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Heiress of the Villain Family RAW novel - Chapter (5)
5화
* * *
“저는 안 하겠습니다!”
상속 포기 원츄!
집 한 채와 내 남은 80년 인생을 맞바꿀 수는 없는 법!
그냥 세 들어 살고 목숨 보전하련다.
나는 왼손을 번쩍 쳐들고 선언했다.
“깔끔하게 포기할게요! 저는 칼이라곤 평생 과도밖에 못 쥐어 봐서요. 마검을 승계해 봤자 돼지 목에 진주죠.”
마침 장검의 날을 정성 들여 닦고 있던 공작이 뭐 씹은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다.
시퍼렇게 날 선 검신이 번뜩거렸다. 내 패기도 절반은 뭉텅 깎여 나갔다.
아니, 왜 하필 이때 칼을 뽑아 들고 있는 거야?
공작이 검을 닦던 손수건을 책상에 휙 던지고 팔짱을 꼈다.
“어이, 오렌지.”
“넵!”
“주제 파악이 빠릿한 거 하나는 마음에 든다만.”
내 표정도 곧 뭐 씹은 것처럼 변했다. 하여튼 아저씨 말투 하곤. 그래도 나를 뼈째 씹어 먹을 것만 같았던 어제보다는 기세가 조금 온건해진 듯했다.
그러나 여전히 잘생긴 만큼 인성을 말아 드신 공작이 단호히 지적했다.
“그럴 수 있었으면 진작 그랬을 거란 생각은 못 하나?”
“네? 그 말은 그럼, 상속 포기가 안 된다는……?”
“유언장에 무려 마법 관리국의 공증이 찍혀 있잖아. 깨뜨릴 수 없는 금기가 걸렸다는 말이다.”
공작이 보란 듯 페이퍼 나이프를 치켜들었다. 그러곤 유언장을 단숨에 갈기갈기 찢었다.
나는 멍하니 허공에 흩뿌려지는 종잇조각들을 응시했다. 팔랑거리던 조각들은 자석에 끌리기라도 하듯이 공중에서 다시 이어 붙었다. 퍼즐 조각이 착착 맞춰지는 것만 같다.
곧 언제 32등분 되었냐는 듯이 원 상태로 반듯해진 유언장이 곱게 책상 위에 놓였다. 불길한 예감이 몰려왔다.
“설마, 파기가 안 되나요?”
“해 보든가.”
공작이 무신경하게 유언장을 내게 건넸다.
나는 얼른 종이를 주먹만큼 작게 꼬깃꼬깃 구겨 공을 만들고 열린 창문으로 힘껏 내던졌다.
그것이 점이 되어 멀어졌다고 생각하기 무섭게, 나는 창밖에서 되돌아온 종이 공에 이마를 딱 얻어맞았다.
“아얏.”
“성냥도 해 볼래?”
공작이 어느새 무심하기 짝이 없는 얼굴을 한 채 성냥불을 들고 있었다. 물론 철벽 방어의 유언장에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유언장은 불로 지져도 불사조마냥 잿더미에서 뿅 솟아오르고, 물을 아무리 들이부어도 방수 코팅이라도 된 것처럼 조금도 젖지 않았다.
내 난리 블루스를 잠시 감상하던 공작이 혀를 끌끌 차며 한마디 했다.
“이제 그만해라. 금기는 물리적으로는 절대 깰 수 없으니까. 그거 뜯어 먹지 마, 이 무식한 꼬마야.”
최후의 수단으로 유언장을 배 속에서 소화해 버리려는 시도가 처참히 무산됐다.
내 이빨 자국이 난 유언장을 휙 가로채 간 공작이 그것을 서랍에 도로 처박았다.
“네게는 거절할 권리가 없다. 네가 상속을 포기하면 유산이 죄다 사회 환원이란 명목으로 황실로 빨려 들어가도록 선대께서 손을 써 두셨으니까. 그래서 일이 이렇게까지 꼬인 거야.”
“그, 그럼 일단 저한테 주시고, 제가 바로 다음 상속인을 지정해서 넘기면……?”
“귀어스트를 승계하고 다음 후계자를 지목한다는 게 뭘 뜻하는지 몰라?”
안다. 내 죽음을 뜻한다. 귀어스트의 주인 되는 자의 말로는 단명 후 영령이 되어 검에 종속되는 것이니까…….
‘안 돼…….’
공작이 어디 한번 해 보란 듯 눈썹을 치켜세웠다.
“죽고 싶은 거면 말리진 않으마.”
“아니에요! 절대!”
내가 새하얗게 질려 고개를 붕붕 내젓자, 공작이 비웃음인지 안쓰러운 헛웃음인지 모르게 피식 웃었다.
그는 곧 내 쪽으로 척척 다가와 나를 가볍게 들어 올렸다.
“그러면 조용히 기다려. 지금 내가 너의 처우를 심히 진지하게 고민 중이다. 머리 아프니까 앞에서 부산 떨지 말고 나가.”
“주…… 죽이실 건 아니죠? 저 착하게 살았어요, 아저, 공작님. 할아버지 임종도 제가 지켰고요…….”
“그 노인네가 널 얼마나 아꼈든 내 알 바 아니고. 네가 어찌 될지는 앞으로 너 하기에 달렸지.”
“제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
내가 잘하면 안 죽일 거야?
겁을 잔뜩 먹어 고개를 쳐들자, 날카로운 턱선과 그보다 더 스산한 눈매가 보였다.
그러나 어제 같은 푸른 살기는 더는 눈에 띄지 않았다. 나를 솜 인형처럼 들어다 옮기는 동작도 보기보다 거칠지 않았다.
“말 잘 듣고,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말썽 일으키지 말고, 처분이 내려올 때까지 얌전히 대기한다. 끝.”
“그, 그것만 지키면 저 돌려보내 주실 거예요?”
“글쎄? 봐서.”
봐서라니. 봐서라니? 사람 목숨이 달린 일인데 봐서라니!
나는 나를 문밖에 내려놓으려는 공작의 목에 대롱대롱 달라붙었다.
‘안 돼. 이런 애매한 답만 들고 찜찜한 채로 돌아갈 순 없어!’
절박한 마음에 할아버지에게 하던 습관이 그대로 튀어나왔다.
“저 잘할게요! 저 청소도 잘하고, 약초도 잘 찧고, 사과도 백조 모양으로 깎을 수 있고, 거스름돈 계산도 잘하고, 또……”
“뭐?”
“잔디도 깎을 줄 알고, 책도 많이 읽었고요. 할아버지랑 체력 훈련도 했고, 그리고, 그리고…….”
또 내가 뭘 할 줄 알더라?
할아버지께 배운 건 많은데, 이 상황에서는 죄다 쓸모없어 보여 서러워졌다.
“그리고, 또…….”
내가 안간힘을 쓰고 매달리자, 공작은 조금 당황한 듯 보였다.
그는 허리를 어정쩡하게 숙인 채 나를 목에 매달고 있다가, 나직하게 한숨을 쉬었다.
“허튼 생각 하지 말고 착하게 잘 지내고 있으면, 시험을 볼 기회 정도는 주마.”
“시험……?”
어벙하게 되묻느라 팔에 힘이 조금 풀렸다.
그 틈을 놓치지 않은 공작이 재빨리 나를 떼어 내 서재 밖에 내려놓았다.
“말했지? 말 잘 듣고 조용히 기다리면 처분이 내려갈 거라고.”
“네에…….”
“그러니까 이제 그만 물어보고 썩 꺼져. 이왕이면 조찬실로 꺼져. 토실토실 자몽이 되어 와라, 귤.”
그 말을 끝으로 서재의 문이 매몰차게 닫혔다.
나는 어느새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 망연히 닫힌 문을 바라보았다.
‘토실토실…….’
어차피 죽을 목숨, 밥이라도 든든히 먹어 두라는 걸까?
나는 콩알만 해진 간을 부여잡고 일단 조찬실로 꺼지기로 했다. 일단 말을 잘 들어야 한다.
사실 맞는 말이지. 상속은 상속이고 마검은 마검이고 밥은 밥이다. 이러나저러나 일단 뇌에 포도당을 공급해야 살길도 솟아나는 법.
식당에 들어서자 주방장과 내 담당 시녀인 마가렛이 양팔을 활짝 펼치고 나를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아기씨! 따끈따끈한 아침이 준비되었답니다!”
온갖 환대에 둘러싸여 진수성찬을 맛보았다. 사실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잘 분간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정말 큰일이다. 이건 내가 싫다고 포기할 수 있는 범위의 문제가 아니었다. 저 안 할게요. 깔끔히 상속 포기하겠습니다,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내가 거절하면 전액 황실 귀속이라는데. 그렇다고 받자니 꼼짝없이 귀어스트에게 영혼까지 저당 잡힐 위기였다.
“완전 발목 잡혔잖아.”
다른 것도 아니고 검이라니. 칼이라니. 그것도 인간을 타락시키는 무기라니.
‘나는, 그런 무시무시한 거 갖기 싫은데……!’
그 와중에 공작이 마지막에 흘린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잘하면 시험을 볼 기회 정도는 주겠다고…….’
시험이라니. 대체 무슨 시험인데?
* * *
블라스코에서 보내는 두 번째 밤에도 나는 오래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블라스코에서 내게 내준 방은 헤르젠 할아버지의 집 2층에 있는 내 방 크기의 두 배만 했다. 그리고 도무지 골방이라곤 볼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화려했다.
심지어는 솜이 빵빵하게 든 동물 인형들이 침대 머리맡에 주르륵 앉아 있기까지 했다.
“흥. 우리 집에 더 귀여운 거 많다, 뭐.”
심지어 베개와 침구도 할아버지네 것이 더 편안한 것 같다.
치이, 제아무리 공작가라도 별거 없네……라고 생각하기에는 내 몸통만 한 토끼 인형이 너무 부드러웠고, 침대는 지나치게 폭신했다.
나는 유혹에 흔들리지 않으려 꿋꿋이 중심을 잡았다.
‘여긴 독버섯이야. 현혹되면 안 돼.’
종이에 꾹꾹 눌러 적은 행동 강령을 펼쳐 보았다. 공작이 지적했던 것들을 반듯하게 적어 두었다.
하지만 이걸 다 지켜도 내가 무사히 여기서 나갈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
‘혹시 할아버지, 실은 나를 굉장히 싫어하셨던 걸까……?’
내가 뭐 잘못했나?
‘기억에는 없는데…….’
나는 침울한 심정이 되어 목에 건 로켓을 만지작거렸다.
오동통한 조개 모양의 낡은 로켓은 내가 가진 유일한 부모님의 흔적이었다.
10년 전 나는 이것과 함께 할아버지네 집 앞에 버려져 있었다. 로켓 안에는 내 이름이 적힌 작은 쪽지 하나가 들어 있었다고 했다.
그러다 언제였더라, 여섯 살 때였나?
첫 심부름을 나갔다가 길을 잃어버렸을 때, 할아버지가 로켓 안에 집 주소를 적은 쪽지를 넣어 놓으셨다. 그러곤 내가 그걸 하지 않을 때마다 어마어마한 잔소리를 쏟아 내셨다.
“어디서 또 길 잃은 강아지처럼 낑낑거리고 있을래! 늙고 병든 이 할애비가 네 뒤꽁무니 쫓아다니며 찾으러 가게 생겼느냐!”
“나 길 안 잃어버린다고요! 그리고 늙고 병이 들었다니, 어떤 노약자가 여섯 살짜리를 한 손으로 대롱대롱 들어 올려요!”
‘……할아버지 보고 싶다.’
이렇게 헤어질 줄 알았으면 좀 덜 떽떽거리는 건데. 말대답도 안 하고……. 심부름 거스름돈도 안 빼돌리고, 부엌에서 몰래 간식 훔쳐 먹지도 않고…….
부모님도 보고 싶다. 1회 차 인생의 부모 자격 없는 인간들 말고, 카티샤 아인슬리를 낳은 진짜 엄마 아빠가 보고 싶었다.
새벽의 힘을 빌려 눈물을 찔끔찔끔 찍어 내는데, 문득 손바닥이 뜨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승맞게 꼭 쥐고 있었던 펜던트가 점차 달아오르고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