다.
아이칼은 석판에 음각된 건국 역사를 대강 눈으로 훑으며 그가 이미 알고 있던 사실들과 끼워 맞췄다.
[마물이 지상에 판을 치고 신들마저 이 땅을 하나둘씩 떠나던 대륙의 암흑기 시절, 당대 최강의 검사와 마법사라 불리던 두 인간이 귀어스트를 무찌르고 아스트로카 제국을 건국하며 평화의 시대를 열었다.그들이 바로 초대 황제 키겔 루베니오와 최초의 오러 유저라고 불리는 초대 블라스코 공작 라몬이다.
키겔 루베니오는 제국과 제국민을 다스리는 임무를, 라몬 블라스코는 마귀의 봉인을 지키는 임무를 각각 나누어 가졌다.] [그러나 인간의 힘으로 마귀를 완전히 소멸시킬 수는 없었다. 하여 라몬 블라스코는 귀어스트를 자신의 검에 봉인한 뒤, 마귀와 쌍방 귀속 계약을 맺었다.
마귀가 가주에게 복종하는 대신, 가주는 마검이 소멸하지 않고 존속할 수 있는 토양인 인간의 영혼을 내준다.
라몬 블라스코는 봉인을 완성한 직후 죽음을 맞이했으며, 그의 아들인 가이우스 블라스코가 영령의 사명을 잇기 시작했다.]
여기까지가 아스트로카의 역사에 기록된 내용이다.
아이칼은 대륙에는 알려지지 않은, 백의 교단을 통해서만 내려오는 건국사의 이면을 떠올렸다.
[그러나 대륙의 암흑기를 지켜보던 치유와 재생의 여신 힐라이야는 그런 인간의 봉인이 완벽하지 않으며, 수백 년이 지나면 언젠가 깨어지고 말리라는 것을 예감했다.그날을 대비해, 여신은 지상에 머무르고 있는 제 권속의 신수 이클라스에게 자신의 권능이 담긴 검을 하사했다.] [그렇게 여신이 떠난 후, 그녀의 신자들이 모여 백의 교단이라는 새로운 기관을 창설했다. 성검은 그곳에 모셔졌고, 이클라스의 후손들이 검과 교단을 지키는 파수꾼 역할을 맡았다.]
그렇게 500여 년이 지난 지금.
막역한 친우지간이었던 아스트로카 황실과 블라스코는 철천지원수지간이 되었다.
그 결과 20년 전 블라스코의 비극이 터졌고, 그 여파로 성검의 세 번째 주인 신수 아이칼이 시공을 파괴하고 시간을 되돌렸다.
그리고 또다시 그 영향으로 마귀의 봉인진이 통째로 뒤흔들렸으며, 힐라이야가 예감했던 마귀의 부활 시기가 예상보다 앞당겨졌다.
결국에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모든 이야기가 향하는 끝에 카티샤가 있다.
“떼어 내기만 하면 돼.”
아이칼이 조용히 읊조렸다.
“귀어스트와 카티샤의 연결을 끊기만 하면 돼. 마귀는 인간의 영혼을 토양 삼는다…….”
마검에서 빠져나온 귀어스트 형상의 마귀가 카티샤의 몸속으로 스며들던 광경이 눈앞에 생생했다.
어쩌면, 자신이 치유와 재생을 잃었다는 건 큰 문제도 아니었을지 모른다. 지속적으로 정화해 봤자 귀어스트가 제 의지로 그녀에게 달라붙는다면.
이지를 잃고 한낱 마기 덩어리로 해체되어 수백 년을 봉인당해 있었던 마귀가 자아를 되찾아 가고 있는 거라면?
스스로의 의지로 움직여 숙주를 찾고, 부활을 꿈꾸고 있는 거라면…….
단순히 정화하는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아예 떼어 낼 방법을 찾아야 했다.
‘마귀가 부활하고 말고는 사실 상관없어.’
그럴 때 그것을 베라고 여신이 검을 내린 것 아닌가?
아이칼은 자신이 마귀에게 질 거라는 생각은 애초에 하지도 않았다. 그러니 일단 카티샤에게서 귀어스트를 완전히 내몰아 내고, 떨어져 나온 마귀를 베어 버리면 그만이다.
필요한 과정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 그녀의 영혼을 깊이 잠식한 마기를 내몰고,
둘째, 귀어스트에게 카티샤 대신 안착할 다른 인간의 영혼들을 내주며 카티샤와 귀어스트 간의 쌍방 종속의 계약을 끊어 낸다.
마지막 세 번째, 성검으로 마귀를 벤다. 세 번째는 자신의 몫이고, 두 번째는 블라스코 32인의 영령들이 맡기로 이야기가 되었다.
2대 가주, 가이우스 블라스코가 전했던 말이 있다.
[초대 가주, 라몬의 유언은 오직 귀어스트만이 들었지. 나는 거기에 봉인의 완성과 영령의 해방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버지가, 자신의 아들과 후손들을 억겁의 사명 속에 던져 넣으며 끝을 예비하지 않으셨을 리가 없어.] [그러니 봉인진을 다시 쌓아 올려 귀귀를 가두고, 그의 내면 깊숙이 침투하여 초대 가주의 유언을 찾아내려 한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대로 사명의 고리를 끊어 낼 것이야.영령의 해방, 영원한 안식을 위해.]
그들이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리라 믿는 수밖에는 없었다.
아이칼은 거북한 기분으로 믿음이라는 감정을 되새겼다.
누군가를 믿고 의존한다는 것 역시 그에게는 공포와 불안만큼이나 생소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아이칼은 인간이 각자의 목적을 가지고 산다는 사실을 되새겼다.
블라스코는 복수, 영령들은 해방, 황제 페르테스는 사랑, 황태자 프리츠는 생존. 그리고 자신은 카티샤.
인간은 불완전하다. 자신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피차 불완전한 존재들의 삶에서 협력은 필수불가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해결되지 않은 과정은 첫 단계뿐이다.
다행스럽게도 황태자 프리츠에 이어 영령의 탑과 닮은꼴인 이 초대의 탑을 발견한 순간, 아이칼은 확신을 얻었다.
답은 여기 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