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Heiress of the Villain Family RAW novel - Chapter (200)
200화
[한편 초대 황제 루베니오 1세는 생사고락을 함께한 친구의 죽음을 늦추기 위해 여러 치유술을 개발해 내기에 이른다.그는 숭고한 사명을 떠안은 친우와 그의 후손들을 위해 이 ‘초대의 탑’을 세우고, 직접 고안한 비기술을 모두 기록하였다.]
이 탑은 지난 초대를 비롯하여 500여 년간 제국을 이끌어 온 황제들이 자신들만의 비기를 기록해 놓은 곳이었다.
그들이 있는 곳은 탑의 상층부로, 오로지 당대 황제만이 들어올 수 있는 곳이다.
과연 아스트로카 마법의 정수라는 위명에 맞게, 탑의 벽면에 다닥다닥 붙은 석판에는 일반적인 마법과는 차원이 다른 고난이도의 마법 수식들이 음각되어 있었다.
아이칼은 이미 프리츠를 통해 몇 개의 마법을 시험해 보았다. 그중 하나는 정해진 좌표로 물건만 감쪽같이 이동시키는 텔레포트 진이었다.
그는 대뜸 허공에서 얼음을 불러내 이리저리 슥슥 모양을 만지더니, 순식간에 동그란 오렌지 모양으로 깎아 블라스코 타운 하우스로 보냈다. 걱정하고 있을 카티샤에게 전하는 생존 신고 겸 이곳의 위치 좌표였다.
프리츠는 두려운 눈으로 탑의 벽면을 훑는 신수를 흘끔거렸다.
시선을 느낀 듯 그가 고개를 돌렸다.
“아직이야?”
“이, 이게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 간단한 게 아니라고.”
“난 너에게 벌써 사흘이라는 시간을 줬다.”
“실질적으로는 이틀이잖아.”
아이칼에게 붙잡힌 첫날 프리츠는 온 탑을 뒤지며 초대의 비기를 찾아 헤맸다.
비기가 든 금고를 찾은 뒤로는 그곳을 여는 열쇠를 찾기 위해 다시 탑을 나가 아버지의 집무실을 뒤져야 했고, 겨우 금고를 연 뒤에는 이틀 내내 탑 안에 틀어박혀 비기를 익히는 중이었다.
“초대의 비기가 고작 며칠 만에 학습할 수 있는 것일 리가 없지 않나. 초대께서는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였다고. 이건 일반인에게 사흘 만에 오러 유저가 돼 보라는 요구와 비등하게 말이 안 되는……. 그런…….”
프리츠의 작은 반항은 스산하게 내리깔리는 살기에 금세 기가 죽었다.
“아, 알겠다고. 그런 눈으로 보지 마!”
무서우니까…….
프리츠는 아카데미 시절 작고 보송보송한 눈표범이 카티샤의 곁에 얼마나 찰싹 달라붙어 있었는지 기억했다.
새끼 눈표범은 카티샤에게 안기고 치대고 손을 깨물고 교복 옷자락에 대롱대롱 매달리는 등 온갖 애교란 애교는 다 떨다가도, 카티샤가 잠깐 눈을 떼기만 하면 꼬리 흔들기를 뚝 멈추곤 무심하게 엎드려 제 털이나 골랐다.
다시 떠올려도 어이가 없을 따름이다.
‘카티샤는 속고 있어. 속고 있다고…….’
프리츠는 속으로 한껏 구시렁대며 바닥에 수식을 짜 넣었다.
인간의 오러와 마귀의 마기는 물과 기름과 같아 완벽히 동화되기란 불가능하다. 마기의 오러가 훨씬 짙고 무거우며 흐름성이 낮기 때문이다.
초대의 비기는 인간의 몸에 자연 에너지인 마나를 주입해 오러가 몸속을 빠르게 회전하도록 만드는 마법이었다. 체내의 오러 순환이 두 배, 세 배로 빨라지면서 오러에서 농도 짙은 마기가 서서히 분리되게끔 하는 원리다.
당연히 이 비기를 마기에 잠식당하지 않은 일반인에게 사용하면 멀쩡한 오러의 흐름만 꼬아 놓는 결과를 낳는다.
프리츠는 무조건 이 비기를 성공시켜야 했다. 황제라는 방패가 사라진 지금, 그를 보호해 줄 명분은 공녀의 생명의 은인이 되는 것뿐이니.
‘무조건 살 거야.’
프리츠는 이를 바득바득 갈며 수식을 마저 짜 넣었다.
그나마 아버지께 배운 비기와 원형이 같아 천만다행이다. 그가 아예 처음 접하는 마법이었다면 사흘 만에 터득하기는 절대로 불가능했을 테니까.
“공녀를 이곳으로 데려와야 해. 자연의 마나가 교차하며 강한 흐름을 갖는 곳이어야 각성 상태에 더 쉽게 이를 수 있어. 실제로 기록에 의하면 초대 황제 폐하께서 초대 공작을 치료했던 곳도 바로 이 탑이고.”
“흠.”
아이칼은 주먹으로 벽을 노크하듯 툭툭 쳐 보았다.
“이거, 뽑아 갈 수 있나?”
“……?”
“카티를 여기로 데려올 수는 없잖아. 황성 안에 뭐가 있을 줄 알고. 이대로 잘 뽑아서 아르템에 있는 탑 옆에 꽂아 놓으면?”
“아니, 내 말은…… 탑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곳의 위치와 지형적 특성이 중요한 거라고…….”
프리츠가 얼굴을 괴상하게 구겼다. 원래 신수는 저렇게 말귀가 어둡고 과격한가?
하기야, 저자에게는 인간이 세워 올린 이런 건축물 따위는 이쑤시개만도 못하게 보이겠지.
“아하.”
아이칼이 약간 아쉽다는 기색으로 벽을 훑어보았다. 그대로 흥미를 거두는가 싶더니, 곧바로 다시 손바닥을 벽에 대어 본다.
“프란츠.”
“……그대, 자꾸 나를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데, 나는 프란츠가 아니라……”
“누가 올라오는데?”
“뭐?”
멍하게 눈을 껌뻑거리던 프리츠가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심장이 마구 벌렁거렸다. 이 탑에 들어올 수 있는 이는 딱 한 명뿐이었다. 현 황제.
“아버지야……!”
기척이 그에게도 들릴 만큼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프리츠가 허겁지겁 거대하게 엮어 놓았던 수식들을 거두어들였다. 마법진의 빛이 희미하게 사그라졌다. 여기서 신수와 작당하고 있는 걸 들켰다간 그대로 아버지의 손에 세상을 하직하리라.
“숨을, 숨을 곳이…….”
아이칼이 주위를 마구 돌아보는 프리츠의 목덜미를 덥석 집어 구석으로 몸을 숨겼다.
휙 찬 바람을 불러내 그들이 있었던 자리의 흔적들을 완벽하게 지운 순간, 어둠 속에서 황제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내는 지쳐 보였다. 그는 취한 사람처럼 몇 번이나 비틀거리며 그들이 숨은 곳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그의 뒤통수에 아이칼의 시선이 따갑게 꽂혔다.
황제. 현시점에서 카티샤에게 가장 방해가 되는 인물이었다.
‘죽일까?’
아이칼은 인간의 삶에 대해 고찰해 본 바를 다시금 떠올렸다.
인간은 저마다 삶의 목표를 가지고 산다. 그중에서도 블라스코의 목표는 복수. 카티샤는 블라스코. 그러니 카티샤의 목표도 복수.
결론. 저 인간은 카티샤의 몫.
‘하지만.’
아이칼은 방금 구사해 낸 삼단 논법을 제게도 적용해 보았다.
그의 목표는 카티샤의 안전.
저 인간은 카티가 몸도 없이 척박한 설원을 떠돌아다니게 만든 원흉이자, 카티샤의 안전을 위협하는 대상.
그러니 저 인간은 내 몫, 아닌가?
‘……아니야.’
아이칼의 사고가 다시 큰 커브를 그리며 우회했다.
애초에 카티샤의 목표부터 틀렸다. 그 애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부와 재산, 그리고 가족의 행복이었다. 황실에 복수하려는 이유도 가족을 위해서고. 그러니 따지고 보면 저 인간은 카티샤의 가족들의 몫이었다.
‘정말 죽이고자 했으면 진작 죽였지.’
그는 성질을 누르며 황제의 뒷모습을 낱낱이 뜯어보았다.
그는 석판에 적힌 비기들을 멀거니 살펴보고 있었다. 탑의 유령처럼 비틀비틀 나선형 계단을 오르내리며 선조들의 비기를 뒤졌다.
“신체……. 절단, 접합…….”
황제는 이따금 뭐라 중얼거리기도 했는데, 갈수록 그의 음성에 울음기가 번졌다.
“로사…….”
여전히 아이칼에게 입을 틀어 막힌 프리츠의 몸이 꼿꼿이 경직했다.
‘어머니께 무슨 일이 생겼구나.’
그래서 지금 이성적인 판단이 안 되시는 거야.
눈을 최대한 굴려 곁눈질해 본 페르테스는 품에 작은 상자를 하나 꼭 끌어안고 있었다. 그 안에 뭐가 들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프리츠는 그저 초조하게 마른 입술만 혀로 축였다. 지금 아버지를 건드리면 안 된다는 본능의 경고만 되새길 뿐이다.
한동안 정처 없이 탑을 배회하던 황제가 정중앙에 우뚝 멈추었다.
“……절대 불가침의 방어벽 구축.”
아이칼이 이미 읽었던 비기 중 하나였다. 외세의 침입이나 내란을 대비해 황성 전체에 강력한 결계를 덧씌우는 마법이다.
‘저건 전시에나 쓰는 최후의 방패인데?’
그러나 아직 끝이 아니었다. 페르테스가 눈물과 광기로 번들거리는 눈을 들어 석판에 고정했다.
“확장, 그리고…… 파괴.”
아이칼은 눈썹만 설핏 찌푸렸지만, 아버지의 뜻을 번개처럼 깨달은 프리츠는 경악스럽게 입을 벌렸다.
‘아버지, 대체 황성에 무슨 짓을 해 놓으시려는……!’
이윽고 황제가 수식을 엮었다.
이제까지 프리츠가 엮었던 것과는 비교할 바가 되지 않는 거대한 마나가 탑을 중심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가 양팔을 쫙 펼치고 실성한 듯 날카로운 광소를 터뜨렸다.
“하하하, 어디 한번 들어와 봐라, 루테. 얼마든지 들어와! 혀뿐만 아니라 사지를 다 결딴내 줄 테니!”
미친놈.
프리츠가 입을 벙싯거렸다.
어머니가 잘못되면 아버지는 분명 돌이킬 수 없이 미쳐 버릴 거라던 그의 예상은 한 치도 어긋나지 않고 맞아떨어졌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