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Heiress of the Villain Family RAW novel - Chapter (40)
40화
* * *
[14연승 무패의 기록을 달리는 특이 환상종, 오늘 밤 맞붙을 상대는 험난한 남부 황무지에서 온 야만족!]나는 검투장 입구에 붙은 현수막을 한참 올려다보았다. 캐서린이 구해다 준 머릿수건으로 머리칼을 꽁꽁 감싼 채였다.
“뭐 하고 있어? 얼른 이리 와!”
먼저 경기장으로 들어갔던 캐서린이 고개를 내밀고 손짓했다.
나는 얼른 빗자루를 들고 그녀를 따라 안으로 들어섰다. 오늘의 검투가 열리는 원형 경기장의 전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지하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거대한 규모였다. 마치 콜로세움의 축소판 같다.
나는 어제의 그 우락부락한 사내들이 아이칼을 경기장으로 끌고 간 틈을 타 우리에서 기어 나왔다. 이곳에서 일하는 아이로 대충 위장하고 캐서린을 따라 나온 참이었다.
캐서린이 의심스럽게 나를 뜯어보았다.
“대체 무슨 꿍꿍이니, 꼬마야?”
“나와 아이…… 그 남자애를 함께 빼낼 수는 없다면서요? 저 혼자만 도망칠 순 없으니, 그 애도 데려가야죠.”
“그러니까 어떻게?”
“경매에 참가하려고요. 참가비는 얼마예요?”
“……20실버.”
이런, 실버는 없는데. 나는 금화 한 개를 캐서린의 손바닥에 올려 두었다.
“거스름돈은 나중에 계약금에서 차감할게요.”
캐서린은 제 손에 들어온 금화를 말없이 응시하기만 했다. 이렇다 할 반응이 돌아오지 않아 그녀의 표정을 살피니, 무어라 반응할지 감이 오지 않는 듯했다.
아니면 나를 돕는 게 과연 잘한 결정일지 고민하고 있다거나.
“언니는 손해 보는 거 하나도 없을 거예요. 저랑 거래했잖아요. 그것도 골드 100개짜리 계약.”
캐서린의 흔들리는 시선이 내게 닿았다. 나는 걱정 말라는 뜻으로 그녀의 팔을 토닥여 주었다.
“그 금화는 보증 수표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내가 그 계약 반드시 지킬 수 있을 거라는 확신, 만들어 줄게요, 언니.”
“……어린애 같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린 캐서린이 나를 끌고 계단 옆 구석으로 향했다. 검투장의 중간 높이에 위치해 경기장을 두루 내려다보기 좋았다.
검투를 시작함과 동시에 경매 역시 시작한다. 그리고 승자가 가려지는 순간, 가장 고액을 선언한 사람이 그 가격대로 낙찰을 받는다.
노예를 낙찰받은 이는 검투장 바깥에 마련된 사무소에서 대금을 치른 뒤, 노예의 구속구를 푸는 열쇠를 받는다.
그냥 부숴 버리면 안 되냐고 물었지만 캐서린은 고개를 저었다.
“열쇠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구속구를 건드리는 순간 독액이 스며 나오도록 되어 있어. 닿기만 해도 살이 썩어 문드러지지.”
결국 내가 아이칼을 안전하게 이곳에서 빼내는 방법은 하나뿐이란 이야기였다.
경매에서 그를 낙찰받는다. 최고가로.
캐서린이 내게 네모난 패널과 펜 하나를 건넸다.
“액수를 적어 내는 기기야. 이게 없으면 경매에 참석할 수 없어. 본명 대신 닉네임을 쓰고, 그 밑에 액수를 적어. 그러면 자동으로 반영되니까.”
“액수 수정할 수 있어요?”
“한번 적어 내면 그 밑으로는 내릴 수 없어. 액수를 올리는 건 무제한. 검투장 위의 마법구에 실시간으로 최고가가 경신될 거야.”
모두가 볼 수 있도록 최고가를 띄워 놓는다니. 얼마나 눈에 불을 켜고 가격을 올려 댈지 훤히 보이는 듯했다.
“경매가 끝나면 저 계단을 내려가서 쭉 직진하다가 다섯 번째 코너에서 꺾어. 그러면 바로 사무실이 나오고, 그 복도 끝의 비상구를 이용하면 뒤뜰로 나갈 수 있으니까. ……조심해, 꼬마야.”
잠깐 머뭇거린 캐서린이 내 머리를 조심히 쓰다듬었다.
내가 채 감사 인사를 하기도 전에 그녀는 누가 볼세라 두려운 것처럼 후다닥 자리를 피했다. 혹시라도 나를 도와줬다는 게 발각되면 후환을 피하기 어려울 터였다.
‘걱정 마요, 언니. 여기서 나가기만 하면 바로 입금할 테니까.’
계단 옆에 딱 붙어 얼마나 기다렸을까? 오래지 않아 동서남북의 네 입구가 활짝 문을 열었다.
오늘 경기의 티켓을 산 관객들이 우르르 쏟아져 들어와 빈자리들을 채우기 시작했다.
관객석은 금세 사람들로 가득 메워졌다.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으려니 어느 순간 천장의 마법구들에 일제히 빛이 들어왔다.
경기장 내부가 환하게 밝아졌다.
경기장을 에워싼 관중석에서 우레 같은 함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확성기로 증폭한 목소리가 경기의 막을 올렸다.
[[오늘도 이곳을 찾아 주신 신사 숙녀 여러분, 모두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특별히 백색 신수의 마지막 경기를 기념하여 경매를 진행할 예정이니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경기장 양쪽 끝의 창살이 위로 올라갔다. 오늘 검투를 치를 두 명이 무대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왼쪽 문에서 어제 막 잡혀왔다는 야만인 쿠트르족 사내가 먼저 경기장으로 비틀거리며 걸어 나왔다. 나는 숨을 죽이며 오른쪽을 살폈다.
오른쪽 창살 너머에서는…….
퍼억. 불길한 타격음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기다란 백발이 허공에 길게 휘날리더니, 곧장 바닥에 처박혔다.
나도 모르게 욕이 나왔다.
“뭐 저런 미친놈이 다…….”
아무리 신수라고 해도 어린아이를 저렇게 다루다니, 제정신이야? 아무래도 여기서 나가면 이 업장 전체를 고발해야겠어.
잠시 바닥에 가만히 널브러져 있던 아이칼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깨끗한 백발이 흙바닥을 쓸며 허공으로 들려 올라갔다. 그러나 지저분한 흙먼지들은 저절로 아이칼의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아이칼이 몸을 바로 세우고 바닥을 디뎠다.
‘여기저기서 군침 흘리는 소리 들린다.’
당장 내 옆에 앉은 이들 역시도 아이칼을 향해 탐나는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럴 만하다. 환상종들 중에서도 인간형을 저렇게나 오래 유지할 수 있는 신수는 희귀했다.
새하얀 머리칼에 하얀 피부, 하늘하늘한 흰 옷가지까지. 아이칼에게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얀 물감을 들이부어 놓은 듯했다.
여기저기서 나직한 감탄이 흘러나왔다.
“색을 보아하니 이클라스족의 쿼터 같은데. 옆에 두고 보는 재미가 있겠어…….”
내 옆자리의 사내가 동행인에게 소리 낮춰 중얼거렸다. 저절로 귀가 그쪽을 향해 쫑긋 섰다.
그러나 이어지는 그들의 대화는 경기장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지는 확성기 소리에 묻혔다.
[[그럼, 경기를 시작하겠습니다!>>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시끄러운 나팔 소리, 그리고 흥분한 관중의 함성이 온 경기장을 가득 메웠다.
얼마간 고장 난 것처럼 자리에 멈춰 서 있던 아이칼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싸구려 검을 힐끗 일별한 그는 곧 흥미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틀었다.
얼굴을 반쯤 가린 백발 사이로, 가소롭다는 듯 픽 웃는 입꼬리가 언뜻 보인 순간, 아이칼은 낡은 검을 발로 툭 차 멀찍이 밀어 버렸다.
반면 쿠트르족 사내는 이미 그에게 던져진 창을 움켜쥐고 허공을 북북 찢어 내고 있었다.
절로 손에 땀이 쥐어졌다. 나는 아이칼이 끌려 나가기 직전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최대한 다치지 않으면서 경기를 빠르게 끝낼 수 있겠어?”
“힘을 개방하면 쉽다.”
“그럼 개방해. 어디 한 군데도 다치지 말고 한 방에 끝내는 거야. 그 틈에 내가 너를 ‘살’ 테니까.”
“교단병들은 신호를 감지하는 즉시 공간을 건너온다. 너는 교단병들을 상대할 수 없어.”
“나는 못 하지. 하지만 너는 상대할 수 있잖아?”
“…….”
“너 할 수 있는 거 알아. 완전히 그쪽에 등을 돌릴 각오만 되어 있다면, 교단병들을 따돌리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잖아.”
내가 그를 사 주겠다고는 했지만, 엄밀히 따지면 이 일은 내가 아니라 아이칼의 선택에 달렸다.
“그러니 선택해, 아이칼. 이렇게 떠돌다가 언젠가는 다시 교단에 잡혀 들어갈지, 아니면 아예 그쪽과 작별하고 나를 따라올지.”
아이칼은 내가 제 이름을 알고 있는 것에 놀란 눈치였다. 그러나 태평하게 통명성이나 하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날 따라온다고 하면, 내가 책임지고 널 사 줄게. 대신 너는 앞으로 내 호위가 되어서 나를 지키는 거야.”
“누구로부터?”
“나를 해치려는 모든 것들로부터!”
쌍방 손해 볼 것 없는 거래였다. 나는 내 안위를 책임질 호위 기사로 아이칼을 얻고, 아이칼은 교단 대신 새로이 머무를 곳을 얻는다.
캐서린이 시간이 없다며 나를 재촉하는 바람에 아이칼의 대답은 미처 듣지 못했다. 아마 곧 눈으로 확인하게 될 것이다.
으아아아! 길게 포효한 쿠트르족 사내가 창을 바닥에 내리꽂았다. 그리고 곧장 창을 고쳐 쥔 뒤, 전속력으로 아이칼에게 달려들었다.
둘 사이의 거리가 눈 깜짝할 사이에 좁혀졌다.
그러나 아이칼은 피하려는 움직임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 가만히 선 채 돌진하는 사내를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지 않기 위해 대신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지척까지 접근한 사내의 그림자가 아이칼의 조그만 몸을 뒤덮었다. 사내가 창을 횡으로 휘둘렀다. 쇄액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강한 힘이었다.
창끝은 정확히 아이칼의 목을 노리고 들어갔다.
막 창이 희고 여린 목을 꿰뚫으려는 순간이었다. 아이칼이 턱 아래까지 파고든 창끝을 왼손으로 가볍게 막았다.
“어……?”
나는 할 말을 잃고 맞붙은 두 인영을 바라보았다. 창날을 움켜쥔 것도 아니고, 아이칼은 그 날카로운 끝을 손바닥으로 막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창은 부들부들 떨리기만 할 뿐 깊숙이 파고들지 못했다.
당혹감에 휩싸인 쿠트르족 사내가 창을 비트는 순간이었다.
“……!”
쩌저적, 하는 소리와 함께 사내의 창이 얼어붙었다.
새하얀 오러가 물감이 터지듯 허공을 수놓았다. 사내가 용을 쓰며 팔을 움직이려 했으나, 이미 살얼음이 창 자루를 쥔 그의 손목을 타고 올라가고 있었다.
“이, 이익…….”
아이칼이 무심히 손바닥으로 창끝을 밀어냈다. 쿠르트족 사내는 거구의 체격이 믿기지 않을 만큼 쉽게 밀려났다. 마치 누군가 뒤에서 그를 잡아당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리고 고막이 얼얼해질 만큼 커다란 함성 소리가 쏟아졌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