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Heiress of the Villain Family RAW novel - Chapter (51)
51화
* * *
아이칼이 카티샤의 2000골드짜리 호위가 된 후로 열흘이 지났다. 그동안 아이칼은 카티샤를 유심히 관찰하고 몇 개의 사실을 알아냈다.
카티샤 관찰 일지 하나, 카티샤는 예쁘고 귀엽다. 이건 사실 처음 봤을 때부터 그랬으니 넘어가고.
둘, 카티샤는 세상 사람들 모두와 친하다.
그래서 가끔은 조금 질투가 났다. 아이칼은 카티샤가 다른 사람에게 저를 덜렁 맡기고 가려는 낌새가 보이면 득달같이 그 애의 손등을 박박 긁었다.
한눈팔지 마! 나를 샀으면 책임지고 키워야지!
그리고 셋, 카티샤는 기상천외한 잠버릇을 가지고 있다.
“…….”
아이칼은 오늘도 익숙한 무게감에 눈을 떴다. 카티샤가 제 배 위에 가로로 발라당 누운 채 도롱도롱 자고 있었다. 태평하게 만세를 한 채다.
곱슬곱슬한 주황색 머리카락이 부채꼴 모양으로 넓게 퍼져 있었다. 졸음기가 남아 있던 아이칼의 표정이 즉시 썩어 들어갔다.
‘대체 어떻게 하면 똑바로 자던 인간이 정확히 90도로 돌아누울 수 있는 건데?’
그것도 제 몸을 타 넘고!
하지만 이건 약과다. 오밤중에 갑자기 날아온 발길질에 뒤통수를 퍽 얻어맞고 깨어난 적도 더러 있었다.
“제발 얌전히 좀 자라고!”
아이칼이 상체를 발딱 일으키자 카티샤가 도로록 그의 발치까지 굴러갔다. 그러고도 깨지 않는다. 아마 옆방에 불이 나도 세상모르고 쿨쿨 잘 인간이다.
대단하다. 저것도 재능이야.
아이칼은 카티샤의 양손을 잡고 죄인 끌어내듯 질질 침대 머리맡까지 옮겨 놓았다. 앙칼지게 엄포를 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한 번만 더 깨우면 일어나서 네 손 깨물어 버릴 거야.”
“이이잉…….”
“낮에도 인간 모습으로 네 옆에 붙어 있을 거야!”
카티샤가 짜증스럽게 몸을 뒤척거렸다.
“할아부지이…… 5분만 더어…….”
“…….”
아이칼은 약이 올라 이불을 카티샤의 머리끝까지 푹 뒤집어씌워 버렸다.
친구고 뭐고, 이럴 때는 이불로 꽁꽁 말아 옷장에 넣어 버리고 싶은 기분이다. 어차피 그래도 안 깰 텐데, 뭐!
이불 속에서 작은 칭얼거림이 새어 나왔다.
“……혼자……. 지 마…….”
쿨쩍거리는 소리도 간간이 넘어왔다. 카티샤가 거의 매일같이 하는 잠꼬대 중 하나였다.
‘혼자 두지 마.’
카티샤 관찰 일지 넷. 카티샤는 혼자 있는 걸 싫어한다.
사람이 많은 곳을 좋아하고, 떠들썩한 걸 좋아하고, 누군가를 안아 주고 뽀뽀해 주는 것을 좋아한다.
아이칼은 그 점이 무척 의아했다.
‘왜지? 난 혼자 있는 게 제일 좋던데.’
교단병들에게 둘러싸여 있을 때의 기억 중 유쾌한 것이 단 하나도 없었다.
아이칼은 누군가와 같은 곳에서 공기를 공유하는 것을 혐오했다. 옆에 누가 있어서 좋은 꼴을 봤던 적이 없다.
인간이 자신을 만지는 것도, 말을 거는 것도 싫고, 친근하게 다가오는 것도 전부 불쾌했다. 오로지 첫 친구, 카티샤만이 유일한 예외였다.
친구, 친구.
아이칼은 카티샤가 알려 준 단어의 뜻을 곱씹었다.
서로를 배신하지 않는 한 평생 함께.
카티샤는 절대 아이칼을 버리지 않는다.
그 문장이 발음과 음절 하나하나까지 전부 마음에 들었다.
아이칼이 생애 처음으로 느껴 보는 만족감이라는 감정이었다.
“가지……. 나도 같이…… 혼자…… 싫…….”
“혼자 아니야.”
꿈속을 헤매는 카티샤는 대답 대신 훌쩍 코를 먹었다.
‘힘들 때 도와주는 게 친구라고 했는데.’
어쩐지 조금 미안해져서, 결국 아이칼은 이불을 카티샤의 코 밑까지 조금 내려 주었다.
“친구야, 괜찮……”
그러나 이불의 마수에서 해방되자마자, 카티샤가 무서운 기세로 이쪽으로 돌진했다. 그러곤 물소처럼 아이칼의 명치를 쾅 들이받았다.
아이칼은 비명을 지르지도 못하고 몸을 구부렸다.
“허으…….”
눈앞에 별 다섯 개가 마구 떠돌아다녔다. 죄책감이 거짓말처럼 증발하고, 단전에서부터 분노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너…… 진짜…….”
“10분만…… 더어…….”
얌전히, 좀, 자라고! 이제 못 참아!
아이칼은 이번에야말로 친구를 이불보로 꽁꽁 싸 침대 저편으로 던져 버렸다. 그리고 다짐했다. 밤에 이렇게 괴롭힘을 당하는 대가로, 낮에는 절대 내 발로 걸어 다니지 않으리라!
* * *
수도에서의 짧은 여정을 마무리하고 아르뎀으로 돌아온 지 일주일 정도가 지났다.
블라스코에 실력자가 한둘이 아니니만큼 촉각을 곤두세운 것이 무색하게도, 아이칼은 별다른 사건 사고 없이 새 보금자리에 잘 녹아들었다.
하기야, 이런 사랑스러운 생명체를 귀여워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아침마다 새끼 눈표범을 안고 방을 나오는 순간부터 모두에게 저녁 인사를 하고 다시 돌아오는 순간까지 사람들의 눈길이 떨어지질 않았다.
“어머나, 아기씨! 그 작은 털 뭉치는 뭔가요? 새로운 반려동물?”
“네! 이름은 아키예요. 아얏!”
아이칼은 내가 그를 애칭으로 소개할 때마다 내 손을 덥석 깨물거나 발바닥으로 얼굴을 퍽 때렸다. 아무리 새끼라고는 해도 육식 동물의 송곳니와 앞발이 인간처럼 무딜 리가 없었다.
아파, 이 성질 더러운 놈아!
눈물을 그렁그렁 단 채 아이칼을 노려보고 있으면 주위에서 어김없이 탄성이 터졌다.
“아이와 동물의 조합이라니. 너무 바람직해요.”
“우리 아기씨 너무 귀여우시다. 품에 꽉 차게 안은 것 좀 봐요.”
“저런 모습은 초상화로 남겨야 하는 게 아닐까?”
저들은 이 무거운 표범을 끌어안고 다니느라 떨어질 것처럼 후들거리는 내 팔과 이빨 자국이 남은 손등 따위는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차마 아이칼과 으릉거리며 싸우는 모습을 보일 수가 없어서, 나는 이를 꽉 깨물고 눈표범에게 속삭였다.
“이제 좀 내려서 네 발로 걸으면 안 될까……?”
길고 탐스러운 꼬리가 내 말에 대꾸라도 하듯 가로로 휘휘 흔들렸다. 아직 성체가 아니라 그런지, 아이칼에게는 음성을 내지 않고도 소통하는 전음 능력은 없었다.
그는 보통 꼬리로 의사 표현을 하곤 했는데, 기분이 좋거나 알겠다는 표시로는 꼬리를 아래위로, 싫다는 표시로는 꼬리를 가로로 흔들었다.
그러니까 즉, 지금은 내려가기 싫다는 뜻이다.
이쯤 되니 슬슬 심오하게 고민해 봐야 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내가 호위 기사를 데려온 건지, 앙칼진 주인님을 한 분 모시고 있는 건지에 대해서.
“안 무거워?”
아르닌이 지나가는 말로 그렇게 물었을 때, 나는 정말로 감격해서 코끝이 찡해졌다.
“무거운데에……. 얘가 안 내려가요…….”
“이리 줘 봐.”
아르닌이 아이칼의 몸통을 잡고 번쩍 들어 올렸다.
검은 장미 무늬가 난 하얀 몸통이 치즈처럼 쭉 늘어났다. 그가 발톱까지 세워 내 품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성질머리 한번 대단한데. 용케 이런 걸 길들였네.”
아르닌이 어깨를 으쓱하곤 손을 놓았다.
눈표범이 캬악거리며 하악질까지 하는 게 심상치 않아, 나는 얼른 그를 도로 안았다. 아이칼이 원망이 넘실대는 눈으로 나를 노려봤다.
‘알겠어. 알겠다고.’
그렇게 보지 마. 내가 뭐라도 잘못한 것 같잖아…….
심각한 인간 불신 탓인지, 아이칼은 정말로 나와 떨어져 있기를 싫어했다.
약속을 잘 지켜 낮 동안은 눈표범 모습을 유지하는 대신 하루 온종일 쫄랑쫄랑 따라붙었다. 손등을 북북 긁으며 안아 달라고 난리를 치는데 정신이 홀딱 빠질 지경이었다.
그렇게 한번 안아 들면 팔에 감각이 없어질 때 즈음해서야 겨우 내려가곤 하는데, 그마저도 꼬리로 내 발목을 감고는 졸졸 옆을 따라다녔다.
‘이거 정말 버릇을 고쳐 놔야 하는 게 아닐까?’
위기감이 들어 하루는 일부러 대꾸도 하지 않고, 안아 달라고 졸라도 모른 척 외면하기도 해 보았다.
그 시도는 아이칼이 눈에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군 순간 실패로 돌아갔다. 나름대로 참고 참다가 결국 터진 것이다.
“친구라고 했는데……. 카티샤는 거짓말쟁이다…… 딸꾹.”
하필 머리가 길고 온몸이 새하얘서 보호 본능을 자극하기 일쑤인데, 거기다 입술을 꾹 앙다물고 눈물 가득 고인 눈으로 노려보기까지 한다.
속상하고 억울하고 서럽고 원망스럽고, 세상의 모든 설움은 다 혼자 짊어진 것 같은 모습에 달래 주지 않을 재간이 없었다.
어쨌든 그리하여 요즘 우리는 블라스코 사람들에게 거의 한 세트처럼 취급당하는 중이었다. 특히 제미언은 멀찍이서 나와 아이칼만 보았다 하면 손수건부터 꺼내 눈 밑을 찍는 시늉을 했다.
이른 아침마다 꼬박꼬박 눈도장을 찍는 공작의 서재에는 어느 순간부터 새끼 눈표범을 위한 푹신한 방석이 마련되었다. 심지어 오늘은 아이칼을 위한 생닭과 나무 열매를 담은 접시도 놓여 있었다.
그것이 아이칼의 몫임을 미처 알아보지 못한 나는 접시를 식사가 다 끝나도록 방치하고 말았다. 그러다 아이칼이 애타는 눈으로 테이블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헤벌어진 눈표범의 턱 밑으로 군침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영문을 몰라 냅킨으로 턱을 닦아 줬다.
“어…… 왜 그래, 아키? 어디 아파?”
그렇게 물으며 눈표범을 여기저기 살펴보는데, 맞은편에서 땅이 꺼질 듯한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공작이 손바닥으로 눈과 이마를 가리며 곧 꺼질 듯한 소리로 중얼거렸다.
“먹여, 그거.”
“네? 뭘요?”
“거기 왼쪽에 놓인 거. 아기가 애타게 쳐다보는 거 말이다.”
“앗.”
아이칼이 간절한 눈으로 나와 생닭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이게 먹고 싶었어? 말을 하…… 아니, 울기라도 하지!”
아이칼이 만족스럽게 생닭으로 포식하는 동안, 공작은 아예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버렸다.
그는 무척 지친 기색으로 손을 휙휙 내저었다.
“먹고 가라. 할 일이 많으니까.”
공작은 여전히 아이칼이 딱히 마음에 차지 않는 모양이었다. 내 옆에 얌전히 몸을 말고 있는 눈표범에게 흘끗 시선을 던질 때마다 반듯한 눈썹이 꿈틀거리는 걸 수도 없이 보았다.
‘역시 좀 성가시기는 할 거야…….’
우리 방해하지 말고 조용히 있다가 가야 해, 아이칼.
어느새 닭 다리뼈를 질겅질겅 씹고 있던 아이칼이 고개를 슥슥 끄덕였다. 다행히 그는 내가 옆을 내주기만 하면 착하고 순하게 굴었다.
그렇게 평화로운 나날이 이어지기를 며칠, 블라스코 방계로부터 두 번째 상속 시험 제안서가 날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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