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Heiress of the Villain Family RAW novel - Chapter (43)
43화
나는 슬슬 그의 눈치를 보며 내게 달라붙은 새끼 표범의 코를 쓰다듬었다.
“저어…… 이 애는…… 그러니까.”
곧이곧대로 성검 힐라이야의 주인이라고 이실직고할 수는 없었다. 그랬다간 당장 교단으로 돌려보내려 할 테니까.
아이칼이 공공연하게 교단을 배신한 이상 다시 교단에 붙잡혀 갔다간 그리 좋은 꼴을 보지 못할 거라는 건 분명했다.
나는 열심히 고민했던 변명을 슬쩍 꺼내 들었다.
“저어, 공작님. 그러니까 이 애는, 제가 경매장에서 발견한 친구인데…….”
“신수로군.”
“네, 그렇습니다.”
나는 바로 꼬리를 접고 인정했다. 역시 공작의 눈썰미를 피하기는 어려웠다.
이 세계에 모습을 드러낸 신수의 개체 수 자체는 적지 않다. 인간과 신수의 혼혈까지 합치면 살면서 한두 번 정도는 만날 수 있을 정도로 드물지 않았다.
다만 신수에도 레벨이 있는데, 최강이라 손꼽히는 최상위 환상종은 딱 다섯뿐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강한 축에 속하는 신수가 빙설의 이클라스였다.
아이칼은 그런 이클라스의 후손으로, 인간 혼혈이기는 하지만 이클라스의 후손들 중 가장 신수의 피가 짙게 흐른다는 평을 받는다, 고 원작에서는 설명했다.
그의 오러는 무척이나 특이한 파장을 띠고 있어 같은 검사끼리는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다고.
하지만 그건 성체인 아이칼의 경우에나 그랬고, 지금은 고작 태어난 지 한 달도 안 되어 보이는 새끼다. 경기장을 휩쓸던 새하얀 오러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어쩌면 이대로 눈치채지 못하고 넘어갈 수도 있지 않을까?
공작은 내게 찰싹 달라붙은 아이칼을 의미심장하게 뜯어보고 있었다.
나는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그의 입에서 떨어질 말을 기다렸다.
“……탈출했으면 바로 빠져나오지 않고 왜 경매장에 들어가 있나 했더니. 이것 때문이었나?”
“어. 네에. 차마 얘를 거기 두고 올 수가 없어서요…….”
공작의 눈매가 심상치 않게 꿈틀거렸다. 그가 입술 안쪽을 지그시 무는 게 보였다.
나는 지레 겁을 먹고 몸을 움츠렸다.
‘역시 들켰나 봐. 어떡하지? 무슨 말로 설득하지?’
내 불안감이 전염되었는지, 아이칼이 덩달아 초조하게 내 뺨을 주둥이로 마구 문질렀다.
‘사 준다며!’
촉촉한 눈망울에 원망이 그득그득 들어차 있었다. 이대로 빼앗기기라도 하면 나를 저주라도 할 기세였다.
잠시 나와 아이칼을 훑어보던 공작이 다시 물었다.
“저 안에 그런 짐승이 많았어?”
“아니요. 동물은 얘 하나뿐이었어요.”
“새끼라도 신수라고, 눈요깃거리 삼을 생각이었나 보군.”
공작의 표정과 음성에 찬바람이 쌩쌩 불고 있었다.
아무래도 공작의 기세가 딱히 긍정적인 것 같지 않아, 나는 새끼 표범을 도로 로브 속으로 스윽 밀어 넣었다.
“제, 제가 키우고 싶은데…….”
“키우고 싶다고?”
“네……. 조용히 키울게요! 그, 물지도 않게 잘 타이르고, 제가 먹이도 주고, 씻겨 주기도 하고, 제가 놀아 줄게요. 산책도 제가 시키고요…….”
아이칼이 짧게 그릉거렸다. 그 소리가 꼭 콧방귀를 뀌는 듯했다.
조용히 해. 내가 지금 너 먹여 살려 주려고 애쓰고 있잖아.
“있는 듯 없는 듯…… 그렇게 같이 지내면 안 될까요……?”
공작은 금세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몇 분째 침묵을 고수하는 탓에 내 기세도 한풀 꺾였다.
나는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웅얼거렸다.
“귀…… 귀여운데…….”
“…….”
“버리기 싫은데…….”
머리 위에서 꺼질 듯한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공작이 손으로 마른세수를 했다.
“……마음대로 해라.”
“네?”
“마음대로 하라고. 키우든 말든. 네 돈 주고 데려온 것이니 알아서 해.”
뭐야? 거짓말!
내가 눈을 반짝 뜨고 그를 올려다보자 공작이 애매하게 내 눈을 피했다.
그러나 나는 그가 손가락 사이로 힐끗 나와 내 품의 새끼 표범을 번갈아 보는 것을 눈치챘다.
나는 얼른 아이칼의 턱 밑에 손을 넣어 고개를 들게 했다.
“자, 인사해, 아키. 우리 집 주인님이셔.”
그 애칭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이칼은 공작에게 인사하는 대신 내 손가락을 와그작 물어뜯었다.
‘아악, 아파!’
차마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이빨 자국 난 손을 움켜쥐는데, 공작이 딱딱한 어조로 나를 불렀다.
“그리고 오렌지.”
내 이름이 다시 카티샤에서 오렌지로 회귀했다. 눈물 맺힌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자, 공작이 무뚝뚝하게 내게 경고했다.
“앞으로 밖에 나가고 싶을 때는 무조건 내게 허락을 받고 나가라.”
“아, 네!”
그러고 보니 그에게 감사 인사를 한다는 것을 잊었다. 나는 얼른 손을 모으고 머리를 꾸벅 숙였다.
“죄송해요. 다시는 이런 일에 휘말리지 않도록 할게요.”
“그럴 필요 없다. 이제 네가 이딴 곳에 오는 일은 없을 테니까.”
“어…….”
“온 블라스코를 들썩이게 해 놓고 어, 는 무슨 어야. 밥은 먹었어?”
“밥…….”
구리구리한 치즈랑 딱딱한 빵……? 작게 중얼거렸는데도 놓치지 않은 공작이 환장하겠다는 듯 눈을 길게 감았다 떴다. 그러곤 키스 경을 불러 세웠다.
“역시 안 되겠다. 경찰이나 치안대에 맡기지 말고 싹 불태워. 운영진들은 제대로 밟…… 아니, 잘 만져 주고. 수련소에 갖다 놔.”
“예, 각하.”
정말 나 때문에 다들 온 게 맞나 봐. 어쩐지 눈가가 뜨거워지는 것 같아 얼른 눈표범을 꼭 안고 고개를 파묻었다.
‘마음대로 기대하면 안 돼. 실망은 내 몫이니까.’
이젠 길을 잃어버려도 찾으러 와 줄 할아버지도 없잖아. 그러니 누가 구하러 올 거란 생각 말고 내 힘으로 나갈 생각이나 해. 그렇게 수없이 각오를 다진 게 무색하게도, 내심으로는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내가 위험에 처하면 달려와 줄 사람들을.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포근해졌다. 든든한 아군이 생긴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이 마음을 입 밖으로 내면 또 한심하다는 눈빛이 돌아올 것 같아서, 나는 애써 입꼬리를 늘어뜨리고 하고 싶은 말을 참았다.
말하지 않으면 제멋대로 부풀어 버린 희망과 기대가 꺼질 일도 없다.
“가자, 꼬마.”
그래도 역시 나와 아이칼을 한 팔로도 거뜬히 안아 든 공작의 품은 든든했다.
텔레포트 진에 마력이 흘러들어 가며 빛을 뿜었다. 주위의 풍경이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 * *
블라스코 저택으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5열종대로 대기하고 있던 시녀들의 품에 안겼다.
“빡빡 씻기고 토실토실해질 때까지 먹인 다음 늦지 않게 재워.”
공작은 그 말을 남기고선 다시 텔레포트 진을 타고 사라졌다. 이미 밤이 늦었는데 또 어디로 가는 건지 미처 물어볼 새도 없이, 나는 욕실로 옮겨졌다.
“저어, 카렌, 마가렛이랑 로사는 어디에 있어요?”
“둘은 수련소로 갔답니다, 아가씨. 며칠 뒤면 돌아올 거예요. 마가렛이 돌아올 때까지는 제가 대신 보살펴 드릴게요.”
수련소? 어딘지 익숙한 지명에 기억을 더듬자, 카렌이 아기씨께서는 모르셔도 되는 곳이라며 상냥하게 웃어 주었다.
‘괜찮은 거겠지. 많이 안 혼났겠지?’
내 납치범의 배후는 잡았으려나, 마가렛?
그러고 보니 시벨 블라스코의 낯짝이 보이질 않았다. 내 옆에 철썩 붙어선 떨어지지 않으려고 갖은 핑계를 늘어놓던 작자였는데…….
“시벨 님께서도 수련소에 가셨답니다, 아기씨.”
“그 수련소라는 곳이 어딘데요……?”
“으음, 블라스코의 격에 맞지 않는 행적을 보인 이들을 교육하는 장소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거기까지 듣자마자 떠올랐다. 원작에서 베르너가 허구한 날 니엘라를 내려보냈던 지하의 수련소. 말이 수련하는 장소지, 실상은 어령, 즉 블라스코에서 은밀히 운영하는 죄인 수감소나 다름없었다.
“아기씨를 지키라는 전하의 명을 받들지 못했으니 치죄하는 건 당연한 거랍니다. 하지만 너무 걱정 마세요. 고작 열흘일 뿐인걸요.”
블라스코에 얽힌 소문은 과장인가 싶다가도 이렇게 오싹함을 불러왔다.
공작의 명을 거역하거나, 맡은 임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거나, 배신 혹은 기만행위를 저지르는 등 블라스코에 직간접적으로 해를 끼치는 이들은 예외 없이 수련소로 끌려간다. 형벌의 기간과 정도를 정하는 권한은 오로지 직계들에게만 있었다.
‘어쩐지, 내 입양을 반대하는 방계들의 심정을 알 것 같기도 하고…….’
달리 생각하니 섬뜩해졌다. 지금의 나도 썩 떳떳한 상황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깨끗이 씻고 나와 옷을 갈아입고, 크고 작은 생채기들을 치료한 뒤 배가 빵빵해지도록 저녁까지 먹은 뒤에야 간신히 혼자 남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시녀들이 저녁 인사를 하고 나가자마자 아이칼을 안락의자에 앉혀 놓고 으름장을 놓았다.
“답답해도 보는 눈이 있는 곳에서는 이 모습으로 지내야 해. 네가 힐라이야의 주인이라는 걸 들키면 여기서 지낼 수 없게 될 거야.”
킁. 새끼 눈표범이 대충 짧게 울어 주었다. 와, 성의 없는 것 봐. 기가 막혀!
“그렇게 태평하게 반응할 일이 아냐. 너뿐만 아니라 나까지 쫓겨난다니까!”
눈표범이 이번에는 새침하게 고개를 홱 돌렸다. 어쭈? 반항한다 이거야? 양 손바닥으로 머리를 다시 정면으로 돌려놓자, 이번에는 꼬리가 날아와 내 손을 찰싹 때렸다.
솜방망이 같아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눈표범의 꼬리는 제법 매서웠다. 나는 아픈 손등을 털며 울컥해 외쳤다.
“야, 2000골드. 누님이 말씀하시는데 왜 귓등으로도 들은 척을 안 해!”
“나는 인간 모습이 더 좋다.”
“악, 깜짝이야!”
나는 예고 없이 날아든 목소리에 기절초풍했다. 눈을 한 번 깜빡한 사이 안락의자 위에는 새끼 표범 대신 백발의 소년이 나타나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