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Heiress of the Villain Family RAW novel - Chapter (221)
221화
* * *
그 뒤로는 대강 예상 가능한 일들만이 벌어졌다. 처음으로 마물이 등장하기 시작한 이사나 해안은 절벽과 암석, 자갈밭이 펼쳐진 혹독한 환경이었다.
온갖 종류의 마물들이 심해에서 뭍으로 기어올라 왔다. 해저에 마물들의 세계와 연결되는 포탈이 열렸다는 것이 당시의 정설이다.
당연히, 고작 50여 명뿐인 용병단이 마물 군단을 당해 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인간들은 생전 처음 겪어 보는 흉포한 마물들의 기세에 공포에 질렸다. 제대로 맞서 싸우는 이는 오직 검은 머리의 사내뿐이었다.
당연히 역부족이었다. 거대한 피막 날개를 펄럭거리는 괴조가 용병단에게 달려들었다.
가까이 있던 용병들이 비명을 지르며 서로를 마구 밀쳤다. 사내가 비틀거리며 중심을 잃은 순간, 괴조가 그를 낚아챘다.
“대장, 대장-!”
용병들이 다급하게 그를 불렀으나 이미 늦었다.
사내를 움켜쥔 괴조가 바다 위로 날아올랐다. 그는 마지막까지 검을 휘둘렀고, 그 바람에 몸뚱이 이곳저곳이 잘린 괴조는 사내를 움켜쥔 채 바다로 추락했다.
용병들의 비명이 물속으로 가라앉듯 점차 흐릿하고 먹먹해졌다.
그러나 덕분이라고 해야 할지, 사내와 괴조가 바다 밑으로 끌려들어 간 순간 해안가로 기어 나오던 마물들이 움직임을 멈췄다.
그들은 곧 다시 바닷속으로 돌아갔다. 거짓말처럼 이사나 해안가에서 마기가 걷히고 있었다.
“대장을 제물로 던져 넣고 평화를 얻었네…….”
그렇게 중얼거린 순간 또다시 눈앞의 풍경이 바뀌었다.
갑자기 발목 부근에 물이 찰랑거린다 싶더니, 무서운 기세로 물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순식간에 몸이 푸르른 바닷물에 잠겼다.
저 깊은 바다 밑바닥에 마물들이 우글우글 떼 지어 몰려 있었다.
더 자세히 살펴보니, 사내의 칼에 몸 이곳저곳을 베인 괴조가 그의 몸을 마구 뜯어 먹는 중이었다.
마물은 사내의 심장을 뜯어 먹고 사지를 떼어 내 제 몸에 달았다.
“보지 마.”
아이칼이 손바닥으로 내 눈을 가렸다.
나는 이미 보았던 장면이라고 굳이 설명하지 않았다. 사내가 눈을 까뒤집고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마물에게 몸을 뜯어 먹히는 광경이 아직도 생생했다.
사내와 마물이 점차 융합되고 있었다. 저것이 바로 노엘이 죽음을 맞이하고, 이지를 가진 최초의 마귀가 탄생하는 장면이다.
다음 순간 해수면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가까워졌다. 몸이 떠오르고 있었다.
바다 위로 올라오자마자 나는 마물과 동화된 사내가 비척비척 해안가로 걸어 나가는 광경을 목격했다. 추악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지만 내가 아는 마귀의 모습과는 또 달랐다.
아이칼이 찜찜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아직 머리가 있네.”
그의 말대로, 노엘의 머리는 무사했다. 짐승의 몸통에 인간의 머리와 사지, 그리고 등에 돋은 거대한 양 날개를 가진 그는 아직은 그래도 사람처럼은 보였다.
“완전히 다 먹히지는 않은 거 아닐까? 이 시점까지는 인간의 자아를 유지하고 있었던 걸지도 몰라.”
저것 봐. 뭍으로 올라오자마자 사내가 찾은 이는 아직 근방에 머물러 있던 늪사자 용병단이었다.
그가 나타나자 용병들이 혼비백산하여 비명을 질렀다.
“마귀다, 마귀가 나타났다!”
“아아악, 다가오지 마!”
사내는 그에게 무기를 휘두르며 도망치는 동료들을 멀거니 보고만 있었다. 마기가 뜨겁게 녹인 타르처럼 그의 몸을 타고 느리게 떨어졌다.
자리에 털썩 주저앉은 사내가 몸을 웅크리고 울기 시작했다. 그의 입에서 인간의 언어가 아닌 짐승의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사람들 틈에서 살고 싶습니다.”
“인간을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외로움입니다.”
나는 사내가 대체 어떤 심정이었을지 감히 짐작하기도 어려웠다.
해안가에 짙은 해무가 차오르기 시작하더니 또다시 시야를 뒤덮었다.
안개가 걷혔을 때는 온 사방이 어두컴컴했다. 검은 마기가 태양을 가리고 대지를 뒤덮고 있었다.
땅속 깊은 곳과 심해로부터 기어 나온 마물들이 지상을 점령하는 시대. 약 200년간 이어지는 암흑기가 막 시작되려 하는 시기였다.
“최악인데…….”
아이칼의 미간에 깊은 골이 팼다. 실제가 아니라지만 현실 뺨치게 정교한 과거의 환영에 나까지 다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마기에 민감한 아이칼에게는 가히 불쾌한 광경이리라.
우리가 선 곳은 아까의 그 언덕이었다. 그러나 소박한 오두막은 폐허가 되어 있었고, 잔디는 마기에 녹다시피 해 듬성듬성 검은 흙만 내보였다.
언덕의 비탈면 아래에는 인간의 군대가 진을 치고 있었다. 검은 머리의 사내는 그들을 내려다보며 서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온전한 인간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조금 전 막 바닷가에서 나왔을 때보다 좀 더 마귀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용병단의 단장답지 않게 선량하고 이지적인 인상은 간데없었다. 그의 살갗은 검고 흉측한 비늘로 덮여 있었고, 눈동자는 영혼 없이 텅 비었다.
언덕을 포위하고 있던 병사들이 사방에서 소리를 지르며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저것을 죽여라!”
“마귀를 잡아 죽여! 저것이 왕국을 망하게 할 거야!”
“힐라이야 님께서 곧 오실 것이다. 그때까지만 버텨!”
깊은 수렁 속에 침잠해 있던 사내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힐라이야의 이름을 들은 그가 찰나 간 머뭇거린 틈을 타, 뒤로 접근한 병사가 묵직한 검을 휘둘러 그의 목을 베었다.
사내가 비틀거리자 몇 번이나 검이 반복해 휘둘러졌다. 결국 머리와 몸통이 분리된 사내가 초라한 꼴로 나동그라졌다.
마귀에게 내내 냉소적이던 아이칼마저도 짧게 탄식할 만큼 처참한 광경이었다.
마물을 처단했다며 광분한 인간들이 마귀의 몸과 머리에 불을 질렀다. 불길은 곧 언덕 전체로 옮겨붙었다.
그때 새하얗게 반짝이는 오러가 불길 속에서 눈꽃처럼 개화했다.
순간 아이칼이 힘을 쓴 줄 알았으나 아니었다. 여신이 언덕에 도착한 것이다.
하늘에 닿을 듯 높이 치솟던 불길이 여신의 치맛바람 한 번에 촛불처럼 훅 꺼졌다.
시커멓게 타 버린 언덕에 아득한 공명이 깃든 음성이 내려앉았다.
[내가 가지 말라 했잖아.]“…….”
[왜 결국에는 내 손을 빌려야 하도록 만들어?]사내의 머리는 거의 다 타 버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치유와 재생의 권능으로도 원상 복구하지 못할 만큼 손상도가 심했다.
여신은 그 흉측한 머리를 내려놓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언덕에는 마물의 사체들이 널려 있었다. 그녀는 사체들 사이에서 두 개의 뿔이 달린 짐승의 머리를 들어 올렸다. 그나마 온전히 남은 머리였다.
그녀는 그것을 몸통만 남은 마귀의 목에 이어 붙였다. 여신의 권능이 이번에는 효력을 발했다.
새로운 머리를 갖게 된 사내가 눈을 떴다. 가로로 길게 찢어진 눈이 붉고 뜨거웠다.
마지막 남은 인간성을 토해내듯 그가 참담하게 중얼거렸다.
[죽이시지 않고요…….]여신은 대답하지 않았다. 자신이 사랑한 모습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은 마귀를 애틋하게 쓰다듬은 그녀가 작게 속삭였다.
[너를 살렸으니, 나는 더 이상 이 땅에 머무를 수 없다. 이대로 네 곁에 있다간 끊임없이 너를 돌아보게 될 거야.] [그렇다면 이런 모습으로 살아남는다 한들 내게 무슨 의미가…….] [그래도 네가 살아는 있었으면 한다.] […….] [나를 용서해, 노엘.]이것이 바로 힐라이야가 저질렀다던 잘못된 선택이었다.
더 이상 곁에 머무르지 못하게 된다 할지라도 마귀를 죽게 둘 수는 없었던, 그 때문에 대륙을 기어이 암흑기로 몰고 간 그녀의 뼈아픈 실수.
여신은 떠났고, 마귀는 홀로 남았다. 외로움 많던 인간이 맞은 잔인한 결말이었다.
사내가 품고 있던 선량한 마음은 그녀가 떠난 직후부터 완전히 죽어 버렸다. 그에게 남은 것은 오로지 분노, 그리고 인간의 영혼을 빨아들이는 마물의 본성뿐이었다.
마귀가 흉포하게 울부짖었다.
대륙의 암흑기가 시작되었다.
* * *
그 뒤로 귀어스트의 기억에는 긴 공백이 있었다. 거의 200년의 공백이라 그런지 장면이 전환되는 데에도 시간이 걸렸다.
나는 아이칼과 함께 짙은 안개가 걷히기를 기다렸다. 그러다 불쑥, 의식하지 못한 말이 입 밖으로 튀어 나갔다.
“나라면 그냥 같이 죽었을 거야.”
“신은 불사니까. 죽고 싶어도 못 그랬을걸.”
뒤에서 내 허리를 끌어안고 있던 아이칼이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그런가. 신은 불멸자라 원치 않아도 끝까지 지켜봐야 했을까?
“죽음, 소멸. 힐라이야는 그런 것을 몰라. 스스로가 어찌 탄생했는지도 모를 텐데 죽음의 의미를 알까. 하물며 한낱 인간을 위해 스스로를 포기한다……. 그런 선택지를 떠올리지도 못할 테지.”
“그럼 너라면 어떻게 했을 거 같아?”
아이칼이 팔을 풀고 나를 돌려세웠다. 내 의중을 짐작해 보려는 듯 그의 눈이 깊었다.
처음부터 나는 인간 귀어스트와 힐라이야가 나눈 대화에서 기시감을 느꼈다. 이전에 나와 아이칼이 도무지 합의점을 찾지 못해 한참을 빙빙 돌았던 주제와 완벽히 일치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우리의 끝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그들과는 무엇이 어떻게 다를지.
“만약에, 더 이상 나를 구할 방법이 어디에도 없었다면. 그런데 같이 죽지도 못한다면…….”
“너를 따라 가장 비천한 존재가 되었겠지.”
최악을 가정하는 내 질문에 아이칼이 천천히 답을 내놓았다.
“초대의 탑에서 했던 말은 사실 거짓말이야. 네가 영령이 되면 죽어 버리겠다고 했던 건.”
“…….”
“어떤 형태로든 네가 존재하고 있는데, 내가 널 떠날 수 있을 리가 없어.”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