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Heiress of the Villain Family RAW novel - Chapter (41)
41화
흥미진진한 경기에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관객들이 허공에 주먹을 내지르며 환호했다.
무기가 가로막히자 사내는 힘으로 승부를 보려 마음을 고친 모양이었다. 사내가 엄청난 괴력으로 아이칼을 향해 육중한 몸을 밀어붙였다.
“이야아아!”
그러나 아이칼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마치 보이지 않는 빙벽이 그들 사이를 가르고 있는 것처럼, 코앞에서 용을 쓰는 사내를 냉담하게 지켜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푸른 계통을 띠는 블라스코의 오러와는 달리, 아이칼의 오러는 흰색이었다. 게다가 육체에서 솟아 나오는 일반적인 형태와는 다르게 그의 오러는 허공을 수놓듯이 터져 나와 하얀 눈 결정을 흩뿌리며 증식했다.
그와 동시에 경기장 바닥에 투명한 얼음 창 수십 개가 솟아나기 시작했다.
‘빙설의 신수…….’
여기저기서 산발적으로 숨을 집어삼켰다. 이런 광경은 관객들은 물론이고 주최 측마저도 처음 보는 광경인 듯했다. 신이 나서 경기를 중계하던 해설자마저도 말을 멈췄다.
새파랗게 질린 쿠르트족 사내가 황급히 몸을 물렸다. 사방을 창살처럼 에워싸려던 얼음 창을 아슬아슬하게 피한 그가 황급히 거리를 벌렸다.
더 보지 않아도 승자는 이미 결판났다.
나는 혼이 나갈 것 같은 기분을 간신히 추스르고 주위를 훑어보았다. 나처럼 정신을 차린 이들이 전투적으로 팻말에 액수를 적어 넣고 있었다.
‘300골드, 350골드, 400골드…….’
검투장 허공에 나타난 최고가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었다. 경기가 끝나기 전까지 돈을 걸어야 참가가 인정된다.
범접할 수 없는 금액을, 한 1000골드쯤 시원하게 적어 넣으면야 걱정이 없겠지만…….
애석하게도 그러기에 나는 너무 소시민이었다.
‘한 푼이라도 아껴야지, 무슨 소리야!’
이미 캐서린을 매수하느라 50골드나 썼다. 최고 액수보다 딱 1골드 높게 적어 낼 테다. 그러나 그런 내 다짐은 내 옆에 앉은 중년의 사내가 써 넣은 금액을 보자마자 쩡 하고 깨졌다.
700골드. 눈이 튀어나올 정도의 액수였다.
내가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701골드를 적자, 내 팻말을 흘끗 본 상대가 피식 비웃음을 날리며 액수를 수정했다.
[800G]호승심에 불이 붙었다. 질세라 나도 액수를 수정했다.
[810G]내가 액수를 적기를 기다리고만 있었는지, 상대도 곧바로 펜을 움직였다.
[900G]‘……미친.’
스케일이 달랐다. 고작 앞자리 하나의 차이일 뿐인데 현기증이 일고 손이 달달 떨렸다.
[920G] [1000G]내가 금액을 입력하기가 무섭게 옆 사람이 액수를 적어 냈다. 또 내가 금액을 올리면……
[1030G]또 옆에서 펜을 움직이고…….
[1200G]“…….”
나는 경기장을 안개꽃으로 화려하게 수놓고 있는 새하얀 머리칼의 소년을 아련하게 바라보았다.
그냥 쟤 사지 말까?
내가 경매에 열을 올리는 사이, 경기는 점차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쿠트르족 사내의 담력 역시 봐 줄 만했다. 바닥을 뚫고 자라난 얼음 창을 발판 삼아 허공으로 솟구친 사내가 아이칼에게 다시 한번 달려들었다. 창이 대각선으로 똑바로 찔러 들어간다.
악을 쓰고 덤벼드는 그와는 달리, 아이칼은 이제 슬슬 끝을 보려는 듯했다.
줄곧 놀고 있던 아이칼의 오른손에 눈부신 빛의 구가 형성되고 있었다. 그것이 순식간에 길고 가늘게 쭈욱 늘어났다.
나는 아이칼이 무엇을 소환하고 있는지 대번 알아챘다. 성검, 힐라이야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새하얗게 피어오르는 검기를 뚫고 매끈한 은빛 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검 자루는 도자기처럼 매끄러운 순백색이었고, 검신 역시 투명하리만치 반짝이는 은빛이었다. 꼭 백사 같은 자태였다.
‘힘을 개방한다는 게 저 소리였어? 힐라이야를 꺼낸 거야?’
누가 알아보는 사람이 있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다급히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경악스러운 표정을 짓는 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성검은 마검 귀어스트보다도 더욱 베일에 싸인 유물이다. 일반인들이 알아보지 못하는 게 당연하긴 하다.
한 손으로 날카로운 창끝을 거뜬히 막아 낸 아이칼이 오른손으로 검 자루를 바투 움켜쥐었다. 어린아이의 완력이라곤 믿을 수 없는 힘으로, 아이칼이 검을 휘릭 돌려 찌르기 좋은 자세를 취했다.
옆자리의 부호가 휘파람을 불었다. 이것으로 분명해졌다. 저 사람도 아이칼의 정체를 알고 그를 노리고 있었다.
울먹울먹한 눈으로 나를 애절하게 올려다보던 새끼 표범이 어른거렸다.
‘에라, 모르겠다.’
결국 나는 눈물을 삼키며 팻말에 내 이름과 액수를 적어 넣었다. 펜을 팻말에서 떼자마자 내가 적은 글자들이 반짝 빛을 내며 사라졌다.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그 안내문이 떠오른 순간, 아이칼의 검이 상대의 급소를 가격했다. 정확히는 검날이 아니라 판판한 검신으로 뒤통수를 후려친 것이다.
급소를 정확히 맞은 사내가 썩은 고목처럼 천천히 쓰러졌다.
쿠웅. 잠시의 적막이 흐르고, 곧 경기장에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될 만한 환호 소리가 터져 나왔다.
확성기로 수십 배는 증폭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경매를 마감하겠습니다!>>동시에 모두의 머리 위에 오늘의 최고가가 떠올랐다.
[백만골드오렌지 – 2000G]“낙찰입니다!”
낙찰이 선언된 순간이었다. 허공에 푸르스름한 빛을 띠는 흰 텔레포트 진 수십 개가 떠올랐다.
거의 광기에 차 소리를 질러 대던 관객들 사이에 어리둥절한 웅성거림이 퍼졌다. 나는 불청객처럼 난입한 그 이동진의 정체를 단박에 알아보았다.
‘교단병들이다!’
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마자, 아이칼이 검을 휘둘러 불러낸 얼음 창이 그 수십 개의 텔레포트 진을 꿰뚫었다. 완성되지 못한 진이 그대로 와해했다.
나는 난리통 속에서도 아이칼이 제 목을 죄고 있던 구속구를 단번에 뜯어내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소년이 정확히 고개를 꺾어 내가 있는 쪽을 보았다.
더 생각할 것도 없었다. 이미 낙찰도 받았겠다……!
나는 의자를 밟고 일어나 경기장을 향해 양팔을 활짝 펼쳤다.
“이리 와, 내 2000골드!”
기다렸다는 듯이 아이칼이 허공으로 몸을 솟구쳤다.
눈 덮힌 얼음 계단을 밟고 뛰어오른 아이칼이 공중에서 순식간에 모습을 바꾸었다. 흰 오러가 그 모습을 구름처럼 가렸다.
동시에 따듯하고 부드러운 것이 내 품에 가득 안겨 들었다.
‘잡았, 다!’
나는 품속으로 파고든 복슬복슬한 2000골드짜리 새끼 눈표범을 꼭 끌어안고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경기장 밖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 * *
콰앙. 검투장 사무소의 문이 제법 매서운 기세로 활짝 열렸다.
싱글벙글하며 방금의 수확을 계산하던 검투장 운영주 아돌프는 놀라 고개를 치켜들었다. 눈앞에 웬 주황색 머리 타래가 둥둥 떠 있었다.
뭔가 싶어 상체를 기울여 보니, 주황색 머리를 가진 작달막한 어린아이가 숨을 씩씩 몰아쉬며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넌 누구냐, 꼬마야?”
“대금 지불!”
소녀가 대답 대신 빽 소리쳤다.
“결제! 2000골드. 지금 당장이요!”
“뭐야? 어린애 장난에 어울려 줄 생각 없다. 나가.”
아돌프가 심드렁하게 손짓하자, 아이의 양 뺨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화가 나도 단단히 난 표정이었다.
아이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책상 위로 던졌다. 경매에서 사용하는 패널이었다. 반짝이는 문구가 떠올라 있었다.
[백만골드오렌지 님, 낙찰을 축하합니다!]‘낙찰……? 이 어린애가?’
아이가 숨을 학학대며 조그만 주먹으로 책상을 탕탕 두드렸다.
“아, 빨리요! 빨리빨리빨리! 2000골드 안 받아 갈 거예요?”
“혀, 현금?”
“아뇨! 계좌 이체! 아스트로카 중앙은행 직통 연결 패스!”
몸집은 조그마해선 어찌나 목소리가 카랑카랑한지, 주인은 기세에 눌려 엉거주춤 패스 인식 기기를 꺼냈다. 검투장의 단골 VIP 고객 중에는 패스를 대신 이용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아이가 목에 걸고 있던 검고 반질반질한 메달을 냉큼 기기에 갖다 대었다. 마법 스크린에 안내음이 울리며 안내 창이 떠올랐다.
[2000G]“크윽…….”
그 경쾌한 돈 나가는 소리에 아이가 서럽게 눈썹을 늘어뜨렸다. 메달을 꽉 움켜쥔 작은 손이 발발 떨리고 있었다. 커다란 연두색 눈망울에는 눈물마저 고였다.
“비싸…….”
로브에 덮인 아이의 품속에서 뭔가가 꿈틀거렸다. 단추 사이로 웬 북슬북슬한 주둥이가 비집고 나왔다.
아돌프는 그제야 아이가 거의 제 몸통만 한 새끼 짐승을 끌어안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그것이 몹시 만족스럽게 갸릉거렸다.
‘어린애와 어린 짐승……?’
그러나 길게 의문을 가질 틈도 없이, 아이가 바락 소리쳤다.
“뭘 봐요, 아저씨! 내 열쇠 내놔요!”
그 기세에 또다시 휘말려, 아돌프는 저도 모르게 그 신수의 구속구를 푸는 열쇠를 꺼냈다. 그가 그것을 건네기도 전에 아이가 잽싸게 열쇠를 낚아챘다. 그러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쏜살같이 문밖으로 달려 나갔다.
“……”
다시 텅 빈 사무실에 적막만이 감돌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