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Heiress of the Villain Family RAW novel - Chapter (6)
6화
“어?”
나는 눈을 끔뻑거리다 손등으로 눈두덩을 문질렀다. 로켓 안쪽에서 희미한 붉은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레 로켓을 움켜쥔 손에 힘을 풀었다. 놀랍게도 그것은 느리게 내 손바닥 위로 떠올랐다. 그러더니 저절로 활짝 열렸다.
로켓이 열리자, 상상치도 못했던 어마어마한 빛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
채 눈을 가릴 틈도 없었다. 나는 누운 자세에서 꼼짝도 하지 못한 채 그 강렬한 빛에 집어삼켜졌다.
‘뭐야, 이게!’
겨우 시력이 다시 회복되었을 때, 나는 전혀 다른 장소에 와 있었다.
공작 저택의 침실은 흔적도 없었다. 사방이 어둡고, 비좁았다. 아주 작은 상자에 억지로 몸을 꼬깃꼬깃 구겨 넣은 느낌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사면을 쾅쾅 두드리자, 뿌각 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 위를 가로막고 있던 것이 뜯겨 나갔다. 그제야 산소가 통했다.
나는 작은 창고 안에 들어와 있었다. 책상과 의자, 내가 들어앉은 궤짝 외에는 아무것도 없어 황량하기까지 했다.
“여기가 어디야……?”
블라스코 저택에 있을 법한 골방은 아니었다.
나는 주춤주춤 일어나 공간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그리고 단번에 눈치챘다. 이곳은 조금 전까지 내가 존재하던 [지금 우리, 마법처럼>의 세계가 아니었다.
그곳에는 존재할 리 없는 현대적인 물품들이 여럿 눈에 띄었다. 높이 조절이 가능한 책상이라든가, 바퀴 달린 의자라든가, 볼펜이라거나.
또 탁자 위에는 아주 오래된 타자기가 놓여 있었다. 자판의 글씨는 거의 다 지워져 있어 어느 나라의 글자인지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타자기 위에는 종이 대신 반투명한 홀로그램 스크린이 떠 있었다.
이게 뭐람?
나는 검지로 화면을 쿡 찔러 보았다가, 스위치가 켜지듯 화면이 탁 밝아지는 것을 보고 기겁하여 물러났다.
스크린에 네모난 알림 창이 떠올라 있었다. 생긴 모양이 어딘지 익숙하다.
뭘 이어 보란 말이지?
그러나 머리가 의문을 가지기도 전에 손이 먼저 움직였다. 알림 창을 손으로 조심스럽게 찌르자, 화면에 로딩 중이라는 표시가 떠올랐다.
로딩이 끝나자 화면에 선명한 글자가 떠올랐다.
‘168…….’
나는 멍하니 그 회 차가 적인 페이지를 내려다보았다. 갑자기 나타난 원작의 제목도 제목이지만, 그 밑에 쓰인 회 차가 내 신경을 잡아맸다.
“그럴 리가 없는데.”
168 화?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읽은 마지막 회 차는 167 화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소설, [지금 우리, 마법처럼>은 167 화 에서 무기한 연재 중단된 소설이었다.
168 화 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그 내용이 세상에 존재한다면, 그 소설을 쓰신 작가님의 노트북 드라이브 안에나 있겠지.
“……그런데 이 기시감은 뭐람.”
나는 반투명한 스크린을 힘껏 노려보았다. 어째 내가 보던 소설 앱과 똑같이 생겼다. 폰트도, 페이지 모양도, 하단에 표시된 이전 화와 다음 화 버튼도…….
‘어째 내가 봤던 그 뷰어랑 비슷한데…….’
순간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러고 보니 여기는 초능력이 판을 치는 판타지 세계였다.
보통 판타지 소설들 보면 차원과 차원을 잇는 통로나 틈새 같은 게 클리셰처럼 등장하지 않던가?
‘여기가 만약 그런 공간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전생의 세계와 이곳 세계를 이어 주는 공간이라면, 한국에서 연재 중단이었던 소설의 뒤편 내용이 버젓이 존재하고 있다는 건…….
곧바로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혹시 내가 이쪽 세계로 넘어온 뒤로 연재가 재개된 건가?
‘뭐야, 그럴듯해.’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이미 내가 죽은 뒤로 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전생의 기억을 되찾은 시점을 기준으로 해도 5년이다. 그사이에 연재가 재개되었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애독자의 심장이 멋대로 날뛰며 반응하기 시작했다.
‘그럼 우리 니엘라가 드디어 아이칼을 구하고 마검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걸 볼 수 있는 거야?’
그것뿐만이 아니다. 원작의 뒷이야기를 이어 볼 수 있다는 건, 카티샤 아인슬리로 태어난 내 인생 2회 차의 운명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다.
심지어 졸지에 마검을 쥐게 된 지금은 더더욱!
‘다음 화 이어 보기가 있다면 이전 화로 돌아가기도 있을 거 아니야?’
그렇다면 부분부분 잊어버린 기억을 되살리는 건 일도 아닐 것이다.
‘일단…… 일단 다음 화부터…….’
침이 꼴깍 넘어갔다. 손이 저절로 뻗어졌다. 남의 물건에 멋대로 손을 대면 안 된다는 사실 따위는 나를 막지 못했다.
페이지가 한 장 뒤로 넘어갔다.
[드디어 마지막 순간이었다. 니엘라는 벅차오르는 고양감을 누르지 못하고 영령의 탑 꼭대기를 향해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바로 이 위에 마검 귀어스트와 아이칼이 있다.‘아이칼을 구하고, 마검을 손에 넣기만 하면…….’
그러면 다 끝나. 니엘라의 눈가에 투명한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이 지긋지긋한 블라스코에서 벗어날 수 있어……!’>
“그래, 이거지!”
거짓말처럼 원작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래, 언니. 얼른 남주도 구해 내고, 마검도 정식으로 승계받고 이제 악당 블라스코를 처단하러 가자.
그게 내가 지난 167 화동안 바라 왔던 사이다였다.
그런데 어쩐지 기분이 조금 이상했다. 헤르젠 할아버지와 토실토실 자몽이 되어 오라며 조찬실로 내쫓아 버리던 깡패 공작의 모습이 자꾸만 떠오르는 탓인가.
앞으로 어떤 복수극이 펼쳐지게 될까.
블라스코는 어떤 식으로 망하게 될까?
나는 기대 반 불안한 심정 반으로 페이지를 넘겼다.
니엘라는 탑에 설치된 여러 트랩들을 훌륭하게 타파하며 꼭대기에 점차 가까워졌다. 그렇게 마침내 마지막 문을 남겨 두었을 때였다.
[니엘라는 제 앞을 가로막은 인영을 확인하고 눈을 크게 떴다. 계단 끝에 그녀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인물이 서 있었다.마검에 이지를 먹히고 흡수되어 버린 그녀의 호위 기사이자, 단 하나뿐인 연인, 아이칼이었다.>
“오잉?”
[니엘라는 놀라 말을 더듬었다.“아이칼, 네가 어떻게, 벌써 여기에……?”
“……니엘라.”
“귀어스트에게서 풀려난 거야? 언제, 어떻게……!”>
뜻밖의 상봉이었다. 니엘라가 마검에서 아이칼을 끄집어내는 장면이 나올 줄 알았던 내게도 무척 뜻밖인 전개였다.
용사 니엘라를 기다리고 있어야 할 탑 속의 공주 아이칼이 벌써 나와 있다니? 그런데 어째 그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하나만 묻자, 니엘라.”아이칼의 목소리가 무척이나 고통스러웠다. 눈빛이 스산하다. 크게 다친 짐승처럼 그르렁거리는 소리로, 아이칼이 물었다.
“너, 이 여자를 알고 있나?”
니엘라는 그가 내민 서류의 하단에 쓰인 이름을 읽었다.>
“……어?”
내 입에서, 꼭 니엘라가 내뱉었을 것만 같은 얼떨떨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나는 니엘라의 대사를 세 번이나 반복해 읽었다.
[“카티샤…… 아인슬리?”>“뭐?”
나는 너무 놀라 뒷걸음치고 말았다. 뭐야, 이게 뭐야?
‘내 이름이 왜 여기서 나와?’
나는 황급히 페이지를 넘겼다. 그러자 다시 네모난 알림창이 떴다.
“…….”
미친 듯이 다음 화 버튼을 연타했지만 같은 메시지만 반복해서 떴다.
나는 내 이름만 달랑 적힌 마지막 페이지로 돌아와 파들파들 떨었다.
“뭐야, 이…….”
이 절단신공은 대체 뭐야, 사람 찜찜하게!
의미심장하게 이름만 부르고 끝나는 게 어디 있어요, 작가님!
* * *
다음 화를 찾기 위해 5평 남짓한 공간을 다 뒤졌지만 발견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심지어 이 공간에는 나가는 문도, 밖으로 통하는 창문도 없었다. 틈 없이 밀폐된 공간이다.
완전히 갇혔어요!
“아니, 아니지. 들어온 구멍으로 나가면 되겠지.”
내가 빠져나온 나무 궤짝 안으로 다시 몸을 구겨 넣었다. 머리 위 뚜껑까지 얌전히 닫은 다음, 눈을 질끈 감고 속으로 숫자를 세었다.
이 방법이 아니면 어떡하지?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중앙은행의 억만금을 뒤로하고 이런 골방에서 아사할 수는 없었다.
‘할아버지, 얼굴도 모르는 엄마 아빠, 천지신명님, 제발!’
다행스럽게도 내 오열에 가까운 기도가 통했다.
몸이 밑으로 쑤욱 꺼지는 느낌이 나더니, 어느새 나는 블라스코 공작 저택의 침대 위에서 눈을 껌뻑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나는 그날 밤을 꼴딱 새웠다.
[“카티샤…… 아인슬리?”>“그렇게 아련하게 이름만 부르고 끝내 버리면 어떡해……!”
내 이름이 거기서 왜 나오는데? 나 이름도 역할도 없는 엑스트라 아니었어?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