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Heiress of the Villain Family RAW novel - Chapter (49)
49화
“……됐어. 생각을 정리하면 말해 줄게. 가서 책이나 읽고 있어.”
나는 카펫 위에 발랑 드러누워 멍하니 어젯밤을 떠올렸다. [지금 우리, 마법처럼>의 새로운 회차가 열렸다. 169 화는 이전 회차인 168 화의 말미에서부터 시작했다.
[니엘라가 당황스럽게 말을 더듬었다.“카티샤 아인슬리라니……. 나는 처음 듣는 이름이야, 아이칼.”
“처음 듣는다고?”
“그래. 그 사람이 네게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연히 처음 듣겠지.”
아이칼은 몸과 마음 어느 쪽도 정상으로 보이지 않았다. 니엘라는 애달픈 심정으로 그의 몸 곳곳에 난 상처와 빛이 꺼진 눈을 살펴보았다.
저도 모르게 손을 대 보려 했으나, 아이칼이 매몰차게 그녀를 뿌리쳤다.
“모르는 게 당연하지. 카티샤 아인슬리는 오래전에 이미 죽은 사람이니까.”>
아이칼의 그 대사를 상기하니 다시 설움이 왈칵했다.
‘너무한 거 아니에요, 작가님!’
암만 엑스트라라고 해도 그렇지, 제발 니엘라와 반목하다가 목이 뎅겅 날아가는 악당만 아니기를 바랐더니 이게 웬 날벼락이란 말인가!
이미 고인이라니? 내가 이미 죽은 사람이라니? 169 화의 시간대로 보아 약 10년 후에 나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심지어 ‘오래전에’ 죽은 사람.
그러나 경악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나는 얼빠진 채로도 착실하게 페이지를 넘겼고, 아이칼이 니엘라의 멱살을 틀어쥐는 장면을 읽고 말았다.
[니엘라의 등이 돌 벽에 세차게 부딪쳤다. 부서질 듯한 고통이 엄습하기도 전에, 서리가 낀 듯 차디찬 음성이 고막에 쑤셔 박혔다.“지금까지 날 속였어, 니엘라?”>
내 안락의자에 당당하게 앉아 내가 시킨 대로 책을 읽고 있던 아이칼이 내게 시선을 던졌다. 아이칼은 어느새 다시 작은 눈표범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복슬복슬한 눈표범이 꼬리를 좌우로 살랑살랑 휘저으며 책을 읽는 모습은 심장을 부여잡을 만큼 천진하고 사랑스러웠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왜? 새끼 눈표범이 꼭 그렇게 묻는 듯했다.
“……아니. 그냥. 그 백과사전 재미있어?”
눈표범이 별 싱거운 소릴 다 듣겠다는 듯 꼬리를 흔들었다.
진짜 살아 움직이는 3D 아이칼을 보고 있어서인가, 활자로 그려지던 세계가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지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니엘라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지금 아이칼이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단번에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녀가 그를 속였다니.‘뭔가를…… 눈치챈 건가?’>
솔직히, 아이칼이 니엘라의 멱살을 잡은 것보다 니엘라의 그 속마음이 배는 충격적이었다.
뭔가를 눈치챈 건가, 라니? 아무리 봐도 찔리는 게 있는 사람의 대사가 아닌가?
[“진정해, 아이칼. 너 지금 제정신 아니야.”니엘라는 혼란스러운 속을 삼키고 최대한 차분한 목소리를 꾸며 냈다.
아직 온전히 빠져나가지 못한 귀어스트의 마기가 아이칼의 전신을 반투명하게 뒤덮고 있었다. 아이칼의 흰 오러가 마기에 막혀 밖으로 분출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래. 헛소리를 하는 거겠지. 아이칼이 알고 있을 리가 없잖아.’>
찔리는 게 있는 정도가 아니라, 대놓고 다른 속내를 숨겨 왔다는 셈이다.
그럼 정말 원작에서 니엘라는 내내 아이칼을 속여 왔다는 말인가?
아이칼에게 먼저 호감을 품고, 얼음 속성처럼 냉담한 그에게 끊임없이 다가가 빙벽을 녹이고, 마침내 진정한 동료로 인정까지 받아 낸 니엘라가?
애독자인 내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뒤통수를 거하게 맞은 기분이었다.
[“처음부터 네겐 귀어스트의 주인 될 자격이 없었어.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설마 나를 그렇게 계획적으로, 보기 좋게 속여 넘겼을 줄은 몰랐다.”니엘라는 아이칼이 이렇게 진심으로 분노한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본래라면 푸른빛이 감돌고 있어야 할 그의 은회색 눈에 검은 마기가 스멀스멀 영역을 넓히는 것이 보였다.
“나를 이용하니 기분이 어땠어? 나를 귀어스트의 제물로 처넣고 이렇게 뻔뻔스럽게 다시 찾아올 생각은 나던?”
“……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하나도 모르겠어.”
그녀의 예상대로 그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귀어스트에게 삼켜진 영혼의 조각을 아직 회복하지 못한 것이 틀림없었다.
이대로 모른 채 넘어갈 수 있다. 저를 향해 쏘아 보내는 살기에 전신이 오싹거렸으나, 정말 아픈 건 살갗 따위가 아니었다.
‘나를 이런 눈으로 보는 너를 마주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마음이 갈가리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니엘라의 눈가에 투명한 물이 어른어른 고였다.
평소 같았으면 무뚝뚝하게나마 위로의 말 한두 마디는 건넸을 남자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도 일그러뜨린 표정을 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욱 화가 난 듯했다. 순식간에 남은 거리마저 좁힌 아이칼이 그녀의 목을 틀어쥐었다.
니엘라가 눈을 크게 부릅떴다.
“……!”
“감히 나를 농락한 대가를 치를 각오는 늘 해 왔던 거겠지, 니엘라.”
니엘라는 작살에 꿰인 물고기처럼 퍼득대며 제 목을 조른 사내의 손등을 긁었다. 숨통을 옥죄어 오는 악력과 전신을 할퀴는 살기가 이것이 꿈이나 허상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었다.>
거기서 끝이었다.
그 페이지를 대체 얼마나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는지 모른다. 한참 만에 굳은 손을 움직여 페이지를 넘겼지만 [다음 편이 없습니다]라는 야속한 글자만 화면을 가득 채웠다.
169 화는 아이칼이 니엘라의 목을 움켜쥐는 장면에서 끝이 났다. 나는 또다시 작가의 절단신공을 마구 욕해야 했다.
‘돈이 있는데 왜 다음 편을 보질 못하니!’
세상에, 남주가 여주의 목을 조른다. 이게 대체 무슨 막장 전개란 말이야?
니엘라는 블라스코의 핍박을 피하기 위해 백의 교단에 도움을 요청했던 게 아니었냐고. 그렇게 파견된 이가 아이칼인데, 그걸 처음부터 의도했다는 말인가?
니엘라의 큰 그림? 하느님 맙소사. 파국이다.
하지만 여전히 로맨스 전선의 이상기류는 내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건 로맨스 소설이고, 로맨스의 기본 공식은 해피엔드다. 결국 결말은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로 끝나겠지. 하지만…….
‘결국 나는 죽은 사람이라는 거잖아.’
왈칵 눈물이 차올랐다.
정확히 언제 어떤 경위로 생을 마감하는지 알 수가 없으니 뭔가 대비를 할 수도 없었다.
“나는 죽나 봐…… 나는 죽는 거야…….”
할아버지, 나 유산 티끌만큼도 못 쓰고 죽는 건가 봐요.
설마 열아홉 살도 못 넘기는 건 아니겠지? 전생에 아무리 하찮은 삶을 살았다곤 해도, 그런 식으로 허망하게 세상을 떠나고 싶은 건 아니었다.
침대 밑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느새 인간 모습으로 돌아온 아이칼이 카펫에 쭈그려 앉은 채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나와 똑같이 무릎을 끌어안은 자세였다. 손등에 머리를 비스듬히 기댔다는 것만 달랐다.
“누가 너를 괴롭혀, 카티샤?”
나는 무릎에서 눈만 내밀어 그를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어젯밤 내내 족히 백 번은 읽었을 소설 속 묘사와 지금 눈앞에 있는 소년의 모습은 천지 차이였다. 동일인의 과거와 미래라고는 생각지 못할 정도로.
“……괴롭힘당한다고 하면 가서 혼내 주게?”
“벌써 몇 번이나 말했잖아. 누구인지 지목하기만 하라고.”
아이칼이 입술을 말아 올리며 웃었다. 눈매만큼이나 날카로운 송곳니가 살짝 드러났다.
“가능하다면 당장. 불가능한 상대라면 몇 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처리해 준다.”
“…….”
“네가 원하는 방식으로, 원하는 형태로 만들어 줄게.”
말씨는 다정했으나 내용은 그다지 온건하지 못했다. 등골이 오싹해지며 나오던 눈물까지 얼어 버리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쟤는 저렇게 천사처럼 생긴 주제에, 왜 입만 열면 위험한 소릴 아무렇지도 않게 해 대는 걸까?
아이칼은 말문이 막힌 내 모습이 외려 의아한 모양이었다.
“2000골드에 밥값까지 하라면서?”
“……그럼 너 차원 너머의 작가님께 가서 대체 이게 무슨 노답 전개냐고 깽판 좀 치고 와 줄래?”
“뭐?”
“설정 수정도 좀 안 되겠느냐고…….”
나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며 대신 손등으로 눈가를 문질러 닦았다.
‘그래. 원작의 주인공이 지금 내 눈앞에 있지.’
그것도 직접 내 손으로 데려왔다. 한 끗 차이로 사랑스러움과 수상함을 넘나드는 놈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나를 배신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만은 있었다.
게다가 [지.우.마> 후반부에서 아이칼은 나를 알고 있고, 그의 심리가 자세히 서술되어 있지 않아 확신할 수는 없지만 ‘카티샤 아인슬리’가 이미 죽은 사람이라는 사실에 무척이나 괴로워하는 듯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직접 그를 구해 냈으니, 이미 이 세계는 원작의 전개와는 달리 흘러가게 된 것이 아니겠는가?
니엘라가 나타나기 전까지 이 5년 동안, 내가 모종의 이유로 죽고 아이칼이 기억을 깡그리 잊어버리는 대막장 전개가 아니고서야…….
아…… 뭔가 설득력 있어…….
‘그렇게는 안 되지.’
나는 양 손바닥으로 아이칼의 뺨을 꾹 누르고 눈을 맞췄다.
“나 절대 죽게 놔두면 안 돼, 아이칼.”
“내가 여기 있는 한 너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아이칼이 별 잡스러운 걱정을 다 한다는 양 단호히 못을 박았다.
“힐라이야가 함께하는 내가 네 곁에 있는데 대체 뭘 걱정하지?”
이 대사를 성인 모습으로 했다면 조금은 설렜을 법도 한데. 안타깝게도 열 살짜리 꼬맹이의 앳된 목소리로는 깜찍한 느낌만 배가했다.
아이칼이 제법 의젓하게 확언했다.
“네가 나를 버리지만 않으면 나는 너를 지켜. 그게 2000골드짜리 계약이었다.”
“맞아. 잘 기억하네.”
“그러니 이제 밥 줘. 배고파.”
……사실 이게 본 목적이었던 거 아니야? 순간 약이 올라 찹쌀떡 같은 아이칼의 양 뺨을 손바닥으로 마구 짓뭉갰다.
내 기분을 달래 주기 위함인지, 평소 같았으면 나를 째려보았을 아이칼은 순순히 내 손에 짜부라져 주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