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Heiress of the Villain Family RAW novel - Chapter (23)
23화
“사실 전자의 가능성이 더 높겠지요, 숙부님!”
첸 블라스코가 이때다 하고 끼어들었다.
“11년 전 루테가 죽었을 때, 선대께서 노발대발하셨던 걸 다 잊으셨습니까? 다시는 블라스코에 발도 들이지 않겠다며 엄포를 놓고 가셨지요.”
‘루테’라는 이름이 반복적으로 화제에 올랐다. 눈치로 보아 일찍 죽었다는 헤르젠 할아버지의 차남이자 공작의 동생인 듯했다.
아르닌은 시종일관 심드렁한 태도를 유지했지만, 베르너는 이 화제가 확연히 불편해 보였다.
그가 딱 잘라 첸 블라스코를 저지했다.
“당백부님, 각하께서 안건을 벗어난 화제는 허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불필요한 이야기는 삼가 주시죠.”
“큼…… 큼큼. 송구합니다, 공자님.”
상황을 관전하던 공작이 천천히 결론지었다.
“자의로든 타의로든 카티샤가 상속을 포기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상속을 무효화하는 방법은 두 가집니다. 선대께서 영령의 탑에서 부활하신 뒤 마검 귀어스트와 재합의를 거쳐 상속인을 바꾸거나, 혹은 상속인이 불의의 사고로 인하여 유산을 상속받을 수 없는 상태라거나.”
등골이 섬뜩해져 왔다. 공작의 발언 때문이 아니라, 첸 블라스코가 사악하게 눈빛을 빛내는 걸 똑똑히 목격한 탓이었다.
“유언장의 효력은 상속인이 죽음을 맞는 순간 깨끗이 사라지죠. 뭘 망설입니까?”
역시 저 인간, 할아버지의 유산을 탐내는 게 틀림없었다.
나는 그의 이름을 내 블랙리스트 가장 상단에 올려 두기로 마음먹었다.
첸 블라스코가 어깨까지 으쓱거려 가며 거들먹거렸다.
“솔직히, 저는 가주께서 왜 굳이 가문 회의까지 소집했는지 이해가 안 갑니다. 일을 이렇게 크게 만들 필요조차 없는……”
“당백부님.”
누군가 냉담한 음성으로 첸 블라스코의 발언을 가로챘다. 아르닌이었다.
“우리가 아무리 가지가지 다 한다고 욕을 처먹어도, 죄 없는 어린아이를 처형할 만큼 인간 말종들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 말에 애꿎은 베르너가 움찔했다. ‘썰어 버리겠다’는 협박을 말버릇처럼 달고 살았으니 찔릴 만도 했다.
아르닌이 그에 개의치 않고 발언을 이어 갔다.
“블라스코의 가훈은 기사도에 근본을 두고 있습니다. 아이와 약자를 보호하는 것이 우리 가문의 도의지요. 설령 정말 사기꾼이라 하더라도 저 아이를 죽음으로 내모는 것은 블라스코의 정신에 먹칠하는 꼴입니다. 당연히, 영령들께서도 허락하지 않으실 테고요. 그렇죠, 작은할아버님?”
“그거야 당연하다. 첸, 너는 발언에 신중을 기하거라.”
두 번이나 꾸짖음을 당한 첸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나를 해치우자고 주장한 게 정말 진심이었던 듯했다. 나는 철렁한 가슴을 겨우 쓸어내렸다.
“마검이 탐나는 건 아니실 테니, 당백부께서 눈독을 들이고 있는 쪽은 역시 유산이겠지요?”
아르닌의 두 눈에서 레이저가 쏘아져 나오는 듯했다.
역시 우리 언니, 돈 걸린 일에는 물불 가리지 않는다. 그녀가 냉소적으로 일침을 놓았다.
“저 아이를 죽인다고 할아버님의 유산이 당백부님께 가진 않습니다. 그건 당연히 내 것, 아니, 일단 아버지께 먼저 가겠죠. 그다음이 직계인 저와 베르너고요.”
네가 낄 자리는 없어. 그 말을 직접적으로 하지는 않았지만 아르닌의 눈빛과 오만한 표정이 그렇게 쏘아붙이고 있었다. 블라스코에서 직계와 방계의 차이는 앉은 좌석의 단차만큼이나 뚜렷했다.
결국 첸 블라스코가 못마땅한 기색으로 얼버무렸다.
“맹세코 그런 의도는 없었습니다, 공녀. 하지만 그렇다면 뭐 어쩌자는 건지……. 가주께서 묘책을 내 보시지요.”
검지로 팔걸이를 톡, 톡 느리게 두드리던 공작이 동작을 멈추었다.
그가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앞서 해결 방안이 두 가지라고 말씀드렸습니다만. 정정하겠습니다. 사실 가장 괜찮은 방법은 따로 있거든요.”
“……그게 뭡니까?”
공작은 이상할 정도로 나를 뚫어져라 직시하고 있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손을 들어 뺨을 문질렀다. 분명 살기는 아니었는데도, 미세한 오러의 움직임에 피부가 따끔거렸다.
그 반응을 날카롭게 잡아낸 공작의 입가에 더욱 짙은 웃음기가 어렸다.
공작이 느릿하게, 그러나 거역할 수 없는 힘을 실어 발언했다.
“카티샤 아인슬리를 블라스코에 입적하고자 합니다.”
뭐라고요?
나는 경악하여 입을 딱 벌렸다.
‘입적? 블라스코에 나를?’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수뇌부들 사이에도 당혹스러운 탄식이 흘렀다. 베르너와 아르닌조차 당황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 입적이라는 게…….’
한차례의 파란 속에서 오로지 게스파 어르신만이 평온했다.
“루티어드, 방금 그 말은 저 소녀를 양녀로 삼겠다는 건가?”
“바로 그렇습니다.”
양녀!
순간 눈앞에 천둥이 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양녀? 그럼 나를 입양하겠다고? 블라스코에?
‘그런 조건은 없었는데!’
공작과 내가 합의한 건, 내가 베르너와 아르닌을 내 편으로 돌리면 상속 시험을 치르게 해 주겠다. 그게 전부였다. 예상치 못한 발언에 어안이 벙벙했다.
좌중의 침묵은 아주 잠시였다. 저마다 경악을 집어삼킨 이들이 비명처럼 외치기 시작했다.
“저게 지금 무슨……. 가주, 미치셨습니까!”
“루티어드, 노망은 자네가 났나! 아직 그럴 나이는 아닌데!”
“내가 방금 뭘 들은 거요?”
하지만 장담컨대 이 자리의 누구도 나만큼이나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게스파 어르신만이 여전히 침착했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말해 보게, 루티어드.”
“블라스코의 재산이 아인슬리에게 넘어갈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출신도 불명확한 성인데요.”
“그래서? 성을 바꾸면 될 일이다?”
“바로 그렇습니다. 간단하죠. 깔끔하고.”
첸 블라스코가 가주와 큰어른을 제외하고서는 모두 존칭이 기본이라는 회의의 룰도 잊은 채 버럭 외쳤다.
“루티어드, 네 양녀로 들이면 저 소녀는 블라스코의 직계가 되는 거다. 블라스코의 성이 필요한 거라면 방계 쪽으로 입적하는 게 타당하지!”
“맞습니다, 가주님. 공자님과 공녀님과 대등한 지위를 주겠다는 건 말도 안 됩니다. 반쪽짜리 귀족도 아니고, 어느 잡놈의 피가 섞였을지 모르는 평민인데요!”
나는 완전히 얼빠진 와중에도 나더러 잡놈이라며 삿대질을 한 갈색 머리 청년의 얼굴을 머리에 새겼다.
이번에는 게스파 어르신도 중립을 지키지 않았다.
어르신이 한숨을 내쉬며 나직이 지적했다.
“내 생각도 그렇다, 루티어드. 블라스코의 직계가 가지는 위상을 모르는 게 아니지 않느냐? 너와 베르너, 그리고 아르닌은 아스트로카에서 가장 고귀한 귀족이다. 내로라하는 귀족들 사이에서도 단연 으뜸가는 블라스코인데, 저 소녀에게는 미안하지만 격이 달라도 너무 달라. 저 아이에게 블라스코의 성을 준다면 당연히 먼 방계 쪽으로 입적해야 한다.”
입양은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는데, 심지어 방계 쪽으로 보내진다면 앞으로 내 운명이 어찌 될지는 뻔했다. 어느 쪽을 둘러봐도 내게 온건한 사람을 찾기가 힘들기 때문이었다.
내가 미약한 불안감에 입술 안쪽을 짓이겼을 때였다.
“직계로 넣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공작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어째서?”
“아, 왜냐고요.”
공작이 묘하게 말꼬리를 늘였다. 좌우에서 고개를 내젓든 탁자를 두드리든 크게 그를 소리쳐 부르든, 그의 시선은 오로지 내게만 꽂혀 있었다.
내 운명을 손바닥 위에 올려 둔 순간, 믿을 수 없게도 그는 즐거워 보였다.
“제가 저 아이를 키워 보고 싶어서요.”
순간 잘못 들었나, 했지만 여전히 살갗을 간질간질 긁는 오러가 이 모든 상황이 꿈이 아니라는 걸 증명했다.
세상에, 공작이 나를 키우고 싶대.
“말도 안 돼……!”
거짓말!
머리를 딱 때리는 현실감이 나를 용수철처럼 자리에서 튀어 오르게 했다.
나뿐만이 아니라 사방에서 사람들이 벌떡벌떡 일어났다.
주위의 소란에도 공작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느긋한 태도로 쐐기를 박았다.
“제가 흥미가 생겼습니다. 모난 아이도 아니고,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도 아닌 듯해서요. 선대께서 아끼셨던 아이라고 하니 더 애착이 가는 것도 사실이고요.”
내가 입만 뻐끔거리는 사이, 공작이 아르닌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홀로 결정할 사안이 아니니, 직계들의 의견도 수렴해야겠지요. 아르닌, 네 생각은 어떻지?”
“저는 찬성입니다.”
아르닌은 기다렸다는 듯 매끈하게 답을 내놓았다.
나는 충격에 잠시 멈추었던 숨을 겨우 내쉴 수 있었다. 아르닌이 내게 몰래 윙크를 보냈다.
아…… 편을, 들어 준 건가 봐.
공작이 이번에는 베르너에게 시선을 던졌다.
“아르닌은 찬성했고. 그럼 베르너, 네 생각은?”
“……저는.”
뒤이어 지목당한 베르너가 얼굴을 굳혔다. 그는 공작을 한 번, 나를 한 번 보고는 냉랭히 시선을 비꼈다.
좋지 않은 예감이 엄습했다. 역시, 내가 자신을 속인 걸 용납하지 못한 게 분명……
“가주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최악의 상상이 이어지지 못하고 끊겼다.
나는 얼떨떨하게 그를 쳐다보았다.
베르너가 동의했다.
블라스코의 직계 셋이 모두 동의를 표했다.
공작이 만족스럽게 손끝을 모았다. 이 상황이 유쾌한 듯 보이는 이는 이 넓은 회의장에서 오직 그뿐이었다.
“이제 남은 건 하나로군요. 카티샤 아인슬리, 네 의견은 어떻지?”
“저는, 저는…….”
갑자기 닥친 상황에 앞뒤를 파악할 정신이 없었다. 나는 도움을 요청하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방계들의 눈초리는 이제 곱지 않은 것을 떠나 적대적이기까지 했다.
그들 역시도 검가의 일원들이었다. 한 명 한 명의 오러는 블라스코 삼인방에 비할 바가 못 되었으나, 수십 명의 오러가 합쳐지니 기세가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
‘아, 아파…….’
내가 어깨를 옹송그리고 쉽게 대답하지 못하자, 공작이 살짝 미간을 찡그렸다.
“오렌지, 너 지금 괜찮……”
“잠깐.”
그의 말을 막은 이는 게스파 어르신이었다. 천천히 오른손을 들어 올린 어르신이 나를 똑바로 응시했다.
“내가 아이와 이야기를 해 보겠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