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Heiress of the Villain Family RAW novel - Chapter (60)
60화
“……!”
왕의 주인!
괴수들 사이로 경악이 퍼져 나갔다.
[시, 신수가 아니시던데…….]“카티는 인간이야. 그러니 쟨 손끝 하나 건드리지 마. 카티가 다치면 전부 얼려 버릴 거니까.”
단호하게 명령하는 아이칼의 주위로 서리가 끼었다.
아이칼이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부러 의도하지 않고서야, 인간의 손에서 탄생한 인공적인 태양 볕이 그의 얼음을 녹일 수 있을 리 없었다.
아이칼이 내내 쥐고 있던 주먹을 폈다. 그 안에 부드러운 노을빛을 띠는 투명한 오러 한 줄기가 흐르고 있었다. 카티샤의 손에서 뽑아낸 것이다.
그는 잠시 망설였다. 카티샤가 지나가듯 했던 말이 떠오른 탓이다.
“이왕 여기로 들어온 김에, 새로운 친구들을 많이 만들어 가고 싶어.”
아주 거슬리는 말이었다.
‘……싫은데.’
카티샤는 친구가 많아지면 좋은 거라고 했지만, 아이칼은 동의할 수 없었다. 그는 작게 칫 소리를 냈다.
‘나 하나만 있어도 충분한데.’
카티를 다른 수많은 ‘친구들’과 나누기는 싫었다. 자신이 친구도 할 거고, 호위 기사도 해 줄 거고, 애완동물도 해 줄 건데. 뭐가 더 필요하지? 믿는 건 나뿐이라고도 했으면서.
그래서 아이칼은 카티샤를 구태여 깨우지 않았다. 대신 소녀의 노을빛 오러를 괴수들에게로 훅 날려 보냈다.
“기억해 두고, 너희 동족들에게 전해. 이런 파장의 오러를 가진 인간에게는 절대 손대지 말고, 내게 하듯 충성하라고.”
[받듭니다.]사바나에서 평화로운 둥지를 꾸린 괴수들이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다.
‘이거 건들면 왕께 사망.’
족히 수십은 될 환상종들이 맑은 주황빛 오러를 앞다투어 한 조각씩 삼켰다. 그러곤 눈을 크게 뜨고 서로를 마주 봤다.
[오잉?] [맛있잖아?] [아주 바삭바삭하고 따끈한 맛이다. 볕에 잘 구운 모래를 씹는 것 같아.] [파장도 아주 특이한 것 같아. 이런 인간은 처음 본다. 궁금해!] [야, 조용히 해. 왕께서 언짢아 보이시잖아.]누군가 소리 죽여 으르렁거렸다.
허업. 환상종들이 일시에 입들을 꾹 다물었다.
그제야 아이칼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호선이 걸렸다. 은푸른 눈동자가 발아래 집합한 환상종들을 한 바퀴 크게 훑었다.
“그럼 이제 누가 내게 설명해 줬으면 좋겠는데. 여기 왜 이렇게 변이종들이 득실거리는 건지.”
아이칼은 사바나의 입구인 마법진을 밟자마자, 이 드넓은 열대 초원에 마기가 드리워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지를 잃고 한낱 마물로 전락한 변이종들은 왕조차 알아보지 못한다.
아이칼이 미간을 찡그렸다.
“이제 짜증 나서 도망 다니는 것도 못 해 먹겠어.”
힐라이야를 꺼내면 단번에 숨통을 끊어 놓는 건 일도 아닐 텐데. 따라오지 못하도록 얼려 놓기만 하려니 아주 귀찮고 성가시다.
가장 늙은 크루어드가 머뭇거리며 처음을 자처했다.
[보름쯤 전부터 갑자기 호수의 어구스트 한 마리가 변이하기 시작하더니, 그 뒤로 수가 점차 늘어났습니다. 변이종들을 모두 동족의 서식지에서 쫓아냈더니, 대신 초원 곳곳을 어지럽히고 있더군요.]“보름 만에? 자연적으로 발생했다고 보기엔 너무 빠르네.”
[그래서 저희들은 인간의 소행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습니다. 물론 공작은 늘 저희에게 협조적입니다만……. 그렇지 않고서야 설명이 불가능해서요.]“흠.”
[아무래도 마기와 융합한 특수한 페로몬을 뿌려 오러 순환계를 꼬아 놓은 것 같습니다. 이런 사악한 짓은 인간이나 하지, 우린 안 합니다.]아이칼은 몇몇 개의 단어만 알아들었다.
마기, 페로몬, 오러, 꼬아 놓다, 사악한. 이해하는 데 별 무리는 없었다.
‘카티가 경계하라고 하던 놈들의 짓인가? 하여튼 인간이란.’
낮게 비아냥거린 아이칼이 카티샤의 노란 가방을 뒤적거렸다. 그의 손이 첫 번째 베이스캠프에서 가지고 나온 영상석을 들었다.
‘어쩔까……?’
아이칼은 뾰족한 손톱으로 영상구를 톡톡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
힐라이야를 꺼내지 않고도 변이종 몇을 처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러면 반드시 흔적이 남는다. 그리고 카티샤는 그의 정체를 타인에게 들키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인간들이 날 교단에 일러바치기라도 하면 안 되니까.’
그럼 이곳을 청소하는 건 누구에게 맡기지?
곧 아이칼의 머릿속에 이곳 사바나의 주인이라는 블라스코 공작이 떠올랐다. 뒤이어 카티샤가 읽으라며 호통쳤던 어린이 백과사전의 어느 한 구절이 떠올랐다.
[청소는 스스로 하자!]간단한 결론을 내린 순간, 마정석을 떠받친 공단이 파삭 얼어붙었다. 그것이 그대로 공중에 둥둥 떠올랐다.
아이칼이 까딱 고갯짓하자, 마정석이 바깥에서 얌전히 대기하고 있던 괴수들 한가운데로 던져졌다.
“가져가. 그 변이종들이 처음 나타났다는 곳에 던져 놔. 바깥의 인간들이 볼 수 있게.”
[예, 왕이시여.]영상구를 입안에 품은 크루어드가 그림자 속으로 녹아들듯 빠르게 멀어졌다.
* * *
사바나 생존기 사흘째.
“특수 페로몬?”
어제 꿀 같은 잠에 빠진 난 오늘 아침 웬 거대한 풀잎 위에서 눈을 떴다. 사방이 눅눅한 녹조들로 뒤덮인 늪이었다. 식인 악어 크루어드의 서식지다.
나와 아이칼은 끄트머리가 둥글게 말린 거대한 잎을 타고 늪을 이동하고 있었다. 아이칼이 꺼낸 특수 페로몬 이야기에 귀가 쫑긋 섰다.
“마기랑 뒤섞인 특수 페로몬이 방출된 것 같다고?”
“응. 그렇지 않고서야 전염력이 이렇게 강할 리가 없으니까.”
나를 제 뒤쪽에 잘 앉혀 준 아이칼이 설명했다.
“밤사이에 변이하지 않은 환상종들이 찾아왔어. 걔들이 알려 줬다.”
“뭐? 날 깨우지!”
아쉽다. 평범한 환상종들과도 친해지고 싶었는데.
아이칼이 고개를 슥 기울이며 생글거렸다.
“네가 안 깬 거야. 항상 참 대단하다고 생각해.”
“뭐야, 지금 나 잠버릇 고약하다고 욕하는 거지!”
내가 눈을 부라리자, 코웃음을 친 아이칼이 내게 가방을 안겨 주었다.
“그거나 잘 들고, 졸리면 더 자.”
아이칼이 이파리가 수북이 달린 나뭇가지로 물을 휘휘 저었다. 나뭇잎 배가 녹조를 헤치고 유유히 나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가방을 끌어안고 재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계속 이렇게 피해 다니면서 갈 수는 없어.’
슬슬 증거 채집을 위한 무슨 수를 내야 했다. 특수 페로몬 때문이란 건 알았는데, 그게 방계와 연관이 있다는 더 확실한 증거가 있으면 딱 좋을 것 같았다.
‘아니면 레전더리 아이템을 깰 때인가?’
머리에 김이 나도록 궁리하며 늪지대를 반쯤 건넜을 즈음이었다. 갑자기 무언가가 수면 위로 솟구쳐 올랐다.
“……!”
변이종 크루어드의 습격이었다.
관절이 괴상하게 비틀린 거대 악어들을 보자 평정심이 빠르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우리가 탄 나뭇잎 바닥이 불길하게 들썩거렸다.
“설마, 이 밑에 지금…… 으아악!”
그때, 내가 딛고 선 풀잎 바로 아래에서 세찬 진동이 일었다. 미처 대비하기도 전에 잎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끼약!”
아래에서부터 머리로 잎을 밀고 올라온 크루어드가 잎의 반쪽을 와작 먹어 치웠다. 그 바람에 반대쪽으로 도로록 굴러떨어지려는 나를, 마찬가지로 늪에서 솟아오른 아이칼의 얼음 기둥이 유연하게 휘감았다.
얼음 발판을 여유롭게 디딘 아이칼이 못마땅하게 혼잣말했다.
“누가 페로몬을 저렇게 무식하게 묻힌 건지. 가끔 인간들은 이해하기가 어렵다.”
나는 이를 뿍뿍 갈며 외쳤다.
“인간의 소행인 걸 어떻게 알 수 있어?”
“피부 곳곳이 빨갛게 까져 있다. 특수 페로몬을 강제로 문지른 거야. 저런 흉터는 자연적으로 태어난 변이종에게선 나타나지 않으니까.”
“오, 그거 아주 좋은 증거네.”
눈으로 볼 수 있단 말이지? 나는 고드름 줄기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와중에도 히죽 웃었다.
반면 아이칼은 귀찮게 되었다는 듯 쯧 혀를 찼다.
“아무래도 싹 얼려 버리는 게 좋겠다.”
페인트를 양동이째 뿌리듯 그의 하얀 오러가 허공에 팍 터졌다. 쫙 뻗은 아이칼의 손아귀에 눈부신 흰 빛이 구 모양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제 슬슬 정말 성가셔.”
높이 묶은 아이칼의 머리칼이 길게 휘날렸다. 이 난리 통에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때 한 점 묻지 않은 소년은 이지를 잃은 괴수들과 대비되어 더욱 고결해 보였다.
나는 아이칼이 무엇을 하려는지 번개처럼 알아차렸다.
아이칼이 어깨 너머로 내게 허락을 구했다.
“괜찮지, 카티?”
“아냐. 스톱! 힐라이야 꺼내지 말고, 본체로 돌아가, 아이칼!”
나는 바락 외치며 팔을 뒤로 해서 배낭에 손을 욱여넣었다. 지금 필요한 이는 아이칼이 아니다.
“소환석!”
방계가 가문 회의에서 합의한 상속 시험에 훼방을 놓고 있음을 증거로 남겨야 했다.
또다시 지난번 납치 사건처럼 나 혼자만 보고 겪은 일이 되어 버리면 이번에도 확증을 남기기가 불가능해진다. 그렇다면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증거를 만들면 그만이다. 나 자신을 지키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언제든 역공할 수 있는 확실한 증거를.
그리고 이왕이면 언제든지 조작 가능하다는 의심을 살 증거보다는, 증인이 더 좋다. 그것도 말 한마디로 방계를 꼼짝 못 하게 제압할 수 있는 굴지의 권력을 가진 증인이 내놓은 증거라면 더욱 금상첨화.
이 순간에는 평범한 소환석도 내겐 레전더리급 아이템이었다.
나는 손에 잡은 구슬을 그대로 꽉 쥐어 깨뜨렸다. 아주 얇은 설탕과자가 부서지듯 손안에서 구슬이 바사삭 부서졌다.
지금 내게 필요한 사람은.
‘직계. 블라스코의 직계가 필요해!’
그와 동시에 눈앞에 검은 마법 수식이 휙 얽혀 들었다. 빈 허공에 거짓말처럼 누군가의 신형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마법 서클 사이로 흩날리는 검은 머리칼을 보자마자 외쳤다.
“공자님, 녹화해요, 녹화! 당장!”
이거 몽땅 기록해요, 오빠! 귀중한 증거란 말이에요!
오