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Heiress of the Villain Family RAW novel - Chapter (37)
37화
아이칼의 신비로운 눈동자에 고민하는 내 표정이 그대로 비쳤다.
나를 관찰하던 그가 작게 물었다.
“넌 여기서 일하는 인간 중 하나인가? 아니면 백의 교단 소속?”
내 주황색 머리카락을 빤히 보던 소년이 이번에는 내 눈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그러곤 조그맣게 뭐라 중얼거렸다.
“교원들과 교단병들 중에 너처럼 생긴 인간은 본 적 없는데…….”
“난 교단하곤 아무 관련도 없어. 나도 납치당해서 끌려온 거야. 그러는 너야말로 어쩌다가 여기에 있게 된 거야?”
나는 약간의 답답증을 느끼면서도 아이칼의 애어른 같은 말투가 소설에서 묘사한 그대로라는 생각을 했다.
그때, 입구에서부터 성큼성큼 다가오는 기척이 들려왔다.
“이, 이따가 다시 올게. 기다려.”
나는 벌떡 일어나 원래 갇혀 있었던 우리로 황급히 몸을 구겨 넣었다. 그리고 자물쇠가 부서진 것이 티 나지 않도록 대충 잘 맞춰 놓은 뒤 모른 척 눈을 감았다.
다가오는 이는 여자인 듯했다. 가벼운 발소리와 치맛자락이 발목에 스치는 소리가 가까이 다가왔다.
이윽고 내 앞에 묵직한 뭔가가 툭 놓였다. 실눈을 뜨고 보니 오래된 치즈와 딱딱해 보이는 빵 덩어리를 담은 그릇이었다.
빼빼 마르고 키가 큰 여인이 무심한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 노예들의 식사 담당이구나.
“저녁이다. 남기지 말고 먹도록 하렴. 그래야 내일 경기에서 그나마 살아남을 확률이 높을 테니까.”
벌써 저녁이 되었단 말이야? 마가렛과 거리로 나온 게 정오 전이었는데? 기함할 만큼 형편없는 식사보다 그 사실에 더 놀랐다.
지금쯤이면 블라스코에서도 내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찾……으려나?’
글쎄. 의례적으로 찾는 시늉 정도는 할 것 같은데. 열과 성을 다해 찾을 것 같진 않았다. 아르닌 언니라면 또 모르지만…….
‘특히 공작님은, 글쎄. 집 잘 찾아오는 것도 능력이라며 두고 보라고 하지나 않으시면 다행일 것 같은데.’
너무 설득력 있는 가정이라 약간 서러워졌다.
그래도 마가렛이나 제미언은 많이 걱정하고 있지 않을까? 오늘을 넘기기 전에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글렀다 싶었다.
여인은 아이칼의 우리 앞에도 식사 그릇을 내려놓았다.
“너도 마찬가지다, 백발 꼬마. 오늘까진 운 좋게 살아남았지만, 내일도 그럴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어. 고집은 그만 부리고, 챙겨 줄 때 먹어 두는 게 좋아.”
아이칼은 여인에게 시선을 던지지도 않았다. 나는 여인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높낮이가 없고 온기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의 상태를 유심히 살피는 눈빛이나 쉽사리 옮기지 못하는 걸음에서는 일말의 인정이 묻어 나왔다.
나는 쇠창살을 잡고 슬그머니 그녀를 불러 보았다.
“저기…….”
그러나 여인은 내가 차마 소리를 크게 내기도 전에 등을 돌렸다. 나는 다급한 마음에 멀어지는 그녀의 등에 대고 냅다 외쳤다.
“저기요! 어, 언니!”
여인의 뒷모습이 크게 흔들렸다. 일단 붙잡기는 했는데 할 말이 없었다. 통할까? 괜히 긁어 부스럼만 만드는 거 아닐까.
그러나 내 입은 이미 나불거리고 있었다.
“저 무, 무릎이 아파서요…….”
“…….”
“이대로 검투장에 들어가면 재미라곤 하나도 없이 3초 만에 나가떨어질 것 같은데……. 모, 목도 마르고.”
“뭐 어쩌라는 거니? 약 같은 건 없어.”
한 박자 늦게 싸늘한 대답이 돌아왔다. 어쩐지 희망이 보였다. 나는 최대한 불쌍하게 들리도록 울먹거렸다.
솔직히 노력할 필요도 없었는데, 엄살이 아니라 정말로 무릎이 욱신거리고 심한 갈증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약은 바라지도 않으니까…… 손수건이나 물 같은 거라도 가져다주시면 안 될까요……?”
“…….”
“하, 하자가 있으면 상품 가치도 떨어지잖아요.”
어색한 적막이 흐른 끝에, 여인이 나지막한 한숨과 함께 뚜벅뚜벅 이쪽으로 다가왔다.
“어디 봐. 발목이 뭐가 어쨌다는…….”
성의 없이 자물쇠를 풀려던 여인이 동작을 멈췄다. 이미 고리가 부서져 있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녀의 눈썹이 홱 치켜 올라갔다.
‘어쩔 수 없다. 정면 승부.’
나는 때를 놓치지 않고 쇠창살 밖으로 손을 뻗어 여인의 치맛자락을 움켜잡았다. 그리고 앙칼진 추궁이 날아들기 전에, 눈을 질끈 감고서 외쳤다.
“언니, 여기서 얼마 받아요?!”
* * *
결과적으로, 이번에는 내 작전이 통했다.
나와 딜에 성공한 언니의 이름은 캐서린이었다. 나는 그녀를 붙들고 여기서 나갈 수 있도록 도와 달라며 눈물과 통곡과 필사의 엄살을 동원해 사정사정했다.
물론 맨입은 아니었다.
“저 골수까지 뜯어먹으세요, 언니. 어린애도 살리고, 돈도 벌고. 아직 동그란 양심도 지키고 한몫 크게 챙겨 가기도 하고. 여기 월급이래 봤자 얼마 안 되잖아요? 저 팔아 치워서 돈 좀 번다 쳐도 아까 그 우락부락한 아저씨들이랑 나눠 가져야 할 거고. 아닌가, 어차피 언니가 받는 월급은 똑같으려나? 아무튼 언니가 얼마를 받든 제가 그 두 배 더 낼게요. 제발요! 제바아아알!”
처음에는 내 애원을 들은 척도 하지 않던 캐서린은 내가 주머니를 뒤져 꺼낸 금화 한 닢을 그녀의 손에 떨어뜨리고 난 뒤에야 내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저 돈 많아요. 그리고 신분도 귀해요. 제가 납치되어서 이런 데 와 있다는 걸 알면 우리 아버지가 여길 가만두지 않으실걸요.”
“네 성이 뭔데?”
“블라스코요.”
아직 미정이기는 하지만.
블라스코라는 성을 듣자마자 캐서린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나는 그녀에게 블라스코의 아르템령에서는 불법 업소들을 어떤 식으로 관리하는지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가장 깡패 같은 귀족, 패도의 블라스코. 알죠? 많이 들어 보셨을 텐데…….”
“…….”
“우리 아버지 진짜 무서운 사람이에요. 살기만으로도 사람을 푹푹 꿰뚫는다니까요. 그리고 엄청 집요하기도 하셔서, 이런 곳이 발각되고 나면 여기서 일했던 사람들은 죄다 세상 끝까지 쫓아갈 거예요. 뼈도 못 추릴걸요.”
“…….”
“혹시 아르템의 사바나에 대해 들어 보셨는지, 언니……?”
거기서 게임은 끝났다. 귀족 상해죄는 죽음으로 갚아야 할 만큼의 중죄인데 심지어 블라스코라니.
나를 얌전히 풀어 주는 대가로 블라스코의 철퇴를 피하고 사례금까지 받아 가라는 제안이니 나름대로 달콤했으리라.
하지만 캐서린은 본인이 빼내 줄 수 있는 건 나 하나라며 선을 그었다.
“저 애는 안 돼. 요즘 우리 검투장에서 인기몰이를 톡톡히 하는 놈이라, 저걸 빼내 줬다간 네게 돈을 받기도 전에 내가 들켜서 죽을 거야.”
아이칼은 이미 이곳에 끌려온 지 2주가 넘었다고 했다.
신수 혼혈이 워낙 희귀한 종이라 경기장에 세워 두는 것만으로도 돈벌이가 쏠쏠한 모양이었다.
“내일 저녁, 검투장이 열리기 직전, 손님들이 입장할 때는 이곳이 비어. 그사이에 문을 열어 놓을 테니 빠져나가.”
캐서린은 마지막으로 그 말을 남기고 나가 버렸다.
‘하지만 쟤를 저렇게 두고 갈 수는 없잖아.’
아이칼은 대체 왜 여기서 나가지 않는 거지?
나는 착잡한 심정으로 맞은편 우리를 지켜보았다.
밤새 자지 않고 아이칼을 지켜본 참이었다. 소년을 관찰하는 내내 나는 목구멍까지 올라온 질문을 애써 삼켜야 했다.
‘저기, 나를 왜 찾았어?’
지우마의 168 화 말미에 그려진 아이칼의 마지막 장면이 자꾸만 뇌리에 머물렀다.
[“하나만 묻자, 니엘라. 너, 이 여자를 알고 있나?”>저 애는 지우마 속의 아이칼이 아니니 물어봐 봤자 소용이 없겠지.
하룻밤이 다 지나기도 전에 아이칼의 상처는 내상까지 전부 아문 것 같았다.
아이칼의 발목에는 구속구가 채워져 있었는데, 아이칼이 움직일 때마다 스파크가 튀며 그의 움직임을 제한했다. 대마물용 구속구가 틀림없었다.
저것 때문에 자력으로 도망치지 못했던 걸까? 재생력에는 문제가 없는 듯한데, 아마 성력을 밖으로 뿜어내는 데 한계가 있는 게 틀림없었다.
‘그래서 저렇게 다친 걸까?’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소설 속 아이칼은 그야말로 먼치킨이었다. 성검의 주인이자 백의 교단이 내세우는 최강의 전력인데, 아무리 아직 어리다곤 해도 이렇게 무력하게 당할 인물이 아니었다.
‘역시 좀 이상하긴 해…….’
밤새 지켜본 바로, 아이칼은 이곳을 나가려는 의지 자체가 없어 보였다.
이런 곳에서 보름 가까이 학대에 가깝게 착취당했다면 적어도 악에 받쳐 있기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지만 아이칼의 눈에는 분노나 억울함, 하다못해 서러운 기색마저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묵묵하고 무념하기만 했다.
꼭…… 자의로 여기 머물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러나 간혹 조용히 눈을 내리까는 모습에서는 왜인지 모를 처연함마저 느껴지는 것이다. 그럴 때면 이미 탈출을 체념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뚫어져라 응시하는 시선을 느꼈는지, 어느 순간부터는 아이칼도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 정면으로 보니까 좀 사나워 보이기는 한다.’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나를 직시하는 시선에 꿰이기라도 한 듯 머리털이 쭈뼛거렸다. 아이칼은 나를 면밀히 탐색하고 있었다.
‘쟤도 데려……가야겠지……?’
처음에는 주인공 버프에 슬쩍 탑승하려고 했는데, 어째 상황이 반대가 되었다.
데려가는 게 맞는 걸까? 쟤가 미래에 나를 찾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혹시 악연일지도 모르잖아. 그러면 차라리 처음부터 얽히지 않는 게 맞는 건 아니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