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Heiress of the Villain Family RAW novel - Chapter (206)
206화
“후…….”
아빠는 현기증이 난다는 듯 손바닥으로 이마와 눈을 가리고 있었다. 내게서 버려지다시피 한 베르너는 아르닌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훌쩍대는 중이었고, 아르닌 언니는 한숨을 포옥 내쉬었다.
“언젠간 다 보는 앞에서 저럴 줄 알았지. 우리 카티 시집 다 갔다, 다 갔어.”
우리의 관계를 미처 모르고 있었던 키스 경과 헤겔 경을 비롯한 블라스코 기사단원들은 눈이 튀어나오기 직전이었다.
“아기씨, 대체 언제 남자 친구가 생기신……?”
“아르템에선 죽어라 아키를 피해 다니기만 하시더니, 어째서 다시 화해를!”
“됐다, 새삼스러운 이야기.”
아빠가 전혀 새삼스럽지 않다는 얼굴로 이를 악물었다.
내 얼굴은 이미 토마토처럼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정작 키스 세례를 퍼부은 장본인은 그들의 반응 따윈 아랑곳하지도 않았건만.
나는 아빠가 손짓하는 대로 얼른 아이칼을 이끌었다.
잠깐 사이에 수척해진 아빠가 그에게 물었다.
“그래서? 아키는 계속 여기 있었니?”
“초대의 탑에.”
“초대의 탑? 거긴 현 황제 외엔 출입 금지일 텐데. 물론 네게는 해당 사항이 없을 테지만…… 그럼 황제는 어디로 갔는지도 봤고?”
아이칼이 손을 들어 본성을 가리켰다.
그쪽으로 시선을 던지는 아빠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본성이라. 기다리고 있는 거군.”
“그자가 이곳에 마법을 걸었다. 이 공간 전체에.”
“어떤 마법이지?”
“그건 나보다 저자가 더 잘 알아.”
나는 아이칼이 고갯짓하는 쪽으로 눈을 돌렸다가, 꼭 우리 기사들과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는 프리츠를 발견했다.
“황태자?”
헤겔 경이 눈을 부라리며 성큼성큼 그에게로 다가갔다.
그러나 굳이 그럴 필요도 없었던 게, 프리츠의 발은 바닥에서 자라난 얼음과 함께 얼어붙어 있었다. 아이칼이 뒤쫓아 간 이가 프리츠였던 모양이었다.
“……나도 자세히는 몰라. 아버지의 꿍꿍이 같은 거.”
닷새간 아이칼에게 얼마나 시달렸는지, 그는 이제 반항조차 체념한 듯했다.
아빠가 미처 추궁하기도 전에 프리츠가 줄줄 대답을 꺼내 놓았다.
“아마도 마법의 범위를 확대하는 확장, 그리고 파괴의 마법인 것 같았는데……. 폐하께서 직접 변형한 비기술과도 비슷해 보였지만 뭔가 달랐어. 내게 알려 주신 수식과는 달랐으니까.”
그럼 오러 폭주를 야기하는 비기를 한 번 더 꼬았다는 말인가?
‘확장은 뭐고, 파괴는 또 뭔데?’
황제는 무슨 수를 그리고 있는 걸까? 각자의 머리가 맹렬히 굴러가며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아빠가 어깨를 으쓱했다.
“뭐, 본성으로 들어가 직접 확인해 보는 수밖에는 없겠군.”
“따르겠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이제는 음산한 암운을 장막처럼 두른 본성에 꽂혔다. 이제는 지체할 시간도 이유도 없었다.
아빠가 거침없이 본성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우리도 가자, 아키.”
나 역시 아이칼의 손을 붙잡고 걸음을 떼려는 순간이었다. 아이칼이 깍지 끼고 있던 내 손을 풀었다.
의아해 돌아보기도 전에 그가 뒤에서 나를 끌어안았다. 아이칼의 낮은 목소리가 귓가에 내려앉았다.
“카티는 나랑 갈 데가 있어.”
“갈 데가 있다고? 지금? 우리만……?”
어리둥절해서 되물었으나, 답은 돌아오지 않고 대신 몸이 허공으로 붕 떴다. 아이칼이 나를 대뜸 안아 올린 것이다.
나는 기겁하며 그의 목에 팔을 감았다.
“아냐, 나도 같이 본성으로 가야 하는데……!”
“거긴 저들이 알아서 잘 처리할 거야.”
“그러니까 그걸 내가 봐야 한다니까?”
“아니야.”
짧게 힘주어 내뱉은 아이칼이 내 이마에 입술을 내렸다.
“카티는 지금 당장 나랑 가야 해. 초대의 탑으로 가자.”
“거긴 왜……?”
“가서 보면 알 거야.”
따라오지 않는 우리를 돌아본 아르닌 언니가 놀라 소리쳤다.
“뭐야, 꼬맹이. 우리 카티 데리고 어디 가?”
“탑으로.”
“뭐?”
“카티는 내가 잘 데리고 있을 테니, 본성에서 할 일을 끝마치는 대로 곧바로 황성을 나가. 지체하지 말고 일분일초라도 빠르게.”
“무슨 말을 하는, 아이칼!”
아빠가 버럭 아이칼을 소리쳐 불렀으나, 이미 그가 땅을 박차고 몸을 솟구쳐 올린 후였다.
나는 꼼짝없이 아이칼에게 매달려 멀어지는 땅과 가족들을 망연하게 내려다봤다. 불규칙하게 불어닥치는 바람에 하나로 묶은 머리채가 사방으로 휘날렸다.
“아니, 이게…….”
허공에 투명한 얼음 조각을 불러낸 아이칼이 순식간에 아득한 거리를 이동했다. 블라스코 일행의 모습이 손톱만큼 작아졌다.
나는 주먹으로 아이칼의 어깨를 세게 때렸다.
“아키, 아키. 왜 이래? 진정해 봐!”
아이칼이 분명 제멋대로인 구석이 있기는 하지만, 이렇게까지 내 말을 묵살하고 일을 저지르는 적은 흔하지 않았다.
“이유라도 설명해 줘야지……!”
어느새 건물 하나를 가볍게 넘은 아이칼이 내 성화를 이기지 못하고 멈췄다. 땅이 급속도로 다시 가까워진다.
나는 다시 땅을 딛고 서자마자 주위를 둘러보았다. 며칠 전에 우리가 부숴 놓고 갔던 마력 제어 장치가 있는 마법 관리국 근처였다.
“어디로 가는 건지는 말을 해 줘야 할 거 아니야. 너 괜찮아?”
“너야말로 괜찮아?”
“방금 들어온 거나 마찬가진데 안 좋을 리가 없……”
기가 막혀 그렇게 대꾸하는데, 순간 호흡이 탁 막혔다.
어?
얼굴 근육이 저절로 경직했다.
당혹감을 삼키는 나를 아이칼이 침착하게 달랬다.
“이제는 정말 솔직히 말해야 해, 카티. 내가 널 샅샅이 다 알아야 어느 정도까지 시도해야 하는지 알아.”
꼭 내 상태가 급속도로 나빠질 거란 걸 예상하고 있다는 투였다. 나는 또다시 왈칵 차오르는 토기를 힘겹게 목 아래로 삼켰다.
“……숨이, 잘 안 쉬어지는 것 같기는 해.”
“그리고?”
“아까부터 이상하게 가슴이 조이고, 불길한 생각이 들어. 약간 더운 것 같기도 하고…….”
심한 긴장감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닐지도 모른다.
나는 문득 양손을 내려다보았다. 살갗 위를 얇게 한 겹 덮은 오러가 어두침침했다.
그다지 이상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오히려 익숙하기까지 했다. 오러가 검게 변한 게 어디 하루 이틀 일이었던가?
“그냥 계속 불안해서,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자꾸…….”
무의식적으로 손을 들어 가슴께를 더듬었다.
내 로켓.
지금 당장 로켓을 열어야 할 것만 같았다. 거기 내가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가 있었다.
귀어스트.
‘아무래도 마검을 꺼내 들고 있어야겠어.’
내 의지를 벗어난 손이 목깃을 헤치고 로켓을 꺼내려 한 순간이었다. 아이칼이 나를 막았다.
“카티, 정신 차리고 나 봐.”
“어……?”
“잘 들어. 지금 초대의 탑으로 가면, 거기서 네게 붙은 귀어스트를 떼어 낼 거야.”
“……지금? 왜?”
전혀 예상치 못한 이야기였다.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게 내 유일한 무긴데, 그걸 왜 하필 이 시점에……!”
“그건 네 무기가 아니야, 카티샤. 너를 잡아먹을 악귀지.”
아이칼이 단호하게 내 말허리를 잘랐다.
그가 내내 붙잡고 있던 내 손을 제 심장이 있을 왼쪽 가슴 위로 이끌었다. 손바닥으로 일정하고 둔중한 심장 박동이 전해져 왔다.
내게서 단 한순간도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아이칼이 낮지만 확고한 어조로 말했다.
“네 무기는 여기 있잖아. 그 로켓 속이 아니라 지금 네 앞에.”
“…….”
“카티가 믿을 구석도, 도움을 요청할 상대도, 손에 쥐고 휘두를 무기도 전부 다 나야. 귀어스트가 아니라.”
나는 흔들리는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체온과 심장 박동, 목소리,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눈빛. 아이칼의 존재가 천천히 다시 내게 와 닿았다.
그러고 나서야 내가 이성적으로 사고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각이 찾아왔다.
아이칼이 성마르게 답을 채근했다.
“그렇지, 카티?”
“……맞아.”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키의 말이 맞았다. 왜 귀어스트가 나를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여긴 거지? 잠시나마 그렇게 생각했다는 게 소름이 끼쳤다.
그건 500년을 봉인 속에 갇혀 있었던 마귀다. 아무리 가주님들이 귀귀라는 애칭을 붙여 주고 돌봐 왔다곤 하지만 본질은 인간을 타락시키는 악귀였다.
귀어스트를 처음 받아들였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나를 지켜 줬던 존재는 아키뿐이다.
아이칼의 낯에 초조함이 스쳤다. 그가 시간을 가늠하듯 어두운 밤하늘을 힐끗 올려다보았다.
“시간이 얼마 없어. 마나가 이 이상으로 날뛰기 시작하면 점점 더 그 로켓에 자극제가 될 거야. 마귀가 완전히 깨어나기 전에 해야 해.”
“방법이 있어?”
“키겔 루베니오가 라몬 블라스코에게 썼던 비기.”
“뭐……?”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대답에 나는 또다시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초대 황제의 비기라면, 까딱 잘못 썼다간 오러 폭주를 일으킨다는 그거였다. 숙련된 오러 유저조차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치명적인 마법.
심장이 불안하게 조여 왔다.
“걱정 안 해도 돼.”
아이칼이 굳어 버린 나를 어르듯 다정하게 뺨을 쓸어 주었다. 최대한 차분한 어조로 안심시키려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변형하지 않은 원형 그대로 쓸 거야. 그 비기의 원래 목적은 마기에 잠식된 오러를 원상태로 회복시키는 데 있으니까.”
“하지만, 혹시, 혹시. 혹시라도 잘못되면?”
아이칼이 나를 해칠 수도 있는 마법은 절대 권하지 않으리란 걸 알았지만, 그렇지만 와락 겁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나 루티어드 님처럼 잘못되면 안 돼. 아빠랑, 오빠랑 언니한테 그런 모습을 보여 줄 수는 없어.”
“카티샤.”
“나야 어떻게 된다 해도 영령으로 되살아날 수 있겠지만, 아빠는…….”
혹여라도 내가 루티어드 님과 이엘 님이 돌아가신 것과 똑같은 이유로 죽어 버리면, 블라스코는 또다시 덮친 비극을 절대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 가족이 20년이란 긴 시간 동안 바라 온 복수의 완성을 목전에 두고서 다른 무엇도 아닌 내 안위를 걸고 도박을 할 수는 없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