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Heiress of the Villain Family RAW novel - Chapter (55)
55화
* * *
그로부터 이틀이 더 지나는 동안, 나는 밤마다 원작을 꼼꼼히 탐독했다. 그리고 낮에는 아르닌에게 이끌려 야생에서 살아남는 법에 대한 특별 강의를 받았다.
아르닌은 내게 검술을 가르치는 것이 전혀 효율적이지 않다는 걸 깨닫고 바로 교육의 방향을 틀었다.
“종류 불문 일단 환상종을 맞닥뜨리면, 무조건 도망쳐. 괜히 맞붙어 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말고. 이 탐지기에 불이 들어오는 즉시 꽁지가 빠져라 도망치란 말이야.”
만일을 대비해 아스트로카 은행 아르템 지부에 들러 필요한 마도구들을 주문해 둬야 하나 했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아르닌이 나서서 내게 필요한 물품들을 바리바리 챙겨 준 덕이었다.
“너보다 덩치 큰 뭔가가 반경 300미터 내로 접근하면 여기에 빨간 불이 들어와. 방위는 읽을 줄 알지? 불이 켜지는 위치가 상대의 방향이야. 인간 냄새를 지워 주는 페로몬 스프레이, 이것도 가져가. 세 시간마다 수시로 뿌려. 알겠지?”
“네!”
“아, 또 뭐가 있더라……? 그래, 무기가 필요하지!”
사바나로 출발하는 날엔 오전부터 아르닌의 대장간에 불려 갔다. 아르닌의 무기 보관실을 순회한 끝에, 내게 맞는 무기를 몇 가지 얻었다.
처음으로 고른 건 손목에 차는 장갑이었다. 아르닌이 장갑 가장자리의 톡 튀어나온 버튼을 누르자, 손바닥 부분에서 날카로운 바늘이 돋아났다.
“침 끝에 맹독을 바른 건틀릿이야. 검이나 단도 같은 걸 줘 봤자 휘두르지도 못할 테니까, 뭔가 덮친다 싶으면 손바닥으로 콱 박아 버려.”
까딱 잘못해서 나를 찌르면 그대로 황천길이라는 뜻이렷다.
모골이 송연해진 사이, 아르닌이 내게 내 키만 한 창 하나를 더 안겼다.
“네 키에 맞춰서 길이를 조정했어. 경량화랑 오러 위력 강화 옵션 넣었고. 일회성 방어 마법도 새기기는 했는데, 3서클짜리라 두 번 정도는 버틸 거야.”
“방어 마법을 넣었다고요? 하지만 그거…….”
나는 깜짝 놀라 말을 더듬었다.
‘버, 벌써? 벌써 성공했다고?’
무기에 직접 마법 수식을 새기는 것은 제련술 중에서도 최고 난도에 해당했다. 인간의 체내에 도는 생명 에너지인 오러를 활용하도록 설계한 무기에 자연 에너지인 마나를 융합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전설의 대장장이들의 무기가 아직까지도 범접할 수 없는 수준인 이유다. 무기에 6, 7서클짜리 마법을 서너 개씩 박아 넣었으니까.
그래서 보통은 마법 수식을 새긴 작은 마정석들을 액세서리처럼 검에 끼워 넣는 형태로 제작한다. 하지만 그런 간접 도구로는 2서클 이상의 효과를 내지 못한다.
‘그런데 3서클이요?’
[지금 우리, 마법처럼>에서 아르닌은 성인이 되어 무기 공방을 연 뒤에도 무기에 마법 수식을 새기는 데는 실패했다. 애초에 비밀리에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의 대장장이들의 비기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기도 했다.그래서 일부러 그녀에게 칸소드의 설계도를 통째로 넘긴 것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단기간에 성공하리라곤 전혀 예상치 못했는데!’
아르닌이 별거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칸소드의 설계도와 제련 메뉴얼, 하나부터 열까지 다 떠먹여 주던걸, 뭐.”
“아.”
“재료 하나가 부족해서 3서클에서 그쳤지만, 그래도 영 못 봐 줄 정도는 아닐 거야. 홍옥 하나만 구할 수 있으면 참 좋을 텐데…….”
진짜 천재다.
그 말을 듣자마자 머릿속에 가장 처음으로 떠오른 깨달음은 그랬다.
그리고 두 번째로 떠오른 생각은.
‘잭팟이다.’
미쳤다, 이건 된다!
나는 다급히 아르닌의 팔을 움켜잡았다. 사바나고 뭐고 머릿속에서 홀라당 잊혔다.
“언니, 나중에 공방 차리실 때 꼭 투자자란에 제 이름 올려 주셔야 해요.”
“뭐?”
“그리고, 그리고 수익률, 수익률 좀……!”
공방 수익률 배분 좀 하면 안 될까요, 우리!
사바나고 상속 시험이고 뭐고 다 뇌리에서 잊혔다. 나는 눈에서 불을 뿜으며 부르짖었다.
“2 대 8, 아니, 1 대 9라도 좋아요! 공동 창업해요, 우리!”
“갑자기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언니는 만들기만 해!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자금이랑 메뉴얼 조달하는 건 내가 할게! ……요!”
이건 원작 같은 거 볼 필요도 없어. 그냥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대박이야!
전설의 대장장이 3인이 4인으로 바뀌기까지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았다. 3서클 마법 수식을 새긴 이 창은 지금 당장 경매에 부쳐도 기본 5000골드부터 시작할 것이다.
머릿속에 원대한 사업 계획이 속속들이 짜이기 시작했다. 돈을 갈퀴로 긁어모을 수 있는 기회야!
뛰어나다는 말로는 표현이 부족한 천재적인 인적 자원이 땅이 꺼질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곤 내 머리에 꽝 딱밤을 놓았다.
“대체가…… 이 콩알만 한 머리로 뭘 생각하는 거야?”
“아얏.”
원대한 사업 전략들이 퐁 하고 흩어졌다.
“얘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 너 이래서 사바나에서 어떻게 살아 나올래? 지금 무기 팔아먹을 생각이 나?”
네, 나요. 너무 많이 나요…….
나는 아르닌이 내 맞춤형으로 만들어 준 창을 꼬옥 품에 안았다.
아르닌이 혀를 끌끌 찼다.
“무사히 나오기만 하면 5 대 5로도 써 줄 테니까, 머리털 하나 안 다치게만 해.”
“헉, 5 대 5!”
“상처 하나 달고 올 때마다 비율 깎을 거야.”
“들어갈 때와 똑같은 상태로 돌아오겠습니다!”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나는 재빠르게 검지와 중지를 붙여 이마에 착 갖다 댔다. 머리 한 올 헝클어지지 않고 돌아올 테다.
“이렇게 귀중한 걸 제게 주셔서 감사해요, 언니!”
“귀중하긴 뭘……. 네가 메뉴얼을 안 줬으면 엄두도 못 냈을 텐데.”
아르닌은 겸연쩍어하면서도 기분 좋은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나는 그녀가 만든 첫 번째 마법 무기와 대박 사업에 대한 꿈을 소중히 안고 대장간을 나왔다.
‘원래는 아르닌 언니에게 관리자가 되어 달라고 부탁하려고 했는데, 이런 귀한 선물을 받아버렸으니 더 요구하는 건 양심에 찔린다.’
그렇다면 내가 찾아갈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 * *
연무장에 오는 건 오랜만이었다. 최근 나와 안면을 튼 블라스코의 기사단장 헤겔 경이 겅중겅중 달려와 나를 맞이했다.
“아이고, 아기씨. 시커먼 놈들만 득실거리는 곳에 어인 일로 오셨습니까그려! 등에 진 그건 또 뭐고요?”
“안녕하세요, 헤겔 경!”
훈련을 방해하는 데 대한 대가는 드려야 하는 법. 나는 그간 짬을 내어 만들어 둔 약초즙들을 훈련하는 기사들에게 선물했다.
내 선물을 솥뚜껑 같은 손에 꼭 쥔 헤겔 경의 표정이 아련해졌다.
“이런 걸 보면 참……. 헤르젠 님이 아기씨를 어떤 마음으로 키우셨는지 알 것 같단 말이지요. 어쩜 이렇게 닮으셨을까.”
“제가 할아버지를 닮았어요?”
“그럼요. 선대께서도 늘 이렇게 시원한 약초 향을 몰고 다니셨답니다.”
헤겔 경이 붉어진 눈시울을 문질렀다. 직계 3인방을 제외한 블라스코 사람들은 하나같이 눈물이 많았다.
‘이렇게 덩치가 큰데 마음이 여려서 어쩌려고 그러지.’
나는 안쓰러운 마음을 담아 헤겔 경의 옆구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거기가 내 손이 닿는 최고 높이였다. 그리고 틈을 보아 얼른 물었다.
“공자님은 어디에 가셨어요?”
“잠깐 환복하러 올라가셨습니다. 슬슬 돌아오실 때가 되었는데……. 아, 마침 저기 오시네요.”
과연, 키가 훌쩍 큰 소년이 무심히 연무장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베르너가 기사들에게 둘러싸인 나를 발견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나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로 호다닥 달려갔다.
“안녕하세요, 공자님!”
“……괜찮아 보이네. 시험이 내일인데, 여유롭게 놀러 다니기나 하고.”
베르너가 눈만 움직여 나를 꼼꼼히 들여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베르너와는 아직 이렇다 할 관계의 진척이 없었다. 내가 하녀 행세를 하다 들킨 이후로 둘만 남을 기회가 없었던 탓이다.
‘뭐라고 말을 꺼내지.’
제 관리자가 되어 주세요? 저의 관리자가 되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저를 관리해 주지 않으실래요……?
그러나 내가 채 말을 꺼내기도 전에, 베르너가 먼저 운을 뗐다.
“관리자는 정했어? 네가 정하고 싶다며.”
“아, 그게. 아직이에요.”
“그래? 생각해 둔 사람이 있는 줄 알았는데.”
“생각해 둔 사람은 있는데…….”
“누구?”
너! 그건 바로 너!
나는 주먹을 옹골차게 쥐었다. 필사의 아부와 애교가 필요할 때렷다.
“블라스코에서 제일 잘생기고, 제일 뛰어나고, 무뚝뚝함 속에 따듯함을 품은 검사님이요!”
너무 속 보이나? 아니다. 베르너는 눈치가 심히 없으니까, 이 정도로 대놓고 힌트를 주지 못하면 알아듣지도 못할 거야.
나는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베르너가 무척 고민스럽게 중얼거렸다.
“제일 뛰어나? 각하를 고른 건 아닐 테고, 헤겔 경?”
“…….”
“아니면 키스? 뭐, 나쁘지 않지.”
정말 못 알아들었어.
“아니요, 공자님! 저는, 공자님이……!”
“루시스도 실력이 출중해. 사바나에 대해서도 잘 알고, 무엇보다 그는 입이 무거워. 셋 중 하나를 고르면 되겠네. 그리고…….”
아니야. 난 도련님이 필요하다고. 그러나 내가 어떻게 더 베르너를 공략해 보기도 전에, 베르너가 내게 무언가를 쑥 내밀었다.
“어, 어…….”
얼결에 받고 보니 동그란 구슬 모양의 마정석이었다.
베르너가 미묘하게 내 시선을 피하며 중얼거렸다.
“갖고 들어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 싶으면 곧바로 이걸 깨뜨려.”
“이게 뭔데요?”
“소환석.”
“네에?”
나는 경악해서 눈을 부릅떴다. 소환석?
“그…… 깨뜨리면 소환 대상에게 바로 텔레포트 진이 발동하는 그 소환석……?”
“그래.”
“헉.”
나는 그만 손바닥으로 입을 틀어막고 말았다. 내 관리자가 되어 달라는 말이 쏙 들어갔다.
엄마야, 하급 보물 상자를 깠는데 레전더리급 아이템이 튀어나왔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