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Heiress of the Villain Family RAW novel - Chapter (209)
209화
왕좌 뒤에서 무기가 절그럭거리는 소음이 들려왔다. 방금 전의 마나 역행으로 알현실에 겹겹이 드리워져 있던 마법진들이 챙캉거리며 와해했다.
황제가 걸어 둔 은신 결계도 마찬가지였다. 왕좌 뒤쪽으로 뻗은 양익을 지키고 있던 기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황실 기사단장이 이끄는 황제 직속 기사단이었다.
기사단장을 선두로, 수십 명의 기사들이 왕좌를 보호하듯 에워쌌다. 왕좌 위에서 대치한 공작과 황제를 중심으로 두 세력이 팽팽히 대치한 형국이었다.
그러나 기실 황실 기사단은 황제의 신변을 지켜야 한다는 소임을 거의 이행하지 못하고 있었다. 황제는 지금 황성의 그 누구보다 안전하다. 안전하지 못한 건 그를 제외한 모든 자들이었다.
황실 기사단장이 두려움에 찬 눈으로 루테를 올려다보았다. 기사들을 가려 주던 결계가 깨어졌다는 건, 그들 역시 황성 전체를 덧씌운 마법에서 보호받을 수 없게 됐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제게 충성하는 이들을 죄다 인질로 만들어 블라스코의 눈앞에 전시한 페르테스가 이죽거렸다.
“대답이 없군, 공작. 기어이 이 자리에서 몇 명이 더 죽어 나가는 꼴을 봐야만 결정을 내릴 건가?”
“이러고도 아스트로카의 군신들이 네게 충성하길 바라나, 페르테스? 네 손으로 아군을 버리는구나.”
“그건 걱정하지 마. 네가 물러가고 나면, 어차피 이 성에서 벌어진 일을 기억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을 테니.”
황제가 지껄이는 동안, 뒤에서 침착하게 상황을 관전하던 베르너가 조용히 통신석을 꺼냈다. 통신석 위에서 본성 밖에 3인 1조로 퍼져 있는 블라스코의 기사들이 보내온 전언이 반짝거렸다.
[마법 관리국 사망자 – 2명] [황실 의료원 사망자 – 3명] [기사단 숙소 사망자 – 1명 ]통신석에 끊임없이 불빛이 들어오며 바깥의 상황이 전해졌다. 사망자 다음으로는 중상자들의 수가 이어졌다. 사망자 수보다 훨씬 많았다.
시간을 더 끌어서는 안 되겠다.
황제가 양팔을 활짝 벌렸다.
“자, 이제 선택할 시간이야, 루테.”
루테 역시 베르너와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그가 황제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며 뒤쪽을 향해 고개를 비틀었다.
“타운 하우스로 통하는 이동진을 엮어라.”
동시에 그가 황제의 시야 밖에서 손을 움직였다. 검지와 중지를 붙여 직각으로 그었다. 수신호였다.
그 뜻을 알아들은 베르너가 명령을 내렸다.
“레오, 알현실 중앙에 텔레포트 진을 만들어라. 좌표는 타운 하우스. 루시스 경이 저택으로 가 황후를 모시고 온다.”
“예, 공자님.”
황후 로사리아는 타운 하우스의 지하 수련소에 갇혀 있었다. 레오와 루시스가 앞으로 나서자마자 베르너가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나머지는 지금 즉시 움직인다. 황제의 몸에 흠집 하나 나지 않게 포획해야 해. 왕좌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퍼진 뒤 신호를 받는 동시에 구속 마법을 날려. 황제가 눈치채고 자해를 시도하기 전에.”
“각하와 황제의 거리가 너무 가깝습니다.”
“함께 휘말리실 분이 아니니 상관없다. 그리고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 본성 밖에도 타운 하우스와 연결되는 이동진을 함께 깔아 놓고, 우선 사상자들부터 저택으로 옮겨. 그 다음으로는 노인과 아이, 여자부터 차례로.”
“예, 공자님.”
알현실 문 양옆에 모습을 감추고 있던 블라스코의 마법사들이 기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소리 없이 이동했다.
레오가 엮어 내기 시작한 마법진이 서서히 완성되고 있었다. 이동진에 올라탄 루시스 경의 모습이 거짓말처럼 휙 사라졌다.
“좋아, 좋아…….”
페르테스의 두 눈에 희열이 타올랐다.
그의 손아귀에서는 여전히 피가 질금질금 새어 나오고 있었다. 핏방울이 카펫에 번질 때마다 마나가 역으로 휘몰아쳤다.
사방으로 흩어진 마법사들이 적당한 위치를 찾아 황제를 향해 수식을 엮는 데 걸리는 시간은 빠르면 10분.
조금이라도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된다. 혹시라도 도중에 낌새를 눈치챈 황제가 제 손바닥이 아니라 팔뚝이라도 길게 찢으면 그 순간 사상자가 제곱의 제곱으로 늘어날 것이 뻔했다.
저택으로 이동한 루시스 경이 황후 로사리아를 데려오는 데 최소 10분 이상을 끌어 주면 된다.
베르너가 마른 주먹을 꽉 쥔 순간이었다. 바깥에서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기운이 들이닥치며 내부가 크게 들썩거렸다.
“……!”
“이건……?”
베르너와 아르닌은 물론이고, 여전히 페르테스의 목에 검을 겨눈 루테 역시도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다. 오러나 마나와는 차원이 다르게 무겁고 진득해 거부감마저 불러일으키는 기운이 감각을 찔러 대고 있었다. 심지어는 페르테스마저도 눈썹을 꿈틀댔다.
황제마저도 예상하지 못했던 기운. 블라스코 중에서도 직계들만이 겨우 정체를 짐작해 낸 그 기운.
마기였다.
* * *
바깥의 마나가 크게 요동친 건 나와 아이칼, 그리고 아이칼이 빠짐없이 챙겨 온 프리츠가 막 초대의 탑에 들어선 순간이었다.
별안간 옆구리에 찬 검이 둔탁하게 진동하며 내 앞에 반투명한 결계가 덧씌워졌다.
“……!”
내가 찬 검은 반경 100미터에 이상 현상이 감지될 경우 자동으로 방어 결계가 펼쳐지게끔 설계한 아르닌 언니의 작품이었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마나의 파도가 나를 덮치기 직전 결계에 부딪쳤다.
어마어마한 충격파에 허공이 마구 일렁거렸다. 내게 오는 반동이 아예 없기란 불가능했다.
“허억.”
입에서 저절로 헉 소리가 튀어 나갔다.
허리를 풀썩 구부리는데 눈앞이 노래졌다. 몸 안의 장기들이 중력을 거스르고 위로 치솟는 듯한 기분이었다. 혈관 위를 타고 흐르는 오러가 제동이라도 걸린 것처럼 일시적으로 순환을 뚝 멈췄다. 목 아래에서는 진한 쇠 맛이 느껴졌다.
“헉, 아으…….”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게 바로 오러 역류였다.
‘하지만 갑자기 왜?’
아이칼이 급히 허리를 숙여 내 얼굴을 확인했다.
“카티, 괜찮아?”
입을 열었다가는 그대로 위액을 토할 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
나는 고개만 힘겹게 저었다. 속이 미친 듯이 울렁거리고 눈과 귀에 압력이 느껴졌다.
나만 이런 증상을 겪은 것은 아니었다. 프리츠는 이미 기둥을 잡고 헛구역질을 하는 중이었다.
본성에서 무슨 일인가가 터졌다.
그러나 바깥의 일을 걱정할 겨를이 없었다. 나만큼이나 내 로켓에도 비슷한 강도의 충격이 닥쳤다. 조금 따끈한 정도였던 로켓이 이제는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도저히 손을 대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는 화기였다.
“뜨, 뜨겁…….”
나는 손가락 끝에 목걸이 줄을 걸고 옷 속에서 간신히 로켓을 끄집어냈다.
꺼내고 보니 더욱 가관이었다. 로켓이 저 혼자 덜그럭거리고 있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조개껍데기 사이에서 붉은 광선이 새어 나왔다. 열리기 일보 직전인 듯했다.
‘설마…….’
로켓이 저절로 열리며 나를 집어삼키는 경우는 딱 한 가지뿐이었다. 로켓 속의 아공간에 무언가 변화가 일어났을 때다.
‘[지금 우리, 마법처럼>의 새로운 화수가 해금되었다거나, 혹은…….’
내가 이 안에 넣어 놓고 온 마검에 무슨 일이라도 일어났다거나.
“카티, 이리 주……”
“만지지 마, 아키!”
아이칼이 로켓을 움켜쥔 순간, 강한 스파크가 튀었다. 거부 반응이었다. 마귀가 본능적으로 신수를 밀어내는 것이다.
나는 그의 손을 쳐 내고 목걸이를 벗었다. 금방이라도 조개껍데기가 활짝 벌어질 듯했다. 급한 대로 두 손 안에 로켓을 가두고 꽉 짓눌렀다.
“나오지 마, 귀귀. 나오면 안 돼!”
가끔 마기가 마검 위로 풀풀 솟아 마귀의 형상을 이룰 때가 있었다. 하지만 도로 들어가라고 어르고 달래면 다시 검속으로 쏘옥 스며들곤 했더랬다. 영령들께선 내게 진지하게 딸랑이나 모빌 같은 장난감을 추천해 주시기도 했다.
[이지가 부서진 마귀는 갓 태어난 아기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생존 본능만 남아 있지. 제때 잘 재우고, 먹이고, 외로워하지 않게 놀아 주면 잠잠해.] [그리고 제가 싫어하는 놈과는 죽어도 같이 있기 싫어해. 그래도 네가 마검을 맡고 난 뒤로부터는 난장을 피우는 빈도가 줄어든 것 같은데. 귀귀가 너를 꽤 마음에 들어 하나 보구나, 카티샤.]그 말이 농담이 아니란 걸 증명하듯, 영령의 탑 꼭대기에 있던 귀어스트의 방은 정말로 갓난아이 방처럼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기도 했다.
영령들이 귀귀를 육아하던 방식을 떠올리자 나도 모르게 강아지 달래듯 하는 말투가 튀어 나갔다.
“가, 가만히 있어. 착하지……!”
그렇게 냅다 외치고 나니, 놀랍게도 로켓 안쪽의 폭동이 아주 조금이나마 가라앉는 듯했다. 역시 선조의 지혜란 무시할 것이 아니다.
당장의 위기를 수습한 뒤에야 나도 상황을 파악할 여력이 생겼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갑자기 왜 오러가, 콜록!”
“말하지 마, 카티.”
아이칼이 내 등을 쓸어내리며 기민하게 마나의 흐름을 짚었다.
“황성 어딘가에 황제가 걸어 놓은 마법이 일부 발동한 모양이지.”
“비기, 비기야. 아버지가 변형한 초대의 비기.”
시체처럼 창백해진 프리츠가 겨우 고개를 들고 말을 보탰다.
“어떤 조건을 충족하면 황성 안에서 변칙적으로 비기술이 발동되도록 마법을 걸어 두신 거야. 빌어먹을, 이 성엔 당신 아들도 있다는 걸 새카맣게 잊으신 모양이지, 잘난 우리 폐하께선!”
욕설을 지껄인 그가 다시 허리를 숙이고 웩웩거렸다. 그 역시 만일을 대비해 보호 결계를 두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마법이 상쇄되었는데도 몸에 이만큼이나 영향이 올 정도라면, 평범한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쇼크로 사망할 수도 있다.
‘왜 이렇게 성안이 고요한가 했더니, 역시 꼼수를 숨기고 있었다는 거지.’
한 번쯤 눈이 돌기를 바라긴 했지만 이 정도까지 회까닥 돌기를 바란 건 아니었는데. 로사리아만 있으면 제 신하들, 시종들, 군사들까지 죄다 내버려도 좋다는 건가?
“아키, 그 마법, 깨뜨릴 순 없어?”
“어렵지야 않은데.”
아이칼이 날카로운 시선으로 허공을 훑었다.
“이 탑을 기점으로 펼쳐진 대단위 마법이야. 이만한 규모라면 족히 6서클 이상은 될 거고, 함부로 부쉈다간 탑은 물론이고 이 일대가 반파될 걸.”
섣불리 마법을 깨뜨렸다간 탑에 과부하가 걸릴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랬다간 내게 필요한 마법진까지 한꺼번에 와해될 위험이 컸다.
“그럼, 일단 여길 부수고 나간 뒤에 프리츠가 다른 장소에서 다시 마법을 엮는 건?”
“초대의 비기는 이 탑에서만 가능해. 쿨럭. 아으, 미식거려…….”
프리츠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이칼이 내 손을 쥐고 마법진 한가운데로 이끌었다.
“그러니까 빨리 하고 나가야 해, 카티. 머뭇댈 시간이 없어.”
“얼마나 걸리는데?”
“아마 네 상태에 따라…….”
말을 흐린 아이칼이 나를 꼼꼼하게 들여다보았다.
그가 확언하지 않는다는 건, 얼마나 걸릴지 장담할 수 없다는 거다.
‘가족들은 괜찮은 거겠지?’
내가 불안하게 탑의 조각창을 힐끗거리는 사이, 나를 마법진의 중앙에 세운 아이칼이 프리츠를 향해 고갯짓했다.
“시작해.”
안색이 새파래진 프리츠가 간신히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희미하게 일렁거리던 마법진에 빛이 번지기 시작했다. 마법진이 서서히 가동하기 시작하자, 로켓이 더욱 난폭하게 절그럭거렸다. 목걸이 줄까지 달군 쇠줄처럼 뜨거워지는 탓에 나는 그것을 더 쥐고 있지 못하고 결국 떨어뜨리고 말았다.
‘이렇게 반항이 심하다는 건……!’
귀어스트가 본능적으로 깨달은 게 틀림없었다. 내게서 저를 떼어 내려 한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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